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

Industry Trend

[전략] 게임 스토리텔링의 진화,
서사 중심 게임 개발의 확산

글로벌 게임산업 동향

집필: EC21R&C 김종우 선임연구원

Executive Summary

서사 중심 게임의 부상과 게임 산업 패러다임 전환

탄탄한 서사를 앞세운 게임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잇따라 성공하며 주목

게임이 단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서사 예술로 인정받는 시대 도래

라이브 서비스 게임에서 서사 이벤트가 장기 흥행과 유저 유지의 필수 전략

시나리오 작가의 위상 상승, 프로그래머가 스튜디오 수장으로 성장하는 사례 등장

글로벌 및 한국 게임의 스토리텔링 혁신 사례

<라스트 오브 어스> 닐 드럭만, 프로그래밍 인턴에서 노티 독 공동 사장으로 성장

<33 원정대> 500만장 판매, 시나리오 호평 속 2025년 게임 어워드 9관왕

한국 전민희 작가, <테일즈위버> 다층적 서사 구조로 게임 서사 수준 향상

스마일게이트 <에픽세븐> IP 웹소설 확장으로 팬덤 강화 및 매출 상승

한국 게임산업의 시사점과 대응 방안

전문 시나리오 작가 수요 급증, 게임학과 시나리오 교육 강화 필요

게임 IP의 웹툰·웹소설·영상물 확장으로 IP 유니버스 구축 강화

캐릭터별 탄탄한 서사 설계로 굿즈·2차 상품 개발 및 브랜드화 전략

스토리 기반 팬덤을 수익 모델 핵심으로 전환, 산업 경쟁력 확보

1. 서사 중심 게임 개발의 부상 배경과 트렌드 변화

게임 스토리텔링의 패러다임 전환과 서사 중심 게임의 등장

게임 개발의 중심축이 움직이고 있다. 과거에는 “얼마나 재미있는가”, “그래픽이 얼마나 화려한가”가 게임의 성패를 좌우했다면, 이제는 “이 게임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가”가 핵심 질문이 되었다. 2013년 〈라스트 오브 어스〉가 게임상을 휩쓸며 업계에 충격을 안겼을 때만 해도 이는 예외적 사례로 여겨졌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 서사가 약한 게임은 아무리 시스템이 탄탄해도 시장에서 외면받는다. 게이머들은 더 이상 단순한 플레이 경험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영화나 소설처럼 깊이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이며, 개발사들도 이를 인식하고 서사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쏟아붓기 시작했다.

게임이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서사 예술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글로벌 트렌드의 중요한 변화다. 실제로 2025년에만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Clair Obscur: Expedition 33; 이하 33 원정대)가 더 게임 어워드에서 9개 부문을 석권했고, 미국에서는 텔테일 출신 개발진이 만든 〈디스패치(Dispatch)〉가 100만 장 이상 판매되며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의 부활을 알렸다. 주목할 점은 이들이 모두 대형 퍼블리셔 없이 서사만으로 시장을 공략했다는 사실이다. 게임 평론가들은 “더 이상 AAA급 예산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는 공식이 깨졌다”며, 탄탄한 스토리만 있다면 소규모 스튜디오도 글로벌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할 수 있음이 입증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림> 샌드폴 인터랙티브의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 타이틀 이미지
출처: 스팀 페이지

라이브 서비스 게임에서 서사 이벤트의 중요성 증대

라이브 서비스 게임 시장에서 가장 큰 변화는 플레이어들이 다음 스토리를 기다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신규 던전이나 아이템 업데이트가 유저들을 붙잡았지만, 이제는 이번 시즌에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가 복귀의 이유가 되었다. 넥슨의 서브컬처 RPG 〈블루 아카이브〉가 대표적이다. 메인 스토리를 클리어해야 콘텐츠도 해금되는 구조로 설계되었고, 각 캐릭터마다 별도의 서브 스토리와 친밀도 스토리가 존재한다. 이러한 다층적인 스토리 구조는 플레이어가 단순히 레벨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들의 삶에 깊이 몰입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전투 공략보다 스토리 해석과 캐릭터 분석 글이 더 많이 올라오기도 한다.

정기적으로 갱신되는 이벤트 서사는 유저 충성도를 견인하는 주요 동력이 되었다. 〈블루 아카이브〉는 국내외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는데, 개발사는 ‘서사 기반 콘텐츠 업데이트가 장기 흥행의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호요버스의 〈원신〉 역시 매 버전마다 새로운 국가와 그에 얽힌 신화·역사·정치 구조를 펼쳐내며 플레이어들을 사로잡았다. 이는 서사 강화가 단순한 부가 요소가 아니라 게임의 장기 흥행과 유저 유지를 위한 필수 전략임을 입증한다. 게임 개발사들은 이제 주기마다 어떤 스토리를 풀어낼 것인가를 고민하며, 시나리오 팀의 업무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국내 게임사들도 스토리 중심의 IP를 앞세워 서비스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으며, 이러한 노력은 서브컬처 팬덤을 확장하고 매출로도 이어지고 있다.

<그림> <블루아카이브>에서 캐릭터별 인연 스토리를 진행할 수 있는 ‘모모톡‘ 콘텐츠
출처: Vortexgaming

2. 글로벌 서사 중심 게임의 성공 사례와 산업 확산

〈라스트 오브 어스〉가 바꾼 게임산업의 인력 구조

닐 드럭만(Neil Druckmann)의 커리어는 게임산업 인력 구조가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그는 시나리오 작가도 게임 기획자도 아닌 프로그래밍 인턴으로 노티 독(Naughty Dog)에 입사했다. 2000년대만 해도 작가들은 개발팀의 보조 인력에 불과했다. 프로그래머가 시스템을 만들면 작가가 뒤늦게 대사를 채워 넣는 식이었다. 하지만 노티 독에서 역량을 인정 받아 프로그래머에서 기획자가 된 드럭만은 〈라스트 오브 어스〉에서 스토리를 중심에 두고 모든 게임 시스템을 설계했고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가 설계한 <라스트 오브 어스>는 HBO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시즌1에서만 전 세계 시청자 수 억 명을 기록했고, 드럭만은 제작총괄로 참여하며 노티 독 공동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제 대형 스튜디오에서 시나리오 팀장은 기술이나 디자인 파트의 리더들만큼 중요한 직책이 되었다.

더 중요한 변화는 게임 IP가 다른 미디어로 확장될 때 원작 게임의 서사 구조가 그대로 인정받는다는 점이다. 과거 게임 원작 영화들은 대부분 실패했다. 영화 제작진이 게임 스토리를 “얕다”고 판단하고 완전히 새로 쓰면서 원작 팬들의 반발을 샀기 때문이다. 하지만 HBO 〈라스트 오브 어스〉는 게임 시나리오를 거의 그대로 따랐고 오히려 비평가들로부터 완벽한 각색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게임 서사가 영화·드라마 제작진에게도 존중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는 게임 작가들의 협상력을 크게 높였으며, 실제로 최근 할리우드 작가 조합은 게임 시나리오 작가들의 로열티 기준을 영화 작가와 동등하게 조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 인터뷰에서 <라스트 오브 어스> 시즌 3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닐 드럭만
출처: 디스이즈게임

〈33 원정대〉가 증명한 새로운 성공 방정식

프랑스 몽펠리에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만든 〈33 원정대〉는 게임산업의 공식을 다시 썼다. 개발진은 30명이 채 되지 않았고, 마케팅 예산 또한 대형 스튜디오에 비할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벨 에포크풍 배경의 가상 도시 뤼미에르를 무대로 펼쳐지는 독창적 세계관과 방대한 서사 구조로 전 세계 게이머들을 사로잡았다.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출시 전부터 “프랑스의 인디 개발사가 RPG 본거지인 일본을 이길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 반응이 많았다. 그러나 출시 후 1개월 만에 500만 장 판매를 기록하며, 같은 시기 출시된 일본 AAA급 RPG들을 제쳤다. 게임 미디어들은 작은 스튜디오가 EA나 유비소프트를 이긴 것이 아니라, 좋은 이야기가 큰 예산을 이긴 것이라고 평가했다.

더 주목할 점은 시나리오를 쓴 제니퍼 스베드베르옌(Jennifer Svedberg-Yen)이 게임 작가로서는 완전한 신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이전에 게임 개발 경험이 전혀 없었고, 단지 취미로 글을 쓰는 금융권의 직장인이었다. 과거였다면 게임 작가로 채용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을 것이다. 하지만 샌드폴 인터랙티브의 CEO 기욤 브로슈는 독창적 세계관을 구축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고, 별개의 프로젝트에서 만났던 둘은 결국 같은 팀을 이룰 수 있었다. 캠퍼스 프랑스는 이를 “프랑스 게임 개발 생태계의 잠재력”이라고 평가했지만, 실상은 전 세계 인디 개발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였다. 탄탄한 이야기만 있다면, 경력이 없어도 글로벌 시장에 도전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디스패치〉가 부활시킨 선택 기반 스토리텔링의 매력

텔테일 게임즈(Telltale Games)가 2018년 파산했을 때, 많은 이들은 선택 기반 인터랙티브 게임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텔테일 출신 개발진이 만든 〈디스패치〉는 오히려 그 반대를 증명했다. 은퇴한 슈퍼히어로가 콜센터 직원으로 일하는 기발한 설정과 브레이킹 배드의 애런 폴(Aaron Paul)을 주인공 성우로 캐스팅한 부분이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진짜 성공 요인은 선택의 무게였다. 플레이어가 내린 선택이 단순히 엔딩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동료 슈퍼히어로들의 관계와 임무 성공 여부를 실시간으로 변화시켰다. 커뮤니티에서는 자신의 선택 결과를 공유하며 토론이 활발하게 벌어졌고, 이는 자연스럽게 바이럴 마케팅으로 이어졌다.

8부작 에피소드 방식의 출시 전략도 효과적이었다. 매주 새로운 에피소드가 공개될 때마다 SNS에서는 “이번 선택이 가장 어려웠다”는 반응이 쏟아졌고, 배우 로라 베일리와 트래비스 윌리엄스조차 게임이 아니라 완성도 높은 애니메이션이라고 극찬했다. 작은 규모의 개발사가 백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 것은, 텔테일 풍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이 여전히 강력한 매력을 지니고 있으며 시장과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거대한 오픈월드가 아니라 의미 있는 플레이어의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라는 점을 보여준다. 개발자들에게 단지 거대하기만 한 맵을 만들 필요 없이, 좋은 시나리오와 의미 있는 선택지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준 셈이다.

<그림> 애드혹 스튜디오의 <디스패치> 플레이 이미지
출처: 스팀 페이지

3. 한국 게임산업의 시사점과 대응 방안

서사 생태계 변화에 따른 한국 게임업계의 전략적 대응

한국 게임 개발 현장은 현재 ‘서사 중심’으로의 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과거에는 프로그래밍과 그래픽 등 기술 구현 중심의 인력 구성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서사의 중요성이 강조되며 인력 구조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넥슨과 넷마블 등 주요 기업들이 ‘스토리텔링’을 핵심 역량으로 정의하고, 전문적인 시나리오 디렉터나 서사 개발 리더를 영입하는 등 조직 차원의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이는 스타트업도 예외가 아니다. 많은 인디 스튜디오들이 기술적 완성도를 넘어 차별화된 서사를 구축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으나, 게임의 문법과 서사를 동시에 이해하는 전문 인력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기존 교육 시스템이 주로 프로그래밍과 그래픽 기술에 집중되어 있어,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교육 과정의 확충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업계는 소설, 웹툰, 영화 등 타 분야의 작가들과 협업을 시도하고 있지만, 매체 간 문법의 차이를 좁히고 게임에 특화된 서사 전문가로 안착시키기 위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단계다.

더 나아가 게임 IP의 미디어 확장(OSMU) 전략 또한 고도화가 필요하다. 넷플릭스의 〈아케인〉이나 HBO의 〈라스트 오브 어스〉 성공 사례는 원작의 서사가 탄탄할 때 미디어 간 경계를 넘어설 수 있음을 증명했다. 한국은 웹툰과 OTT 제작 역량 등 세계적인 콘텐츠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게임 IP를 활용한 영상화 성공 사례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스마일게이트의 〈에픽세븐〉 웹소설화 등 의미 있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본격적인 영상화를 위해서는 게임사와 영상 제작사 간의 이해도를 높이고 각 매체의 특성을 조율할 수 있는 ‘각색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단순한 원작의 재현을 넘어, 글로벌 플랫폼에서도 통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깊이 있는 서사 구축이 필요한 시점이다.

캐릭터 서사 중심의 수익 모델 구축과 팬덤 경영

최근 한국 게임사들은 매력적인 서사가 곧 구매 유인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단순히 캐릭터의 성능만이 아니라, 그 캐릭터가 가진 고유한 이야기와 배경이 유저들의 소유욕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에픽세븐〉이나 〈블루 아카이브〉와 같은 사례를 보면, 유저들은 성능의 우열을 떠나 자신과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한 캐릭터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애정을 쏟는다. 이는 캐릭터가 단순한 데이터 덩어리가 아니라, 서사를 통해 플레이어와 감정적으로 연결된 존재로 자리 잡았음을 시사한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캐릭터의 서사를 녹여낸 굿즈, 콜라보레이션, 오프라인 이벤트 등을 통해 팬덤과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팬덤의 애정을 과도하게 상업적으로만 이용하려 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핵심은 유저들이 자발적으로 “이 캐릭터의 이야기를 더 보고 싶고, 응원하고 싶다”고 느끼게 만드는 서사의 진정성이다

탄탄한 스토리는 이스포츠나 2차 창작 시장 등 게임 외부 생태계에도 활력을 불어넣는다.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 단순한 경기 중계를 넘어 하나의 거대한 드라마로 소비되는 것은 각 팀과 선수들에게 부여된 서사가 관중을 몰입시키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한국 게임산업은 정교한 서사 설계와 캐릭터 중심의 팬덤 매니지먼트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기술력이 상향 평준화된 시대, 플레이어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기는 이야기의 힘이야말로 향후 게임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 Engage with CMU, "Neil Druckmann Goes for the Heart", 2023.07.12, https://www.cmu.edu/engage/news-stories/news/profile-druckmann
  • Campus France, "Game Awards 2025: A French triumph", n.d., https://www.campusfrance.org/en/game-awards-2025-a-french-triumph
  • KGOU (Oklahoma's NPR Source), "Inside 'Dispatch,' the video game that plays like an interactive superhero show", 2025.11.04, https://www.kgou.org/2025-11-04/inside-dispatch-the-video-game-that-plays-like-an-interactive-superhero-show
  • Daum News, "[잇써보니:넥슨 '블루아카이브'] 디테일한 스토리 라인·몰입도 높은 캐릭터..'덕후 될라'", 2021.11.21, https://v.daum.net/v/kkvz5T68iV
  • 예스24 채널예스, "전민희 '장르소설은 읽힌 뒤에 의미를 획득하는 것'", 2018.12.31, https://ch.yes24.com/Article/Details/377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