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게임산업 동향
직업으로서의 프로게이머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다. 단순히 게임을 즐기고 플레이하는 단계를 넘어 이제는 운동선수와 같은 프로스포츠 선수로 여겨진다. e스포츠(eSports; 이하 이스포츠) 영향력이 점점 커지며 프로게이머들의 연봉과 이스포츠 대회 상금도 늘어나 선수 수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또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2026년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 정식 종목 중 하나로 채택되는 등 스포츠 종목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발렌시아 CF(Valencia CF), 베식타시 JK(Beşiktaş JK) 등 유명 스포츠 구단에서도 이스포츠 구단 운영을 시도하고 있다.
2022년 연간 이스포츠 누적 상금 순 국가 순위 출처 : Esportsearnings(2023.01)전 세계 이스포츠 시장 규모는 2022년에서 2027년까지 매년 13.7%씩 성장하여 2027년에는 22억 3,520만 달러(약 2조 8,303억 원)에 이를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로게이머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교육 기관 등이 늘어난 점도 변화된 사회의 인식을 보여준다. 이스포츠가 빠른 속도로 프로스포츠로 자리 잡음에 따라 여타의 스포츠와 같이, 프로 선수들을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육성하는 기관과 양성 과정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2017~2027년 이스포츠 시장 매출 출처: 스태티스타(2022.12)게임 시장 규모 1위인 미국은 이스포츠 인재 육성 기관이 다양하고 정규 교육과정과도 체계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은 2016년 이스포츠 경기장을 건설했으며, 교내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와 <오버워치(Overwatch)> 대표팀 선수들에게 6,000달러(약 770만 원)의 장학금을 제공하고 있다. 뉴욕 대학교(New York University)도 이스포츠 관련 직종을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국내 교육기관도 이러한 미국 대학교 이스포츠학과와 협업하고 있다. 2023년 국내 이스포츠 전문 교육 기관 젠지 엘리트 이스포츠 아카데미(Gen.G Elite Esports Academy)를 졸업한 10명의 학생 전원이 장학금 혜택과 함께 미국 대학으로 진학하기도 했다. 이 교육 기관에서는 게임 훈련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고교 과정 수업도 병행하여 미국 대학교 진학 과정에 필요한 다양한 지원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 내 이스포츠 아레나 출처 : Korean Times(2023.06)미국에서는 게임산업이 게임 제작 및 플레이에서 그치지 않는다. 방송, 교육,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으며, 이미 몇 년 전부터 프로게이머 양성과 관련 산업을 위한 정규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프로게이머의 선수 활동에만 국한되지 않고, 게임산업 전체를 아우르는 교육을 중점으로 두고 있다. 선수 생활을 그만두더라도, 컴퓨터 공학, 비즈니스, 심리학 등의 학위 과정을 통해 이스포츠 산업과 관련된 지식과 기회를 배우며 전문성을 쌓을 기회를 제공한다.
이스포츠의 특성상 선수의 활약 기간이 전통 스포츠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질 수 있는데, 이러한 교육과정 및 학위 취득을 통해 선수들은 선수 이후의 인생에 안정적으로 준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짧은 프로 선수 생활에 대한 우려에 대해, 펜실베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의 관계자는 "이스포츠 학위를 받은 후에도 해당 산업에서 다양한 기회가 존재한다는 것을 부모와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정부가 나서 게임산업 인재 양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게임 인재와 산업 육성에 힘을 실은 이유는 10~30대 게임 이용률이 점차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전체 인구 중 약 70%가 35세 미만이기에 게임 수요층이 탄탄하게 자리하고 있다.
2022년 발표된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가 게임 및 이스포츠 전략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는 2030년까지 게임 개발, 퍼블리싱, 인프라 등 게임산업에 39,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고자 한다. 또한, 우수한 게임회사 30개 이상 육성하고 프로 이스포츠 선수 수가 가장 많은 상위 3개 국가 중 하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발표했다.
최근에는 구글과의 협력을 통해, 학생, 개발자, 게이머에 게임산업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을 밝혔다. 이는 통신정보기술부 산하 디지털기업가센터(Centre of Digital Entrepreneurship; 이하 CODE), 사우디아라비아 이스포츠 협회 등과 협력하여 진행되며 게임 개발, 게시, 퍼블리싱, 마케팅 등 전반에 걸친 게임 인재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CODE 센터 총책임자인 압둘라 알샴라니(Abdullah Alshamrani)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게임산업은 엄청난 성장 가능성을 갖추고 있으며, 우리는 이 산업의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전하며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를 밝혔다.
구글의 사우디아라비아 게임산업 육성 프로그램 발표 현장 출처 : Arabnews(2023.06)국내 이스포츠 구단 10곳 가운데 8곳은 아카데미를 직접 또는 위탁 운영하고 있다. 특히, T1은 자체 아카데미인 T1 아카데미를 운영하여 구단 대표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뿐 아니라, <발로란트(Valorant)>, <TFT(Teamfight Tactics)>, <오버워치> 등 다양한 게임 교육과 훈련이 이뤄진다. 젠지(Gen.G)도 이스포츠 인재 양성을 위한 대안 교육 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 구단이 아카데미를 운영하게 되면 학생들과 이스포츠 산업에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구단은 아카데미 운영을 통해 신인 선수들을 조기에 발굴하고 육성할 수 있으며, 프로 선수를 꿈꾸는 학생들도 체계적인 학습을 통해 자기 능력을 향상할 수 있다. 체계적인 학습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모든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게임의 성숙함에 따라 더욱 뛰어난 전략과 기술들이 축적된다. 아카데미와 같은 교육을 통해 천부적인 능력을 더욱 향상하거나, 노력을 통해 프로 수준에 이를 수 있게 해준다. 또한, 프로 선수, 감독, 코치 등은 은퇴 후에도 새로운 도전을 할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다.
이스포츠를 체육 종목으로 인정한 중국은 2019년에 대대적으로 프로게이머를 육성하기 위해 파격적인 보조금을 지급했다. 중국의 빌리빌리(Bilibili)가 운영하는 이스포츠 게임단은 합숙소에 입소만 해도 중국 평균 임금의 2배 해당하는 월급과 무료 숙식을 제공했다. 중앙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상하이, 하이난, 항저우 등 지방 정부들도 프로게이머 양성을 위한 펀드 조성, 학업 기회 제공 등에 나섰다.
그러나 2022년 1월 중국 정부는 갑작스레 게임을 '건강하지 않은 습관'으로 규정하며, 청소년 대상 게임 이용 시간제한을 강화했다. 심지어 텐센트(Tencent)는 안면 인식 시스템을 도입해 청소년들이 오후 10시에서 오전 8시 사이에는 게임을 할 수 없도록 하였다. 이러한 규제를 일부 부모들은 반기지만 10대 위주로 구성되는 프로게이머 양성에 제한이 생기며, 글로벌 이스포츠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이스포츠를 즐기는 인구가 5억 명을 넘어서는 등 이스포츠는 실질적인 4차 산업 혁명의 핵심적인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이스포츠가 아시안게임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국제올림픽위원회도 올림픽 버추얼 스포츠와 이스포츠 시리즈를 만들어 공식 대회로 운영하고 있다.
전통 스포츠 종목에서도 이스포츠와 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프로 야구 시구에 이스포츠 선수가 참여하거나 프로 축구 구단과 이스포츠 구단이 협력해 공동 브랜드 굿즈를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협업을 통해 이스포츠와 전통 스포츠는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하고, 각자 보유한 노하우를 공유하며 상생하고 있다.
이러한 이스포츠의 눈부신 발전에 한국은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블리자드(Blizzard)의 <스타크래프트(StarCraft)>를 시작으로 이스포츠 종주국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지금도 <리그 오브 레전드>, <오버워치> 등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을 배출하고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국내는 빠른 인터넷 서비스와 높은 PC 보급률로 이스포츠에 참여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으며 실제로 우수한 프로 선수들이 대거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프로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체계적인 양성 시스템이다. 프로 시장에서 실력 차이는 굉장히 미미하므로 조금이라도 기량을 높여줄 시스템과 환경은 필수적이다. 실제로 중국의 경우 정부가 주도하여 프로게이머 양성을 지원했는데, 이후 이스포츠 성적이 급상승하여 이제는 우리나라와 항상 순위권을 두고 경쟁하는 국가가 되었다.
교육기관의 형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스포츠 선수들의 경우 많은 선수가 어린 나이에 프로로 데뷔하기에 이스포츠 기량을 위한 교육뿐 아니라, 학생으로 배워야 할 기본적인 교육과 선수 이후 제2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미래 교육 등도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정부 측면에서는 육성 지침을 체계화하여 선수가 법적 테두리 안에서 안전하게 육성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도한 '이스포츠 선수 표준계약서' 도입이 있다. 중국의 경우 이미 2003년 국가체육총국에서 이스포츠를 정식 체육 종목에 포함했다. 우리나라 선수들의 기량이 세계 최고 수준인 만큼 해외 진출도 활발하게 일어난다. 그 때문에 해외 진출 관련한 제도적 장치도 시급하다. 국제적인 이적 시스템이 필요한 만큼 정부 또는 협회 차원 이상의 국제적 공조가 요구된다.
이스포츠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도 정부와 기업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스포츠 경기장을 늘려 '하는 스포츠'에서 '보는 스포츠'로 확장하는 것은 대중들이 이스포츠 산업에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장치이다. 또한 이스포츠가 정식 스포츠로서 가져야 하는 규율이나 기존 스포츠와 협업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은 게임을 스포츠로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이스포츠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진흥원은 이스포츠 산업경쟁력을 강화하고, 선수지도 및 육성과 관련한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스포츠 인력양성기관 지정사업'을 통해 이스포츠지도자, 콘텐츠제작자, 기획자 등 이스포츠 비즈니스 유관 전문인력 양성을 목표로, 요건을 충족하는 기관을 '이스포츠 전문인력 양성기관'으로 지정하여 지원하기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 게임산업이 성장하며, 프로게이머를 진로로 고민하는 학생들의 수도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프로게이머를 직업으로 삼을 수 있도록 게임 학습의 공간뿐만 아니라, 게임을 통해 나아갈 수 있는 다양한 진로를 함께 알려주는 교육 기관의 역할이 필요하다. 향후 미래 먹거리로 게임산업을 넘어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메타버스, 교육 및 연구 등 다양한 산업과 긍정적인 시너지가 기대되는 이스포츠 산업 진흥과 인재 양성에 정부와 기업들의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