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와 커머스를 결합하는 시도는 꾸준히 이어져왔다. 영상 미디어의 독보적 존재인 유튜브도 예외는 아니다. 쇼핑과 영상의 결합인 ‘쇼퍼블 비디오’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유튜브의 노력과, 새로운 라이벌로 등장한 P2E 게임까지 알아본다.
거인이 움직였다. 모두가 향하는 신대륙으로 거인이 한 발자국을 뗐다. 유튜브가 쇼퍼블 비디오를 시작한 것이다. 지난 11월 15일부터 22일까지 일주일 동안 유튜브는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Holiday Stream and Shop’이라는 특별한 이벤트를 가졌다.1) 해당 기간 동안 유튜브는 유명 크리에이터 미스터비스트(MrBeast), 머렐 트윈스(Merrell Twins) 등과 함께 생방송을 진행했다. 여기까지는 평범하다. 하지만 특별한 점이 하나 있었다. 크리에이터가 자신이 원하는 제품을 광고하는 ‘라이브 커머스’ 였다는 점이다. 크리에이터들이 개인 라이브 방송을 통해 라이브 커머스를 진행한 적은 있지만,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직접 주최한 행사는 처음이었다.
본인들의 유튜브 라이브 커머스를 홍보하는 머렐 트윈스(Merrell Twins)의 영상
출처 : 유튜브 Merrell Twins 채널콘텐츠와 라이브 커머스 방송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기존까지 유튜브는 이용자들이 이탈 없이 시청하여 궁극적으로 플랫폼에 오랫동안 체류할 수 있는 콘텐츠를 지향하고, 제작을 장려했다. 하지만 라이브 커머스는 다르다. 오랫동안 시청하기보다는 시청 즉시 구매해야 하는 방송이다. 시청을 멈추고 구매하기 버튼을 눌러야 성공한 라이브 방송이다. 체류성 콘텐츠를 지향하던 유튜브는 왜 ‘행동 유발성 콘텐츠’인 라이브 커머스를 진행했을까?
사실 유튜브는 그동안 콘텐츠들이 ‘쇼퍼블 비디오’로서 작동할 수 있도록 지원해왔다. 2020년 6월 유튜브는 프리롤 광고(영상에 삽입되어 건너뛸 수 없는 광고)로 상품을 바로 구매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을 내놓았다. 일찍이 유튜브는 채널 크리에이터가 자신의 영상 하단에 MD(merchandise)를 팔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었다. 하지만 광고를 보고 바로 구매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은 처음이었다.
전 세계 사람들의 시간을 점령한 유튜브가 커머스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실질적인 위협으로는 미국 기업 ‘아마존’의 성장이 있다. 미국 디지털 광고 시장 기준으로 현재 아마존의 시장 점유율은 10% 내외다. 문제는 성장세다. 2019년 7%이던 시장 점유율은 2023년까지 13%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구글의 디지털 광고 시장 점유율이 30%가량인데, 아마존의 성장이 구글의 고객을 뺏을 수 있다. 비록 검색 엔진으로서의 지위는 흔들리지 않을지언정 ‘쇼핑’ 검색엔진으로서의 지위는 무너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미국 디지털 광고 시장의 2019년과 2020년 점유율 추이
출처 : https://www.emarketer.com잠재적인 위협도 있다. 인스타그램, 스냅챗 그리고 사진 공유 기반 SNS인 핀터레스트의 추격이다. 애플의 개인정보 강화 정책 이후 메타(페이스북)는 자사 서비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숍(Shops)’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브랜드들이 인스타그램에 채널을 개설하면 소비자가 제품을 발견하고 ‘페이스북 페이’를 통해 구매하는 소비 과정을 추구한다. 스냅챗은 AR 렌즈를 통해 제품을 체험하고 바로 구매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다. 핀터레스트도 제품을 발견하고 구매하는 이커머스 플랫폼으로서 발돋움하고 있다. 미국 온라인 결제 업체인 페이팔이 핀터레스트 인수를 추진한 데는 핀터레스트가 쇼핑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2) 이미 수많은 10대의 시간을 빼앗아 유튜브마저 ‘쇼츠(Shorts)’라는 숏폼 기능을 만들게 한 틱톡의 위협은 말해 무엇하랴.
페이스북의 결제 시스템인 ‘페이스북 페이’
출처 : https://pay.facebook.com모든 플랫폼은 소비자로 하여금 콘텐츠를 통해 제품을 발견하게 하고 구매를 유도한다. 만약 유튜브가 그걸 하지 않는다면, 이는 차별화가 아니라 명백한 도태다. 대마불사(大馬不死, 말들이 모여 무리를 이룬 대마가 결국은 살길이 생겨 쉽게 죽지 않는 상황)라고 불릴 정도로 거대한 유튜브도, 시대를 따라가지 않으면 흔들릴 수 있기에 새로운 영역에 진출한 셈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크리에이터 광고 매출의 한계다. 유튜브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크리에이터와 광고 매출을 나누어도 지속 가능한 플랫폼이다. 하지만 크리에이터들은 더 많은 돈을 원한다. 그렇기에 유튜브는 라이브 방송을 통한 후원은 물론이고, 녹화방송에도 후원할 수 있도록 팁(tip) 기능을 활성화했다. 이 모든 발전은 광고 이외 매출을 확보해주기 위한 노력이었다.
물론, 유튜브의 광고 매출은 늘어날 것이다. 문제는 크리에이터의 매출이다. 크리에이터는 많아졌고 앞으로도 늘어나겠지만 광고주가 그만큼 늘어나리란 보장은 없다. 광고주는 대형 크리에이터를 원하고, 소규모 크리에이터는 프리롤 광고 수익 이외의 길도 찾아야 한다. 처음엔 후원이고, 그 이후에는 크리에이터가 콘텐츠를 올릴 때마다 일정 금액을 후원하는 시스템인 ‘패트리온(Patreon)’과 같은 콘텐츠 판매가 있었다. 유튜브를 통한 커머스는 그다음 미래다.
결국 크리에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수익 구조 확보를 위해서다. 광고를 통해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만들지 못한 경쟁자들이 커머스에 힘입어 유튜브 추격에 나섰다. ‘유일하게 돈 되는 플랫폼’이라는 수식어를 놓치고 싶지 않은 유튜브가 커머스에 진심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더 큰 경쟁은 쇼퍼블 비디오 바깥에 있다. P2E3) 게임이라는 거대한 폭풍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P2E 게임은 게임 안의 특정 재화를 모으면 관련 코인으로 바꿀 수 있고, 이 코인을 현금화할 수 있다. 이전까지는 게이머끼리 거래를 통해 암암리에 아이템을 현금화했다면, 이젠 게임사가 공식적으로 현금화할 수 있는 경로를 열어준 셈이다. 2018년 베트남 스타트업 스카이 마비스가 개발한 게임 <엑시인피니티>는 캐릭터를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고, (주)위메이드넥스트의 <미르 4>의 경우 게임 내에서 캘 수 있는 광물인 ‘흑철’을 모으면 코인으로 바꿀 수 있다. 실제로 필리핀에선 엑시인피니티를 통해 월급 이상의 소득을 기록하는 게이머들도 많다고 한다.
P2E 게임의 대표주자인 <엑시인피니티>
출처 : 엑시인피니티 홈페이지P2E 게임은 궁극적으로 게임의 성격을 바꾼다. 이전까지 게이머들은 게임에 시간과 돈을 투자했지만, 금전적으로 남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P2E 게임은 다르다. 게임으로 돈을 번다면 사용자들은 기꺼이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하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자산을 만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펼칠 수 있다. 즉, 소비가 아닌 생산 차원으로 게임을 접근하게 되며 이는 곧 게임의 플랫폼화를 의미한다.
지금까지 모든 크리에이터들이 유튜브에 몰렸던 이유는 유일하게 유튜브만 크리에이터의 자산(채널)을 인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경제 활동(광고 수익 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P2E 게임이 대세가 된다면 유튜브는 다른 차원의 경쟁을 해야 한다. 아이들의 장래희망이 크리에이터인 시대에서 P2E 게이머로 바뀔 수도 있다.
이미 유튜브는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쳤다. 새로운 서비스가 출시될 때마다 불거지던 유튜브의 위기는 사용자의 시청 시간 점유를 둘러싼 경쟁 관점이었다. 절치부심한 경쟁사들은 이제 역전의 기회를 커머스에서 찾고 있다. 유튜브는 이를 쇼퍼블 비디오로 맞서고자 한다.
하지만 P2E 게임과의 경쟁은 어떨까. 유튜브와 다른 사분면에 있던 게임도 게이머들이 돈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냈고, 유튜브와 같은 시장에서 사용자의 시간을 두고 경쟁할 수 있다. 문자 그대로 새로운 차원의 경쟁이 열린다. 유튜브가 점유하는 시간 총량은 줄어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유튜브가 기본값인 세대에서 메타버스가 기본값인 세대로 축이 바뀐다면 유튜브의 지위는 낮아질 수 있다.
스마트폰이 가져온 모바일 혁명은 유튜브의 시대를 열었고, 기술 발전은 메타버스와 NFT의 시대를 열었다. 어쩌면 유튜브와 타 SNS 플랫폼의 ‘쇼퍼블 비디오’로서 경쟁은 과거의 전쟁일 수 있다. 진짜 미래 전쟁은 P2E 게임과의 경쟁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