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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이야기가 들려야
음악도 들린다

JTBC의 음악 예능 공식

글. 김형중(JTBC 프로듀서)

음악을 소재로 한 오디션 예능 프로그램은 대중에게 낯선 실력파 출연자, 예측할 수 없는 상황 등 신선한 요소로 재미를 찾는다. 그런 반면 비슷한 포맷이나 연출, 또는 ‘악마의 편집’ 때문에 피로를 느끼는 시청자도 많다. 기존 음악 예능에서 보여주는 과도한 대결의 정서를 버리고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한 JTBC 음악 예능의 차별점을 들어보자.

결국, 사람의 이야기

음악 예능에 관해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감사하게도 대중들에게 너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통칭 JTBC 음악 예능에 관하여 만든 사람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JTBC의 개국과 더불어 예능국의 일원으로 지난 10년간 선후배들과 함께 만들고 지켜온 음악 예능에 관해 두서없이 기술해보려 한다.

JTBC의 음악 예능에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한 사람의 이야기는 한 사람이 살아온 과정이다. 음악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본인이 살아온 삶의 과정이 ‘음악’을 통해 투영되어 있다. 사실상 여러 가지 예능 방송의 형식 중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은 삶의 이야기를 하기 매우 적절한 방식이다. 이전의 오디션 프로그램은 그 사람의 배경과 과거에 집착하는 방식으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대중들에게 이입하게 만들었다. 힘들었던 삶, 힘들게 지켜온 음악 등. 그러나 우리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그 사람의 생각, 성격, 인성 등이 방송에 드러나게 만드는 것이다. 삶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그 사람의 감정, 절실함, 무대에 임하는 자세 등을 보여주는 것이 단순한 그들의 음악 이야기만 보여주는 것보다 의외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접근이 그 사람 자체를 그대로 보여주는 데 더욱 효과적일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누구의 이야기인가

오디션 프로그램은 참가자와 시청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드라마다. 시청자 여러분들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JTBC의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 <히든싱어>, <싱어게인>, <슈퍼밴드> 등의 프로그램은 사실 공통적인 한 가지 문법을 갖고 있다. 바로 하나의 장르에 국한된 것이 아닌, 다방면의 소외된 음악인들의 이야기를 조명하는 것이다.

물론 ‘스타를 만들어 낸다’는 오디션 프로그램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지만, 그 과정에서 주목한 단어가 있다. ‘숨어 있는’ 혹은 ‘빛을 보지 못한’. 기존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이 누가 우승을 하느냐에 주목했다면 우리가 이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참가자 모두의 이야기를 많이 담는 것이다. 또, 기존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가치인 ‘참가자들이 어떤 감정으로 이 프로그램에 임하는가’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의 경우 함께 참가한 옆 사람을 밟고 올라가야 내가 일등에 이를 수 있는 치열한 약육강식의 세계를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담는다. 이런 방식은 시청자들을 자극하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반면 JTBC 오디션 프로그램의 경우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가감없이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참가자의 모습을 진솔하게 담아낸 <팬텀싱어 2>의 무대

출처 : JTBC 공식 유튜브 채널

잘할 수 있는 걸 잘하도록 돕는다

JTBC의 음악 예능은 참가자들이 잘할 수 있는 걸 잘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집중한다. <팬텀싱어>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많이 다루지 않은 클래식 크로스오버를 전면에 내세웠다. <싱어게인>의 이승윤은 본인만의 색으로 최종 우승을 이뤄냈고, <슈퍼밴드>는 대한민국에서 소외 받는 연주자들이 프로그램 전면에 나섰다. JTBC의 음악 예능은 ‘시청자가 원한다’는 논리 하에 참가자들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히는 연출을 매우 지양한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장르, 가장 잘할 수 있는 참가자들만의 대표 무기를 무대 위에서 맘껏 펼쳐 보이길 바란다. 그리고 그들이 최고의 무대를 선보일 수 있도록 음향, 무대, 영상 등 필요한 모든 면에서 최고 수준의 퀄리티로 그들을 뒷받침하기 위해 노력한다.

가장 좋은 연출은 그대로 보여주는 것

<히든싱어>부터 시작된 JTBC 음악 예능의 공통된 정서가 뭐였는지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꼭 어떤 방향을 정해 그렇게 하자고 누군가 끌고 갔던 건 아니다. 그냥 JTBC가 갖고 있는 정서가 프로그램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그 정서가 ‘사람’이었다.

처음 <팬텀싱어>를 만들었던 2016년을 떠올려보자. 그때도 ‘이 사람을 어떻게 대중한테 보여줘야 하지?’ 라는 고민을 엄청나게 했던 것 같다. 다만 어떤 포장을 해서 보여줄까를 고민했던 것은 아니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우리에게 보이는 모습들, ‘지금 저 무대에 처음 서서 얼마나 떨릴까’, ‘얼마나 저 무대를 잘하고 싶을까’, ‘맞춰본 노래의 합이 완벽히 떨어졌을 때 본인 옆에 서있는 또 다른 싱어를 보는 기분이 어떨까’와 같은 감정을 대중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하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이 과정을 그대로 대중에게 보이기로 했다.

출연자는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마이크를 고쳐 잡고, 무대 스태프가 스탠바이를 외친다. 심사를 하는 프로듀서들은 무대를 응시한다. 연주가 시작되기 전 무대 위 출연자는 한숨을 한번 내쉬고 어떻게든 떨림을 억누르고 무대를 시작한다. 무대가 끝난 후 스튜디오에는 안도감, 성취감, 아쉬움이 감돈다. 현장에 있던 우리에게는 느껴졌던 그 한껏 고양된 그 순간을 전달하고 싶었고, 보는 시청자들이 각자 본인의 감정으로 이 무대를 해석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편집 단계에서 여러 번 고민하다가, 해당 순간에 오디오를 최대한 자제하기로 했다. 또, 제작진의 감상을 담은 자막을 띄우면 시청자로 하여금 감상에 대한 강요가 될까봐 자막을 철저히 배제했다.

참가자들의 감정과 호흡을 그대로 전한 <팬텀싱어> 무대

출처 : JTBC 공식 유튜브 채널

이런 있는 그대로의 감정의 전달은 생각보다 더 큰 반향을 얻었고 시청자들은 여타의 방송사의 음악 프로그램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을 느끼셨던 것 같다. 앞선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배출된 많은 후배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 방송을 보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다음 프로그램에 적용했다. 이런 분위기들이 통칭 ‘JTBC 음악 예능’이라고 하는 어떤 흐름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다가오는 2022년. JTBC 음악 예능은 큰 도전을 앞두고 있다. 2021년은 마치 지난 20년의 방송 시장 변화를 단 일 년 안에 겪는 것 같은 격변이었다. 메타버스, NFT 등 이름도 원리도 따라가기 힘든, 까딱하면 금방 흐름을 놓쳐버릴 것만 같은 새로움으로 인한 큰 불안감 속에 우린 매일을 살고 있다. 2022년은 지금까지의 몇 배나 되는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우리 JTBC의 모든 구성원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음악 그대로를 전달하고, 그 음악을 하는 ‘사람’을 더욱 온전히 전달하기 위한 고민들을.

필자 소개

  • 김형중
  • JTBC 프로듀서. <팬텀싱어> 시즌 1, 2, 3 연출, <슈퍼밴드> 시즌 1, 2 연출, <백상예술대상(90회-현재)> 연출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