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제는 콘텐츠 내용의 차별성뿐만 아니라 제작 기술 분야에서도 높은 수준이 요구되는 때다. ‘제작 기술 품질 관리(QC, Quality Control)’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이유다.
콘텐츠 QC는 정해진 영상, 음향 규격에 맞게 콘텐츠가 제작되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말합니다. 비디오 포맷, 카메라와 렌즈 정보, 오디오 포맷과 타입, 워터마크 등 기본 정보와 색, 밝기를 나타내는 단위인 니트(nit)가 기준을 넘지 않았는지, 플래시가 터지는 프레임이나 프레임이 한두 개씩 빠지는 현상(드롭 프레임) 등 인간의 눈으로 감지하기 어려운 부분을 기계적인 정보로 검증합니다. 전문가가 영상과 음향을 직접 모니터링하면서 이상한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는 과정이 QC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카데미상을 휩쓴 한국 영화 <기생충>, 공개하자마자 전 세계 시청 1위를 기록한 <오징어 게임>(넷플릭스)을 비롯한 다양한 K-콘텐츠들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우리나라 방송 제작 기술 또한 UHD1) 방송을 세계 최초로 본방송으로 송출하는 등 앞서가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은 명실상부 콘텐츠 강국이며, 세계 최고 수준의 방송 인프라를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작 기술이 표준화되어 있지 않아 콘텐츠의 질적 문제가 야기되고 있고, 속도와 효율에만 치우쳐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과 겹쳐 크게 우려되는 부분은 바로 거대 OTT에서 요구하는 제작 관련 기술 요건이, 마치 우리나라 제작 기술의 ‘표준’처럼 자리 잡아가는 것입니다. K-콘텐츠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만큼 이제는 우리만의 콘텐츠 제작 기술 표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정의하고, 누군가는 검증해서 대한민국의 콘텐츠가 세계로 나갔을 때 내용과 더불어 기술적인 면에서도 당당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2017년 5월,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초고화질인 UHD로 TV 본방송 방영을 시작했습니다.2) 새로운 기술이 도입 되려면 그에 맞게 기술의 표준이 되는 길잡이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당시 국내에는 송출의 기준이 되는 표준 동영상이 없어 해외의 기준을 참고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필자가 UHD 표준 동영상을 제작할 당시 했던 고민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아마 제작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했을 법한 고민들일 것입니다.
이런 고민을 통해 나온 답은 역시 ‘4K UHD나 HDR3) 기술 등에 대한 표준이 있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위와 같은 색 밝기, 색 보정 과정에서의 문제, 화질 손상이나 영상 손실 등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정확한 QC 가이드가 필요하고 단계별 설정이 필요하다.
실제로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같은 대형 플랫폼에서는 엄격한 자체 제작 기준을 가지고 있고, 이에 맞는 콘텐츠만 납품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디지털 전환 이후 만들어진 HD 수준의 규격 설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4K/8K 영상과 HDR 제작에 대한 가이드나 표준은 없는 실정입니다.
미국은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ACES(Academic Color Encoding System)라는 기구가 설립되어 있고, 이들이 제작 기술 표준을 이끌고 있습니다. 또한 기술의 개념도 세분화하여 입력 장치와 출력 장치를 나누어 관리합니다. 이렇게 입력과 출력의 개념을 따로 나누게 되면 무수히 많은 카메라 종류별, 녹화 포맷별 원본이 있어도 이들 영상이 모두 동일한 색상과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중간에서 매개해주는 코덱(IMF, Interoperable Master Format)을 활용해, 작업 단계마다 ACES에서 제공하는 색공간(color space)과 인코딩 가이드를 반영해 제작합니다. 이러면 결과적으로 모바일기기에서부터 TV까지 동일한 색감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소리, 영상 효과 등 콘텐츠에 대한 규격을 제시하고 있는 넷플릭스
출처 : https://partnerhelp.netflixstudios.com어찌 보면 당연히 필요한 과정일 수 있겠으나, 국내에는 기술 표준이 없기 때문에 제작자들이 ‘종합 편집실에서 봤던 화면 색감이 집에서 보면 왜 그만큼 표현이 안 될까?’라는 고민만 하는 실정입니다. 다양한 카메라로부터 다양한 종류의 소스가 들어오고,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에서 TV, 프로젝터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디스플레이가 존재하기에 기술 표준의 도입은 필수적입니다.
영국 BBC의 경우 2013년 이후 QC를 따로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DPP(Digital Printing Protocol)나 ITU(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 등의 기구나 EBU(European Broadcasting Union) 산하 표준 기관에서 기술 규격을 제정하고 꾸준히 업데이트하며, 그 표준을 따르는 콘텐츠 제작 문화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또한 유럽 영상 제작 QC는 한발 더 나아가 ‘영상의 섬광으로 인한 민감성 발작’을 고려한 휴먼 팩터(human factor)4)에 대한 표준 제정까지 닿아 있습니다. 높은 밝기의 화면이 일정 주기, 일정 패턴으로 반복 시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보고서를 채택하고 있으며, BBC의 경우 제작 시 이 사항을 필수적으로 확인합니다. 디스플레이 화면이 대형화되고 밝아짐에 따라 자연스레 고려해야 하는 것이죠. 국내에서도 의학 전문가와 방송 전문가 집단이 함께하는 연구가 필요하며, 표준을 제정하여 이끌 수 있는 기관이나 정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콘텐츠 속 섬광 장면이 광민감성증후군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하는 디즈니플러스
출처 : 디즈니플러스 <크루엘라> 재생 화면콘텐츠의 디지털화, 모바일화, 네트워크화로 수많은 종류의 콘텐츠 유통 단계가 존재합니다. 콘텐츠 퀄리티가 유지될 수 있는 제작 표준 제정과 아카이빙에 대한 정책 변화, 더불어 유통되는 콘텐츠의 지적 재산권을 지킬 수 있는 기술도 QC의 연장 선상에서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최근 대체 불가능 토큰인 NFT가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영상을 포함한 디지털아트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다면 대체 불가능한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영상 제작물 원본에 대한 권한과 권리에 대한 기술 규격도 제정되고 검증되어야 할 QC의 한 요소입니다.
또한, QC를 위해서는 아카이브(archive)에 대한 인식변화가 필요합니다. 아카이브와 QC가 무슨 상관관계를 갖는지 의문이 들겠지만, QC의 기본이 되는 것이 ‘원본’에 대한 개념입니다. 테이프가 원본이었던 시대에서 파일 형태로 변화된 지금, SD급이나 HD급 원본의 보관이 잘 돼 있지 않거나 또는 수준 이하의 파일만 보관되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파일들은 후에 재가공할 때 질적 저하가 생기게 됩니다. 잘 짜인 제작 과정과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위한 원본 개념 정의, 보관 시스템이 동반되어야 콘텐츠의 질적 향상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빠른 제작 속도와 효율을 강조하는 한국 제작 현장에 방송 후 또는 상영 후 아카이브를 위한 투자가 인색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국고 지원사업으로 여러 기관에서 영상콘텐츠 제작을 지원하고 있고, 방송사도 외주제작을 의뢰하고 납품받으며 자기들 나름의 규격을 제시하고 있지만, 정작 그 기준에 부합하는지를 검증할 콘텐츠 QC 관리 기관은 없습니다. QC 자체도 중요하지만 기준을 가려 낼 수 있는 기관이나 정책도 없는 상태에서 콘텐츠를 시험하는 것이 진정성이 있을까요? 대한민국도 이제 콘텐츠 품질 기준이나 제작 가이드를 만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작사, 학계, 현업 단체가 함께 모여 표준안을 만들고 공유하여 고품질 K-콘텐츠를 만들어 나가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