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콘텐츠 소비의 동시성과 반응의 속도성
글. 김숙영(UCLA 연극영화방송학부 교수)OTT 플랫폼의 발달은 이용자 중심의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냈다. 알고리즘을 통한 추천 시스템이나 전 세계 시청 순위의 영향력 등이 그것이다. OTT를 중심으로 흥행한 우리나라 영상콘텐츠는 이를 따라 어느새 전 세계 이용자 문화의 중심에 놓였다. K-콘텐츠 신드롬 양상을 OTT 소비의 관점에서 살펴본다.
지난 2년여간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인이 선택의 여지 없이 가택연금을 당하는 실험적 기간을 보냈다. 평소 같으면 스포츠를 관람하러 가거나 영화관에 자주 가는 미국인들도 장시간을 집에서 보내야 하는 관계로 가정 내에서 여가생활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인 영상 시청 시간이 가시적으로 증가하였다. 필자의 가정만 하더라도 초등학교에 가 있을 아이들이 집에 있다 보니 부부가 일할 시간이 되면 궁여지책으로 OTT 서비스를 통해 볼 만한 영화를 틀어주고 업무를 보면서 간신히 하루하루를 넘긴 기억이 생생하다.
성인들도 콘서트, 클럽 등 대면 활동 선택지가 줄어들다 보니 여가생활의 유행이 몇몇 플랫폼 이용으로 집중되었다. OTT 콘텐츠에 대한 응집력은 영상콘텐츠 소비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개인의 취향에 대한 정보를 OTT 플랫폼에 입력시키고, 본인의 시청 취향에 대해 심도 있게 파고드는 버릇에서 유래했다 할 수 있겠다. 개인 취향에 대한 선호도는 어쩌면 AI가 알려주는 알고리즘이 더 정확히 알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 알고리즘이 추천한 콘텐츠가 본인 취향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프로그램을 샅샅이 점검해서 본인의 취향에 꼭 맞는 프로그램을 찾기보다는 알고리즘이 추천해준 프로그램을 그냥 볼 확률이 높다. 이처럼 알고리즘에 의존하는 OTT 콘텐츠 소비 경향은 장시간에 걸쳐 서서히 변화된 미디어 시청방식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 공중파 텔레비전 시대를 대변하는 브로드캐스팅(broadcasting) 방식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동시간대 방송되는 프로그램을 실시간 동시 시청하게 만들었다. 이후 등장한 케이블 TV 시대는 시청자들 각각의 취미와 개성에 맞는 케이블 구독, 시청을 가능케 하는 내로캐스팅(narrowcasting) 시대였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형성된 인터넷 시대의 소비 형태는 자기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맞춰 보면 되는 시대로, 마이크로캐스팅(microcasting)의 시대였다. 이로부터 한 단계 더 나간 현 상황은 소비자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OTT가 취향을 파악해서 시청자가 선호하는 프로그램을 알아서 가져오는 형태인 ‘알고리즘 캐스팅(algorithm casting)’의 시대이다.1)
전 세계 넷플릭스 시청 순위 차트에서 1위를 한 <오징어 게임>은 탄탄한 작품성에 기반해 입소문을 타고 순식간에 추천 프로그램으로 떠올랐고, 넷플릭스상에서 이용자들이 <오징어 게임>을 검색하면 할수록 알고리즘에 의한 추천 또한 늘어났다. 또 덩달아 <오징어 게임>이 일으킨 큰 반향이 가시기 전에 넷플릭스에 등장한 <마이 네임>, <지옥>이 대 흥행을 할 수 있던 것도 <오징어 게임>에서 파생된 알고리즘의 영향력이 컸다. ‘오징어식 휘감기’라고 표현할 수 있는 알고리즘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하다. 가령 그룹 BTS가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려고 넷플릭스에 들어온 시청자가 다른 한국 콘텐츠를 추천받아 계속 보게 된다거나, 한국 영화에는 문외한인 좀비 영화 팬이 <부산행>을 본 후에 <킹덤>을 추천받아 다른 한국 사극도 보게 되는 경우 등 알고리즘으로 인한 소비의 응집성은 크게 강화되었다.
넷플릭스 안의 이런 변화가 현시대 전 세계인들의 문화 소비의 응집성, 동시성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넷플릭스가 전 세계적 OTT이기 때문이다. 2016년 1월 글로벌 TV로 전 세계 160국에 진출한 이래 2021년 현재 넷플릭스는 중국, 시리아, 북한, 크림반도(동유럽) 네 지역을 제외한 190국에 서비스하고 있다. 이 같은 촘촘한 인프라 투자로 인해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넷플릭스 시청을 가능케 한 것이 응당 소비의 동시성을 불러왔다 하겠지만 필자의 견해로는 2020년 2월에 도입한 전 세계 시청 순위 Top10 공개가 큰 몫을 했다 사료된다. 2019년부터 영국, 멕시코에서 실험적으로 시행하던 Top10 순위제를 코로나가 본격화되던 2020년 초에 전 세계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넷플릭스가 이런 순위에 대한 데이터를 공개하기 시작한 배경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넷플릭스 Top 10 순위 사이트 공개 영상
출처 : 넷플릭스순위제라는 것은 영향력 있는 기존의 플랫폼이나 회사를 그 분야에 있어서 하나의 공신력 있는 권위기관으로 만드는 효과가 있다. K-Pop 그룹이 빌보드 차트에서 몇 위를 했다고 열광하는 것은 ‘빌보드’라는 하나의 회사가 대중음악의 인기를 가늠하는 최고의 척도라 간주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넷플릭스도 스스로 하나의 공신기관으로의 자질을 갖춰간다 생각하기에 순위제를 도입했다고 본다. 더 나아가 2021년 12월에는 역사와 유서가 깊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La Cinémathèque française, 프랑스의 영상원 겸 영화관)에서 자존심 높은 프랑스 영화인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 신작 상영회를 했다. 이런 기세라면 몇 년 내에 넷플릭스에서 주관하는 영화, 드라마 시상식이 생긴다 해도 놀랍지 않을 일이다.
넷플릭스가 순위 데이터를 내부적으로 집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외부에 발표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들 나름대로 세계화 성공에 대한 자신감이 표출된 것이라 본다. 더 나아가 본인들이 집계, 발표하는 순위가 전 세계 시청자들의 소비 형태에 영향력을 미치기를 바라는 바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순위제는 코로나 사태로 격리 생활을 하는 많은 이들을 결집하는 효과를 불러왔다. 집에서만 장시간 생활하게 된 많은 이들이 문화 콘텐츠 동시 소비를 통해 집단 사회로의 소속감을 일시적으로나마 느끼게 된 것이다. 모두가 이야기하는 세계 1위 드라마를 혼자만 보지 않으면 소외된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다. 필자 주변에서도 ‘대체 <오징어 게임>이 무슨 드라마이기에 전 세계 1위를 했나’라는 호기심으로 시청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넷플릭스에 접속하는 순간 메인 화면에 오늘의 시청 순위가 뜨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라는 생태계를 벗어나면 더 큰 세계로의 수평적 증폭, 확장이 기다리고 있다. <오징어 게임>이 나온 지 며칠 만에 틱톡 등의 SNS에서 수억 개의 관련 게시물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미디어 산업을 연구하는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는 이런 파급력을 보여주는 미디어를 ‘스프레더블 미디어(spreadable media)’라고 불렀다. 이런 확산 현상이 가능해지려면 몇 가지 요인이 충족되어야 한다. 대중적 이해를 가능케 하는 단순하지만 흥미로운 스토리, 또 그 작품의 상징같이 자리 잡게 되는 강렬한 OST와 시각적 이미지 등이 이에 포함된다. <오징어 게임>의 경우 진홍색, 초록색의 보색대비를 통해 사회의 위계질서와 폭력성을 시청자들의 뇌리에 각인시켰고, 코로나19 시대를 지나며 더욱 심화된 부의 편중을 긴장감 넘치는 게임이라는 포맷으로 그려냈다. 이런 시각적 효과로 인해 작품 공개 며칠 만에 로블록스와 같은 메타버스 게임 안에 <오징어 게임> 모방작이 넘쳐나고, 핼러윈 코스튬 등으로 쉽게 퍼질 수 있었다.
유튜브에 ‘로블록스 오징어 게임’을 검색하면 나오는 결과. 이용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영상콘텐츠를 즐기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한국 콘텐츠의 무서운 영향력을 견인한 것은 한국이 이제는 문화적 차원에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강국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저절로 이뤄진 게 아니라 몇 세대에 거쳐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면서 연마된 내공이 있었기에 이뤄진 것이다. 한번 무게의 중심이 한국으로 온 이상, 한국 콘텐츠의 영향력이 쉽게 사라지리라 생각되지 않는다. 전례 없는 문화 콘텐츠 소비의 동시성과 반응의 속도성은 코로나19라는 상황에서 나온 산물이기도 하지만 그 저변에는 수준 높은 소비자들의 욕구를 끊임없이 충족시키려 다방면으로 노력해온 창작자들의 노고가 있었다. 알고리즘이나 순위제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이 창출해낸 노력의 산물인 것이다. 새해에도 오징어 다리로 전 세계를 넓고 깊게 휘감는 한국 콘텐츠의 활약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