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앱을 열면 수많은 콘텐츠가 넘쳐나지만, 정작 무엇을 봐야 할지 고민된다. 오죽하면 ‘넷플릭스 메인 피드를 뒤적거리려고 유료 결제를 한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올까. 콘텐츠 과부하 속에서 중심을 잡는 방법, 내 체질에 맞는 음식을 찾아먹듯이 내게 맞는 콘텐츠를 알아보는 방법이 있을까?
우주가 끝없이 팽창하고 있다는 빅뱅이론처럼 K-콘텐츠가 끝 모를 질주를 하고 있다. 특히 지난 몇 년 새엔 특이점을 지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수많은 K-콘텐츠가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웹툰과 웹소설을 필두로 이미 검증된 IP(지적재산권)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질주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마를 일 없이 쏟아지는 콘텐츠, 이것은 축제가 분명하다.
콘텐츠 산업이 이렇게 커다란 성장을 이루는데 반해서 이 흐름이 개인에게는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우리만 즐기던 것을 모두와 나눌 수 있는 것은 분명 신기한 일이다. 그렇지만 어느샌가 우리는 너무 많은 콘텐츠에 둘러싸여 살게 됐다.
지난 달 디즈니플러스가 한국에 상륙하고 나는 곧장 결제를 했다. 그런데 한 달간, 단 한 편의 콘텐츠도 끝까지 보지 못 했다. 관심이 가는 콘텐츠를 체크해두긴 했지만 왜인지 모르게 볼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옥>(넷플릭스)도 1화를 조금 보다가 말았다. 점점 새로운 콘텐츠를 보는 게 쉽지가 않다. 왜 이런 걸까?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이려면 적어도 이틀 정도는 아무것도 보지 않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것 같다. 그러나 마음의 여유를 확보할 새 없이 콘텐츠가 쏟아진다. 다르게 말하자면 콘텐츠의 범람 속에서 ‘콘텐츠 폭식’을 하게 되고 늘상 소화불량 상태로 지내는 것이다.
디즈니플러스, 넷플릭스 등의 OTT에서 영화 한 편을 보려면 드는 시간이 만만치 않기에 이제는 유튜브로 눈을 돌린다. 깔끔한 섬네일과 자극적인 제목에 이끌려 유튜브 영상을 보면 10분이 금방 지난다. 10분이 모여 금세 2시간이 된다. 곧이어 알고리즘은 나를 다른 영상으로 안내하고 어느샌가 나는 전혀 관심도 없던 분야에 한참을 빠져서 누군가의 팬을 자처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어느새 구독하는 채널이 200개가 넘어갔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내모습은 마치 수영장에서 원하는 만큼 수영을 즐기는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에 가까웠다.
콘텐츠 소화불량의 증세는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증상은 ‘산만함’이다. 오늘 내가 무엇을 봤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더 나아가면 이런 증세도 있다. 어느 날부턴가 책을 완전히 손에서 놓아버리는 것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책을 읽고 싶지만 잘 읽히지가 않는다. 읽기와 쓰기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라서 내 생각을 표현하는 일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어떻게 단어를 골라내는 것인지, 혹은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생각을 정리하는 힘을 자꾸만 잃어간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5년간 텍스트 콘텐츠를 만들어 온 경험이 있다. 텍스트를 매개로 소비와 생산 활동을 한다는 것은 생각을 느릿느릿 걷게 만드는 연습이라고 할 수 있다. 클릭에 의해서 생각이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2차원 평면에 놓인 한 문장, 한 문장을 따라가면서 천천히 곱씹는 과정이 이어진다. 활자를 따라가는 일은 다소 밋밋해 보일 수 있지만, 우리는 그 감각이 무엇인지 안다. 손으로 펜을 쥐고 한 글자씩 일기를 써내려갈 때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다. 머릿속이 말끔해지는 기분, 내 마음 상태가 또렷해지는 기분 말이다. 텍스트가 흐르는 속도대로 천천히 걸어갈 때만 느낄 수 있는 편안함이다.
콘텐츠 폭식이 낳은 소화불량을 타개하기 위해서 나는 다시 텍스트로 향했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콘텐츠 소비 일기’라고 명명한 이 독특한 일기는 2가지 지향점을 갖고 있다.
첫 번째 지향점은 ‘주체적인 콘텐츠 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콘텐츠를 소비할 때에도 음식을 대할 때처럼 건강한 식습관이 필요하다.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 내가 먹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식습관을 개선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오늘 하루 먹은 음식을 적어보고, 몇 칼로리를 소비했는지 알기 위해서 기록하는 것처럼 말이다.
콘텐츠 소비 일기도 마찬가지다. 주체적인 소비자가 되기 위해서 먼저 내가 하루 동안 ‘무엇을-얼마나-언제’ 소비했는지 기록하는 게 좋은 출발점이 된다. 내가 소비하는 것들을 한발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다. 내가 자주 찾는 것들이 어떤 속성을 가졌는지 관찰할 기회도 얻게 된다. 그 다음으로는 그날 인상적으로 본 콘텐츠에 대해서 감상평을 적어 볼 수 있다. 순식간에 수십 편의 영상을 소비하다가 잠깐 멈춰 서서 무엇이 감상 포인트였는지 되새기고 적어보는 것이다.
콘텐츠 소비 일기 작성 예시
출처 : 필자 제공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유튜브에서 ‘MoTV’라는 채널을 보게 되었다면 짤막하게 그 배경을 적어두는 것이다. 나 자신이 이 콘텐츠의 어떤 점에 주목하는지 생각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 스치듯이 영상을 재생하다 보면 내가 무얼 본 것인지, 내게 남길 것이 무엇인지 짚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내가 어떤 ‘의식의 흐름’대로 소비하고 있는지 천천히 살펴보는 것도 재밌는 접근이다. 콘텐츠 소비 일기는 인공지능이 안내하는 알고리즘에 무분별하게 이끌리지 않게 도와주고, 자신의 소비 패턴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콘텐츠를 어떤 의식의 흐름에 따라 소비하는지 적은 콘텐츠 소비 일기 예시
출처 : 필자 제공콘텐츠 소비 일기의 두 번째 지향점은 바로 ‘나 자신과 친해지기’다. 콘텐츠를 마구잡이로 소비하다보면, 내가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온데간데없고, 콘텐츠만 남는다. 나에게 콘텐츠를 들이붓지 말고, 콘텐츠를 매개로 나 자신을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기회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내가 주로 찾게 되는 콘텐츠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어떤 정서가 나를 편안하게 만드는지 점검을 해 볼 수도 있다. 조금 더 나아가면 내 취향에 이름을 붙여보거나 혹은 내가 더 깊이 알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하나하나 곱씹어 볼 수도 있다.
콘텐츠 소비 일기 작성 예시
출처 : 필자 제공콘텐츠 소비 일기를 쓰면서 ‘나’를 알아가는 재미가 무척 크다. 무엇이라고 콕 짚어서 말할 수는 없어도 분명 ‘나’를 풍부하게 이해해가는 기분이다. 내 경우에는 내가 선호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환경에 대해서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콘텐츠 산업은 흥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개인은 어지러울 수 있다. 풍요가 낳는 결핍이 있다. 왜인지 모르게 콘텐츠의 풍요 가운데 산만해지기만 하고, 나 자신을 잃는 듯한 기분이 든다면 콘텐츠 소비 일기를 펼쳐 보라. 한 글자씩 써 내려가다 보면 금방 되찾을 수 있다. 주체적인 소비자가 되는 방법도, 그리고 나 자신을 더 깊이 만나는 방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