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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트>는 국내외 미디어 산업의 동향을 정리해 매주 화요일마다 발송해주는 뉴스레터로,
단순 큐레이션이 아닌 인사이트를 담은 글을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자원은 무엇일까요? 바로 시간과 관심입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며, 모든 이들이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기 때문이죠.
브랜드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소비자들의 시간과 관심을 빼앗아 그들과 관계 맺기 원합니다. 전통적으로 브랜드는 광고로 제품을 인지시키고, 제품으로 사용가치를 제공하여 고객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쉽게 말해, 우리는 삼성전자의 핸드폰을 사야만 삼성전자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전통적인 판매는 기본이고, 새로운 변화가 생겼습니다. 브랜드들이 다양한 콘텐츠로 먼저 관계를 형성한 이후에 제품으로 가치를 제공하곤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더 이상 30초짜리 TV 광고만으로 소비자들의 관심을 뺏기 어려워졌으며 미디어 기술이 발전하며 콘텐츠 제작비용이 상대적으로 낮아졌습니다. 또한 소비자들도 자발적으로 더욱 재밌는 콘텐츠를 찾고, 브랜드와 관계 맺기 때문이죠.
누군가는 이를 콘텐츠 마케팅 혹은 브랜드 마케팅 혹은 팬덤 전략이라고도 부릅니다. 명칭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습니다. 브랜드가 콘텐츠로 잠재 소비자와 깊은 관계를 맺는 거죠. 오늘은 발전한 브랜드의 콘텐츠 전략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브랜드들은 콘텐츠 마케팅을 단순한 SNS 마케팅 혹은 채널 운영 등으로 국한시켰습니다. 적잖은 마케팅 담당자들이 마케팅 채널의 구독자 숫자와 바이럴 수치 등을 KPI(Key Performance Indicator, 핵심성과지표)로 삼았던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죠. 하지만 변화는 빠르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SNS 마케팅으로 대박을 친 미디어 커머스 기업 블랭크코퍼레이션도 이 변화의 최전선에 있습니다. 페이스북 마케팅으로 일명 ‘마약베개’와 샤워기 필터 제품을 히트시킨 블랭크는 기존 마케팅에 오리지널 콘텐츠를 더했습니다. <고등학생 간지대회>(이하 <고간지>) 시리즈가 대표적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10대 고등학생 중 패셔니스타를 뽑는 오디션으로, TV 오디션 프로그램 수준의 높은 제작 완성도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새해맞이 12개 띠별 행운의 컬러 코디 법>
출처 : 고간지 유튜브사실 그 이후가 더 중요했습니다. 블랭크는 <고간지>를 통해 배출된 유명 출연자들의 패션 브랜드를 만들어주고, 그들의 SNS를 통해 마케팅을 하는 등 이후 비즈니스에 열심이었습니다. 출연자 이창빈이 만든 브랜드 ‘리차드빈’이 그 예시입니다. 오디션을 통해 출연자와 시청자 사이 유대감을 높이고, 이후 출연자가 만든 브랜드에 이 유대 관계를 전이하여 팬덤을 만드는 전략이었습니다. 맨땅에 헤딩이 아닌 태어나자마자 ‘만렙’인 패션 브랜드인 셈입니다. 즉, 오디션을 통한 화제성과 출연자 발굴을 넘어 비즈니스까지 이어지는 로드맵이 있었던 거죠. 물론, <고간지> 출연자들과 스핀오프 예능 <시골로 알바간 고간지>(<시바고>) 등을 만드는 등 콘텐츠 IP 확장에도 집중했습니다.
현재 블랭크는 자사 대표 브랜드의 이름을 딴 유튜브 채널 ‘스튜디오 바디럽’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샘 해밍턴 가족과 엑소 카이 등이 출연하는 오리지널 웹 예능도 제작했습니다. 콘텐츠 안에 자사 브랜드 제품을 자연스럽게 녹여내 인지도를 확보하는 동시에 개별 제품에 국한된 인지도를 넘어 바디럽이라는 브랜드 자체를 각인시키는 브랜딩 전략이기도 합니다.
블랭크와 정반대로 브랜드를 숨긴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한섬입니다. 한섬은 작년부터 유튜브 채널 ‘푸쳐핸썸’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배우 이수혁과 함께 웹드라마 <핸드메이드 러브>를 제작해 300만이 넘는 조회수도 기록했습니다.
웹드라마 <핸드메이드 러브>
출처 : 푸쳐핸썸 유튜브하지만 이 모든 콘텐츠에 브랜드명은 단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기업명과 브랜드 로고는 일절 노출시키지 않고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착장 등으로 자연스레 제품을 노출시켰습니다. 한섬이 갖고 있는 브랜드명은 10대 친화도가 높지 않습니다. 이 점을 고려해 브랜드는 가리고, 제품을 자연스레 노출시킨 게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한섬에 따르면, 동일 기간 한섬 쇼핑몰 내 MZ세대의 매출은 105%가량 늘었다고 합니다. 콘텐츠 자체도 성공하여, 유튜브 업로드 이후 반응이 좋아 역으로 tvN 채널에 편성되기도 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콘텐츠는 주로 마케팅의 수단이었습니다. 제품의 인지도를 높이고 새로운 고객을 탐색하는 채널이었죠. 하지만, 젊은 기업에게 콘텐츠는 곧 브랜딩이자 HR(Human Resorces, 인적자원)전략입니다. 토스의 다큐멘터리가 좋은 예시입니다. 토스는 지난 2월 유튜브를 통해 무려 5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내보였습니다. 내부 직원은 물론이고, 투자자 등 외부 이해 관계자들이 인터뷰이로 등장해 토스의 창업 배경과 조직 문화를 설명하는 다큐멘터리였습니다.
토스 이승건 대표는 다큐멘터리 업로드 이후 소셜 오디오 앱 클럽하우스와 커리어 앱 리멤버 등에서 토스의 조직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적극적으로 인재 채용에 나섰습니다. 즉, 토스의 다큐멘터리는 토스의 미래 구성원을 겨냥했던 셈이죠. 콘텐츠로 토스를 매력적이고 선망하는 기업으로 만들어, 더욱 훌륭한 인재를 끌어들이고자 하는 겁니다. 보상만큼이나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와 문화에 더욱 민감한 MZ세대에 어울리는 전략입니다.
해외 브랜드의 경우, 조금 더 나아갔습니다. 유료 OTT와 손잡고 함께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합니다. 브랜드 마케팅의 선두주자 나이키도 그 중 하나입니다. 나이키는 NBA와 이를 둘러싼 사건들, 코로나19나 ‘Black Lives Matter 운동’ 등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HBO MAX를 통해 공개했습니다. 현역 NBA 선수 크리스 폴 등과 함께 만들어진 이 다큐멘터리 안에 나이키 제품의 광고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나이키는 이 다큐멘터리의 메시지가 나이키가 지향하는 브랜드 가치와 맞닿아있기에 제작했다고 합니다.
나이키가 브랜드 가치를 알리기 위해 콘텐츠를 제작했다면, 정반대로 자사를 둘러싼 논란을 정면 돌파한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기네스 펠트로가 CEO로 있는 회사 굽(Goop)입니다.
<The gooplab with gwyenth paltrow>
출처 : 넷플릭스굽은 뷰티, 웰니스, 패션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고 제품을 판매합니다. 다만, 굽은 현재 의료계에서 인정하지 않은 유사 과학에 기반한 건강법을 대중들에게 소개하여 큰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굽은 넷플릭스와 함께 자사가 지향하는 웰니스를 소재로 <굽 연구소(The Goop lab)> 라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합니다. 자메이카 환각 버섯 심리 치료, 녹는 실 얼굴 삽입, 심령술, 자궁 냄새 향수 등 소재는 자극적입니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굽을 유사 과학이라 비판하지만 넷플릭스는 시즌 2를 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논란을 정면 돌파해 오히려 자사를 더욱 알릴 수 있는 기회로 삼은 것입니다.
브랜드가 콘텐츠를 통해 브랜딩은 물론이고, 실제 행동까지 취한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파타고니아입니다. 파타고니아는 지난 2014년 댐 건설의 유해성을 소재로 다큐멘터리 영화 <댐네이션(DamNation)>을 제작했습니다. 댐이 사라진 이후 되살아난 강을 보여주며 댐과 주변 지역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이 영화는 환경 운동가이자 영화 제작자 맷 스토커와 협업으로 만들어졌는데요, 서울환경영화제에서 국제환경영화상 부문 장편 대상과 관객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입니다. 교육이나 인식을 넘어 주제에 대해 직접 행동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궁금합니다. 브랜드들은 왜 이렇게 콘텐츠에 진심일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더 이상 단순 광고로 고객들을 만나기 어려워졌습니다. 유튜브는 광고를 제거하는 유료 구독 서비스인 유튜브 프리미엄을 내놓았고, 사용자들은 웹 브라우저에 애드블록을 설치해 광고를 피하고 있습니다. 애플은 최근 앱 추적 투명성을 높이며 광고주의 사용자 추적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구글 역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쿠키 지원을 제한한다고 합니다. 스마트폰 생태계 최강자와 전 세계 디지털 광고 시장의 1등이 이렇게 나오니 광고를 통한 사용자 획득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경쟁도 심화됐습니다. 소수 대기업만 가능하던 TV CF시대와 달리 지금은 누구나 콘텐츠를 제작하여 브랜드를 홍보할 수 있습니다. 고객들의 인지 자원과 시간은 여전히 24시간인데, 이를 쟁취하고자 하는 경쟁자는 무한대로 늘어났습니다. 삼성전자의 광고는 유튜브 속 무료 콘텐츠,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놀면 뭐하니>(MBC)와 같은 방송영상콘텐츠는 물론이고 웹툰, 웹소설 등과 경쟁해야 합니다. 뻔한 이야기를 지루한 방법으로 풀어내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브랜드가 가진 차별적이고 독자적인 이야기를, 나만의 방법으로 풀어내어야만 고객과 긴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브랜드들이 놓인 미디어 환경은 앞으로도 급변할 겁니다. 우리는 AR과 VR 그리고 메타버스 서비스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미디어 환경에서 브랜드를 구축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수준은 높아야 합니다. 영화, 드라마, 웹툰 등 고퀄리티 콘텐츠에 올라간 고객의 눈높이와도 맞아야 하니까요. 소비자들은 항상 더 좋고, 재밌는 이야기를 원합니다. 이젠, 브랜드에게도요.
지금까지 브랜드들은 콘텐츠를 단편적으로 관리해왔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적절한 에이전시와 프로덕션을 통해서 콘텐츠를 만들어왔죠. 선으로 이어지지도 않는 단편적인 점들이었습니다. 브랜드가 콘텐츠로 고객을 만나고,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통일성 있는 콘텐츠와 브랜딩 전략이 필요합니다.
MCU(Marvel Cinematic Universe, 마블 코믹스의 가상 세계관)라는 생태계가 유지되고 확장될 수 있던 데에는 세계관을 관리하는 최종프로듀서 케빈 파이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브랜드의 이야기를 녹여낸 콘텐츠가 할 수 있는 기능이 다양해지고, 요구되는 역할이 많아진다면 브랜드 내부에서 콘텐츠를 총괄할 사람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고객 접점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콘텐츠의 톤 앤 매너(Tone&Manner)를 관리하고, 콘텐츠 전략을 고민하는 일종의 브랜드 & 콘텐츠 프로듀서라는 직군이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동안 콘텐츠는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고’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 브랜드가 종종 콘텐츠를 제작하던 시대를 넘어, 스스로 콘텐츠가 되어 고객과 소통해야만 생존하는 시대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