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올해 초 미국 남캘리포니아대(USC) 아넨버그 포용정책센터(Annenberg Inclusion Initiative)에 위탁 발간한 다양성/포용 보고서(Inclusion/diversity report)는 국내 많은 언론 매체[그림 1]를 통해 소개되며 나름의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심지어 ‘넷플릭스 본받자’(뉴시스, 5.10)는 기사1)도 눈에 띈다.
단순히 수많은 글로벌 미디어 기업 중 하나를 넘어 시대의 변화를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키워드 또는 현상이 되어버린 넷플릭스. 그런 넷플릭스가 자신들이 제공하는 콘텐츠가 얼마나 다양한지, 얼마나 사회구성원 모두를 반영하려고 노력했는지를 외부 연구기관에 위탁해 분석해보고자 한 업계 최초의 시도2)가 사람들에게 꽤나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던 탓이다.
물론 내용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우리가 대부분 알고 있거나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의 시도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적지 않다. 이 글에서는 넷플릭스가 내놓은 다양성 보고서의 주요 연구 방법과 결과(시사점), 그리고 우리나라의 상황 또는 당면 과제를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그림 1] 국내 매체에 소개된 넷플릭스 다양성 보고서
출처 : 네이버 기사 홈페이지연구를 주도한 아넨버그 포용정책센터의 스테이시 스미스(Stacy Smith) 박사는 크게 콘텐츠에 등장하는(on screen) 인물(characters)3)과 콘텐츠에 등장하지는 않지만(behind the camera) 전체적인 스토리에 큰 영향을 끼치는 핵심 제작 인력(기획, 제작, 감독, 작가)의 사회 정체성(social identity)4)을 기반으로 내용 분석을 수행했다. 루터(Luther) 외(2018)는 사회적 그룹을 나누는 대표적인 기준으로 인종, 성, 성적지향, 나이, 장애, 계층 등을 제시한 바 있으며, 스미스 박사팀은 이 중 성, 인종, 성적지향, 장애 4가지5)를 주요 분석 기준으로 삼았다.6) 분석 대상은 넷플릭스 콘텐츠 중 2018~2019년 동안 미국에서 제작된 총 306편의 대본이 있는(scripted) 영어 픽션물(영화 126편, 드라마/시리즈 180편)이다.7)
스미스 박사는 이번 보고서를 통해 6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8) 첫째, 주요 등장인물(주인공급)의 기준에서 넷플릭스의 콘텐츠들이 어느 정도 양성 평등(gender equality)을 이뤄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림 2]에서 보듯, 여성이 주인공을 맡고 있는 영화/드라마는 전체 영화/드라마 중 52%(영화 48.4%, 드라마/시리즈 54.5%)에 달했다. 이는 미국 내 박스오피스 상위 100개 영화에서 여성이 주인공을 맡은 비율(평균 41%)과 비교해도 훨씬 높은 수치이며, 실제 미국 내 여성 인구(50.8%)와 비교해도 이를 상회하는 수치이다. 보고서는 여성 주인공이 많이 등장한 이유를 핵심 제작 인력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증가했기 때문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성 감독 23% (상위 100개 영화 평균 7.6%), 작가 25.2% (상위 100개 영화 평균 16.7%), 제작자 29% (상위 100개 영화 평균 19%))
[그림 2] 넷플릭스 영화/드라마 속 등장인물의 성(gender)
출처 : USC ANNENBERG SCHOOL FOR COMMUNICATION AND JOURNALISM 홈페이지둘째, 인종의 기준에서도 소수 인종들이 주요 등장인물로 등장하는 비율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체 영화/드라마에서 소수 인종(under-represented racial/ethnic group)9)의 비율이 31.9%를 차지했다. 특히 2018년 대비 2019년의 경우 이 수치는 더 증가해서, 2019년에 제작된 영화의 경우 소수 인종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비율은 40%에 육박했다. (영화의 경우 32.3% → 38.9%, 드라마/시리즈의 경우 27% → 38.4%)
셋째, 특히 여성 유색 인종의 비율은 전체 영화/드라마에서 19%(2018년 15.9% → 2019년 22.8%)를 차지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다. 이는 미국 내 여성 유색 인종의 실제 비율보다 더 높은 비율이었다. 결국 다른 소수 인종들이 덜 등장하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보고서는 설명하고 있다.
넷째, 주연급 배우로 확장하면 전체적으로 흑인 등장인물의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넷플릭스는 지난 2018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및 필름에 출연했던 아프리칸-아메리칸 배우 47명을 모아놓은 사진을 공개하며 ‘Strong Black Lead’ 캠페인을 진행한 바 있다. 홍보에 사용되는 문구(marketing slogan) 이상의 실적[그림 3]을 이뤄낸 것이다. 넷플릭스 내 영화/드라마에서 2018~2019년 동안 흑인 주인공이 차지하는 비율은 15.2%(영화 21.4%, 드라마/시리즈 10.8%, 특히 드라마/시리즈의 경우 2018년 6.3% → 2019년 14.4%로 급증), 주연급 배우의 비율은 19.5%(영화 20.8%, 드라마/시리즈 18.5%, 특히 영화의 경우 2018년 16.2% → 2019년 22.7%로 급증)였다. 이는 실제 미국 내 흑인의 비율(14.7%)을 훨씬 상회하는 수치이다.
[그림 3] 넷플릭스 영화/드라마 속 흑인 주인공(leads/co-leads)/주연급(main cast) 등장 비율
출처 : USC ANNENBERG SCHOOL FOR COMMUNICATION AND JOURNALISM 홈페이지다섯째, 흑인의 등장 비율이 증가한 것은 고무적이지만, 여전히 특정 인종의 등장 비율이 매우 낮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히스패닉(Latinx)의 경우, 주인공 2.6%, 주연급 4.5%에 불과했으며, 핵심 제작 인력의 수(전체 제작인력의 3% 미만)도 매우 적었다. 실제 미국 내 히스패닉이 차지하는 비율이 12%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이다. 보고서는 스토리텔링의 차원에서 히스패닉에 대한 고려가 여전히 부족한 상태를 지적하고 있다.
여섯째, 여전히 성적 소수자(LGBTQ+)와 장애를 가진 등장인물의 수는 매우 드물었다는 사실이다. 전체 영화/드라마 속 성적 소수자는 주인공 2.3%(영화 4%, 드라마/시리즈 1.1%), 주연급 5.3%(영화 4.3%, 드라마/시리즈 6.1%), 조연 2.8%(영화 2%, 드라마/시리즈 3.3%)에 불과했다.[그림 4] 실제 미국 내 성적 소수자의 비율(12% 추산)과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치이다. 이러한 경향은 장애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전체 영화/드라마의 주인공 중 장애인 5.3%)
[그림 4] 넷플릭스 영화/드라마 속 성적 소수자 등장인물의 비율
출처 : USC ANNENBERG SCHOOL FOR COMMUNICATION AND JOURNALISM 홈페이지국내에서도 미디어에서 사회 내 다양한 그룹의 재현이 가지는 중요성을 인식, 이와 유사한 연구들이 오래전부터 수행되어 왔다. 예를 들어, 방통위/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2019년 미디어다양성 조사>에 따르면, 2019년 1~9월에 주요 채널에서 방영된 드라마 등장인물 2,713명(주인공 341명, 조연 1,801명)의 성, 연령, 직업, 장애를 분석한 결과, 현실(남성과 여성의 비율 5:5)에 비해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이 등장하고 있었으며, 30~49세, 15~29세 등장인물의 비율이 현실보다 더 높았으며, 전문가/관리자/서비스 종사자 들이 과다 재현되고 있었다. 장애의 경우, 넷플릭스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장애인의 재현 수준은 매우 낮은 수준(현실 4.9% vs 드라마 0.7%)이었다.10)
넷플릭스 보고서와 국내 다양성 조사를 비교하면, 다양성/포용이 가지는 사회적 가치나 중요성은 매우 유사하지만, 분석 대상의 범위나 주요 관심사는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인종이 가지는 중요성이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우리 사회가 점차 다인종/다문화 사회로 변모하면서 이들 인종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은 자명하다. 성적 소수자에 대한 관심도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 비해 미국에서 더 관심을 가지는 영역이다.
넷플릭스 보고서는 단순히 등장인물 분석에 그치지 않고, 카메라 뒤에서 실제 콘텐츠를 생산하는 핵심 제작 인력을 함께 분석했다. 분석의 결론은 보고서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었듯 핵심 제작 인력의 다양성이 결국 콘텐츠(등장인물)의 다양성을 담보한다는 매우 단순하지만 명쾌한 사실이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던 사실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은 이 보고서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소수 그룹에게 발언권을 부여하고, 소수 그룹의 재현을 생산해 내는 일이 순탄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생각은 순진하다. 한 사회 내 존재하는 다양한 그룹/커뮤니티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그들을 이 사회 속에서 숨 쉬게 하는 매우 자연스럽고 당위적이라는 사실을 한 사회가 공유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