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주류를 꿈꾸는 오늘의 서브컬처, 버추얼 아이돌

서브컬처 중에서 주류 문화로 성장하고 있는 콘텐츠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버추얼 아이돌이다. 아직은 일정 팬덤만의 문화로 소비되고 있지만 이들은 벌써 주류 아이돌이 부럽지 않은 경제적 가치와 뜨거운 팬덤의 인기를 증명하며 거침없이 성장하고 있다.

이세계아이돌
©패러블엔터테인먼트

버추얼 아이돌과 웹툰의 협업

11월 22일, <차원을 넘어 이세계아이돌>(이하 ‘차세돌’) 단행본·굿즈 펀딩이 모금액 88억 원을 돌파하며 종료됐다. 10월 23일 시작한 ‘차세돌’ 펀딩은 당초 목표로 했던 모금액 2천만 원의 44,112%를 달성했다. ‘차세돌’은 카카오페이지와 버추얼 아이돌 이세계아이돌이 협업한 웹툰이다. 이번 펀딩에서는 단행본과 특별 화보집을 비롯해 포토카드, SD 캐릭터 피규어, 키보드, 배지 등 굿즈 패키지를 판매했다. 구성에 따라 61,900원부터 최고가 298,400원까지 책정됐다. 후원자는 총 35,651명. 1인 평균 약 25만 원을 지불한 셈이다.
이세계아이돌은 인터넷 방송인 우왁굳이 기획한 버추얼 걸그룹으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아이네, 징버거, 릴파, 주르르, 고세구, 비챤 6명으로 구성되었다. 2021년 12월 1집 <RE : WIND>를 내고 데뷔했다. 2023년 발매한 ‘KIDDING(키딩)’은 빌보드 코리아 차트 3위, 빌보드 글로벌 200 차트(미국 제외) 167위에 올랐다. 멤버 릴파는 지난 7월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단독 오프라인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차세돌’ 펀딩은 88억 원이라는 엄청난 모금액을 기록했다
출처 | 텀블벅

버추얼 아이돌이 지닌 경제적 가치

이세계아이돌이라는 버추얼 아이돌의 성과는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 이세계아이돌은 웹툰 <마법소녀 이세계아이돌> 펀딩으로 31,336명으로부터 42억 원을 모으며 이미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런 수치는 국내 크라우드 펀딩 금액 1위를 갈아치운 것이라 더욱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이세계아이돌은 이번 ‘차세돌’ 펀딩을 통해 자체 기록을 스스로 경신하며 서브컬처 시장의 위력을 또 한 번 실감케 했다. 후원에 참여한 팬들은 굿즈의 품질에 대한 호평과 더불어 ‘가심비’가 좋다는 후기를 남겼다. 88억 원어치가 팔렸음에도, 일부 팬들은 한정 판매된 제품을 구매하지 못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눈에 띄는 것은 ‘후원 성공. 이세돌 응원합니다’, ‘학생인 제 돈으로 사서 더 뿌듯해요’, ‘구매는 못 했지만 1천 원 후원했어요’, ‘이세계아이돌 영원하자’ 등의 유대감이 묻어나는 댓글이다. 물질적 소장 욕구를 넘어 팬들은 이세계아이돌의 발전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고, 함께 세운 기록에 감격했다. 가상 세계의 인물을 대상으로 할 뿐, 아이돌과 수집품, 가족, 연인 등 애정하는 곳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자연스러운 현상과 다르지 않았다.

‘차세돌’ 펀딩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키보드.
출처 | 텀블벅

급성장할 것으로 보이는 버추얼 아이돌 시장

국내의 버추얼 아이돌로는 SM엔터테인먼트 그룹 에스파의 AI 페르소나인 나이비스, 이세계아이돌, 슈퍼 카인드, 메이브, 플레이브, 최근 하이브가 론칭한 신디에잇 등이 있다. 메이브의 데뷔곡 ‘판도라’는 뮤직비디오 조회 수 3천만 회를 넘어섰고, 플레이브의 데뷔곡 ‘기다릴게’ 뮤직비디오 조회 수는 9백만에 육박했다. 이세계아이돌의 경우 1천만~2천만 대 조회 수를 기록한 뮤직비디오를 여러 편 보유하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수치를 기록하며 버추얼 아이돌이 마니아층 팬덤을 형성하고 있지만, 대중적인 반향은 아직이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버추얼 아이돌 론칭에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으며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관련 시장의 성장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이머진리서치에 따르면 2020년 100억 달러(약 14조 원) 수준이었던 전 세계 버추얼 휴먼 시장 규모는 연평균 36.4% 성장해 2030년 5,275억8,000만 달러(약 7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버추얼 아이돌의 수익화 가능성은 위 사례들을 통해 이미 증명됐다. 전문가들은 국내 버추얼 업계의 활성화를 위해 음악적 성취, 독창적인 세계관, 다채로운 놀이문화, 각각의 매력 및 팬들과의 유대감 형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각에서는 국내 제작사들의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마니아층 팬덤을 가진 버추얼 아이돌은 기록적인 유튜브 조회 수를 자랑한다.
출처 | 메이브 ‘판도라’ 뮤직비디오

IP 비즈니스로 확장되는 버추얼 아이돌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름 없이 흩어지는 수많은 아이돌 팀과 비교했을 때 우리가 알고 있는 버추얼 아이돌들이 대중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할 순 없다. 버추얼 아이돌 나름의 장점이 있다. 언제 어디서든 다양한 형태로 만날 수 있고, 팬들과의 소통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소통에 소홀한 실제 아이돌 멤버보다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 또한 일정한 음악적, 퍼포먼스적 결과물을 내고 있으며 수만 명의 팬들이 이를 즐기고 있다. 대중문화적 요소가 충만한 콘텐츠들을 선보이고 있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이번 펀딩에서 88억 원을 모았다는 건 이세계아이돌이 앨범을 낼 때도 그 정도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라며 “수백 억대 매출을 올리는 아이돌은 전체 아이돌의 1%에 불과하다. 나머지 아이돌들은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사라지거나 다른 길을 모색한다. 이세계아이돌은 2차 콘텐츠를 통한 단일 펀드로 88억 원을 모으며 버추얼 아이돌의 대중적 가능성을 각인시켰다. 광고 시장에서는 앞으로 더욱 다양한 성과가 기대된다”라고 전망했다.
또한 김 평론가는 “중요한 건 호소력 있는 콘텐츠”라고 강조하며 “훌륭한 음악적 성과와 차별화된 퍼포먼스가 뒷받침된다면 음악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버추얼이든 실제 인물이든 크게 차이를 두지 않는다. 최근에는 축구 중계로 인기를 얻고 있는 스트리머 감스트와 이세계아이돌의 멤버 중 한 명인 고세구가 합동 콘텐츠를 진행했다. 이처럼 가상의 존재가 기존 콘텐츠를 운영하는 사람들과 함께 만드는 융합 콘텐츠는 가상 공간에서 벗어나 토크쇼, 팬미팅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다만 모두가 알 만한 파괴력 있는 콘텐츠를 내진 못한 상황이다. 일정한 세계관 안에서 이들을 소비할 거라 약속한 팬들이 존재하는 경우 스토리 라인과 웹소설, 웹툰 등 2차 콘텐츠를 확장해 나가면 수익을 낼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라고 분석했다.

인기 스트리머 감스트와 이세계아이돌 멤버 고세구의 합동 콘텐츠에는 5만여 명의 이용자가 몰렸다.
출처 | SOOP

K-콘텐츠 시장은 전례 없는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다. K-팝, K-드라마, K-무비는 더 이상 내수용으로 생산되지 않는다. 가수들은 빌보드 차트를 겨냥하고, 배우와 감독들은 아카데미를 노린다. 십여 년 전 실없는 소리로 치부됐던 꿈들은 모두 현실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피어난 AI 기반 서브컬처와 그 가능성은 우리가 즐기는 콘텐츠의 세계를 넓히며 K-콘텐츠의 또 다른 비전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글. 김지우(마이데일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