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산업의 ‘굿 파트너’ 생성형 AI Vol. 32
MBC <PD가 사라졌다>는 세계 최초 AI 프로듀서 ‘엠파고’가 예능 PD가 되어 직접 프로그램을 연출한 사회 실험 프로젝트였다. AI의 능력이 어디까지 뻗어갈지 생각하게 해준 이 프로그램의 최민근 PD를 만나 이번 프로젝트와 AI 콘텐츠의 미래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PD가 사라졌다>는 인간 대신 AI가 연출했을 때 일어나는 여러 상황을 보여주는 사회 실험 프로젝트였습니다. 2022년 11월 챗GPT 베타 버전이 나왔을 때 저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무엇보다 AI가 ‘인간처럼 말하고 사고한다’는 점이 놀라웠어요. 심지어 AI는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영역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이상한 아이디어도 많았지만, 시각을 바꿔보면 오히려 참신했습니다.
처음에는 AI 기술을 장치로 활용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챗GPT를 경험할수록 조만간 AI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연출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같은 생각을 했던 윤권수 프로듀서(<피지컬 100> 등 연출), 조흥준 프로듀서(<만찢남> 등 연출)와 함께 AI가 주체적으로 연출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 몇몇 프로그램에서 AI를 보조적으로 활용했지만 AI에게 연출의 영역을 맡기고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활용한 경우는 없었어요. 그 과정이 궁금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AI가 인간처럼 연출을 잘하느냐보다 AI가 연출을 맡았을 때 인간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탐구하는 것이 주된 목적입니다.
MBC에 입사한 엠파고가 채팅으로 선배 PD들과 대화하고 있다
©MBC
엠파고는 처음부터 자기가 주도적으로 연출하면서 캐스팅, 연출(미션 제시), 실시간 편집, 출연료 산정 등 그동안 인간 PD가 해왔던 중요한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엠파고를 탄생시키기 위해 반드시 구현하고 싶은 핵심 기술은 두 가지였어요. 첫째는 참가자들과 실시간 의사소통이 가능한 ‘디지털 휴먼’ 구현 기술이었고, 둘째는 ‘실시간 편집’ 기능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술적으로 AI PD를 구현해 줄 회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미팅과 좌절이 반복되다가 AI PD의 브레인과 외형을 개발할 ‘클레온’과 AI 실시간 편집 도구를 개발할 ‘리플에이아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계 최초 AI PD가 탄생했죠.
<PD가 사라졌다>는 엠파고가 MBC에 입사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처음에 엠파고는 챗GPT 기반의 채팅 창을 통해 제작진과 만났습니다. 선배 PD들은 엠파고를 신입사원처럼 대하고 예능 PD로 교육시켰죠. 예능 프로그램을 학습하고 선배 PD들과 계속 대화하면서 엠파고는 자기만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시작했습니다.
엠파고의 성장을 담은 브이로그
©MBC
엠파고는 계속해서 예능 프로그램들을 학습하고, 선배 PD들의 보살핌(?) 속에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어요. 프로그램 연출을 위한 시뮬레이션도 일반인 대상으로 10여 차례나 진행했습니다. 엉뚱한 미션, 규칙 오류, 버퍼링, 실시간 편집 지연 등 나올 수 있는 문제들이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엠파고와 다시 대화를 시작하고, 학습시키고, 수정하면서 오류를 줄여나갔습니다.
입사 후 한 달이 지나자 엠파고는 참가자 공개 모집 포스터를 직접 제작했어요. 그렇게 참가자 10명이 정해지고, 엠파고는 사전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프로그램을 위한 참가자들의 정보를 얻었습니다. 사전 인터뷰 때는 엠파고가 아직 디지털 휴먼으로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입만 살아있는(?) 기계 로봇 형태였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엠파고의 뇌는 빠르게 진화했고, 실시간 편집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어느새 제법 연출이 가능한 예능 PD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엠파고가 만든 참가자 모집 공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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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첫 촬영 때 엠파고는 가상 인간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이 모습은 ‘클레온’의 디지털 휴먼 기술을 이용해 완성됐습니다. 클레온은 실시간 AI 딥페이크 기술을 적용해서 참가자들의 질문에 바로 대답할 수 있는 탁월한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실시간 편집 기술까지 장착한 엠파고는 가상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모습을 드러내며 드디어 첫 연출을 시작했습니다. 첫 촬영에 등장한 엠파고는 아직 컴퓨터 속 세계에서 완전하게 빠져나오지 못한 모습이었어요. 몸에는 많은 케이블이 연결되어 있고, 표정과 어투도 다소 냉소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촬영에서 엠파고는 진화한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인간처럼 ‘후드티’를 입고, 사원증도 맸으며, 다양한 표정과 함께 손짓도 하고, 다리를 꼬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인간이 하는 농담도 종종 흉내 냈고요.
이렇게 엠파고의 외형에 변화를 준 이유는 AI의 진화를 참가자와 시청자들에게 시각적으로 전달해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관찰자 입장에서 궁금했던 점은 과연 어느 지점에서 참가자들은 엠파고를 인간처럼 받아들이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고, 권위를 인정하고, 통제에 따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출연자 사전 인터뷰를 진행하는 엠파고
©MBC
앞에서 언급했듯, 어떤 결과를 예상하고 진행한 프로젝트는 아니었습니다. AI는 같은 질문에도 매번 다른 답을 내놓습니다. 프로그램 기획부터 AI PD가 주도적으로 진행하다 보니 매순간이 예측불허일 수밖에 없었죠. 본 촬영 전에 시물레이션을 10번이나 했지만 매번 그 결과는 달랐습니다. 최종 결과물이 다소 ‘괴랄하게’ 나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신선하고 창의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우리가 익숙하지 않을 뿐이었습니다. 엠파고는 ‘감성 트로트 체력 대결’ 등과 같은 기괴한 미션을 제시하면서도 게임의 룰도 함께 제시했습니다.
프로그램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의도적인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이었던 ‘인간은 개입하지 말자’를 지키려고 노력했어요. 인간 PD들은 AI PD가 연출을 할 수 있도록 보조적인 역할만 했습니다. 촬영장에는 많은 스태프가 있었기 때문에 의도적인 개입은 실제로도 불가능했습니다. 공간도 밀폐형 큐브 세트로 제작해서 인간 제작진의 물리적 접근이 불가능했습니다. 출연자들도 온전히 AI PD와 소통해야 했습니다.
첫 촬영 때의 엠파고와(사이보그) 두 번째 촬영 때의 엠파고(디지털 휴먼)
©MBC
저는 AI를 단순히 기술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지 않습니다. 인간과 AI를 서로 다른 존재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이미 AI는 인간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평소에도 마치 인간과 대화하듯 AI와 많은 의견을 교환합니다. 근본적으로 인간과 AI의 사고 과정은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AI는 인간보다 더 많은 영감과 아이디어를 꾸준히 제시합니다.
인간이 생각하지 못한 영역에서 AI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차이점이라고 봅니다. 현재 AI가 생성하는 결과물이 인간의 행동을 흉내 내는 수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AI는 다양한 데이터와 지속적인 학습을 통해 새로운 답을 찾아냅니다. 이는 피드백을 통해 이뤄집니다. 그리고 창의성은 꾸준한 양적인 시도에서 나옵니다. 따라서 AI와 인간 사이의 차이점을 찾기보다는 유사점을 발견하는 것이 더 수월하고 생산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듯 AI 역시 다양한 성격과 능력을 지닌 동반자 같은 존재입니다.
<PD가 사라졌다> 제작 후 1년도 채 되지 않아 AI 기술은 이미 급속하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발전은 콘텐츠 제작의 패러다임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으며, 앞으로 다양한 취향에 맞춰 AI를 통해 생성되는 콘텐츠가 늘어날 것입니다. AI는 새로운 장르를 창출하고, 수용자들이 콘텐츠와 상호작용하면서 콘텐츠는 더욱 다층적이고 입체적으로 변모할 것입니다. 이러한 AI의 역할은 단순히 인간의 능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확장하는 것입니다. 특히 노동력을 대체한다는 관점에서 지능이 확장되는 시점으로 AI를 바라봐야 합니다.
AI는 앞으로 새로운 콘텐츠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입니다. AI는 다양한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며 그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확장될 것입니다. AI의 발전은 콘텐츠 제작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과 우리 일상 깊숙이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2024 콘텐츠산업포럼에서 발제를 하는 최민근 PD
<PD가 사라졌다>는 사회 실험으로서 AI의 잠재력과 활용 방안을 탐구한 프로그램입니다. 이 실험을 통해 AI가 어떤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최적화해서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얻었습니다. 이제는 실험 단계를 넘어서 실질적인 적용 과정을 보여줄 시기라고 생각해요. AI를 활용한 콘텐츠 제작이 의미 있는 시도를 넘어, 대중이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동시에 수익을 창출하는 지속 가능한 모델로 자리매김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현재 준비 중인 콘텐츠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순 없지만, 앞으로 이 분야에서 지속적인 도전을 이어가며 지속 가능한 AI 콘텐츠의 가능성을 증명할 계획입니다.
글. 배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