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콘텐츠 공급제작계약의 계약법 및 경쟁법적 쟁점1)
- 독립제작사의 종합편성채널 불공정거래 비판 성명과 관련하여
이 재 경(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
I. 서론
2012. 3. 13. 130여 개 프로그램 제작사가 소속된 사단법인 독립제작사협회가 보도자료를 통하여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사”)이 제작과 방송 중인 외주 프로그램 공급을 갑자기 중단하거나 불공정한 계약을 일삼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종편사의 횡포 사례로서 기본적인 계약도 없이 먼저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유도한 후 제작비용을 지급하지 않는 행위, 제작비의 일방적 삭감과 편성 수시 변경, 협찬금의 불공정한 분배, 외주사 프로그램 포맷의 무단 사용 등을 꼽았다. 그리하여, "종편사가 자신들의 시행착오에 따른 피해를 떠넘기면서 제작에 참여한 독립제작사들이 존폐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위 협회는 해결 대책으로 손해 보상과 공정 거래 질서 확립을 요구하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집단 피해소송을 비롯해 제작거부까지 불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1)
이는 단순히 종편사와 외주제작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프로그램 제작 관련 불공정거래는 지상파 또는 케이블방송사와의 관계에서 더 고질적인 병폐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었으며, 아직도 고쳐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2007년 방송콘텐츠 외주제작단체들은 당시 방송사와 제작사 간 불공정한 제작 관행을 청산하자는 '방송콘텐츠 제작단체 저작권 독립선언'을 하기도 했으며, 2008년에는 (사)한국드라마제작협회 소속 25개 드라마 제작사들이 드라마 저작권에 대한 불공정거래 등을 내세우면서 지상파 방송 3사를 공정 거래법 위반 혐의로 공장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신고했으며, (사)독립제작사협회도 이를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 비록, 공정위는 위 사건에 대하여, “통상적인 거래 관행이 없고, 드라마별로 저작권에 기여한 정도가 다르고, 저작권 양도의 대가가 달라 공정거래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라는 근거로2), 방송사에게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가 없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3)
종편사를 포함하여 지상파 등 방송사와의 관계에서 독립제작사가 직면하고 있는 불공정거래의 문제는 21세기 콘텐츠 강국을 표방하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장벽임에 틀림없다. 이하, 방송콘텐츠 관련 계약에 대한 계약법적, 경쟁법(공정거래법)적인 고찰을 통하여, 지상파, 종편사 등 방송사와의 관계에서 독립제작사가 처하고 있는 불공정거래 관련 문제점 및 개선책을 살펴본다.
II. 우리나라 외주정책 개관
1. 외주정책의 내용
우리나라는 1990년 8월 의결된 방송법에 의하여, 시장개방에 따른 OECD, 우루과이 라운드를 통하여 방송영상시장 개방에 대비하여 국내 영상산업을 육성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방안으로 외주정책이 만들어졌다. 프로그램 제작, 유통에 대한 지상파 3사(KBS, MBC, SBS)의 수직적인 통합구조 하에서의 방송정책은 공익성에는 부합할 수 있어도, 산업적 측면과 소비자 권리가 강조되는 다매체 환경에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상파의 독점 지배력을 완화시켜 수요시장의 질적 균형을 도모하기 위하는 것이 주요한 목적이었다.4)
방송법 제72조의 “외주제작 방송프로그램의 편성” 규정에 따르면, 외주제작 방송프로그램이란, “당해 방송사업자가 아닌 자가 제작한 프로그램(영화 제외)”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방송사업자는 ii) 당해 채널의 전체 방송 프로그램 중 국내에서 방송사업자가 아닌 자가 제작한 방송프로그램을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일정한 비율 이상 편성해야 하며, ii) 방송사업자는 외주제작 방송 프로그램을 편성하는데 있어 특수관계자가 제작한 방송프로그램을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일정한 비율 이상을 초과하지 아니하도록 편성해야 하고, iii) 종합편성을 행하는 방송사업자는 외주제작 방송프로그램을 주시청시간대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일정한 비율 이상을 편성해야 한다. 또한, 외주제작 방송프로그램의 편성비율은 방송매체와 방송분야별 특성을 고려하여 차등을 둘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지상파방송사의 프로그램 편성에서 영화를 제외한 외주제작물을 매월 전체 방송시간의 40% 이내에서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고시하는 비율 이상을 편성해야 하며, 지상파의 특수관계자가 제작한 프로그램은 30% 범위 내에서 방통위가 고시하는 비율을 초과해서 방영할 수 없다. 종편사의 경우, 외주제작 프로그램을 매월 주시청시간대 방송시간의 15% 이내에서 방통위가 고시하는 비율 이상을 편성해야 한다.5)
2. 외주제작의 방식
방송프로그램의 제작방식은 크게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제작주체에 따라 자체제작과 외주제작으로 나뉜다. “자체제작”이란 방송사 자체의 인력 시설 장비를 이용하여 방송사가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하는 것을 가리키며 “외주제작”이란 일반적으로 해당방송국이 아닌 외부의 방송 프로그램 제작사가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하는 것을 말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방송사와 제작 업무를 나누기도 하고 지원을 받기도 하는데 특히 방송사 내에 전문 인력이나 기술, 장비 등을 지원받기도 한다.6) 다시 외주제작의 형태는 그 제작방법에 따라 완전외주제작, 부분외주제작, 공동제작, 외주 제작물 구매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완전외주제작”이란 방송사가 계약에 따라 제작비 전액을 지급하고 제작사가 자체의 인력 시설 장비를 직접 사용하거나 임대하여 프로그램을 제작, 납품하는 외주제작을 말한다. 방송사가 계약에 따라 제작사에 방송사의 인력 시설 장비의 일부를 이용케 하고, 제작비 중 관련항목 비용을 절감하는 형태의 외주제작은 “부분외주제작”이며, 방송사와 제작사가 일정 비율의 제작비를 분담하거나, 인력시설 장비 또는 제작 업무를 분담하는 넓은 의미의 외주제작이 “공동제작”이다7). 그리고 ‘외주제작물 구매’란 제작사가 자체 기획하여, 제작이 완료된 프로그램을 일정한 금액과 조건으로 구입하는 방식을 말한다.8)
이처럼 우리나라 방송프로그램의 외주제작은 일반적으로 “부분외주제작”으로, 작가와 계약한 외주제작사가 방송사의 연출과 방송사의 시스템을 이용해서 만드는 방식과 지상파 방송사 출신의 연출자와 계약한 외주제작사가 방송사의 시스템을 이용하여 만드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외주제작사가 방송사의 편성을 확정하지 않은 채사전 제작하여 방송사에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완전외주제작도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즉, 외형적으로는 독립제작사가 프로그램의 기획과 제작을 맡고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방송사가 대부분의 과정을 통제, 관리하는 경우가 많은 공동제작 또는 위탁제작 형태가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드리마 “비천무”, “태왕사신기” 등처럼 완전 외주형으로 제작된 경우보다 “내조의 여왕”, “자명고”, “선덕여왕”처럼 공동제작이나 위탁제작의 형태가 더 많았던 것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국내 독립제작사의 연한이 짧고, 규모가 영세하다는 점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는데, 자본이나 인력 조달이 용이하지 아니한 독립제작사는 시장실패의 가능성이 높은 드라마보다는 교양,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분야에 집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2005년 기준 국내에 신고된 독립제작사 중에서 47.3%인 116개사들이 교양과 다큐멘터리 장르의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으며, 소수의 제작사만이 드라마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는 실정이다.9)
이와 같이, 이러한 공동제작의 형태를 띠기 때문에, 방송사업자는 외주제작 계약서에 ‘권리양도’ 조항을 포함시켜 관행적으로 저작권을 포괄적으로 양도받고 있으며, 또한 방송프로그램 제작에 발생하는 모든 책임을 독립제작사에게 부담시키고 있는 것이다. 외주제작 계약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구 방송위원회는 “외주제작 표준계약 가이드 라인”(2004. 12.)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었다10).
3. 외주제작 프로그램의 편성 및 독립제작사 현황
1991년부터 우리나라에 외주제작 의무편성비율제도가 도입된 이래, 현재 우리나라 지상파방송에 있어서 외주제작 의무 편성비율은 1991년 3%를 시작으로 2010년 기준으로 40%까지 고시할 수 있으며, 지상파3사의 의무편성비율은 평균34%에 이르고 있다. 종편사의 경우, 2011년 12월에 출범하였기 때문에 2012년 현재 아직도 통계 수치가 잡히지 않았으나, 지상파의 경우와 대동소이할 것으로 보인다.
2009년 기준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 사업자로 등록된 국내 독립제작사의 수는 1,333 개이다. 그러나, 이 숫자는 1999년 “문화산업진흥기본법”에 따라 사업을 위하여 요구되는 최소한의 등록절차를 거친 사업자를 말하며, 방송영상산업에 종사하는 실제 독립제작사의 수는 약580여개에 불과하며, 이 중에서도 지속적으로 방송영상제작 매출을 달성하고 적정한 인력을 유지하고 있는 독립제작사는 약 200개 미만에 불과하다고 한다.또한, 2007년 독립제작사의 매출은 1조4,080억원으로 추정되며, 전체 매출규모를 12조원으로 볼 때, 독립제작사가 전체 방송영상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2%로 보고 있다. 이것은 지상파방송사 32%, 종합유선방송사 18%, 방송채널사용사업자 33%와 비교해 볼 때도 상당히 높은 수치인 것이다.11)
2008년 독립제작사 실태조사에 참여한 100여개 독립제작사 중에서 자본 규모가 10억원이 넘는 12개 제작사들의 총 매출액은 1,573억원으로 1개 사업자당 평균매출액 약 157억원을 기록했다. 이에 반하여 자본금 5천만원 미만의 50여개 독립제작사들은 약 300억원의 매출을 올려서 1개 사업자당 평균 약 8억3천만원의 매출에 불과했다. 이러한 비교는 독립제작사 규모의 양극화를 보여주고 있다. 2007년 한해 동안 제작한 프로그램의 전체 시간은 1,066,867분이었는데, 이 중에서 교양물이 전체의 31.5%로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으며, 다큐가 13.9%로 두 장르를 합치면, 45.4%로 거의 절반 수준에 달하고 있다. 이것은 독립제작사들이 상근자 20인 미만의 영세사업자로서 지상파 방송사 등에 교양, 다큐멘터리물을 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분석되었다.12) 이러한 사정은 교양물의 편성 비중이 높은 종편사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13)
4. 외주정책에 대한 비판
외주정책은 독과점을 형성하고 있는 지상파방송사의 수직적 구조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외주정책이 i) 독립제작사의 양적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점, ii) 방송프로그램 시장의 고질적인 수직적 구조를 완화시켰다는 점. iii) 드라마 장르의 경우, 비교적 대규모의 제작사가 형성되어 국제경쟁력을 가진 프로그램의 생산이 가능하다는 점, iv) 독립제작사의 양적 성장에 기초하여 다매체 다채널 시대가 요구하는 콘텐츠 수요의 주요한 공급원이 되었다는 점이다.14)
그러나, 외주정책의 현실적인 한계와 정책이 지닌 왜곡되고 단선적인 목표, 외주의 무비율 확대에 따른 부작용이 더 커다란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외주제작 활성화는 의무비율 등 의무적인 규정을 통해서만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경직된 규제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15) 외주정책이 당초의 방향에서 벗어나 기대에 못미친 원인에 대하여 i) 제작사의 양적인 팽창은 질적인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한 점, ii) 드라마를 제외한 장르에서는 질적인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한 점, iii) 지상파 등 방송사에게 여전히 저작권이 귀속된다는 점, iv) 외주제작이 일부 제작사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 꼽히고 있다.16) 이와 함께, 방송사들은 방송시장에 대한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 때문에 프로그램의 질적인 저하, 제작비용의 상승, 방송사의 편성권 침해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으므로 프로그램의 공급은 시장의 기능에 맡겨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17)
※ 자세한 내용은 첨부(PDF)화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