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영화제작사협회의 연방통신위원회 청원 지난 2008년 7월, 미국영화제작사협회(Motion Picture Association of America, MPAA)는 연방통신위원회에 청원서를 제출하여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을 포함하는 문화 콘텐츠의 저작권 보호를 위한 조치로서 선택적 출력 통제(Selectable Output Control, SOC)에 대한 금지 조치를 해체 혹은 완화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지난 277호에서 다루어본 것처럼, 선택적 출력 통제란 케이블 텔레비전의 셋톱박스로부터 DVD나 비디오 녹화재생기(DCR) 그리고 디지털 녹화재생기(DVR)에 이르기까지 비디오 및 오디오 콘텐츠 관련 기기에 대해 콘텐츠의 출력을 통제하는 것이다. 콘텐츠의 허가 없는 복제나 서로 다른 기기 간의 이동 등을 위해 할리우드 거대 콘텐츠 제작자들은 특히 디지털 기기 자체에 대한 통제를 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선택적 출력 통제가 해제되거나 완화되면 이들 할리우드 제작자들이나 케이블 사업자들이 디지털 기기 제작자들에게 비디오나 오디오의 ‘재생’을 위한(즉, 이용자의 입장에서는 콘텐츠의 ‘출력’을 하는) 특정한 기술적 장치를 강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향이 과연 이용자들의 미디어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인지 분명히 토론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미 콘텐츠 자체의 저작권 보호에 대한 다양한 기술적 장치들(가장 대표적인 것이 디지털저작권관리기술, 즉 DRM)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콘텐츠 제작자들이 이러한 방향에서 어떤 이해관계를 두고 있는지 다루어질 필요도 있다. 나아가 선택적 출력 통제에 대한 규제완화가 미디어 관련 산업, 특히 기기 제작자들(예를 들어 소니나 도시바, 삼성과 엘지 등)이나 다른 콘텐츠 사업자들(예를 들어, 넷플릭스와 같은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 대여 사업자들)에 대해 어떤 영향을 주는지, 즉 할리우드 제작자들과 이들 사업자들 간의 경쟁구조가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도 검토되어야 한다. 아래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들을 바탕으로 지난해에 이어 최근 11월 4일 미국영화제작사협회의 연방통신위원회 청원서 제출에 의해 다시 제기되고 있는 선택적 출력 통제를 둘러싼 논쟁을 다루어본다.
선택적 출력 통제: 기술적·사회적 함의들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할리우드 콘텐츠 제작자들이나 거대 음반 제작자들은 자신들의 콘텐츠 저작권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디지털저작권관리라는 기술을 적용했다. 그러나 그 기술이 이용자가 자신이 구입한 콘텐츠를 법적 이용 범위에서 행사할 수 있는 재산권(즉, 자신의 휴대용 재생기기에서 가정의 컴퓨터로 옮기는 것 등)에 대해 제한한다는 비판이 일어났다. 여기에 디지털저작권관리기술의 본래 의도인 불법 저작물 유통의 차단에 대한 이 기술의 효용성이 문제가 되었다. 그리하여 아마존이나 유니버설 등 거대 음반 사업자들도 디지털저작권관리기술을 더 이상 적용하지 않은 디지털 음악 파일을 판매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단순한 디지털 파일 교환자들에 대한 법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데 음반 사업자들은 이 기술을 활용하였고, 그에 대한 비판이 그동안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주로 음반 산업에서 활용되어 온 이 기술에 대해 할리우드 제작들이 얻은 교훈은 분명했다. 그것은 콘텐츠 자체에 대한 기술적 보호 장치뿐만 아니라 그것이 적용될 하드웨어 기기 자체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디지털 비디오 콘텐츠에 보다 구체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보호 장치는 이미 널리 이용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고화질용 광대역 디지털 콘텐츠 보호 기술(HighBandwidth Digital Content Protection, HDCP)’이다. 이 기술은 최근 디지털 텔레비전 방송이나 DVD 혹은 블루레이 등 고화질 비디오 콘텐츠를 위한 ‘광대역 멀티미디어 인터페이스(HighDefinition Multimedia INterface, HDMI)’를 다룬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기술이 가정 내 비디오 재생기기의 아날로그 출력단자에 대해서는 적용되기가 어려운데, 이를 가리켜 ‘아날로그 홀(analog hole)’이라 부른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집 안이 아닌 다른 곳에서 콘텐츠를 이용하기 위한 ‘공간 이동성(space shifting)’을 위해 이러한 기술적 틈새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콘텐츠 제작자들은 이것이 불법적인 콘텐츠 활용을 이끌고 있다거나 혹은 이를 가속화시킬 것으로 우려한다. 할리우드 제작자들은 선택적 출력단자에 대한 통제를 자신들의 요구에 따라 하는 것만이 저작권을 보호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 우려의 의미는 십분 이해되는 바이지만, 많은 사람은 이러한 방향이 음반 산업에서의 디지털저작권관리기술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예측의 근거는 무엇일까. 사실 할리우드 제작자들에게 이러한 예측을 논박할 만한 구체적인 근거는 없는 듯해 보인다. 다만 기존 디지털저작권관리기술의 필요성 문제와 더불어 여전히 문젯거리임에 틀림없는 불법 저작물 유통의 현재가 이들이 제시하는 선택적 출력 통제 규제 완화의 근거이다. 디지털저작권관리기술과의 연계적 사고에 대한 측면은 이미 위에서 다루었으니 여기서는 변화된 기술환경에 따른 불법 저작물 유통에 대한 현황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우선 할리우드 제작자들은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인터넷 등을 통해 불법적으로 자신들의 콘텐츠를 이용하고 있으며, 가장 구체적인 예가 바로 ‘개인 간 파일공유’”라고 가정을 한다. 리치 카핀스키(Rich Karpinski)에 따르면, 최근 가장 치밀한 네트워크 감시 기술이라고 하는 ‘딥패킷 검색(deep packet inspection)’을 시행하는 샌드바인(Sandvine)은 미국 전역의 20개 네트워크에서 무려 2,400만여 명의 인터넷 이용자들의 행태를 조사했다(물론 법적 사항을 준수하기 위해 아이피 주소의 수집은 하지 않았다고 함). 이 조사 결과는 텔레비전이나 가정 내 영화 시청을 위한 ‘황금시간대’라 할 수 있는 저녁 7시부터 밤 10시 사이의 인터넷 이용이 꾸준히 증가함과 함께 특히 영화나 텔레비전의 인터넷 스트리밍(즉, 실시간 보기)의 비중이 크게 늘어 전체 인터넷 이용의 26.6%를 차지했다고 보여준다. 지난해 같은 시기 인터넷 스트리밍이 전체 인터넷 이용에서 12.6%에 불과했던 측정치에 비하면 놀라운 성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조사에서 특이할 만한 사항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개인 간 파일공유의 인터넷 이용 행태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조사에서 전체 인터넷 트래픽의 3분의 1인 32%를 차지했던 개인 간 파일공유는 올해 20%로 그 비율이 뚝 떨어졌다. 물론 이러한 인터넷 이용 행태와 관련한 수치들의 변화가 불법적인 저작물 유통의 근절이나 감소라고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기본적인 가정, 즉 개인 간 파일공유를 통한 저작물의 불법 유통을 차단하기 위한 중요한 방식으로서 선택적 출력 통제 규제에 대한 완화 및 이들 디지털 기기의 기술적 선호도에 대한 콘텐츠 제작자들의 개입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의 상당 부분을 의심받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그러한 가정이 이처럼 논박될 수 있는 상황에서는 그 가정의 이면에서 그들이 다수의 무고한 인터넷 이용자들이나 자신들의 콘텐츠 이용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밖에 안 된다. 미디어 이용자들을 무단 콘텐츠 도용의 ‘범죄자’ 아니면 수익 확장을 위해 다루어질 ‘소비자’라는 도식적인 사고는 기업의 사회적 윤리뿐만 아니라 이들 기업 행위가 어떤 정도의 사회적 책임성을 지향할 수 있는가라는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여기에 더하여 과연 기업 활동의 목적 자체가 콘텐츠의 저작권법상 적법성에 대한 기준 마련과 판단을 위한 기본 원리로 이해될 수 있는지도 공공의 우려를 일구어내고 있다.
문화 콘텐츠의 배급을 둘러싼 미디어 산업들 간의 경쟁 이상과 같은 콘텐츠 이용의 사회·기술적 함의를 보다 산업적인 맥락에서 이해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먼저 위에서 토론했던 내용의 함의를 간략히 요약하면, 미디어 산업에서 콘텐츠의 배급(distribution)이 갖는 중요성이 법적(저작권)·기술적(콘텐츠 제작자와 이용자 간의 상호작용성) 등의 측면에서 한층 더해졌으며, 그것이 시장 지배력을 확장하고 강화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은, 이들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케이블 사업자들과 결합하여 콘텐츠 배급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조정하여 시장 지배력을 넓히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277호에서 설명했던 바와 같이 할리우드 영화가 케이블 채널을 통해 수용자들에게 나올 수 있기까지 약 120일 정도가 걸린다. 그 사이 영화는 극장에서 상영되고, 영화 제작자들은 박스 오피스 판매 실적을 통해 추후 DVD 시장의 규모(영화 상영 후 일반적으로 약 150일 후)를 예측하게 된다. 그런데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들은 자신들의 영화가 보다 빨리 케이블 채널을 통한 주문형 비디오 시장이나 DVD 시장으로 나오길 바란다. 특히 각 가정 내 고화질의 풍부한 미디어 환경을 구성해 주는 다양한 디지털 기기의 등장과 보급은 그와 같은 2차 콘텐츠 시장으로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관심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
최근 넷플릭스(Netflix)의 이러한 2차 콘텐츠 배급 시장에서의 성장은 이를 반영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DVD 우편 발송과 더불어 최근 인터넷을 통해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디지털 콘텐츠를 대여하는 사업을 하는 넷플릭스는 2008년 약 3억 4,1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는데, 올해 현재까지 그 수익 규모는 무려 24%나 증가하여 4억 2,300만 달러에 이른다. 순수익만도 지난해 6,000만 달러에서 올해 약 8,500만 달러로 약 41%의 고성장을 보이고 있다. 가입자 규모도 증가하여 작년 같은 시기 870만이었던 것이 올해 27.7% 증가하여 1,100만에 이른다. 할리우드 제작자들은 이와 같은 새로운 수익창출 모델에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고, 선택적 출력 통제 규제의 완화 요구는 저작권 보호 장치라는 주장 아래 본격적으로 이러한 2차 콘텐츠 시장에 직간접적으로 나서겠다는 행보이다. 넷플릭스 같은 사업자들로부터 콘텐츠에 대한 라이선스를 받는 것보다 직접 참여함으로써 수익창출 창구를 다원화하고 산업 간 시장지배력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전략이 낯설 이유는 없다. 미국에서 두 번째 규모의 케이블 사업자인 타임워너는 이미 잘 알려진 바대로 <타임(The Time)> 잡지와 CNN·TBS 등 케이블 채널들은 물론이고, 뉴라인 시네마(New Line Cinema)와 메이저 할리우드사인 워너브라더스(Warner Brothers)를 소유하고 있는 복합 미디어 기업이다. 넘버원 케이블 사업자인 컴캐스트는 최근 <뉴욕 타임스> 등에 보도된 것처럼 역시 메이저 할리우드 영화사인 NBC 유니버설(NBC Universal)의 지분 중 비벤디(Vivendi)가 가지고 있던 51%를 매입하여 본격적으로 거대 미디어 복합기업의 대열에 끼고 있다. 이와 같은 미디어 산업 내의 콘텐츠 제작과 배급의 결합 역시 이미 진행 중인 이슈이기도 하다. 지난 1970년대 중반에 케이블 시대가 도래한 이후 방송사의 프로그램에 대한 재정적 이해관계 관여를 규제했던 신디케이션룰(the financial syndi cation rule)이 1990년대 중반 들어 거의 사문화되고 결국 공식적으로 폐지되고 난 후 할리우드 거대 기업들과 텔레비전 방송사들 간의 결합이 가속화되었다. 할리우드 거대 제작사들과 케이블 사업 간의 결합은 콘텐츠 배급 시장에서 최대한의 수익창출을 하기 위한 적극적인 전략이자 미국 미디어 산업 전체의 거대한 복합 그물망이 완성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나오며 최근 디지털 녹화재생기(TiVos와 같은 DVR)의 이용이 수용자들의 시청 행태에서 반드시 광고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조사가 나오면서 디지털 콘텐츠의 가정 내 적극적인 수용이 미국 미디어 산업의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주요 시청률 조사기관인 닐슨은 시청률을 세 가지, 즉 생방송 시청률, 녹화 후 3일 내 시청률, 그리고 녹화 후 7일 내 시청률 등으로 나눈다. 지난 2008년의 28%에 비해 무려 5% 이상 성장하여 가정 내 보급률이 33%에 이르고 있는 디지털 녹화재생기는 이제 텔레비전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테크놀로지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 <뉴욕 타임스>가 보도하는 것처럼, 전국 공중파 텔레비전 네트워크 방송사의 주요 프로그램들은 모두 디지털 녹화재생기 덕에 꾸준한 시청률을 확보하고 있다. ABC가 생방송에서 약 290만여 명의 시청자를 확보했던 것이 녹화 3일 후 시청률에서는 약 330만여 명의 시청자를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와 같은 각각의 수치가 CBS에서는 300만과 320만, NBC에서는 200만과 220만여 명으로 닐슨의 조사에서 나타났다. 이와 같은 미디어 수용환경은 이미 복합적인 그물망으로 상호간의 산업 간 시너지 효과를 누리며 이를 배가하려는 거대 미디어 기업에게는 초미의 관심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수용자들이 이용하는 디지털 기기 하나하나의 출력 단자에 대한 관심은 미디어 기업의 입장에서는 당연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 관심이 수용자들에게 어떤 좋은 이익을 가져다줄지는 아직 미지수라는 지적이 많다.
● 참고 : - Rich Karpinski, “Realtime video surpasses P2P, creating new broadband prime time”, 2009년 10월 26일, http://telephonyonline.com/home/news/real-time-video-p2p-1026. - “Netflix turns in another strong quarter”, http://www.internetretailer.com/dailyNews.aspid=32240, 2009년 10월 23일. - Bill Carter, “Later Viewings of Shows on DVRs Brighten Ratings”, The New York Times, 2009년 10월 12일, http://www.nytimes.com/2009/10/13/business/media/13dvr.html. - Bill Carter, “DVR, Once TV’s Mortal Foe, Helps Ratings”, The New York Times, 2009년 11월 1일, http://www.nytimes.com/2009/11/02/business/media/02ratings.html_r =5&pagewanted=all. - Michael J. de la Merced and Andrew Ross Sorkin, “Comcast Said to be Close to Gaming NBC Universal”, The New York Times, 2009년 11. 1., http://www.nytimes.com/2009/11/02/business/media/02nbc.htmladxnnl=1&adxnnlx=1257901371-XKTgxPajtXsTbULpfQlGIg.
● 작성 : 성민규(미국 아이오와 대학교 커뮤니케이션 스터디즈학과 박사과정, MinkyuSung@gmail.com)
※뉴미디어_글로벌콘텐츠동향과분석(11월2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