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와 미디어2.0 그리고 미디어비즈니스 시사점
01. 촛불 든 미디어게릴라, 미디어2.0 시대를 밝히다
한손에는 촛불, 또 다른 한손에는 캠코더 혹은 디카를 들고 광장을 누빈다. 무선인터넷이 가능한 노트북 으로, 휴대전화 영상으로 현장을 생중계한다. 스스로를 취재한, 편집되지 않은 ''생'' 영상이 온라인에서 그대로 중계되고 네티즌은 실시간으로 그 상황을 목격하면서 댓글을 단다. 길거리 저널리즘, 모바일 저널 리즘이다. 휴대 저널리즘, 1인 저널리즘이다.
촛불이라는 메시지가 사람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2008년 여름, 대한민국의 풍경이다. ''미친 소'' 사태가 촉발한 혁명적 미디어 현상이다. 새로운 신드롬이요, 새로운 패러 다임이다.
새로운 현상의 시작은 단연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에서다. 그 옛날 그리스의 시민토론장이었던 아고라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되살아나고 있음이다. 토론방 ''아고라''에서는 하루 수천 건 이상의 토론이 벌어진다. 아고라에서 광우병에 관한 정보가 공유되고 시위에 관한 의견이 조직된다. 촛불시위 현장이 생중계 되고 집회소식이 공유되고 네티즌의 다양한 논리와 의지가 피력된다. 집회 현장의 사진과 영상이 시시각각 올라온다. 아고라의 글들은 기자가 아닌 직접 시위하는 네티즌이 생생한 경험담을 쏟아내기에 그 속보성과 현장성이 뉴스기사보다 더 빠르고 생생하다.
휴대용PC와 캠코더, 무선인터넷 등 기본 조건만 갖추면 누구나 현장에서 생중계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조 성되었다. 개인 채널로 실시간 방송이 가능한 ''아프리카''에는 촛불중계를 시청하려는 네티즌이 몰려든다. 한 동안 침체기에 있던 인터넷신문들도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촛불집회 인터넷 생중계에 대해 자발적 시청료를 모금해 8일 만에 1억 원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촛불집회는 그야말로 미디어적 사건이다. 촛불집회 내내 거리에선 디지털 휴대기기로 무장한 시민들이 독립적 미디어의 역할을 하며 기성 언론에 뒤지지 않는 취재의 힘을 보여준다. 1인 미디어들은 제도권 언론이 외면해왔거나 접근하기 힘든 현장의 사각지대를 생생하게 전하며 기성 언론을 압도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이 이끄는 인터넷문화가 여론의 흐름을 정반대로 바꿔놓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개방된 플랫폼을 통해 이용자 스스로 참여와 소통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콘텐츠까지 생산해내는 2.0미디어 지형인 것이다. 2.0세대는 월드컵을 겪으면서 광장의 문화를 경험했고 인터넷에 익숙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포털 뉴스 등을 자신의 미니홈피나 블로그로 퍼가거나 링크를 걸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대다. 기성세대와 뉴스를 소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정보의 채널이 잘게 쪼개져 분산돼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네트워크 법칙에 따라 링크를 타고 넘으면서 유용한 콘텐츠가 선별되고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된다.
인터넷 안에서 뉴스는 그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또한 사실의 정확성, 의견의 진실성은 글 자체, 댓글 하나를 통해 규명되지 않는다. 무수하게 많은 사람이 반박하고 주장하면서 사태의 진실성에 다가간다. 주류 언론의 보도는 전문적 식견을 갖춘 기자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지만, 인터넷에서 진실은 집단지성과 집단적 참여에 의해 확보되는 것이다. 시민들은 스스로 증거를 찾아내고 토론을 거쳐 사실 여부를 규명 한다. 시민의 소통을 통해 진실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아고라''는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02. 미디어권력 변화, 미디어비즈니스 구조 변동을 이끌다
광우병 사태는 지상파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전해지던 이슈에 대해 더 이상 시민들이 일방적, 수동적 자세 로 받아들이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막강한 힘을 가졌던 지상파 방송사가 오히려 아고라를 따라가기 바빴다. 촛불시위 현장에서 방송 3사는 KBS, MBC, SBS가 아니라 진보넷, 오마이TV, 민중의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수언론은 적어도 쇠고기 문제와 관련해서는 의제설정력을 상실했다. 그간 여론 형성의 중심축이었던 언론, 그 중에서도 이른바 ''조중동''으로 불리는 보수언론에 대한 불신이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 정부가 바뀌었다고 해서 광우병 문제 보도 태도가 달라진 것이 보수언론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키우는 결정적 요인이다. 보수언론의 이중적 보도 태도는 사안의 진실성과 매체의 신뢰성과 직결되면서 국민의 불신감을 증폭시켰다.
급기야 ''vCJD''(조선, 중앙, 동아의 앞 이니셜을 따 크로이펠츠 야콥병, 즉 인간광우병만큼 우리 몸에 해롭 다는 의미)로 불리는 굴욕을 당하고, 평생구독거부 선언과 같은 시민운동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시민의 광고주 압박으로 인해 이들 신문에 대한 광고 포기 의사를 밝히는 업체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 반면, 경향 신문과 한계레에는 시민 모금에 의한 의견광고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는 인터넷 동호회 등 개인적 관심 사로 모인 네티즌에 의한 자발적 운동이다. 경제권력, 정치권력의 권세를 시민권력이 대체하고 있음이다. 언론은 통제나 관리의 대상이 아니며 이제는 권력자가 원한다고 해도 그렇게 될 수 없다. 그러기에는 시민 들이 갖고 있는 정보채널과 미디어가 너무 많고, 다양하고, 빠르다. 아고라를 통해 등장한 시민 저널리스 트들은 재치, 발랄함을 무기로 전통적 저널리즘의 규범을 해체시키며 전면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제 기성 언론은 정보의 정확성과 공정성을 놓고 타 언론사가 아닌 개인과 경쟁해서 이겨야 생존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했다.
촛불집회는 인터넷 판도를 거세게 흔들고 있다. 미디어다음과 네이버뉴스의 페이지뷰는 완전히 역전됐다. 촛불 집회 이후 네이버 탈퇴와 시작페이지 바꾸기 운동이 일어나 네이버의 방문자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 하는 추세이며, 뉴스 섹션의 경우 다음에 비해 큰 차이로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네이버는 그간 언론이 아닌 ''정보유통자''라며, 뉴스 처리에서 중립성을 강조해왔다. 지난해 대선 이후 예민한 주제들에 대해서는 댓글을 금지하고, 토론방도 일원화했다. 이용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네이버는 편향성 시비 제거와 이용자 보호를 내세워 이를 고수했다. 민감한 이슈를 외면해온 네이버는 촛불집회 국면에서도 기존 방침 을 이어갔다. 공론장 기능을 해야 하는 포털이 지나치게 폐쇄적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포털은 뉴스 생산자가 아니다. 그러나 여론 형성의 영향력 측면에서는 미디어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제 포털은 단순 정보유통자가 아닌 미디어로서 존재하기에, 공정성과 사회적 책임에 관한 요구를 회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03. 2.0미디어비즈니스에 대한 시사점
촛불은 아직 타고 있다. 횃불로 승화할 수도 있고, 심지를 타 태워 사그라질 수도 있다. 미디어 패러다임에 끼친 영향이 일시적인 것으로 그칠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의 문제일 뿐, 2.0패러다임으로 진화할 것이라 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하여 지금 그리고 미래 미디어비즈니스 차원에서 그 대응책 모색이 요구된다. 현 단계에서 구체적인 답을 구하기는 어려우나, 그 철학 및 방향성은 논의할 수 있겠다.
0301. 미디어2.0 가치창출의 원천은 누설·결집·유연성
개방과 공유, 참여와 소통이라는 새로운 미디어 시대를 의미하는 2.0패러다임은 미디어기업의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이 혁신은 조직의 변화뿐만이 아니라 고유하게 쌓아온 인식과 전통의 해체를 의미한다. 2.0시대에 미디어 기업이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미디어2.0시대의 이념을 정확하고 풍부하게 구현해야 한다. 하여 미디어2.0의 가치를 창출하는 세 가지 원천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첫째, 누설(revelation)이다. 콘텐츠가 가치 있음을 밝혀 ''관심''을 촉발해야 한다는 것이다(publishing 2.0). 우선 수용자의 호기심을 유발해야만 선택(참여)을 이끌어낼 수 있다. 둘째, 결집(aggregation)이다. 많은 양의 소수 콘텐츠를 모으고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distribution 2.0). 수용자의 다양한 관심에 부응해야만 함께하게 되는 것(공유)이다. 셋째, 유연적응성(robustness)이다. 상호연동, 표준화, 확장 등을 통해 가치 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infrastructure 2.0). 수용자의 접근이 쉽도록 열린 플랫폼이어야 한다(개방). 미디어2.0 환경에서는 플랫폼이 중요하다. 아고라는 이를 체험으로 알게 해준다. 그야말로 ''Content is King, Media is Kingdom''인 것이다. 미디어1.0시대에는 ''콘텐츠''가 최고였다.
하지만 미디어2.0시대에는 ''플랫폼(미디어)''이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콘텐츠는 플랫폼, 미디어를 자유로이 옮겨 다닐 뿐이다. 여기서 플랫폼(미디어)은 광장이 된다. 이용자가 자신이 생산한 정보 및 콘텐츠를 다른 이용자와 공유하고 미디어 기업과 언론사의 정보 및 콘텐츠 생산에도 관여하는 광장이 되는 것이다.
미디어2.0의 주도권은 수많은 지식대중에 의해 형성된 신질서와 이를 제대로 수렴한 아고라 등의 온라인 공론장으로 넘어간 상황이다. 개방과 공유의 시스템을 잘 간파한 사이트들이 살아남듯이 이러한 미디어 시스템을 잘 간파한 매체들이 살아남을 것이다. 광장을 잘 만들고 매체 접근성을 높인 포털은 승승장구 하고 그렇지 못한 포털들은 몰락하게 된다. 이용자와 신뢰성을 기반으로 한 밀접한 관계를 갖지 못한다면 시장에서 도태되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수용자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 이 해법이 될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공간과 커뮤니티 운영에 대한 투자를 아끼면 안 될 것이다.
0302. 관심 끌기와 시간점유율 높이기
미디어 기업의 생존조건은 소비자의 관심(attention)을 얼마나 끌어내느냐 하는데 있다. 골드하버(Goldhaber) 는 이 시대를 관심경제(attention economy) 시대라고 규정하는데, 현재는 물론 미래경제에서 갈수록 심화 되는 경쟁 중 하나가 바로 소비자의 관심을 놓고 벌이는 경쟁이라는 주장이다. 관심은 한정된 재화이기 때문에 모든 기업이 동일한 양의 관심을 획득할 수 없다. 따라서 관심경제에서는 스타와 팬이란 역할구조 가 형성되며, 관심을 사고파는 경제행위가 부상하게 된다. 이제 기업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가 하는 점으로 평가된다. 기업으로는 ''구글''이, 제품으로는 ''iPod''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들이 관심을 끈 방법은 감성적이고 창의적인 체험의 제공에 있다. 소비자의 습관과 행동을 변화시킬만 한 편리한 서비스와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 등 감성적 체험을 제공한 것이다. ''아고라''의 성공 역시 접근의 편리성과 디지털 감수성에 기반한 체험의 공유에서 찾아진다.
대부분 미디어 시장은 두 가지 차원의 시장으로 구성되는데, 광고주와 소비자의 소비를 조화해내야 하는 목표를 갖는다. 그 조화과정이 바로 관심이다. 다른 시장과 달리 미디어 시장은 ''관심''이 밸류체인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작동하는데, 이는 광고주에 의해 요구되고 소비자에 의해 공급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콘텐츠는 수용자에 의해 요구되어지고 광고주에 의해 공급(자금지원)되기 때문이다.
나이키(Nike)의 경쟁자는 ''닌텐도 DS''이다. 스포츠업계와 게임업체 중 누가 고객의 시간을 더 많이 차지 하는가를 놓고 경쟁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나이키는 이제 닌텐도와 시장점유율(market share)을 중심 으로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점유율(time share)에 대한 싸움을 하게 되었다. 그 동안 주로 같은 업종 안에서 치열하게 펼쳐졌던 시장점유율 경쟁이, 업종 간의 장벽이 붕괴되고 업종들이 서로 섞이 는 환경에서 점차 고객의 시간점유율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방송사의 경쟁자는 이동통신업체이다. 이에 미디어기업은 동종 업계 내에서 라이벌과 싸우기 보다는 고객 과 사귀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할애해야 하는 국면을 맞이했다.
0303. 미디어2.0기업의 핵심역량은?
미디어2.0환경에서 미디어 기업들은 다음과 같은 핵심역량(core competences)을 요구받고 있다. 첫째, 속도의 경제학(economies of speed)이다. 얼마나 빠르게 생산하고 시장과 소비자의 변화에 얼마나 빠른 속도로 대응하느냐가 중요한 가치를 갖게 된다. 미디어2.0환경에서는 경쟁자보다 발 빠르게 시장과 소비자 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대응하며 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범위와 규모의 경제학(production economies of scale and scope)이다. 미디어2.0환경에서는 얼마나 많은 이용자(규모의 경제)와 얼마나 다양한 이용자(범위의 경제)가 참여하고 공유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가치가 된다. 셋째, 상호연결된 프로슈머(connected prosumers)이다. 생산과 소비라는 두 가지 행위 모두 에 참여하는 이용자인 프로슈머가 얼마나 밀접하고 조화롭게 상호연결되어 있는가 하는 점도 미디어2.0 환경의 가치를 좌우하게 된다.
프로슈머의 연결망이 밀접하고 촘촘할수록 창출되는 가치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는 스노우볼 효과 (snowball effect)가 발생한다. 넷째, 퍼스널 미디어(personal media)가 중요하다. 미디어2.0시대에 퍼스널 미디어는 가치창출을 위한 새로운 수단이 될 수 있으며, 정보 및 콘텐츠의 가격변화(switching costs)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다섯째, 마이크로 퀄리티(microquality)이다. 미디어2.0환경에서 상품은 매스 마켓이 아닌 니치 마켓에서의 품질이 보다 중요한 가치를 얻어가고 있다. 미디어2.0환경은 다양한 참여자가 존재 하는 환경이며 동시에 이들의 다양한 욕구가 반영되는 시장이기 때문에 여러 형태의 니치시장이 존재 할 수 있다. 따라서 니치 마켓에서의 품질이 보다 중요한 가치를 얻어가게 된다.
미디어2.0환경에서는 상대적으로 많은 정보 및 콘텐츠가 시장에 나오게 된다. 미디어산업의 가장 중요한 법칙은 ''관심은 드물다(attention is scarce)''는 것이다. 미디어가 성장할수록 수용자의 관심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으로 간주되어왔다. 그러나 관심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사실 오랫동안 관심은 풍부하게 남아 있었다. 긴 꼬리(long-tail)의 무한한 생명력이 이를 증명한다. 그 꼬리 중 하나를 찾아내는 것이 치열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승자가 되는 길이다.
◦ 작성 : 김원제 / 유플러스연구소 소장·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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