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C와 수용자: 놀이의 노동과 일상의 참여
이 글은 2007년 3월 한국언론학회 <도전과 모색> 세미나에서 발표했던 ‘놀이의 노동과 일상의 참여: UCC의 문화적 함의’를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1. UCC란 무엇인가?
인터넷은 물론 TV나 광고 그리고 언론보도에서 UCC(User Created Contents)라는 말을 듣는 것이 익숙한 일이 되어 버렸다. 일반적으로 UCC는 ‘수용자 참여 제작물’ 혹은 ‘손수 제작물’이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원칙적으로는 네트워크 환경에서 수용자가 직접 만드는 다양한 콘텐츠와 정보의 공유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지만, 최근의 UCC 열풍은 주로 동영상에 집중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UCC에 대한 주류 언론의 논조는 이 매체 자체가 가지고 있는 기술적 혁명성과 산업적 전망에 초점을 두고 있다. 특히 판도라TV나 유튜브(YouTube) 등의 동영상 공유 사이트가 인기를 끌고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도 동영상 검색 기능을 제공하면서, UCC는 아예 ‘동영상’이라는 단어를 대치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UCC는 본격적으로 사용된 지 이제 고작 1년여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새로운 말이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만 유별나게 유행어가 된 말이기도 하다. 이는 검색엔진에서 ‘UCC’라는 단어 를 입력했을 때 대부분 한국 관련 내용이 검색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물론 외국에서도 유튜브나 ‘마이스페이스(My Space)’ 등을 통한 동영상 공유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다. 휴대폰과 디지털 카메라 그리고 편집 프로그램의 보급 덕분에 비전문가들도 비교적 손쉽게 동영상을 만들고 편집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렇게 생산되고 소비되는 동영상들은 기존의 미디어와는 다른 성격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TV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를 흐리거나 둘 사이를 연결함으로써 수용자의 사적 영역 노출을 일상적인 것으로 만들었다면(Meyrowitz, 1985; Scannell, 1996), 이제 인터넷을 통한 동영상 공유는 그 노출의 범위를 더 크게 확산하고 있다. 동영상은 오락이자 노동이고 사적 미디어이자 대자본 미디어이며 스펙터클이면서 정보이고 수용 행위이면서 생산의 영역을 건드리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열풍처럼 번지고 있는 UCC 유행은 과연 다른 나라의 경우와 비슷한 세계적인 현상의 하나인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우선 영어권에서는 UGC (User Generated Contents)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외국에서는 UGC라는 말을 더 자주 사용하고 있으며, 엄밀히 말해서 UCC와 UGC는 개념상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 논문에서는 혼란을 피하기 위해 꼭 구별할 필요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UCC라는 말로 통일해서 사용하였다. 이는 뉴미디어와 인터넷 업계 내부에서 먼저 사용하기 시작한 말로, 수용자가 테크놀로지를 사용하여 미디어에 직접 참여하는 모든 영역을 통칭한다. 신문사에 보내는 독자의 편지부터 라디오 사연, 독자 제보로 구성되는 뉴스 기사부터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는 시청자의 요구에 이르기까지, 어떤 형태로는 수용자들이 만들어 낸 내용이 기존 미디어에서 사용되는 경우를 UGC라 할 수 있다. 따라서 UGC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가지 요소가 갖추어져야 한다.
첫째, 형식적으로는 직업적 미디어 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 직접 만든 것이어야 한다. 둘째, 내용면으로는 기존의 미디어에서는 다룰 수 없거나 다루지 않았던 내용으로, 제작자의 특수하고 고유한 경험이 담겨 있는 것이어야 한다. 셋째, 이렇게 만들어진 내용은 네트워크를 통해 보통 사람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개방된 공간에 보관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미 여러 형태로 존재해 왔던 수용자의 미디어 참여 방식이 갑자기 UCC라는 이름으로 포장 되어 새로운 유행어처럼 떠오르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UCC가 제공해 주는 새로운 매체 환경의 특징이 있다면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UCC로 인해 수용자의 능동적인 참여가 가능해졌다는 말은 얼마만큼 진실이고 얼마만큼 과장된 것일까?
이 글은 UCC 열풍을 당연하게 여기기보다는 문화적 의미에 대한 궁금증을 제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먼저 UCC라는 새로운 환경의 성격과 등장 배경을 통해 매체로서의 특징을 알아본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거나 화제가 된 UCC 사례들을 유형별로 살펴보고, 그 사회적인 맥락을 짚어볼 것이다. 이를 통해 UCC가 결국은 대중매체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큰 틀에서 많이 벗어나 있지 않다는 점, 그리고 그동안 기존 미디어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한 일상의 기록이 ‘놀이’의 형태로 거래된다는 사실에서 UCC의 의미를 찾을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하고 싶다. 역사가 짧은 탓도 있지만, UCC에 관해 넘쳐나는 화제에 비하면 도움이 될 만한 자료는 상대적으로 미흡했다. UCC의 현황에 대해서는 언론재단의 뉴스데이터베이스(KINDS)를 검색해서 얻은 신문기사와 실제 UCC를 퍼서 나르는 블로그나 카페의 글, 그리고 대학생 100여 명의 자기진술서를 참조했다. 신문기사는 KINDS 검색에서 ‘UCC’라는 키워드를 사용해서 검색했다. UCC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기 시작했던 2000년부터 이 연구를 진행하고 있던 2007년 3월까지의 기사를 대상으로 했다. 자기진술서는 저자가 2007년 1학기에 강의했던 세 대학교의 학부생과석사 과정 대학원생으로부터 받았다. 이 학생들 중 일부와는 별도로 개별 인터뷰를 했다.
2. UCC는 혁명적으로 새로운 수용자의 매체인가?
UCC라는 말이 우리나라 언론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00년이었다(매일경제신문, 2000년 1월 27일). 그러나 사용자 손수제작물이라는 의미의 UCC가 본격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말이었다. 그리고 2005년이 시작되자마자 다음을 비롯한 각종 포털 사이트들이 뉴스 유통에서 뉴스 소비로 사업 영역 전환을 꾀하게 되는데, 이때 업계 내부에서 많이 사용된 말이 UCC였다. 포털의 자체 분석 결과 독자들은 댓글이 없으면 뉴스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고, 댓글 등 참여가 가능한 콘텐츠에 훨씬 더 적극적이라는 것이었다. 즉, UCC를 통해 독자와의 쌍방향성을 살림으로써 더 많은 참여형 소비자를 포털로 끌어들이려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2005년 12월 다음이 처음 동영상 검색 엔진을 시작했고, 2006년부터 언론은 UCC가 쌍방향 멀티미디어 시대의 개인 방송이며 제도권 방송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을 가지고 틀에 박힌 고정관념을 깨는 젊은이들의 미디어라고 보도했다(매일경제신문, 2006년 3월 9일). MBC TV의 한 오락 프로가 아예 ‘동영상 검색’이라는 코너를 만들어 화제 UCC를 소개하기 시작한 것이 2006년 5월경이고, 2006년 월드컵을 계기로 UCC는 급격히 도약했다. 이렇게 퍼진 UCC 열풍은 7월쯤 되어 역기능에 대한 우려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UCC 콘텐츠가 돈을 받고 거래 되는가 하면, 포르노성 내용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서울신문, 7월 14일). 한편으로는 UCC가 지하철 TV에 방송되고 신인 스타의 등용문이 되는 등 본격적인 대중화가 시작되었던 것도 이 시점이다.
UCC가 진정한 미디어 수용자 참여의 대표 이름처럼 거론되는 데에 날개를 달아 준 것은 2007년 초의 보도였다. 우리나라 언론들은 미국의 <타임>지가 유튜브를 ‘올해의 발명품’으로 선정하고, ‘당신(You)’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는 사실을 크게 보도했다. 이를 통해 유튜브는 거대 미디어에 대항할 수 있는 진정한 대안 문화의 형태이자 누구나 참여가 가능한 미디어라는 점이 부각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정작 외국에서는 유튜브를 웹 2.0(web 2.0)의 특성을 활용한 여러 매체 중의 하나로만 인식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유튜브가 UCC의 대명사이자 미디어가 나아가야 할 방향처럼 제시되었다는 사실이다. 정보 제공 차원에서 운용되던 기존의 웹이 웹 1.0이라면, 개방과 공유 그리고 참여의 특성을 바탕으로 활용되는 방식을 웹 2.0이라고 한다. 이 용어는 미국 회사인 오라일리 미디어(O’reilly Media)의 내부 회의에서 정보 취득보다는 참여에 중점을 둔 새로운 인터넷 시대에 대한 프로그램 개발을 하면서 붙인 업계 용어에 불과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대한 활발한 논의를 끌어내기 시작했다. <와이어드(Wired)>지의 앤더슨(Chris Anderson) 등 컴퓨터 업계 실무자들과 여러 학자들은 이러한 매체 환경의 변화로 인해 틈새시장이 성장할 것이라 예측했다.
2006년 10월 검색 엔진 구글(Google)이 유튜브를 인수한 이후 유튜브가 기존 언론과 연합하여 세력을 키우는 것에 대한 우려가 커져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언론은 유튜브와 UCC를 맥락 없이 직접 연결하는 일을 계속했다. 그러나 유튜브나 UCC는 독자적인 새로운 매체로서가 아니라 다른 매체와의 관련성 속에서 그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이를테면 젠킨스(Jenkins, 2006)는 미디어 연구가 생산과 수용의 과정을 나누어 분석 하던 것에서 벗어나서 미디어 융합 시대에 맞는 이론과 방법의 통합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야기나 이미지나 음악이나 사회적 관계 등 모든 것의 표현이 광범위하게 가능한 매체를 찾아 나설 수 밖에 없는 시대에는, 대기업에서 내리는 사업 결정만큼이나 십대들이 자기 방에서 컴퓨터로 내리는 결정이 미디어의 내용을 좌우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마찬가지로, 마셜(Marshall, 2006)은 기존의 미디어 를 ‘재현 매체(representational media)’라 부른다면, 유튜브나 블로그 등의 뉴미디어는 ‘표현 매체 (presentational media)’라 부를 수 있다고 본다. 그가 의미하는 ‘표현’이란 일반적으로 능동적 수용자론 에서 증명하려 했던 부분, 즉 ‘참여(생산)하고자 하는 의지’가 확장된 영역이다. 따라서 기존 수용자 연구에서 ‘능동적 수용자’의 행위나 의미로 해석했던 부분을 이제는 생산의 영역으로 확장하여 함께 이론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여러 학자들이 언어와 이미지를 함께 사용하는 새로운 문화적 표현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Hocks & Kendrick, 2003), 블로그 등 참여형 인터넷 미디어가 여러 매체의 특성을 한꺼번에 담고 있음에 주목하며 수용자의 능동성에 관심을 기울인다 (김예란, 2004; 김영주, 2006; 박광순‧조명휘, 2004; 한선, 2006).
새로운 형태의 개인 미디어를 다룬 이러한 연구들은 각각 분야와 시각은 조금씩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된 시사점을 보여 준다. 즉, 블로그나 UCC 등 새로이 등장한 미디어를 기존의 미디어와 전혀 다른 것으로 가정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 미디어와의 관계 속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뉴미디어의 등장 때문에 문자 세대는 가고 영상 세대가 온다고 탄식할 필요가 없듯이, 이러한 표현 방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낙관적 평가의 근거 역시 없는 셈이다. UCC나 블로그는 그 자체만으로 혁명적인 매체는 아니다. 오히려 기존 매체와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특히 저작권 문제와 관련된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이러한 사실은 명확히 드러난다. 카스텔스(Castells, 2007)는 유튜브 등에 올라오는 동영상이 재빨리 삭제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음을 지적하면서, 이는 저작권에 저촉되거나 내용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되는 동영상에 대해 기존의 미디어 업체들이 압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2006년에 영국 프리미어 리그는 자신들이 저작권을 소유한 축구 관련 동영상이 유튜브 등에 올라오자, 그 동영상을 삭제하도록 사용자에게 압력을 넣었다. 또한 같은 해 미국에서는 라는 영화의 일부분을 유튜브에 올린 혐의로 파라마운트사가 유튜브 사용자를 고소한 일도 있었다. 이때 유튜브는 그 동영상을 올린 사용자의 신상명세를 파라마운트사에 제공하기도 했다. “YouTube:The Next Napster?”(http://mashable.com/2006/10/23/youtube-the-next- napster/)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까지 저작권 논쟁이 크게 불거진 사례는 별로 없었으나, 사회 윤리적 기준이나 이해 당사자들 간의 분쟁 문제 때문에 동영상이 삭제된 사례가 보도된 적은 있었다. 이러한 몇 가지 에피소드들이 보여 주는 것은, 인터넷 공유 사이트들 역시 수용자의 자유 참여보다는 미디어와 문화 산업의 경제적 논리에 손을 들어준다는 현실이다. 저작권 때문이건 아니면 사회의 이해관계 때문이건, 이미 대기업이나 거대 미디어 업체들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인터넷 동영상 공유와 검색 시장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우리나라의 UCC 열풍이 거대 포털 업체의 주도로 확장되고, 미국의 거대 미디어 업체들이 동영상 공유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나서고 있다는 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뉴스 코퍼레이션(NewsCorp.)은 2005년에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마이스페이스를 사들이면서 사업 확장을 꾀했고, 민주적 참여의 장으로 한창 칭송받던 유튜브도 2006년에 구글이 인수했다. 유튜브를 ‘올해의 발명품’으로 선정했던 <타임>지의 기사에서도, 유튜브가 이미 NBC나 소니 등 거대 미디어 업체와 연합하고 있음을 잊지 말라는 경고가 덧붙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UCC의 양적인 증가만으로 수용자의 참여에 획기적인 장을 제공한다고 가정해 버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실제 아마추어들이 제작한 UCC의 내용을 살펴보면, 수용자의 생산 참여 정도가 지극히 제한적임을 알 있다. UCC 역시 상상의 수용자를 대상으로 유통되는 것이어서, 제작 기법이 크게 독창적일 가능성은 사실상 적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판도라 TV의 경우, ‘급상승 프로그램’, ‘베스트 프로그램’, ‘답글 베스트’ 등으로 나뉘어 있다. UCC를 직접 제작하여 올리는 사람들은 일정한 형태의 평가(조회 수나 댓글 등)를 기대하고, 이용자들은 그러한 평가를 받은 동영상을 더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성되어 있는 셈이다. 따라서 기존 미디어의 표현이나 생산 관습을 흉내 내거나 일정한 타협점을 찾는 우가 많다. 오히려 UCC 동영상을 기존 미디어 생산물과 구분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영상의 길이와 상 결과물의 품질이다. 이는 동영상의 내용이 연출한 것이 아닌 날것 그대로임을 강조하고, 설사 의도된 것이라 할지라도 불순한 의도 없이 순수한 목적으로 촬영된 것임을 선언하는 역할을 한다. 즉, 저예산 작임을 스스럼없이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UCC 동영상이 호의적인 반응을 얻느냐 마느냐의 관건이 되는 것이다. 전문적이지 않고 서툴기까지 한 제작 결과물을 의도적으로 드러내어 오히려 작품의 진정성을 강조하는 하나의 관습적인 기법으로 사용하는 셈이다. 또한 원칙적으로는 길이에 상관이 지만 대부분의 동영상이 비교적 짧은 것도 기존 매체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UCC 제작 경험이 있는 한 학생은 “짧으면 15초, 길어야 4분” 정도의 UCC가 많다고 응답했다. 물론 이것이 모든 UCC를 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렇게 길지 않은 분량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말해 준다는 면에서 의미있는 답변이다.
TV나 다른 매체 내용의 하이라이트만 챙겨 보려는 욕구, 그리고 짧은 이야기들의 몽타주로 이루어지는 TV 오락 프로그램의 제작 관습에 익숙할 수 있는 수용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관례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많은 동영상이 짧은 시간 내에 경쟁해야 하는 특성 때문에, UCC 제작자(혹은 출연자)는 볼거리, 즉 스펙터클에 의존하게 된다. 특히 동영상의 운명이 단발성으로 멈추지 않고 블로그를 통해 전파되려면 이러한 스펙터클은 필수적이다. 또한 스펙터클은 정교하게 연습하거나 꾸며진 것이 아니라 즉흥적이고 실제임을 증명해야 한다. 빠르게 전파되는 동영상들에게는 ‘즉시성(liveness)’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얼마나 진짜인가 하는 점(realness)이다.
결국 UCC가 현재 가능한 테크놀로지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현재 사회가 기존의 미디어에서 채우지 못했던 욕구들이 하필 UCC라는 형태로 드러났을 뿐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윌리엄스(Williams, 1974)는 새로운 미디어가 나타날 때마다 인간의 문화와 환경이 달라진다고 보는 것은 미디어를 ‘효과’ 측면에서만 이해하는 것이라 비판한다. UCC 역시 여러 새로운 현상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수용자의 참여를 혁신적으로 강화한 새로운 매체라고 보기는 힘들다. 특매체의 특징으로 볼 때 UCC는 완전히 새로운 생산이나 표현 양식이 아니며, 이미 몰래 카메라나 시청자 비디오 등의 형태로 흔히 사용되던 방식을 특정 포털 업체에서 새롭게 이름을 붙인 것에 가깝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UCC라는 매체의 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UCC로 인해 어떻게 우리의 일상과 인간의 관심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표현되는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3. UCC의 몇 가지 유형
현재까지는 UCC의 개념이나 유형 분류가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는 자체적인 기준에 따라 UCC를 분류한다. 매개체별 분류(텍스트, 이미지, 동영상 등), 제작 목적별 분류 (오락, 정보, 비즈니스), 관여 정도별 분류(이용자 순수 제작, 가공 제작, 이용자 재창작), 플랫폼별 분류 (포털, 비포털) 등이다. 그러나 대학생들이 인식하고 경험하는 UCC의 종류나 특성은 업계의 분석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필자의 인터뷰에 응해 준 학생들은 UCC의 정의를 대강 알고 있었지만 동시에 의문도 제시하고 있었다. 일부는 UCC란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으며, UCC가 갑자기 유행하는 현상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솔직히 왜 UCC란 단어가 갑자기 유행하는지 모르겠다”라며, “편집 기법 빼면 홈 비디오랑 똑같은데”라고 대답해 준 학생도 있었다. 대학생들은 업계에서 제시하는 분류보다는 대부분 오락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UCC를 기억했으며, 사업적 측면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 못하거나 비호의적인 태도를 드러냈다. 학생들이 좋아하거나 기억할 만하다고 언급해 준 사례를 중심으로 UCC를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보았다. 우선 ‘무엇’을 다루는가에 따라 평범한 개인이나 일상과 유명한 사람이나 사건의 두 가지로 분류했고, 기존 매체와 ‘어떤’ 관계를 갖는 것을 목표로 하는가에 따라 네트워크 공유형과 기존 언론 목표형으로 분류했다. 이 두 축에 따라 다음의 <표 1>과 같이 네 가지 형태로 나누어서 각각의 사례를 소개한다.
(1) 표현 유형 UCC의 사전적 정의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실제 사용하는 학생들도 가장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유형이다. 다른 미디어로는 불가능한 자기표현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보상 없는 즐거움을 위해 제작해 올리는 경우도 있지만, UCC 열풍이 강해지면서 명예나 경제적 보상을 염두에 두고 제작되는 유형도 많다. 기타 치는 동영상으로 화제를 끌었던 임정현은 온라인상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기아자동차 광고 음악까지 담당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2006년 말에 ‘내복남과 몸빼남’ 으로 인기를 끌었던 두 대학생의 경우도, 처음에는 그저 광고 몇 편을 패러디해 자신들의 미니홈피에 올린 것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홈피 방문자가 증가하고 그들의 동영상은 UCC 사이트와 포털을통해 퍼져나갔다. 처음엔 그저 재미삼아 올렸던 것이 UCC라는 이름이 붙어 인기를 얻으면서, 그들은 이제 수용자의 압박과 요구에 고민하고 자극받는 입장이 되었다. 팬의 요구에 부응 해야 한다는 책임감은 프로페셔널의 자세와 비슷하다. 2006년 말에 인기를 끌었던 ‘성대모사 달인’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겪으며 스타가 됐다. 개그맨 지망생이었던 세 명이 포털에 성대모사 동영상을 올린 것이 12월 5일이었다. 몇몇 블로그에서 이 동영상을 퍼 나르기 시작했고, 12월 8일에는 이 동영상에 대한 반응이 언론에 기사화됐다. 9일에는 성대모사 당사자들을 인터뷰한 기사가 ‘성대모사 달인…… 쪽방살이에서 UCC 스타로’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불과 며칠 사이에 ‘스타’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2) 홍보 유형 UCC는 스타 만들기의 전략으로 적극 사용된다. 가수로 데뷔할 예정이었던 ‘키스피아노’가 빨간색 원피스를 입고 방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은 화제를 모았다. 당사자는 일상생활을 찍었을 뿐이라며 억울해했지만, 어쨌든 무명이었던 그에게 대중적 인지도를 높여 주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사례가 증가하면서, 한편으로는 아마추어리즘의 훼손을 비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스타의 등용문을 찾아 더 많은 사람이 몰려드는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게 되었다. “비보이 정신에 맞지 않아 방송에 출연하고 싶은 욕심은 없다”라고 말했다는 김효근(한국경제신문, 2006년 9월 3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방송 의도에 맞춰 연출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 같아 싫었다”라는 박진우(경향신문, 2006년 11월 8일), 그리고 “내 제작 의도와는 다른 방식으로 방송될까 봐 꺼려졌다”는 대학생(인터뷰) 등이 그 사례다. 그러나 차라리 솔직하게 처음부터 의도를 밝힌 자기 PR에 대해서는 비교적 너그러운 평가가 따른다. 그 대표적인 예가 ‘소속사가 망했어요’로 인기를 끈 가수 지망생 장성민이다. 그가 여러 편을 연속으로 만들었던 동영상이 판도라TV 등을 통해 인기를 끌자 KBS TV의 프로그램에서 이를 화제로 보도했고, 그렇게 TV에 나왔던 장면만 모아 ‘소속사가 망했어요’ 앨범에 있는 ‘그때와 같은 모습으로’의 뮤직비디오가 만들어져 다시 UCC로 유통된 사례가 있다. 유명세를 탄 이 가수는 야외공연을 했고, 이 공연 장면은 다시 UCC 동영상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도 동영상 UCC를 적극 이용하고 있다. 개그 프로그램 ‘마빡이’를 패러디한 ‘명빡이’나 손학규 전 경기 도지사를 다룬 ‘100일 민심 대장정’ 등이 그 사례다.
이 동영상들은 자발적으로 제작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홍보와 선거전을 위해 의도적으로 제작된 것이 알려지면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일부 후보 진영은 아예 사진 전문가를 동원해 동영상을 촬영한 후 아마 추어적인 UCC로 보이도록 아이디어를 덧붙이는 식으로 UCC 전략에 적극적이다. 특히 이러한 유사 UCC는 아마추어가 자발적으로 찍은 듯이 보인다는 특성 때문에, 아직까지는 선거법으로도 규제할 방안이 정확히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이렇게 정치나 경제 조직들이 인터넷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 하면서, 미국의 경우 플로그(flog)라는 말이 새로 생겨나기도 했다. 개인이 만든 블로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대기업이나 단체들이 특정 목적을 가지고 운영하는 블로그를 뜻하는 말로, 가짜(fake)와 블로그 (blog)의 합성어이다.
(3) 창작과 재편집 유형 한동안 유행했던 ‘조삼모사’ 시리즈나 괴물 패러디인 ‘개물’ 등의 경우처럼, 기존의 텍스트를 비꼬고 비판 하는 것은 UCC가 처음 인기를 얻게 된 본질적 특성이다. 때로는 재미와 웃음을 위주로 전달하기도 하고 (‘바람의 파이터’ 등) 때로는 사회 비판적 내용(‘죽음의 입시 트라이앵글’ 등)을 담기도 한다. 이러한 내용은 그 나름대로 창의적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기존 미디어의 표현이나 내용 구성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기존 미디어를 활용하고 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죽음의 입시 트라이앵글’은 기존 언론의 뉴스 보도 자료들을 몽타주 식으로 보여 주며 현실을 비판한다. 루트와 인테그럴 등 수학기호를 권법으로 해석한 ‘바람의 파이터’의 경우에는 신파조의 영화 기법과 중국 무협 영화의 표현 방식을 섞어서 사용하는데, ‘제작 시간: 4시간 20분, 제작비: 1만 5천원’이라는 설명을 명시 함으로써 큰 힘 들이지 않고 만들었음을 오히려 과시하고 있다. UCC의 인기가 확산되고 물량이 증가하면서 이러한 창의적 내용보다는 단순한 ‘다시 보기’ 식의 동영상 유통이 급격히 늘어났다. 텔레비전 방송 전체나 일부의 하이라이트 다시 보기, 소위 ‘직찍’이라 불리는 연예인의 평소 모습 공유하기, 스포츠 중계의 하이라이트 장면 등이 그것이다. 이런 경우에도 수용자들 이 최소한의 편집 기법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포털 사이트나 방송사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툴을 사용하는 아주 간단한 수준의 정도인 경우가 많다.
(4) 수용자 참여와 공모 유형 UCC 열풍이 강해질수록 점점 증가해 나가는 유형이다. 우선 UCC에 전력하는 포털 사이트 다음은 ‘프러포즈’, ‘마빡이 실험 쇼’, ‘오디션’ 등 세 편의 동영상을 UCC 형태로 만들어 광고로 사용했다. 이 광고는 모두 기존 방송 프로그램과의 관계성을 갖고 있는데, 프러포즈 편은 TV로 본 방청객에게 반해 버린 구혼 이야기이고, ‘마빡이 실험 쇼’는 세 명의 여고생이 인기 개그 코너인 ‘마빡이’의 캐릭터 동작 중 어느 것이 가장 어려운지 실험해 본다는 내용이다. ‘오디션’ 편은 동영상으로 오디션을 받기 위해 연주 춤 노래 등 다양한 재주를 선보이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경우는 주로 여러 형태의 공모전을 통해 발굴된 영상이 사용되는 사례가 많다. UCC를 보급하고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개최되는 공모전은 일정한 보상이 약속된다는 점에서 경쟁률이 치열하다.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는 정기적으로 공모전을 진행 중이다. 2006년 매가패스는 응시자가 직접 올린 UCC 동영상을 통해 자사의 광고 모델을 선정했다. 이러한 과정은 이력서와 오디션의 중간 형태를 띠고 있다. 즉,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지원한다는 점에서는 이력서와 같으나, 공식적인 경력과 이력이 아니라 자신의 특기와 장기를 살려야 한다는 점에서는 오디션과 비슷하다. 방송사들도 UCC 동영상을 발굴하고 장려하는 데 적극적이다. 자체 프로그램에 활용 가치가 높고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참여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KBS의 디지털콘텐츠 콘테스트, MBC의 ‘드라마 펀’, SBS의 ‘NeTV’ 등이 그 예다.
(5) 기타: 사회 고발 유형 이 글에서 본격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시민 저널리즘 측면에서 UCC의 의미는 중요한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외국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전통 미디어가 시민들이 찍은 동영상이나 이미지와 소리 등을 뉴스 형식으로 제도화해 왔다. 시청자나 수용자들이 사건이나 이슈 제보자, 즉 미디어 생산자의 역할을 일정 부분 담당하게 한 것이다. 이러한 실험들이 성공을 거두자 영국의 BBC는 2006년 시민 저널리스트 팀을 정규화하며 확대했다. CNN 역시 2006년 iCNN을 상설 코너로 만들기도 했다.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 서 있었던 총격 사건에서도 어느 학생이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동영상이 뉴스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지기 도 했다. 기존 언론이 미처 접근하지 못할 만큼 급박한 상황에서는 이러한 유형의 동영상이 뉴스 가치를 지니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사건사고 등을 화면에 담는 단순한 형태의 시민 제보는 오래전부터 이루어져 왔다. 2007년 3월에 부천 순천향 병원에서 벌어졌던 사건은 UCC가 갖고 있는 고발 저널리즘의 가능성과 문제점을 모두 보여 준다. 즉, 자칫 묻힐 뻔한 사건이 존재를 드러내고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 가능성과, 전후 맥락 없이 감정적인 호소에만 치중하여 오히려 여론을 몰아갈 수 있다는 문제점이 그것이다. 실제로 학교 폭력을 담은 고발 동영상인 것으로 알려졌던 UCC가 사실은 연출해서 꾸민 퍼포먼스였음이 드러나서 사람들을 허탈하게 했던 일도 있다. 이는 UCC라는 매체의 속성 그 자체만으로 고발 저널리즘이 완성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4. 매체 이론에서 UCC의 의미
(1) 수용자: 참여의 확장? 네트워크의 확장? UCC를 이용하거나 만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UCC라는 매체에 특별히 관심을 갖고 활동을 시작했다기보다는, 미리 만들어 두었거나 아이디어를 갖고 있던 상황에서 UCC라는 장이 생기자 이용한 경우가 많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처음 시작할 땐 크게 성과나 보상을 바라지 않았으나, 어떤 식으로는 보상을 받고 유명해지는 경우다. 미디어에서 보편적인 생산자나 사용자의 개념은 없다. 다만 상황에 따라 규정되는 여러 유형이 있을 뿐이다. UCC의 가장 매력적인 요소는 평범한 사람들도 누구나 참여하고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마케팅의 전략이기도 하고 또 수용자들의 욕구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두 이해관계가 맞물려 빚어낸 ‘UCC 생산자’라는 개념이 기존의 생산자/수용자 관계를 어떻게 재구성하는지, 그리고 이에 따라 기존의 미디어 연구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는 일이다. 여러 미디어를 동시에 사용하며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오늘날의 수용자는 전통 미디어가 가정했던 수용자와는 분명 모습이 다르다. 즉, 이들은 생산자이기 이전에 이미 기존 미디어 표현 문법에 익숙한 수용자여야 한다. 그래서 카메라가 내 얼굴을 어떻게 보여 주는지, 어떤 방식으로 찍어야 진짜 다큐멘터리 같은지, 또 어떤 식으로 구성해야 패러디와 유머의 효과를 강하게 낼 수 있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제발 남들이 봐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순간, 혹은 남들이 보고 싶어할 것이라 판단되는 순간을 포착한다. 그렇게 만든 생산물을 많은 사람들이 보아 주기를 바라며, 댓글이나 다른 형태의 ‘반응’이 오기를 기다린다. 따라서 UCC는 일상을 내러티브보다는 순간적인 놀라움이나 이미지에 기대어 구성하는 특성이 있고, 이럴 때의 ‘일상’은 평범하고 지루하기보다는 신기하거나 놀라운 일들이다.
지루한 일상은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려 타인과 공유할 때 주목을 받는다. 기본적으로는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 등 테크놀로지 자체가 수용자의 일상 생산 능력을 어느 정도 제공해 주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인 요인이다. 아무리 전화로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더라도 한번 만나 보아야 사회적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하는 세대와, 누가 만들었는지에 무관하게 흥미로운 영상을 보면 댓글을 달고 추천을 날리는 세대 사이에는 ‘수용자’라는 개념에서 크게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매체 경험을 통해 반복과 부분조합의 표현방식을 익숙하게 접한 사람들은, 그러한 표현법을 직접 사용하는 디지털 미학에도 상대적으로 익숙할 것이다. 직접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한 사이트에 올려 그 주의 인기 동영상 1위를 기록했다는 한 학생은, 그 뮤직비디오를 만들 때 특별히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지는 않았다고 얘기한다. 오히려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감동받아서 댓글을 달 수 있도록 기존의 뮤직비디오 관습을 충실히 따랐다는 것이다. 이렇듯 동영상을 직접 만들어 UCC로 나누어 보는 사용자들은 이미 뮤직비디오나 광고, 그리고 ‘마빡이’ 같은 개그 프로그램을 통해 어떻게 하면 짧은 영상을 가지고 주목을 끌 수 있는지 쉽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동영상 제작 경험과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들의 기존 미디어 수용 경험도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미 존재하는 미디어의 수용 방식에 익숙하지 않고서는 UCC로 전파되는 동영상을 만들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UCC의 열풍을 소위 ‘생비자(prosumer)’의 탄생으로 보는 시각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대부분 검색에 의존해야 하는 UCC의 경우, 수용자들이 하이퍼텍스트로 연결된 검색을 통해 원하는 자료를 선택하고, 이렇게 선택된 내용은 독자의 반응에 따라 새로운 문서나 이미지로 탄생하는 일이 많다. 여기서 생산자와 수용자의 구분을 흐리게 만드는 것은 동영상을 올리는 그 방식보다는 오히려 인터넷을 통한 하이퍼텍스트의 기능 때문이다. 하이퍼텍스트는 원하는 부분만 클릭해서 새로운 문서를 읽을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저자나 독자가 비슷한 환경에서 자기 나름대로 문서를 수용하거나 변형할 수 있고 상호 연결성이 강화된다(Landow, 2006). 하이퍼텍스트로 이루어진 링크에서는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날지가 수용자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 말은 한번 주목받은 영상은 끊임없이 순환되고 새로운 텍스트로 재탄생할 가능성이 있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링크는 훨씬 더 짧은 수명을 갖게 됨을 의미한다. 부정적으로 보자면, UCC는 미디어와 문화산업의 틀 속에서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며 주류 미디어에 흡수될 것이라 예측할 수도 있다. 따라서 UCC의 수용자 참여에 대한 환상을 갖기 이전에, 동영상들이 유통되는 채널의 확장과 분배 방식을 더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 UCC는 배포할 공간(포털)과 그것을 ‘펌’이라는 기제를 통해 재분배 하는 블로그와 미니홈피, 그리고 사적 자료를 공적 영역으로 옮겨 재생산 하는 기존 미디어(방송)의 삼각체제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설명하기 힘들다.
(2) 콘텐츠: 일상의 기록과 상품화 인기 있는 UCC는 대부분 기존 언론이 다루기 힘들거나 꺼리는 내용들에 집중되어 있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들의 슬로건도 이러한 추세를 부추기고 반영한다. “꼭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만한 대단한 게 아니라도 좋아요. 인터넷에서 노는 것들, 즉, 동영상 만들고 합성하고 패러디하고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것들. 이게 다 UCC예요.”(다음), “동영상, 아무 거나 찍어 주세요!!”(프리챌 UCC 콘테스트), ‘당신을방송하라(Broadcast Yourself)’(유튜브) 등이 그 예이다.
사회 가십이나 미담류의 동영상, 평소의 장기자랑이나 신기한 일, 텍스트로 설명하기는 모호하지만 방송으로 다루기는 부족한 소소한 정보 등이 곧잘 인기 UCC의 순위에 등장하곤 한다. 특히 화제가 되는 동영상의 경우는 기존 언론을 통해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이렇듯 UCC라는 형식은 일상에 대한 관심이 커진 미디어 환경과 연결지어 볼 때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일상을 기록하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 왔으며, 언뜻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늘 공적인 공간을 통해 이루어졌다. 뉴미디어 시대에 ‘일상’은 여러 가지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소비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시장으로서 중요하고, 뉴미디어의 의미를 정의하고 실행하는 데에도 중요하며, 소비자와 미디어와 교육제도와 오락기능을 모두 융합하는 구심점으로서도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테크놀로지와 사이버스페이스에 관련되어 그다지 낙관적으로 인식되지 못하던 개인의 정체성 문제를 끌어들이기에 일상보다 더 좋은 영역은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각광받는 일상 기록 매체로 자리잡은 디지털 미디어는 일상 속에서 개인의 모습을 표현하는 방식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UCC를 만들어 올리거나 적극적으로 즐기고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 출발점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임을 숨기지 않는다. ‘소속사가 망했어요’라는 시리즈물은 개인적인 구직 동영상의 형태를 띠고 있었으나 그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개인성을 전제하고 출발하는 이런 동영상에서는 기존 언론이 가진 ‘객관성’이라는 환상은 명랑하게 거부된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순간의 포착이다. 벤야민(Benjamin, 1977)은 일상의 특성을 흐르는 물에 비유한다. 한결같이 흐르던 물이 댐에 걸려 막히면, 바로 그 정지의 순간에 물은 잠시나마 역류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역류(처럼 보이는 것)는 고요히 흐르던 물이 일구어내는 순간적인 놀라움의 경험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일상 역시 그냥 흘러갈 때에는 늘 변함없이 보이다가, ‘댐’에 의해서 멈춰서는 바로 그 순간 마치 처음 보는 일처럼 ‘놀라움’을 자아낸다. ‘댐’ 역할을 하는 일상 기록 매체가 그렇게도 재미있고 놀라운 것은 그런 까닭이다. 물론 이러한 댐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자본(언론)이 있어야 하고 또 적절한 건축기술(미디어 기술)이 있어야 가능하다.
초창기 영화를 떠올리면 늘 따라붙는 에피소드가 있다.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기차의 도착>이라는 영화를 보고 관객들이 놀라 뛰어나갔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기차는 일상의 일부였을 텐데 관객들은 왜 놀랐을까? 핵심은 그 당시 영화가 이야기 기록의 매체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즉, 뤼미에르가 카페에서 영화를 상영했을 때, 이미 그것은 오락적인 즐거움을 위한 것임이 암묵적으로 깔려 있었다. 따라서 관객들은 놀라운 즐거움, 즉 일상을 막아 주는 댐을 기대하고 갔을 것이다. 이미 영화 초기부터 관객들은 ‘수용자’가 되기 위한 코드를 알고 암묵적으로 동의했던 것이다(Gillepsie, 2006). 이러한 수용자 코드는 이야기보다 순간의 즐거움을 위주로 제작되는 우리나라의 UCC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UCC가 기본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자체적으로 만든(generated)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있는 내용을 테크놀로지로 잘라 모아(created) 보여 주는 순간적인 깜짝 놀람이다.
이미 테크놀로지는 우리 일상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사회관계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현대의 뉴미디어는 가능하면 테크놀로지의 모습을 숨김으로써 일상생활 속에 감쪽같이 파고드는 경향이 있다 (Schaefer & Durham, 2007). 테크놀로지가 거대 자본과 미디어의 핵심인 양 보이는 것을 피하면서 자연스레 일상 속으로 스며든다는 것이다. UCC 역시 기존에 동영상을 찍고 놀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어느새 우리 일상 속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인 양 자연스레 자리잡고 있다. 친숙한 내용과 “아무나 참여할 수 있다”는 표어, 그리고 수용자 참여라는 수사학으로 포털의 거대 권력은 쉽게 감추어진다. 아래와 같은 학생들의 반응은 이러한 UCC 열풍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UCC는 싸이월드 덕분이라 생각한다. 싸이월드는 이중적인 네티즌의 성향을 확실히 파악하고 상업적으로 이용했다. 자신의 비밀을 알리고 싶지 않지만 비밀을 알려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일상을 낱낱이 고해서 자신의 생활의 당위성이나 정당성을 대중으로부터 획득하는 행태.
UCC라는 단어가 생기기 이전에도 재미있는 개인 동영상은 무수히 많이 있었다. 또 그 재미를 알고 있는 사람은 인터넷 서핑을 하며 동영상을 즐겨 왔는데, 포털 사이트는 이런 인터넷 사용자들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UCC를 활용하는 것 같다. UCC에서 ‘일상’은 소재이기도 하지만, UCC의 비정치성(즉, 수용자 직접 참여 순수 아마추어 작품이라는 특성)을 정당화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앞에서 사례로 들었던 ‘키스피아노’나 정치인들의 홍보영상 등은 의도적인 홍보라는 의혹이 일자, 일상을 그대로 찍은 것일 뿐이라며 반박했다. 여기서 일상은 ‘구조화되지’ 않은 장으로서의 의미로 이용되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테크놀로지를 연구한다는 것은, 그렇게 모습을 숨기고 있는 테크놀로지를 오롯이 드러내어 주어 사회관계 속에 위치 짓는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3) 제작: 놀이와 참여 UCC 이용자들은 동영상을 만들고 나누고 반응을 기다리고 다른 동영상을 평가하는 모든 과정을 놀이처럼 즐긴다. UCC를 만드는 동기도 저널리즘적 이유나 예술적 이유보다 놀이라는 개념이 강하다. 동아리 친구들이랑 재미삼아 만들어 둔 동영상을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게 좋았어요. 평가도 내게 도움이 되고. 만드는 과정은 4개월 정도 걸렸는데 그저 재미있었어요. UCC라는 게 뭔지도 몰랐는데, 거기다 올려 두면 상금을 준다고 해서 올려 본 거예요. 그 전에 만들었던 건 싸이홈피에 올려놨었는데, 사람들이 와서 보고 댓글 달고 퍼가고 했어요.
20대의 문화공간과 놀이시설이 부족해진 상황에서 인터넷 놀이문화는 유행처럼 급속히 번진 것 같다.
이러한 놀이의 기능은 확실히 기존의 언론이 가진 역할과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커뮤니케이션 역사상 처음 경험하는 것만은 아니다. 피터스(Peters, 2006)는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이 ‘놀이(play)’의 성격에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피터스가 말하는 ‘놀이’는 ‘반드시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말한다. 말장난은 언어의 의미를 풍부하게 만들고,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 담벼락에 그리는 그래피티는 예술의 지평을 넓힌다. 널리 퍼뜨리고(웹에 올리고), 나누고(공유), 알린다(정보 제공)는 점에서 UCC도 분명한 시공간을 이어 주는 커뮤니케이션에 속한다. 그렇다면 놀이로서의 UCC가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일까? 모든 UCC 활동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널리 퍼지거나 나누는 과정을 통해 의미를 발생시키는 UCC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동영상들은 쉽게 올라왔다가 쉽게 사라진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UCC는 만드는 사람에게도 보는 사람에게도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는 암묵적 합의 때문이다.
악플은 괜찮아도 무플은 괴로워요. 날 비판해 주면 내가 고치고 수용하고 그럴 수 있는데, 아무 반응 없으면 내가 뭘 잘못했나 싶기도 하고.
이러한 반응은 UCC가 수용자의 존재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피드백에 대한 기대가 커질수록 UCC의 기술적인 장점은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고, 참여적인 매체로서의 UCC의 진보성은 역설적으로 후퇴한다. 결국은 가상의 수용자가 원하는 방식과 내용의 생산물이 유통될 확률만 높아지는 것이다. 한편,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사용하여 자신을 표현하는 여러 방법을 일컬어 ‘자기기록 (self-documentation)’이라는 말로 설명한 키츠만(Kitzmann, 2006)은 이렇게 질문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자기 일상을 기록하고 나누는 일을 의무감처럼 여기며 시간을 소비하는 것일까? 학생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UCC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라면 키츠만의 이러한 질문은 아주 시기적절하다.
UCC는 검열이 없어서 감정이 그대로 표출된다. 그래서 새롭고 자극적이고 재미있다.
생각을 자유롭게 표출하며 어떤 제약이나 규제 없이 창의적으로 만드는 데 의미가 있다.
UCC는 모두에게 열려 있어요.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고 누구나 스타도 될 수 있고……이런 점이 모두의 참여를 유발하는 결정적 이유인 것 같아요.
이처럼 UCC의 인기는 자기표현의 욕구와 많은 사람들(수용자)이 봐 주었으면 하는 욕구가 동시에 반영된 결과다. 제작자는 자신이 만든 표현에 반응해 줄 수용자를 상상하고, 그 수용자는 가상이고 일시적이지만 그러나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 존재다. 자신의 동영상을 웹에 올리는 행위는 사회관계의 네트워크를 확장하려는 욕망과 관련이 있고, 이는 문화산업의 틀 안에서 ‘참여’라는 이름으로 거래된다. UCC의 형식은 집단적 생산과 소비라는 특성을 통해 끊임없는 교류와 대화를 가능케 하지만, 대부분의 동영상들은 순수한 자체 제작물이 아니다. 대개는 다른 텍스트나 영상, 상황 등을 이용하거나 변형하여 새로운 내용으로 재포장한다. 이러한 제작 과정은 일반 수용자들도 그저 즐기고 감상하는 역할 뿐 아니라 또 다른 관련 영상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한다.
이미 업계에서는 UCC를 활용한 수익 모델 발굴에 적극적이다. 이것이 수용자에게도 경제적 이익과 문화적 실천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낙관론도 있지만, 결국은 수용자의 놀이마저 ‘참여’라는 이름으로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시대의 법칙에 다름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포스트만 (Postman, 1985)은 공공의 이슈가 사라지고 모든 것이 오락의 형태로 변해 버린 세태를 비판한다. 그가 주로 비난한 대상은 텔레비전이었는데 뉴스마저도 오락적 가치를 추구하는 상황에서 ‘재미’는 가장 큰 이데올로기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서로 웃기려 애를 쓴다. 생각을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주고받는다. 입장의 차이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누가 더 잘생겼는지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 1980년대 미국에 관한 지적이지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UCC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르키소스에게 옹달샘이 있었다면 네티즌들에게는 블로그나 미니홈피 그리고 직접 만드는 동영상이 있다. 그러나 나르키소스와는 달리 네티즌들은 이미 가상의 수용자를 상상하고 있다. 나르키소스는 옹달샘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사랑할 뿐이었지만, UCC 제작자는 자신이 아끼는 직접 만든 동영상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도 사랑받기를 원한다. 댓글과 조회 수와 추천 수는 그러한 ‘사랑’과 노동의 결과를 측정하는 지표가 된다. 한마디로 UCC는 일상을 상품으로 만들고, 수용자들은 놀이 형태의 노동을 통해 그 상품의 생산과 소비에 기여한다. 이러한 구매는 다시 명예나 보상 등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아니면 동료 구매자들의 ‘응답’ 형식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포털과 방송이라는 순환 고리 속에서 수용자들은 자발적으로 소재를 제공하는 노동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놀이라는 이름의노동에는 ‘수용자 참여’라는 그럴 듯한 수식어가 붙어 있다.
5. 맺으며
아도르노(Adorno, 1991)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여유 시간에 대해서도 문화산업은 이래라저래라 말이 많다고 비판한다. 놀지 않는다는 것은 칭찬이 아니라 욕이다. ‘제대로’ 놀 줄 모르는 사람은 사회성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여유 시간조차 하나의 일, 즉 노동이 된다. UCC를 만들고 즐기는 사람들은 그저 남는 시간을 때우는 것이 아니라, 노력과 시간을 들여 ‘놀이의 노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인터뷰에 응했던 학생들은 “이미 인터넷 유저들이 UCC를 통해 자신만의 생각을 쏟아내고 있을 때, 그제야 나는 UCC의 약자를 찾아보았다. 솔직히 남들에게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과거이다”라고 민망해하기도 한다. UCC를 모른다고 해서 부끄러울 까닭이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또 다른 학생은 “나도 지금까지 10편 정도 UCC를 제작해 올려왔고 계속 올릴 예정이다. 솔직히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반타율적으로 하는 것이긴 하다”라고 고백한다. 이러한 놀이의 노동은 근무시간을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여가 시간을 대치한다. 이제 우리의 아주 조용한 일상조차 ‘놀이’라는 이름으로 조직되고 구조화된다. 아도르노는 수용자들의 의식이 어느 정도는 깨어 있음을 믿고 그들의 성숙함을 믿기 때문에, 미래에는 ‘남는 시간’이 진정한 풀뿌리 운동으로 자라나는 희망을 가져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글을 맺는다. 과연 UCC의 미래도 그러할까?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만의 이야기를 널리 전달하려 애써 왔다. 내 말 좀 들어 달라고 외치던 마당놀이의 풍자마당에서부터 선생님이 볼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써내던 그림일기장에 이르기까지, 수용자들은 여러 매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사적인 이야기를 전달한다. 다만 그림일기는 독자가 한 명 내지는 소수였고 잘 썼다고 해서 큰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UCC는 독자가 여럿이고 잘 만들 경우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독자를 네트워킹해 주는 것은 아직까지는 거대 권력인 미디어 기업이나 포털 사이트이며, 보상을 얻게 해 주는 것 역시 방송사 등 주류 언론매체다. 따라서 UCC는 이전 매체에 비해 수용자가 직접 만든 일상적인 내용이라는 영역이 크게 확대되었지만, 동시에 전통적으로 생산과 분배를 담당했던 미디어와 인터넷 기업의 활로는 더 빠르고 넓게 확장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유튜브는 이미 거대 미디어 기업과 사업 파트너 관계이고, 유튜브 방문자들은 자발적으로 광고를 클릭한다.
원칙적으로 UCC는 피터스(Peters, 2006)가 말한 커뮤니케이션의 유형 중 ‘퍼뜨림(dissemination)’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피터스는 참여하는 사람의 공간적 시간적 차원을 기준으로 커뮤니케이션의 유형을 분류한다. 한 공간에서 동시에 이야기 나누는 것을 ‘대화’, 동시에 여러 공간에서 소통하는 것을 ‘방송’, 한 공간에서 오랜 기간 동안 이루어지는 소통을 ‘참석’, 그리고 시공간 모두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을 ‘퍼뜨림’이라고 설명한다. 피터스는 이 중 ‘퍼뜨림’으로서의 커뮤니케이션에 가장 주목하는데, 이 과정에서는 이성적인 정보나 내용보다 원초적인 느낌이 우선적으로 소통된다. 따라서 수용자를 가정할 수는 있지만, 내용이나 메시지가 반드시 어디에 가서 닿으리라는 구체적인 기대를 하기는 힘들다. 많은 씨를 뿌려도 일부만 싹이 나고 학교에서 쏟아내는 교육 내용도 아주 일부의 학생에게만 가 닿듯이, 근대 커뮤니케이션은 본질적으로 많이 퍼뜨리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것이 피터스의 주장이다. 이렇게 보면 UCC의 형태로 넘쳐나는 정보들은 무수히 많지만, 커뮤니케이션을 순환의 형태로 완성하게 하는 것은 정보가 가 닿는 측이 존재하는가의 여부이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화자(話者) 혹은 의미의 생산자가 아니라 동영상을 보고 느끼고 반응하는 수용자가 존재함으로써 UCC는 매체로 완성된다. 따라서 UCC가 수용자의 능동성을 발현시켰다고 보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미디어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수용자의 욕구는 계속 증가하고 미디어 산업은 이러한 수용자의 반응에 대처해야 하는데, 그 대처방안이 인터넷을 통해 구체화된 것이 바로 현재 UCC의 의미가 아닐까. UCC나 인터넷이 있기 때문에 가족 간의 대화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가족 간의 대화가 줄어들기 때문에 다른 테크놀로지와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이 그 자리를 파고드는 것이다. 어쩌면 이 현상이 나타난 구조적 이유를 고민해보는 것이야말로 현재 한국 사회의 UCC 열풍에 대한 연구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글 때문에 우리는 쉽게 잊는다고 탄식했듯이, 카메라는 우리가 봤던 것을 잊게 만들고 전화는 멀리서 들리는 소리에 귀먹게 만든다. 밀란 쿤데라는 《웃음과 망각의 책》에서 너무나 많은 소리들이 떠돌아다니고 주변 사람들은 내 말을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작가가 될 수밖에 없고 전세계는 다른 사람의 말에 신경 쓰지 않는 우주적 귀먹음의 상태가 될 것이라 얘기한다. UCC는 매력적인 매체 환경이며 가능성이 많은 문화 영역이지만, 이를 통해 발현되는 사회의 징후와 우리의 욕구가 무엇인지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대학생은 인터뷰에서 오래전 취미 삼아 찍어 두었던 동영상을 포털에 올렸는데, 사람들이 좋아하고 반응을 보이는 사실에서 기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 경우처럼, 수용자들은 기존 언론을 통해 충족시킬 수 없는 욕구를 개인적인 방식으로 조금씩 실현하고 있었다. 다만 예전에는 UCC라는 말이 없었고 지금은 그 말이 있을 뿐이다. 개인적인 재미로 했던 일이 사소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큰 보상을 가져다줄 수도 있음을 가시화한 것이야말로 UCC의 가장 중요한 문화적 의미일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단순히 대중매체나 포털에 재생산 유통되는 인기 동영상물 뿐 아니라 예술작품이나 대안 문화의 영역에서 일반인들이 제작한 동영상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또한 알려지지 않고 묻힐 뻔했던 일들이 UCC를 통해 이슈화 되었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사례에서 시민 저널리즘의 싹을 기대하기도 한다. UCC만으로 시민 저널리즘이 당장 꽃피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UCC 열풍 덕분에 수용자들이 동영상을 찍고 나누고자 하는 의지와 욕구가 강해진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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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은 아이오와대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경희대․이화여대․서울대․광운대 강사,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연구원, 연세대 BK21 사업단 박사후연구원, 현 연세대․외국어대 강사
주요 저서 및 논문 : “Othering Ourselves: Identity and Globalization in Korean Popular Music, 1992- 2002”, “Seeking the Others within Us: Discourses of Korean-ness in Korean Popular Music", “과거 만들기와 미래 발견하기: 뮤직비디오에 나타난 노스탤지어”, “영어와 일상의 공간: 영어마을 사례를 중심으로”(예정) 등
출처 :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프로그램/텍스트 2007년 제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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