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통신역사의 기대주 와이브로의 더딘 걸음, 무엇이 문제인가?
와이브로의 뜨거운 감자, 음성지원
얼마 전 한 지인으로부터 와이브로에 대해 문의하는 전화를 받았다. 그 분의 질문을 요약하면 이렇다. "와이브로가 차안에서도 인터넷을 할 수 있고 참 좋은 것 같은데, 왜 휴대폰처럼 못쓰지? 휴대폰처럼 쓸 수 있으면 와이브로로 바꿔 쓸 생각이 있는데…" 그 분은 연세에 비해 IT에 관심은 많지만 전문적인 이슈까지 알 정도는 아니다. 그런 분이 이런 질문을 하니, "결국 서비스는 소비자의 문제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분이 의문을 제기한 와이브로 음성지원은 업계에서도 참으로 뜨거운 감자다. 동시에 와이브로 활성화를 위해서 반드시 풀어야할 숙제이기도 하다. 왜 와이브로 음성지원이 뜨거운 감자일까. 기술적으로 와이브로에서는 이동전화와 같은 음성지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일까. 아니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은 IMT2000을 2GHz대역의 주파수를 이용해 음성과 데이터를 처리하는 통신방식 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IMT2000의 6번째 세계표준이자 2.3GHz의 주파수를 사용하는 와이브로 역시 모바일 VoIP 등을 통해 얼마든지 음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그렇다면 ''모바일 VoIP를 적용해 음성을 지원하면 되지 뭐가 또 문제일까''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사업자들에게 부여한 와이브로 사업권에 대한 해석, 음성지원을 둘러싼 사업자 간의 이해관계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010번호 부여를 둘러싼 팽팽한 대립
와이브로 음성지원 논란의 핵심은 이동전화 같은 010번호(현재 신규 이동전화 가입은 010번호만 부여)를 와이브로에 부여할지 여부다. 이에 대해서는 와이브로 사업자인 KT와 SK텔레콤, 정통부의 생각이 각기 다르다. KT는 와이브로가 WCDMA와 같이 ITU가 정한 IMT2000 표준 가운데 하나인 만큼, WCDMA에 부여한 010번호를 와이브로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아울러 010번호 부여는 와이브로 서비스의 부진을 타개할 수 있는 대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정통부도 010번호 부여가 와이브로 활성화를 위한 좋은 아이디어임은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와이브로 사업권은 음성이 아닌 데이터용으로 부여한 것이기 때문에, WCDMA 사업권과의 형평성 차원에서 010번호 를 줄 수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KT의 경쟁사인 SK텔레콤은 정통부의 생각보다 더 강경하다. 010번호를 부여하면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음성지원도 불가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SK텔레콤은 그 근거로 주파수 할당대가를 든다. WCDMA 가 사용하는 2.1GHz 주파수의 할당대가가 무려 1조3000억 원인데 비해, 와이브로의 2.3GHz주파수 할당 대가는 겨우 1000억 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런 차이는 WCDMA가 음성과 데이터용으로 사업권을 부여받은 데 비해, 와이브로는 데이터용으로만 사업권을 받았기 때문에 생겼다는 것이다. SK텔레콤의 이런 주장에는 물론 010 와이브로가 자사의 주력서비스인 WCDMA/HSDPA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SK텔레콤의 우려가 KT와도 무관치 않다는 점이다. 바로 KT의 자회사인 KTF가 주력하는 WCDMA/HSDPA가 KT의 010 와이브로와 경쟁관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KT는 010번호를 포기하고 음성을 지원할 수는 없을까. 정통부 역시 010번호는 줄 수 없지만, 모바일 VoIP를 통해 음성을 지원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KT는 그럴 생각은 없어 보인다. 1인 1휴대폰 시대에 굳이 번호도 없는 와이브로 음성 서비스를 이용할 사람이 많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010 없는 와이브로 음성서비스는 ''약발''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와 사업자의 지혜로운 해법 절실
와이브로 음성지원에는 잠재적인 기술적 논란거리도 하나 있다. 바로 음성지원을 위한 와이브로의 데이터 처리 구조를 둘러싼 효율성 논란이 그것이다. 아직은 엔지니어들 사이의 이견 정도에 불과하지만, 와이브로 음성지원이 본격화되면 이슈화될 수 있는 사안이다. 이동통신에서 음성을 포함한 데이터 처리는 이용자가 데이터를 네트워크로 보내는 상향(uplink)과 이용자 가 네트워크로부터 데이터를 받는 하향(downlink)으로 이뤄진다. 음성 위주의 이동전화는 이용자가 보내고 받는 데이터의 양이 비슷하기 때문에 상·하향 네트워크 용량의 비율이 1:1인 대칭 구조다. 이에 비해 휴대인터넷용인 와이브로는 이용자가 네트워크로부터 받는 데이터 양이 보내는 양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상·하향 비율이 1:2인 비대칭 구조다. 따라서 KT가 이동전화 수준의 음성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비대칭구조를 대칭구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KT는 이에 대해 음성 위주의 이동전화에는 대칭구조가 적합한 것이 사실이지만, 와이브로는 광대역 주파수를 사용하기 때문에 굳이 대칭구조로 전환하지 않더라도 고품질의 음성서비스 지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반면, 와이브로 음성지원을 고려하지 않는 SK텔레콤은 오히려 대칭구조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다. 와이브로는 무선인터넷에 최적화된 구조로 설계됐기 때문에, 서비스품질(QoS) 측면에서 이동전화와 같은 수준의 음성서비스를 지원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문제는 한 사업자가 비대칭에서 대칭으로 전환할 경우, 사업자간 서비스 호환과 로밍 등을 위해 다른 사업 자도 대칭으로 전환해야한다는 점이다. 논란이 될 경우 사업자 간 조율이 쉽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차세대 이동통신을 표방한 와이브로가 상용화 1년이 넘도록 제대로 된 음성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와이브로 음성지원 문제는 우리 통신역사상 처음으로 찾아온 글로벌 스탠더드 와이브로가 세계시장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기 위해서라도, 또 우리 국민들의 이통서비스 선택권 확대와 통신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라도 반드시 풀어야 한다. 정부와 사업자들의 지혜를 기대해본다.
글-김응열 디지털타임스 통신&콘텐츠부 기자
※ 이 글은 [ITFIND]와의 협의에 따라 전재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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