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스트라이커(Ted Stryker). 로스앤젤레스의 라디오 방송국 KROQ 의 디제이(D.J.)인 그는 통상 반바지에 T셔츠 정도만을 걸치고 방송을 해 왔다. 라디오만이 가진 장점으로 생각했었다. 그런 그가 지난 일요 일, 마치 그래미 시상식에 나가는 모양으로 잔뜩 모양새를 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블레이저코트와 불이 번쩍번쩍 나는 화려한 벨트 를 착용했다. 그날은 다름 아니라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이 인터 넷으로 중계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라디오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는 무엇을 입든지 상관하지 않는다 는 것이죠.” 마치 그래미 수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는 모양으로 그 는 전화 인터뷰에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더 복장에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TV에서 직장 생활을 한 바 있는 스트라이커 씨는 최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자주 얼굴을 찡그리거나 한다고 말한다. “라디오에서 일하는 것, TV에서 일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입니다. 내가 말을 하면서 어떤 표정을 짓든 청취자는 상관치 않죠.”
미국의 라디오는 영상에서 라디오의 미래를 보았다. 목소리만 흘러 나오는 라디오는 이제 과거의 산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라디오가 영상을 시작한 것이다. 미국 전역의 라디오 방송국들이 자사의 웹 사이트에 영상물을 제공하고 있다. 간단하게 한두 개의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는 영상을 그대로 내보내는가 하면, 뮤직 비디오는 물론이고 슈퍼볼과 같은 전국 이벤트를 내보내기도 한다.
“더 이상 과거의 라디오가 아닙니다. 이제 라디오는 영상 매체입니다”라고 LA의 힙합 라디오 방송국 인 Power 106의 마케팅 대표 다이아나 제이슨(Dianna Jason)은 단언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밸런타인데이 이벤트의 하나로 Power 106은 ‘배신자의 처단(Trash Your ex)’이란 이벤트를 진행했다.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연인에게 차인 청취자들이 과거 연인을 기억 할 만한 소품 등을 정해진 장소에 버리는 행사다. 이를 위해서 Power 106은 특정 장소에 거대한 절단기를 공터에 마련해 놓고, 여기 와서 과거와의 기억과 결별하라고 호소했다. 이 상황은 실시간 으로 전국의 시청자들이 지켜볼 수 있게 중계했다.
한때 영상 미디어 때문에 라디오가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영상 때문에 라디오의 부활이 시작된 것이다. 유튜브의 시대, 그리고 라디오 토크쇼 호스티인 하워드 스턴(Howard Stern)이 종횡무진 영상 매체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다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동안 라디오는 시대 변화에 놀라울 정도로 뒤처져 있었다는 점에서 최근의 시도는 라디오 업계의 새로운 자각이라고 불릴 만하다. 현재 라디오는 아이파드나 위성 라디오 등 새로운 매체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1960년대 초에 벌어졌던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격전은 라디오가 일정 부분의 시장을 양보하는 차원에서 평화협정이 맺어진 것이라면, 최근의 경쟁은 적진 깊숙이 침투해서 벌어지고 있는 전면전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전쟁과는 피해를 견줄 수 없을 정도 다. 최근 라디오 매체에 도입되고 있는 영상이 라디오에게 새 생명을 불러일으켜 주었으면 한다는 바람은 바로 이 때문이다.
라디오 시청률 측정 기관인 아비트론(Arbitron)의 의하면, 여전히 미국인의 90%는 라디오를 청취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라디오를 듣는 시간은 지난 10년 전에 비해 14% 정도 감소한 상태이다. 기업 수익은 정체되어 있고, 지난 3년 동안 라디오 업계의 주가는 40% 정도 하락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서 일각에서는 클리어 채널의 주식을 사서 비상장 시킬 계획까지도 나온 상태 다. 상장 주식으로서의 가치가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까지 전체 200억에 달하는 라디오 광소 수익 중에서 영상물이 광고에 기여하는 정도는 매우 경미하다. 그러나 최근 영상 매체들이 구글이나 웹 등에 관심을 보이고 사업을 벌이는 것을 감안 하다면 조만간 이 수치는 급격하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라디오 사업자들은 라디오에게 제공하는 영상물은 기타 다른 영상물과는 차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말한다. 전통적으로 라디오는 지역 밀착형이라는 점에서, 라디오의 영상물 역시 지역 밀착물이기 때문에 더더욱 청취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또한 라디오 업계에서 제공하는 영상물은 TV 영상물 수준으로 만들 계획이 없기 때문에 제작비용도 매우 경미할 것으로 전망하다. 유튜브 등에 제공 되는 정도의 수준으로 만들되, 도대체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해 하는 청취자들에게 궁금증을 풀어주는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하다. 예를 들어 Power 106은 지난 할로윈 때 프로그램 진행자들이 할로윈 복장을 하고 나와서 초대 손님과 흥겨운 파티를 하는 장면을 만들 어서 내보냈다. 포트랜드의 얼터너티브 록 방송국인 94.7FM 역시 지난 가을 청취자들에게 비디오 카메라를 빌려 주고, 그들이 직접 로컬 록 밴드의 연주 장면을 찍어 오도록 하는 이벤트를 진행 했었다. 라디오 방송국의 운영자인 마크 해밀톤(Mark Hamilton)은, “청취자들이 찍어 오는 영상이 가슴을 뛰게 할 정도로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청취자의 참여가 핵심이지 영상물의 질이 핵심이 아니라는 말이다.
미국에서 가장 큰 라디오 업체인 클리어 채널 역시 이 대열에 동참했다. 현재 클리어 채널은 자사의 1,200여 개 라디오 방송국 웹 페이지에서 뮤직 비디오를 다운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뮤직 비디오의 상당수는 각 라디오 방송국들이 자체적으로 제작한 것들이다.
라디오의 반격이 이제 시작된 것이다.
[Thomas Kostigen, Market Watch 2007.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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