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녹색 각성’에
도달한 게임업계
ESG 경영이 화두에 오르며 다수의 게임사들도 이에 걸맞는 노력을 시도해 왔다.
사회적 책임(S)과 거버넌스(G)에 대한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반면, 환경(E)과 관련해서는 다소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사실 게임업계에서 환경 문제에 기여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2022년 지구의 날 기념 이벤트나 업계의 협력 단체들을 보면 게임산업이 꾸준한 노력을 통해 ‘녹색 각성’에 도달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 게임업계의 환경 기여 활동을 통해 게임산업의 환경보호 노력을 조명하고자 한다.
‘ESG 경영’1 이 경제 산업계의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새롭게 떠오른 화두를 따라가기 위한 기업들의 경영전략 혁신도 이어지고 있다. 게임업계 또한 재빠르게 ESG 경영에 동참했다.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서는 다양성과 포용성 강화가 두드러진다. 일례로 EA는 2020년 11월 44쪽 분량의 ‘영향 보고서(Impact Report)’에서 “다양하고 건강한 팀 구축하기”를 리포트 1장에 배치했으며, 사내 ‘인사 리더’2 와 ‘기술 역할’3 의 인종 간 비율을 공개하며 다양성을 강조했다.
거버넌스 부문에서는 국내에서도 상당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엔씨소프트가 2021년 3월 한국 게임업계 최초로 ESG 위원회를 설치한 데 이어 7월에 컴투스, 12월에는 넷마블이 ESG 위원회를 설치했다. 2022년 3월에는 펄어비스도 ESG 위원회를 설치하며 국내 게임업계에서 ESG 경영의 중요성이 커짐을 보여줬다.4
하지만 환경 부문은 게임산업이 풀기 어려운 숙제로 여겨졌다. 물리적인 상품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조 단계에서 발생하는 환경파괴 요인이 적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ESG 경영이 CSR5, CSV6 등의 경영전략과 가장 차별적인 부분이 바로 ‘환경보호’이기 때문이다. P2E처럼 과도한 전기 사용을 부추기는 모델이 등장하며 게임산업의 환경보호를 위한 실천 요구도 커지고 있다. ESG가 강조되기 시작한 것도 기후위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조가 이루어진 1997년 이후 부상했다는 점에서 환경보호는 ESG의 핵심으로 인식되기도 한다.7
또 거대해지는 게임산업에서 투자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고, 투자기관들이 ESG 경영을 기업 평가 요인으로 삼은 만큼 이에 대해 소홀히 하는 것은 투자 유치의 어려움과 평판 리스크를 야기할 수 있다. 이는 기업가치 평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환경에 대한 국제적 관심은 날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추세다. 2022년 새해 첫날 산업통상자원부가 K-ESG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기도 한 만큼, 국내에서도 ESG 경영의 중요성은 이어질 전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과 북미 등지의 ESG 경영을 빠르게 수용했던 게임사들이 환경보호와 접점을 찾아내고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제52회 지구의 날을 맞아 더욱 눈에 띈다. 일각에서는 게임업계가 ‘녹색 각성’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2022년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이하여 글로벌 게임업계는 그동안 자신들이 쌓아왔던 환경보호 활동의 성과를 공개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경쟁적으로 발표했다. 엑스박스(Xbox), 나이앤틱(Niantic) 등 리딩 그룹을 포함한 다양한 게임사들은 자사 블로그나 북유럽 게임업계 중심의 환경보호 이니셔티브 ‘플레이 크리에이트 그린(Play Create Green, 이하 PCG)’ 등을 통해 환경보호 관련 성과를 공유하거나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게임산업 내에 ESG 경영, 특히 환경보호 활동에 대한 주도권 경쟁도 심화되는 양상이다. 엑스박스와 플레이티카(Playtika)8 등 글로벌 게임산업 리딩 그룹에서 환경보호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구체적인 활동 방안들도 제시되고 있다.
2022년 지구의 날에 발표된 가장 인상적인 환경보호 활동 성과는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대형 게임사를 포함한 리딩 그룹에서 나왔다. 엑스박스는 4월 지구의 날 자선행사를 개최했고, 1달간 ‘워터닷오알지(Water.org)9, 국제자연보호협회(The Nature Conservancy)10 등의 환경 단체 홍보 배너를 콘솔의 대시보드에 노출시켜 게임 이용자가 배너를 통해 환경단체에 기부하거나 환경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왔다.
엑스박스의 대표 타이틀인 <마인크래프트(Mincraft)>는 3개의 시나리오로 이루어진 <기후의 미래(Climate Futures)>를 발표했다.11 게임 기반의 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마인크래프트>가 과제 해결이라는 게임 매커니즘을 통해 8~13세 아이들이 환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대안을 스스로 모색할 수 있도록 했다. 이밖에도 영국 환경청(Environment Agency)과 협력해 이상기후로 인한 홍수가 미칠 피해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한 <리버크래프트(RIVERCRAFT)>, 해양 생태계 보존을 위해 바다에 떠다니는 플라스틱을 제거하는 <바다 지키기(SAVE THE OCEAN)> 등 게임을 통해 환경 문제에 대해 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12 <마인크래프트; 기후의 미래> 3개 시나리오
출처: Mincraft(2022.4.)엑스박스는 지속적으로 환경보호 활동에 관심을 가져 왔다. 지난 3월 10일에 발표한 “엑스박스 지속 가능성 노력에 대한 업데이트(An Update on Xbox Sustainability effort)”를 통해 콘솔의 대기모드보다 전력 사용량을 20배 줄일 수 있는 에너지 절약 모드, PCR(Post-Consumer Recycled material) 소재를 사용한 콘솔 하드웨어 등 환경보호를 위한 노력을 알렸다. 흥미로운 부분은 MS의 인프라를 적극활용하여 환경보호 성과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MS의 클라우드 시스템 애저(Azure)에 대한 활용이다. 애저는 2025년까지 재생 에너지 100% 공급 전환을 이니셔티브로 제시한 바 있다. 엑스박스는 콘솔과 서버를 동일한 전력 효율 아키텍처로 보고, 이를 기반으로 엑스박스 클라우드 게이밍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포켓몬고(Pokémon Go)>의 제작사 나이앤틱도 흥미로운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022년 4월 5일 나이앤틱의 AR 개발팀은 자사 블로그를 통해 검색 엔진 에코시아(Ecosia)13 와의 제휴를 맺고 10만 그루 재조림을 위한 펀딩을 진행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나이앤틱은 <포켓몬고> 이용자가 5km를 걸을 때마다 에코시아를 통해 나무 한 그루가 심어지는 방식의 펀딩을 마련했다. 펀딩 이벤트 진행 기간동안 희귀 몬스터를 포획할 수 있도록 해 참여율을 높였다. 에코시아와 펀딩 이벤트를 진행한 <포켓몬고>
출처: Poket Tactics(2022.4.)나이앤틱의 지구의 날 행사가 흥미로운 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AR 기술과 콘텐츠, 그리고 광고 시스템이 결합하여 일종의 수익모델을 만들고, 환경보호 활동을 위한 펀딩으로 묶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게임업계가 자체 이니셔티브를 넘어 환경보호 활동을 중심으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게임산업의 고민이었던 환경보호 활동을 산업 외부의 기업과 협력을 통해 해결할 수 있으며, 게임의 역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플레이티카는 나이앤틱이 제시한 방안과 유사한 선택을 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플레이티카는 전 세계에 나무를 심고 탄소배출량 감소를 위한 활동을 전개하는 비영리단체 트리네이션(Tree-Nation)과 협력해 미국 캘리포니아 산불로 폐허가 된 숲 복원을 위한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플레이티카의 대표 타이틀 중 하나인 <솔리테어 그랜드 하베스트(Solitaire Grand Harvest)>를 이용하면 트리네이션의 숲 복원 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나이앤틱이 광고 시스템을 활용한 펀딩 형태로 진행되는 반면, 플레이티카는 탄소배출권 거래를 통해 재조림 사업에 참여한다는 것이 차이점이다.14
엑스박스의 활동처럼, 인식개선을 위한 활동은 다른 산업분야의 기업들에 비해 게임사가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환경보호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스모그룹(Sumo Group)은 자사 블로그를 통해 2025년까지 탄소 제로를 목표로 한 ‘기후 챔피언(Climate Champion) 이니셔티브’를 공개했다. 전 세계에 분포된 산하 스튜디오의 직원들 중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기후 챔피언’으로 선정해 소개에 나선 것이다. 기업활동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측정하고 이를 감소시키기 위한 재생전기 사용 등의 시책과 함께 상향식 동기 부여에 나섰다. 이밖에도 <기본: 비욘드 더 트리(Gibbon: Beyond the Trees)>15 를 제작한 게임 개발사 브로큰 룰즈(Broken Rules)는 제작에 도움을 준 환경운동가들을 조명하는 영상을 발표하기도 했다.
2022년 지구의 날 기념 사례들을 종합해볼 때, 게임사의 환경보호 활동에서 한 가지 큰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집단적인 움직임이다. 하나의 게임, 하나의 게임사의 독립된 활동이 아니라 모회사와 그룹 전체가 협력하거나, 외부 환경보호 단체와 함께하기도 한다. 게임 이용자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도 특징이다.
게임업계의 집단적인 움직임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단연 북유럽 게임 스튜디오가 다수 포함된 PCG 이니셔티브와 영국 기반의 ‘그린 게임 가이드(Green Game Guide)’이다.16 두 사례 모두 구체적이고 집단적인 환경보호 협약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PCG는 2019 보른홀름 게임데이(Bornholm Game Days)17 에서 형성된 커뮤니티다. 40여개의 북유럽 게임 스튜디오들이 참여한 행사에서 참가 기업들은 차년도 의제로 기후변화를 꼽았다. 이에 따라 노르디스크 게임즈(Nordisk Games)를 주축으로 이니셔티브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2020년 10월에는 온라인 핸드북을 만들어 게임산업이 환경보호에 동참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18 PCG 온라인 핸드북 소개
출처: PlayCreateGreen(2021.7.)PCG는 게임사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구축되고 이어진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누구보다 게임산업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있는 주체들에 의해 현실성 있는 환경보호 동참 방안을 제시하고, 참여를 독려함으로써 게임산업의 ESG 경영 측면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열었다.
그린 게임 가이드는 게임 진흥을 위한 단체와 협회, 그리고 UN 산하의 ‘플레잉 포 더 플래닛 얼라이언스(Playing for the Planet Alliance)’19 가 함께 만든 가이드북이다. 이는 제도권 내에서 합의된 실질적인 지침서라는 점에서 그동안 제시되었던 산업계의 이니셔티브들 보다 포괄적이며 구속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받고 있다.
지금까지 2022년 지구의 날을 맞아 글로벌 게임산업의 환경보호 활동들을 짚어보았다. ESG 경영의 중요성은 계속 커지고 있으며, 게임사의 환경보호를 위한 활동들도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집단적인 선언 단계에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제시되고, 개별 게임사들이 활동을 전개하며 게임사에겐 막막했던 환경보호를 위한 활동 방안이 다양하게 제시된 것이다. 게임사가 기업으로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게임의 상호작용성과 이로 인한 깊은 몰입감은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을 크게 높일 수 있는 방안이다. 또 게임이 어린이부터 중장년층까지 폭넓은 이용자를 확보한 만큼 이벤트나 캠페인만으로도 기존의 환경보호단체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홍보효과를 거둘 수 있다. 게임사가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기업 차원의 직접적인 노력도 필요하지만, 큰 틀에서 환경보호에 기여할 수 있도록 강점을 살려 다른 조직과 협업할 때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의미이다. 앞으로 게임사의 더 다양한 환경보호 활동을 기대하며, 국내 게임사들도 이를 참고하여 기업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