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게임산업 동향
코로나19로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한 게임 스트리밍 시장이 여전히 견고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 트위치(Twitch)의 월 시청 시간은 코로나19 이전까지 10억 시간을 넘기지 못했으나 2020년 2~3월 사이 18억 시간으로 두 배 가까이 폭등했다. 한때 23억 시간을 넘기기도 했으며 지금까지도 매월 15억 시간 이상을 꾸준히 기록하는 등 코로나19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체급을 보인다.
시청 시간 증가와 함께 자연히 시장 규모와 시청자 수도 함께 늘어났다.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2018년 52억 달러(약 7조 200억 원) 정도였던 전 세계 게임 스트리밍 시장은 연평균 14.4% 성장해 2027년에는 174억 달러(약 23조 4,900억 원) 규모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같은 기간 5억 명을 웃돌았던 이용자 수 역시 2027년에 이르러서는 17억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러한 상황에서 2023년 12월 트위치가 한국 시장 철수를 결정하면서 국내 게임 스트리밍 시장에는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18~2027년 게임 라이브 스트리밍 시장 규모 및 이용자 수 출처 : Statista(2023.12)주요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 중 하나인 트위치(Twitch)는 2007년 미국에서 종합 인터넷 방송 플랫폼 저스틴 TV(Justin.TV)의 게임 사업부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게임 스트리밍의 가능성을 본 아마존(Amazon)이 2014년 구글(Google), 야후(Yahoo) 등과 경합한 끝에 9억 7,000만 달러(약 1조 3,100억 원)에 트위치를 인수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트위치는 게임산업 규모가 큰 한국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던 플랫폼 중 하나였다. 2015년 SNS를 통해 서버 리스트에 한국을 추가했다고 발표하며 국내 사업을 시작한 트위치는 높은 화질의 방송 환경을 제공하고 유명 스트리머를 적극적으로 영입하는 등 공격적인 전략으로 국내 이용자들을 빠르게 흡수했다. 하지만, 2022년 트위치는 한국에서만 최고 화질을 1,080p에서 720p로 낮추고 다시보기를 중단하며 국내 이용자들의 반발을 샀다. 트위치는 한국이 다른 국가들보다 망 사용료가 10배 이상 비싸 제한이 불가피하다고 해명에 나섰으나, 결국 2023년 12월 결국 망 사용료 등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2024년 2월 27일부로 한국 서비스를 완전히 종료한다고 밝혔다. 한편, 트위치가 철수를 결정하자 그동안 트위치와 경쟁하던 기존 플랫폼과 시장 진입을 노리던 신생 플랫폼은 빈자리를 먼저 차지하기 위해 채비하고 있다.
트위치가 한국을 떠나게 되자 업계 이목은 자연히 아프리카TV로 향했다. 최근 아프리카TV는 사명 변경과 신규 브랜드 출시, 플랫폼 인터페이스 개편 등 대대적인 변경안을 공개했다. 이 중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사명 변경이다. 아프리카TV는 2024년 2분기 중으로 해외 서비스에 초점을 맞춘 신규 스트리밍 서비스 숲(Soop)을 출시한다고 밝혔다. 또한, 사명도 2024년 3분기 중으로 이름을 숲으로 바꿀 계획이다. 이는 아프리카TV가 2006년부터 약 20년 가까이 사용한 브랜드를 버리고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아프리카TV의 트위치 마이그레이션 프로그램 홍보 이미지 출처 : AfreecaTV아프리카TV가 트위치 스트리머의 방송 시간을 400시간까지 인정하고, 트위치 계정 연동 스트리머 구독자 10만 명에게 1개월 무료 구독권을 제공하는 등 마이그레이션(Migration)5) 정책을 발표한 것은 게임 스트리밍의 시장 점유율을 다시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아프리카TV는 숲 브랜드 출시 발표 자리에서 이스포츠 콘텐츠 제작과 시청이 편리하도록 플랫폼 인터페이스를 개편하여 사용자 경험을 강화하겠다고 밝히는 등 게임 스트리밍과 관련된 기능과 서비스 향상을 거듭 강조했다.
국내 최대 IT 기업 중 하나인 네이버도 게임 스트리밍 시장 진출에 나섰다. 네이버는 2023년 11월 게임 라이브 스트리밍에 특화된 신규 서비스를 2024년에 정식 출시한다고 발표한 뒤 해당 서비스명을 치지직으로 결정하고 2023년 12월부터 베타 테스트를 시작했다. 2013년 네이버가 게임 사업부를 NHN으로 분사하고 지분을 매각하면서 게임 관련 사업에서 손을 뗀 지 10여 년 만에 다시금 게임업계에 진출한 것이다.
네이버의 신규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 치지직 홍보 이미지 출처 : 네이버네이버 역시 아프리카TV와 마찬가지로 트위치 철수를 기회로 삼으려는 만큼 기존의 트위치 이용자를 흡수하기 위한 여러 인센티브를 제시했다. 구독 이어가기 서비스로 트위치에서의 구독 기간과 팔로우한 스트리머 목록도 치지직에 자동으로 옮겨지도록 해 플랫폼 이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호환성을 높였다. 한편, 네이버는 이용자 만족을 위해 서비스 품질을 높이는 데에도 집중하고 있다. 과거 트위치가 스트리밍 화질을 낮춰 큰 반발에 직면했던 것을 고려해 1,080p 이상 FHD 화질에 끊김이 없는 60프레임 방송이 가능하도록 설비 증설을 준비 중이다. 또한, 현장감을 높인 멀티뷰와 공간 음향(Spatial Sound), 송출 시차를 최소화하는 ULL(Ultra Low Latency; 울트라 로우 레이턴시) 등 네이버 스포츠와 같은 기존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얻은 기술과 경험을 치지직에 적용할 계획이다.
네이버는 치지직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해 과거 트위치가 한국 시장에 진출했을 때처럼 대형 스트리머 영입에도 힘쓰고 있다. 이에 더해, 서비스 안정화, 채팅창 속도 조절, 간편 후원, 모니터링을 통한 방송 필터링 등 그동안 스트리밍 시청자가 다른 스트리밍 플랫폼을 이용하면서 요구했던 사항들과 브랜드 이미지를 지킬 수 있는 정책을 연이어 발표했다. 이와 같은 사용자 친화 정책과 적극적인 기술 투자로 치지직은 국내 스트리밍 시장에서 영향력을 빠르게 넓히고 있다.
아프리카TV와 네이버가 트위치의 빈자리를 먼저 차지하기 위해 서두르는 가운데 해외 플랫폼 중 지난 2023년 새로 출범한 호주의 킥(Kick)이 트위치를 대신하여 한국 시장에 진출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2023년 1월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킥은 2023년 3월 마지막 주 약 1,140만 시간이었던 주간 총시청 시간이 6월 마지막 주에 이르러서는 2,040만 시간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하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킥의 성장 배경에는 스트리머 친화적인 수익 분배 비율이 꼽힌다. 킥은 스트리머와 플랫폼의 수익 분배를 95:5로 진행하고 있는데, 트위치가 50:50, 유튜브가 70:30인 것을 고려하면 타 플랫폼들보다 최소 20% 이상 스트리머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덕분에 킥은 1,200만 명에 가까운 팔로워를 보유한 xQc를 비롯한 유명 스트리머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으며 xQc 영입 발표 24시간 만에 100만 명의 신규 가입자를 확보했다. 만약 킥이 국내에 진출하여 동일한 수익 분배 비율 정책을 적용한다면 대형 스트리머들이 방송 플랫폼을 킥으로 옮길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23년 3월 4주차~6월 4주차 킥의 시청 시간 및 채널 수 추이 출처 : Stream Hachet(2023)한편, 트위터(Twitter)를 인수해 X로 리브랜딩한 일론 머스크(Elon Musk) 테슬라 CEO는 2023년 12월 X에서 게임 방송을 스트리밍할 수 있도록 관련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후 2024년 1월에는 X를 트위치의 대항마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공개하며 스트리밍 시장 진출을 선언했으며, 이어서 X에서 스트리밍 시범 방송을 하는 게시글을 올리기도 했다. X의 스트리밍 서비스와 관련하여 사측의 구체적인 계획이나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테슬라(Tesla), 스타링크(Starlink), 왕복 우주선 스페이스X(SpaceX) 등 자신이 공식적으로 언급한 계획은 대부분 실현했던 머스크의 과거 행적을 고려하면 X가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할 가능성은 매우 높게 점쳐진다.
X에서 <디아블로 4> 스트리밍 테스트를 하는 일론 머스크 출처 : Tech Central, X이스포츠 산업이 발달하며 '하는 게임'이 아닌 '보는 게임'을 즐기려는 수요층이 늘어나 이들을 위한 스트리밍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높게 점쳐진다. 아프리카TV와 네이버의 최근 행보에는 이처럼 고성장이 기대되는 국내 게임 스트리밍 시장을 선점하여 우위를 차지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다만, 아프리카TV와 네이버 치지직 모두 사명 변경과 신규 사업 개척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어 이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국내 게임 스트리밍 시장의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국내 시장 진출 가능성이 있는 해외 플랫폼은 적어도 부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로 인한 불이익은 염려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국내 스트리밍 사용자에게 알려지지 않아 브랜드 인지도가 낮다는 점이 약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트위치는 한국 진출 전부터 이미 국내 스트리밍 시청자 사이에서도 잘 알려져 인지도 문제는 겪지 않았으나, 킥은 여전히 한국에서 상당히 낯선 이름이다.
따라서, 아프리카TV와 네이버라는 토종 플랫폼의 이름값을 뛰어넘을 수 있는 무언가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국내 진출이 매우 힘들 수 있다. X는 인지도 면에서는 아프리카TV와 네이버와도 비견될 만하나, 국내 이용자가 적다는 점에서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더라도 국내 시장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국내 게임 스트리밍 시장은 한동안 국내 플랫폼을 중심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지만, 국내 플랫폼만 남게 된다면 장기적으로는 한국 스트리머와 시청자들의 고립을 초래하는 동시에 이용자 선택권을 제한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최근 많은 개발사가 자사 게임 스트리밍을 트위치에서 시청하면 게임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을 보상으로 주는 드롭스(Drops) 시스템을 시행하고 있는데 트위치의 시장 철수로 인해 국내 이용자들은 드롭스 시스템의 혜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무엇보다 전 세계적인 콘텐츠 트렌드에서 한국이 소외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다. 국내 게임 스트리밍 시장이 전 세계와 교류하지 않으면 해외 유입이 줄어들며 성장 한계에 빠르게 직면할 수 있다. 이는 동시에 현재 세계 3위 수준인 국내 이스포츠 산업의 경쟁력 약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
물론, 국내 플랫폼의 성장을 억제하고 해외 플랫폼이 재진출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게임에 국경이 사라지고 해외 콘텐츠에 대한 접근이 쉬워진 만큼 해외 플랫폼과 국내 플랫폼이 균형 있게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한국 게임 스트리밍 콘텐츠와 플랫폼이 해외로도 뻗어 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트위치가 사라질 국내 게임 스트리밍 시장이 어떻게 재편될지, 그리고 새로 형성될 구도가 한국의 '보는 게임' 문화와 시장에 어떠한 방향으로 작용할지 유심히 모니터링 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