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게임산업 동향
최근 자동차 안에서 게임을 즐기는 인 카 게임(In-Car Game)이 많은 주목을 받으며 관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인 카 게임은 주로 차량 내 디스플레이와 컨트롤러, 게임 소프트웨어로 구성되며 탑승자는 이를 이용해 주행 중이나 대기 중에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가장 큰 특징은 차량 탑승자가 과거에는 차량 내에서 체험할 수 없었던 수준의 높은 게임 몰입감을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게임 기술을 차량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접목한 것이다. 실제로, 최근 출시되고 있는 인 카 게임 시스템은 이용자가 가정용(거치식) 콘솔로 게임을 할 때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고품질 그래픽과 게임 환경을 제공한다.
인 카 게임시장의 성장은 지금까지 가정이나 실내에서만 즐길 수 있었던 게임 이용 환경이 자동차 안으로도 확장되어 이용자가 늘어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진다. 또한, 최근 많은 자동차 제조사가 구독형(Subscription) 수익 모델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데, 인 카 게임은 구독형 매출을 창출할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서비스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2023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2023 소비자 가전 전시회(Consumer Electronics Show; 이하 CES)에서는 많은 자동차 제조사가 자사의 인 카 게임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게임이 자동차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에 서기 시작한 배경에서는 자율주행 기술 발전과 전기차 보급, 자동차 산업의 SDV(Software Defined Vehicle,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화 트렌드가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인 카 게임시장의 가장 큰 성장 배경으로는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이 손꼽힌다. 현재 많은 자동차 제조사가 레벨2 자율주행에서 레벨3로 넘어가는 단계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벨2까지는 주행 주도권이 운전자에게 있어 핸들에서 손을 뗄 수 없고 계속 전방을 주시해야 하나, 레벨3부터는 주도권이 운전자에서 시스템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운전자는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다. 이에 기술적으로도 레벨2까지는 ‘주행보조’, 레벨3부터는 ‘자율주행’으로 분류된다. 이처럼, 운전자가 핸들 조작이나 전방 주시를 하지 않아도 되는 레벨3 이상의 자율주행 기술이 보편화되면 이동 시간이 운전해야 하는 작업과 피로의 시간이 아니라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으로 바뀔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율주행 기술 레벨 예시 출처 : 미국 자동차 공학회(SAE) 자율주행 기능 분류 재구성또한, 전기차 보급 확대도 앞으로 인 카 게임시장의 성장을 촉진하고 있다.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와는 달리 전기차는 충전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50~100kW 급속 충전기도 전기차의 배터리를 80%까지 충전하는데 보통 30~60분 정도가 필요하며, 완속 충전기를 사용하거나 대기까지 감안하면 실제 충전에 드는 시간은 더 길어진다. 이 때문에 충전이나 대기 시간에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보낼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함께 커지고 있다. 그중 인 카 게임은 충전 시간 동안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콘텐츠로, 많은 전기차 제조사는 차량 엔터테인먼트에 게임을 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충전 시 느끼는 지루함과 그로 인한 불편은 현재 전기차 보급을 더디게 만드는 큰 장애물 중 하나인데, 인 카 게임은 지루함을 해소해 전기차 보급 속도를 한층 더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자율주행, 전기차와 함께 최근 자동차 업계를 달구기 시작한 큰 주제 중 하나는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oftware Defined Vehicle; 이하 SDV)이다. SDV란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차량 내 장치를 제어하는 자동차를 의미하며,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자동차의 주행 성능, 편의 기능 등을 개선할 수 있다. SDV는 엔진, 변속기, 차체 등과 같이 물리적 하드웨어로 대표되었던 자동차 산업이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하며 등장한 개념으로, 이는 마치 과거 모니터나 본체와 같은 하드웨어 제조가 주류였던 PC 산업이 이제는 소프트웨어 주도로 바뀐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자동차 제조사는 자동차가 짧은 미래에 '바퀴 달린 컴퓨터'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SDV 체제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자동차 업계가 SDV 체제로 변화할수록 콘텐츠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며, 과거 게임이 PC 산업의 소프트웨어화를 이끈 핵심 콘텐츠 중 하나였듯이 자동차 산업이 SDV로 재편되는 과정에서도 게임은 가장 각광받는 소프트웨어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율주행 기술에서 가장 앞서가는 전기차 제조사 중 하나인 테슬라(Tesla)는 SDV와 인 카 게임 기술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테슬라는 2018년 무선으로 차량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할 수 있는 OTA(Over-the-Air)4)를 통해 차 내에서 아타리(Atari)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2019년에는 자체 인 카 게임 플랫폼 테슬라 아케이드(Tesla Arcade)를 출시했으며, 그 중 비치 버기 레이싱2(Beach Buggy Racing 2) 가 큰 인기를 끌면서 서드파티(Third Party) 콘솔의 힘을 빌리지 않고 성공한 최초의 인 카 게임 플랫폼이 되었다.
또한, 테슬라는 인 카 게임을 위해 차량 내부 반도체 성능도 강화했다. 2021년 테슬라는 모델S와 모델X에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Sony Interactive Entertainment)의 플레이스테이션5(PlayStations5)와 같은 AMD의 APU 프로세서와 RDNA2 GPU를 탑재시켰다. 2022년에는 세계 최대 게임 ESD(Electronic Software Distribution) 밸브(Valve)의 스팀(Steam)과의 깜짝 제휴를 발표하며, 차량 내에서 스팀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폭스바겐(Volkswagen), 아우디(Audi), 포르쉐(Porsche) 브랜드 등을 보유한 독일 최대 자동차 기업 폭스바겐 그룹 역시 SDV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폭스바겐 그룹은 자체 소프트웨어 개발팀 카리아드(CARIAD)를 조직하는 한편, 2023 CES에 참여하여 인 카 게임과 이를 통한 디지털 UX(User Experience; 이용자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23년 카리아드의 발표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내용 중 하나는 가상 현실(Virtual Reality; 이하 VR) 기술을 아우디 차량에 접목한 홀로라이드(Holoride)였다. 차량에 탑승한 채로 VR 고글을 착용, 실제 주행 시 가감속을 이용해 메타버스 상에서 우주선에 탑승하는 체험을 제공하는 등, 홀로라이드는 차량의 움직임을 차내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와 결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폭스바겐 그룹의 카리아드(CARIAD)에서 개발한 VR 기술 홀로라이드(Holoride) 출처 : CARIAD또한, 카리아드는 젊은 세대일수록 차내에서 음악과 같은 기존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보다는 게임 등 새로운 유형의 콘텐츠를 즐기는 경향이 높다는 사실을 지목하면서, 많은 부분이 사물 인터넷(Internet of Thing; IoT)화된 자동차가 훌륭한 게임용 콘솔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특히, 차내 에어컨이나 조명, 안전벨트 장력 등을 활용하면 몰입형 게임 경험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23년 8월 BMW는 세계 3대 게임쇼 중 하나인 독일 게임스컴(Gamescom)에 스위스 게임 개발사 엔드림(N-Dream)과 함께 참가해 엔드림의 게임 플랫폼 에어콘솔(AirConsole)로 게임을 시연했다. 또한, BMW만을 위한 신작을 2024년 출시를 목표로 개발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BMW는 차량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게임 서비스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2022년부터 에어콘솔과 협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협력 이후 레이싱, 스포츠, 시뮬레이션 전략 등 다양한 장르로 게임 서비스를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여러 탑승자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게임을 늘려가고 있으며, 편의를 위해 QR코드를 통해 스마트폰을 게임 컨트롤러로 사용할 수 있는 기능도 제공하고 있다.
다만, BMW는 아직 안전상의 이유로 충전 등 차량 정차 시에만 게임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보다 폭넓고 새로운 게임 경험을 추구할 것"이라고 밝혀, 이용자가 다양한 환경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관련 기술 투자를 확대할 계획임을 시사했다.
한편, 게임 개발사와 합작 회사를 설립해 인 카 게임 기술에 적극 투자하는 경우도 있다. 2023 CES에서 일본 자동차 제조사 혼다(Honda)와 소니 인터렉티브 엔터테인먼트(Sony Interactive Entertainment; 이하 소니)는 소니 혼다 모빌리티(Sony Honda Mobility)라는 합작회사와 함께 새로운 전기차 브랜드 아필라(Afeela)를 출범시켰다.
소니 혼다 모빌리티는 아필라 발표회에서 일반적인 신차 발표 때와는 달리 자동차 자체의 기능보다 콘텐츠 플랫폼으로서의 아필라를 부각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특히, 여러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중에서 아필라가 특히 강조한 것은 인 카 게임이다. 이는 혼다가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으로 오랜 기간 게임 콘솔 시장의 최고 강자 자리를 유지 중인 소니를 협력 파트너로 삼았다는 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혼다는 주행 중 게임 이용이 가능하도록 레벨3 자율주행 기능과 이를 위한 45개의 카메라와 센서를 아필라에 탑재했으며, 게임 몰입감을 높이기 위해 대형 스크린과 미디어 바를 차량에 장착할 계획이라 밝혔다. 아필라에서는 최신 플레이스테이션5 게임을 즐길 수 있고 향후 AR과 VR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소니-혼다 모빌리티의 아필라(Afeela) 프로토타입 차량 내부 출처 : Axios혼다가 인 카 게임시장 진출을 위해 소니와 손잡았다면, 한국의 현대자동차와 중국 비야디(BYD), 그리고 스웨덴 볼보 그룹의 폴스타(Polestar)는 엔비디아(Nvidia)를 서비스 파트너로 선택했다. 2023 CES에서 엔비디아는 현대자동차, 비야디, 폴스타에 자사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 지포스 나우(GeForce Now)를 탑재하는 협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엔비디아는 차량 내에서 지포스 나우 서비스를 통해 탑승자가 주차 중이나 뒷좌석 화면을 통해 게임을 이용할 수 있게 해 차량 충전이나 탑승 중 지루함을 줄이는 데 목적이 있다고 협업 배경을 밝혔다. 또한, 지포스 나우는 저지연(Low-Latency) 스트리밍 기술을 통해 AAA 게임을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스팀, 에픽 게임즈 스토어(Epic Games Store) 등 다양한 게임 ESD를 제공하는 데 강점이 있으며 앞으로 더 많은 주요 차량들이 지포스 나우를 탑재할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고 알렸다.
이처럼 자동차 제조사들이 게임산업에 관심을 두게 된 배경에는 안정적인 수익원 창출이 가장 유력하다. 트렌드포스(TrendForce)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0.1% 감소한 8,150만 대로 중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국가에서 판매량이 줄어들었다. 지금까지 제조사들은 차량 판매에 따라 일회성으로 큰 이익을 얻었고, 기존 구매자에게서는 차량 교체 전까지 추가 이익을 얻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그 때문에 자동차 하드웨어 판매가 감소한다는 것은 산업 안정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자동차 산업이 SDV로 재정의되면 제조사는 소프트웨어 판매라는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스마트폰 판매에 그치지 않고 앱마켓 생태계를 구축해 다층적 수익 구조를 구축한 것과 유사한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SDV 시장이 높은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되며 사업 확장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2022년 356억 달러(약 48조 600억 원)이었던 전 세계 SDV 시장 규모는 2032년 2,109억 달러(약 284조 7,150억 원)로 추산되며 연평균 약 19.5%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SDV 콘텐츠 중에서도 게임이 주목받는 이유에는 게임에 상대적으로 친숙한 MZ세대가 차량 구매 집단에 포함되어 차량 내 게임 콘텐츠가 결정적인 구매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높은 성장성이 기대되는 인 카 게임시장이지만 본격적인 도입을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요인이 상당히 남아있다. 우선 자동차 제조사 입장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안전성 검증이다. 인 카 게임은 운전자의 주행 집중력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어 과거 안전상의 문제로 운전 중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Digital Multimedia Broadcast; DMB)을 시청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이 생긴 것처럼 인 카 게임에 대해서도 확실한 안전 규제 수립이나 기술 발전이 선행되어야 상용화될 수 있다. 또한, 국가별로 차량 안전 규제와 게임규제가 상이한데 인 카 게임은 두 규제 모두 준수해야 하므로 이를 조율하기 위한 초기 비용이 많이 들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적인 제약에도 불구하고 인 카 게임은 막대한 잠재력을 가진 시장임은 분명하다. 다만, 이제 성장 초입에 들어선 상황에서 게임 개발사가 고려해야 할 점도 많다. 먼저 안전 측면에서 게임 이용 중 사고가 발생한다면 게임 개발사도 이러한 논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에 게임 개발사는 가능성을 사전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거치형 콘솔 같은 고사양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AAA 게임 이용자만을 목표로 한 게임 유통은 적절하지 않은 진입 전략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낮은 속도에서도 원활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카드, 체스 등 턴제 게임 탑재가 실시간으로 반응해야 하는 MMORPG 게임보다 인 카 게임시장 성장에는 더 긍정적일 수 있다. 따라서 인 카 게임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현시점의 기술적 한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한계에 맞추어 이용자 경험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게임을 배포할 수 있도록 자동차 제조사와 게임 개발사가 긴밀히 협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