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et의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테이지 파이터>는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 등 순수무용을 소재로 Z세대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시청각 경험과 공감을 제공하며, 순수무용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경쟁적 서사를 통해 무용수들의 열정과 노력을 조명하면서도 타고난 신체 조건의 잔인함을 드러내는 점에서 공정과 노력에 대한 젊은 세대의 이상을 반영한다.글. 김도희(Z세대,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미디어학과 석사)
Mnet <스테이지 파이터>(이하 스테파)는 기존에 방영된 스트릿 댄스 시리즈인 <스트릿 우먼 파이터>, <스트릿 맨 파이터>에 이은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발레, 현대무용, 그리고 한국무용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세 가지 분야의 무용수들이 치열한 경합을 벌인다. K팝 아이돌 댄스나 스트릿 댄스는 비교적 대중적인 춤의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반면, 발레를 비롯한 순수무용을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것은 시청자에게는 생경한 시청각적 경험이 될 수 있으며, 순수 예술의 대중화에 기여할 수 있고 각 무용수가 팬덤을 확보할 수 있는 채널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특히 Z세대가 <스테파>에 열광하는 이유를 탐색하고자 한다.
[그림 1] <스테이지 파이터> 로고 (자료: Mnet Plus)
도파민 중독, Mnet표 서바이벌 예능
<스테파>에서는 발레 16인, 현대무용 24인, 한국무용 24인, 총 64인 무용수들의 계급을 퍼스트, 세컨드, 언더, 세 개의 층위로 구분했다. 이 계급은 각각 무대에서 주역을 맡는지, 조역 역할을 하는지, 혹은 군무를 담당하는지에 따른 체계이다. “First Position. Music Start!” 오디션 음악이 틀어지면, 무용수들은 제각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에 질세라 마스터인 김주원 발레리나를 비롯해, 각 장르의 코치진들은 빠르게 움직임을 쫓는다. 시청자들 역시 무용수들의 춤에 몰입하면서 코치진의 평가에 귀 기울인다. 오디션이 끝난 후 긴장감 넘치는 정적도 잠시, “Unfortunately, you’re rated under(안타깝게도 언더 계급을 받으셨습니다).” 매튜(Matthew Rich) 디렉터의 말 한마디에 무용수들의 희비가 엇갈린다. 각자 무용을 시작한 계기도, 춤을 춘 기간도, 쌓아온 경력도 다르지만 춤을 좋아하고 잘 추고 싶다는 열망은 같았기 때문이다.
Mnet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서사에 익숙한 시청자라면 공감할 ‘악마의 편집’ 역시 ‘스테파’ 선공개 영상으로 흥미를 끄는 데 한몫했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시즌 1의 코카앤버터 (CocaNButter) 메가 크루 미션에서 등장해 얼굴을 알린 무용수 아이반은 참가한 현대무용수 중 유일한 비전공자로 등장해 시선을 끌었다. 대중에 이름을 알린 무용수가 현대무용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피지컬 & 테크닉 오디션에서 아이반이 주요 테크닉을 소화하지 못하는 장면으로 연결되게끔 편집해 독한 Mnet표 서바이벌을 다시금 확인케 했다.
<스테파>는 Z세대의 도파민을 자극하는 밈(meme)과 어록 ‘맛집’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예로, 한국무용 계급결정전을 위한 안무 창작 미션에서 최호종 무용수는 “모두가 다 할 수 있을까 고려하고 짠 건 아니고요. 경쟁이라는 타이틀 하나로 작품의 질이나 퀄리티가 조절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조절 안 했어요. 이걸 못하면 집에 가야지”라고 말하면서 춤에 대한 자부심과 경쟁 프로그램 특유의 신경전을 보여주며 흥미진진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프로그램에서 보인 어록 자체는 자극적일 수 있다. 그러나 난이도를 타협한 춤이 아닌 멋있는 춤, 노력으로 쌓은 실력을 보여주고자 하는 무용수들의 진심과 공정하게 경쟁하고 평가받고자 하는 태도는 Z세대의 ‘공정’에 대한 꿈과 이상을 대리로 실현해 주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림 2] <스테이지 파이터>일부 캡처 (자료: 유튜브 TheCHOOM)
Into the Unknown: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순수무용의 매력
순수무용 공연을 관람하기에는 진입장벽이 느껴지기도 한다. 왠지 무용을 제대로 알아야만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관람 시 격식을 차리는 옷을 입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의 <2023년 총결산 공연시장 티켓판매 현황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공연시장에서 무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공연건수 4.0%, 티켓예매수 2.8%, 티켓판매액 1.5% 수준으로 대체로 낮다. 또한 무용에서 가장 티켓판매 수요가 높은 장르는 발레로,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에 비교했을 때 티켓예매 수는 62.5%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즉, 순수무용 공연을 관람하는 경우가 적긴 하지만, 현대무용과 한국무용에 비해 발레 관람이 상대적으로 더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스테파>는 순수무용 공연을 대중적인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영상화하여 순수무용의 문턱을 낮췄다는 데 의미가 있다. 실력이 가장 기본이 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미션에 따라 창작의 고통을 느끼면서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무용수들의 모습을 보며 Z세대는 공감과 기대를 동시에 하게 된다. 프로그램 초반에는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의 경계를 엄격하게 구분해 장르별 ‘계급 전쟁’을 치르는 방식이 이어지다, 이후에는 점차 장르 간의 경계가 느슨해지고 세 장르의 무용수들이 함께 경쟁하고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가는 형태로 변화했다. 초반 장르별 경쟁으로 시청자들은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 무용수들을 각각 익히고, 낯설기만 했던 각 장르의 특징과 테크닉 용어들을 배우게 되었다. 또한 각 분야 전문가인 코치진들이 춤에 호응하고 피드백을 하게 되면서 ‘멋있다’는 단순한 감상 이상으로 춤 자체를 받아들였다. 시청자들이 낯설었던 순수무용에 조금 익숙해질 때쯤 세 장르가 섞여 다시 ‘계급 전쟁’이 펼쳐졌는데, 이때 시청자들은 장르의 경계를 넘어 자신의 색깔과 매력을 보여주는 무용수들을 응원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장르 간 자존심 대결이 펼쳐져 같은 장르 무용수들끼리 결속이 더 강해지기도 했다. 김유찬 무용수가 메가 스테이지 미션에서 발레 무용수 중 유일하게 주역을 차지했을 때나, 강경호 무용수가 K-콘텐츠 <오징어 게임> 작품에서 플로어 테크닉을 잘 소화했을 때처럼 말이다.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 세 장르의 차이를 느끼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장르별 ‘댄스 필름 풀버전’ 영상을 추천한다. 발레의 ‘데빌 스완(Devil Swan)’, 현대무용의 ‘뱀파이어 소나타(Vampire Sonata)’, 한국무용의 ‘왕의 기원: 태평성대’까지. 댄스 필름 미션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발레는 장르 특성상 안무 창작이 상당히 낯선 영역이라는 사실이다. 계급 결정전에서 ‘퍼스트’를 차지한 무용수들에게 주어진 오디션 안무 창작 기회는 현대무용수들과 한국무용수들에게는 솔깃한 베네핏이었다. 반면, 정해진 레퍼토리에 맞춰 춤을 추며 플로어는 거의 이용하지 않는 발레 무용수들에게는 큰 도전이 될 수밖에 없기에 미션 수행 과정을 더욱 기대하게끔 했다. 더불어 주역, 조역, 군무가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하고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은 웅장하기까지 하다. 역할의 크고 작음을 떠나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고 본업에 충실한 무용수들의 모습은 경쟁이라는 키워드를 잠시 잊게끔 한다.
<스테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요소는 무용수들 사이의 ‘관계성’이다. 이들의 관계를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친밀한 경쟁자’이다. 먼저, ‘선후배’ 관계다. 해당 무용의 전공자들이 주로 등장한 만큼, 한국예술종합학교, 세종대학교, 한양대학교 등 무용과 선후배 사이인 출연자들이 다수이고, 서로의 춤 실력과 스타일을 잘 알기 때문에 견제와 존중이 동시에 발생한다. 다음으로, ‘사제지간’의 경쟁도 흥미로웠다. 한국무용의 최호종 무용수는 김규년 무용수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K-콘텐츠 <기생충> 미션에서 스승과 제자가 같은 작품의 메인 주역을 맡아 팀 경합을 하게 되면서 묘한 경쟁 구도를 형성하기도 했다. 마지막은 ‘라이벌’ 관계다. 일례로, 현대무용수인 윤혁중과 박진호는 국제 콩쿠르 수상 경험이 있다는 공통점을 제외하고도 실루엣이나 테크닉 강점이 비슷해 서로를 라이벌로 뽑았다. 이러한 경쟁 관계가 재미 이상의 감동을 자아내는 이유는 페어플레이를 기본으로, 서로의 실력과 노력을 존중하고, 춤에 대한 진심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현대무용 계급 결정전에서 윤혁중 무용수가 박진호 무용수의 춤에서 독기와 간절함을 보고 응원하는 모습을 봐도 그렇다.
[그림 3] <스테이지 파이터> 일부 캡처 (자료: 유튜브 TheCHOOM)
냉정한 예술의 세계, 재능 vs. 노력
춤의 아름다움과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재미 뒤에는 잔인한 현실도 있다.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인만큼 타고난 신체가 주는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잔인한 사실은 그 아름다움이 다소 지배적이며 주요한 평가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노력의 영역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참가자들이 보여준다. 경쟁 사회에서 자유롭지 못한 젊은 세대들은 타고남의 영역이 부각되는 예술의 세계를 직관하면서 아름다운 신체를 가진 또래 무용수들을 동경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무용수들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몸을 숨길 수 없어요”, “타이츠로는 몸을 못 숨기죠”. 마스터인 김주원 발레리나와 리허설 디렉터인 매튜가 나눈 대화이다.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불공평한 예술인 발레. 키, 다리 셰이프 등 그 어떤 장르보다 피지컬의 조건이 중요한 만큼 모두가 같은 옷을 입고 동일한 동작을 하는 ‘바(Barre) 테크닉’ 오디션에서 이 장르의 특성이 도드라졌다. “몸 푸는 데도 기죽는데요?”, “확신의 주역상” 등 발레 무용수들은 솔직한 감상을 말하기도 했다. 현대무용과 한국무용에서도 피지컬의 중요성은 무시할 수 없다. 키가 작은 무용수들은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무대 앞으로 향하거나 고난이도 테크닉을 선보이는 등 무대 센스와 강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타고난 피지컬이 곧 춤의 아름다움과 무대에서의 역할을 결정짓는 주요한 요소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무수한 재능과 노력의 대결에서 압도적으로 전자가 승기를 가져온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림 4] <스테이지 파이터> 일부 캡처 (자료: 유튜브 TheCHOOM)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는 ‘과몰입’을 빼놓을 수 없다. ‘준사회적 상호작용(Parasocial Interaction)’은 시청자가 미디어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하나의 인간적 상호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Horton & Wohl, 1956). Giles(2002)는 시청자가 미디어 속 등장인물과 감정적인 연대감을 형성하면서 상호소속감을 느끼거나, 감정이입, 유사성, 매력, 우정 등의 감정을 실제로 이들과 교류하는 것만 같이 느낀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Z세대인 또래의 무용수들이 춤에 진심으로 임하면서도 타고난 체형으로 인해 좌절을 겪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안타까워하기도 응원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시청자들은 환상과도 같은 미디어 속 인물들과 ‘준사회적 상호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비단 재능(타고남, 바꿀 수 없는 영역 등으로 대치 가능)과 노력 중 어떤 영역이 더 중요한지에 대한 첨예한 저울질은 예술계에서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을 뿐, 우리의 일상과 별개는 아니기 때문이다.
TVING과 유튜브 더춤(The CHOOM): 본방송과 비하인드 콘텐츠의 시너지
<스테파>의 본방송 시간은 매주 화요일 밤 10시이다. 그러나 OTT 등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영상 콘텐츠가 늘어나면서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비선형적(Non-Linear) 시청을 통한 능동적이고 개인화된 시청 경험이 많아지고 있다. 특히 Z세대들은 유튜브 숏츠, 인스타그램 릴스, 틱톡 등 숏폼 콘텐츠를 즐겨 시청한다는 점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지는 흥행에 있어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스테파>의 경우 스트리밍 플랫폼인 티빙(TVING)을 통해 전체 에피소드를 시청할 수 있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평균적으로 2시간 내외의 긴 러닝타임을 가진다는 것을 고려할 때, 시청자들은 ‘되감기’, ‘다시 보기’, ‘배속’, ‘오프닝 건너뛰기’ 등을 이용해 원하는 콘텐츠를 원하는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다. 더불어 유튜브 채널인 더춤(The CHOOM)을 통해 미션 비하인드, 요약본, 본방송에서 편집된 무대, 무용수별 직캠, 숏폼 콘텐츠 등 다양한 영상을 시청할 수 있어 본방송과 유튜브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본방송에서 비중이 큰 무용수들 외에 군무를 담당하는 무용수들의 숨은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도 관전 요소다.
[그림 5] <스테이지 파이터> 유튜브 콘텐츠 (자료: 유튜브 The CHOOM)
유튜브 채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미디어와 팬덤, 그리고 참여문화(participatory culture)에 대한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 Jenkins(2006)에 따르면 참여문화는 “다른 소비자들이 새로운 콘텐츠의 창작과 유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초대하는 문화”(p.3)이다. 이전 스트릿 댄스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스테파>역시 시청자들의 온라인 투표가 포함된 미션도 있으며, 이외에도 시청자들은 유튜브 영상 시청 시 ‘좋아요’를 누른다거나, 댓글을 달거나, 새로운 영상을 창작해 올리기도 하는 등 적극적인 팬덤이 되어 관여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중독자에게 <스테파>는 즐거움 이상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악마의 편집’이라거나, 주어진 미션이 과도한 체력전으로 이어져 부상 위험이 있다는 비판도 달게 받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스테파>가 순수무용의 문턱을 낮추고 대중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춤의 도전을 직관할 수 있다는 점, Z세대 무용수들의 모습에 공감하고 팬덤을 형성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분명 그 인기의 요인을 실감할 수 있다.
참고자료
- 공연예술통합전산망, 2023년 총결산 공연시장 티켓판매 현황 분석보고서, 2024.2.20.
- Giles, D. C., Parasocial interaction: A review of the literature and a model for future research. Media psychology, 4(3),279-305, 2022.
- Horton, D., & Wohl, R., Mass communicationand para-social interaction: Observations on intimacy at a distance. Psychiatry, 19(3), 215-229, 1956.
- Jenkins, H, Fans, bloggers, and gamers: Exploring participatory culture. New York University Press, 2006.
- 김도희 (Z세대,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미디어학과 석사)
- 고려대학교에서 미디어학과 경영학을 이중 전공하였으며, 미디어산업, 미디어 다양성 등에 관심이 많은 Z세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