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 콘텐츠 시장이 급성장하며 새로운 비즈니스 패러다임을 형성하는 가운데,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네트워크 인프라와 K-콘텐츠의 글로벌 경쟁력을 바탕으로 숏폼 콘텐츠산업을 발전시켜야 하며, 이는 디지털 콘텐츠 생태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글. 김태원(엠젯패밀리 대표)
디지털 콘텐츠 생태계가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특히 숏폼 콘텐츠는 이제 단순한 짧은 영상 포맷을 넘어 새로운 비즈니스 패러다임을 만들어내고 있다.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2024년 글로벌 숏폼 시장 규모는 약 400억 달러로 추산되며, 향후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60%에 달할 전망이라고 한다. 2025년을 앞둔 시점에서 숏폼 콘텐츠 시장은 더욱 치열한 경쟁의 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장과 콘텐츠 홍수 속에서 국내 숏폼 콘텐츠의 기회는 어디에 있을까. 글로벌 숏폼 플랫폼 틱톡이 탄생한 국가이자 폭발적인 성장 중에 있는 중국 시장의 숏폼산업 발전 과정을 살펴보며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한국 숏폼산업의 기회를 찾아보고자 한다.
인프라와 생태계의 결합
중국 숏폼산업의 성공은 우연이 아닌 필연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 근본적인 배경에는 저가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전 국민이 스마트폰을 소유하게 되는 시점과 통신 기술이 3G에서 4G로 넘어가는 시점이 맞물린 것이 있다. 이는 전 국민이 고품질 영상을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림 1] 2019-2024년 중국의 숏폼 시장규모 예측도
여기에 캡컷(CapCut) 등 직관적인 편집 툴의 보급으로 누구나 쉽게 제작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콘텐츠에 대규모 트래픽이 몰리기 시작했고, 이 트래픽을 수익화하는 다양한 모델이 등장했다. 그 결과 더 많은 사람들이 크리에이터로 참여하게 되었다. 1)
플랫폼 알고리즘과 거대한 콘텐츠 생태계
2억 명의 크리에이터들은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경제, 금융, 산업, 교육 등 전 분야에 걸쳐 콘텐츠를 생산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각 분야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참여인데 이들은 전문 지식을 숏폼이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재해석하며 콘텐츠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이처럼 방대한 크리에이터와 콘텐츠 위에서 알고리즘은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콘텐츠는 알고리즘이 각 사용자의 취향과 관심사에 맞는 최적의 콘텐츠를 매칭하는 데 필수적인 데이터베이스가 되었다.
중국의 성공적인 숏폼 크리에이터들은 ‘구독해주세요’라는 말 대신 ‘좋아요’와 ‘다운로드’를 강조한다. 이는 단순한 선호도 표현이 아닌 알고리즘 최적화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천만 구독자를 보유한 메가 인플루언서조차도 플랫폼의 알고리즘 변화에 따라 영향력이 급감하는 사례들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는 플랫폼이 구독 기반이 아닌 알고리즘을 통해 매일 새로운 콘텐츠를 노출시키는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 콘텐츠 생태계 전반에 걸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첫째, 메가 인플루언서 시대가 저물고 있다. 더 이상 구독자 수는 영향력을 보장하지 못한다. 대신 그때그때 알고리즘을 잘 타는 크리에이터만이 주목받는 시대가 되었다. 둘째, 페이드 마케팅 2) 이 다시 중요해졌다.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항상 있기 때문에, 자신만의 수익화 모델이 존재하는 회사일수록, 트래픽을 구매하고 전환을 지속적으로 시도한다. 알고리즘이 얼마나 자신들을 드러내주는지 감을 잡아가는 것이다. 셋째, 플랫폼의 영향력이 절대적이 되었다. 구독 기반의 추천이 아닌 플랫폼이 의도하는 대로 알고리즘에 의해 매번 다른 숏폼이 노출된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천만이 넘는 구독자를 가진 크리에이터도 시간이 지나면서 플랫폼에 외면 받는 경우가 빈번하다.
중국 숏폼산업의 수익화 모델
중국 숏폼 시장의 대표적인 수익화 모델인 라이브커머스는 독특한 시장 환경에서 비롯된 성공 사례다. 물론 PPL 혹은 브랜디드 콘텐츠로도 돈을 버는 MCN이 있지만 시장이 커지고 숏폼 플랫폼에서 라이브 방송을 보는 사람들까지 생기자 많은 왕홍들이 숏폼 플랫폼에서 라이브 커머스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인지도를 바탕으로 왕홍들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물건을 팔기 시작했고, 애초에 짝퉁 혹은 불량제품에 고통 받던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즐겨보던 왕홍들이 홍보하며 판매하는 제품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그림 2] 2018-2023년 중국 라이브커머스 시장 규모
이러한 현상에 있어 모바일 결제의 보편화와 효율적인 물류 네트워크도 중요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공급 과잉으로 빚어진 파격적인 제품 공급가이다. 원가 구조가 이렇게 형성된 것에 대해 중국 전문가들은 미중 무역전쟁으로 생겨난 중국의 엄청난 재고들이 이런 방식으로라도 판매가 되어야하기 때문이라고 평한다.
하지만 한국은 중국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은 소비재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원가 구조상 라이브커머스를 통한 큰 폭의 할인이 제한적이다. 또한 숏폼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소비자들이 라이브 방송을 즐기는 사람들인지조차 불분명하다. 따라서 한국의 숏폼 콘텐츠의 사업화 방향은 라이브커머스가 아닌 다른 수익 방향을 찾아야 한다.
한국의 숏폼 인프라 및 생태계
현재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5G 네트워크와 97% 이상의 스마트폰 보급률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중국보다 시장 사이즈는 작지만 더 좋은 기술적 환경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인프라를 기반으로 고화질, 고용량의 숏폼 콘텐츠도 원활하게 스트리밍이 가능하며, 실시간 인터랙션이 요구되는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 실험도 가능하다.
한국의 콘텐츠 생태계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수십 년간 축적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전문성이다. 방송, 영화, 음악 등 전통적인 콘텐츠산업에서 쌓아온 기획력, 제작 노하우, 인적 네트워크는 숏폼 콘텐츠 제작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특히 스토리텔링 능력, 영상미 구현 기술, 트렌드 캐치 능력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수준이다.
둘째, K-콘텐츠의 글로벌 브랜드 파워다. 코로나 이후 한국 콘텐츠는 넷플릭스 등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그 가치를 재확인 받았다. K-드라마, K-팝, K-뷰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형성된 팬덤은 숏폼 콘텐츠의 글로벌 확산을 위한 탄탄한 기반이 될 수 있다. 특히 한국 콘텐츠 특유의 세련된 영상미와 트렌디한 감각은 숏폼 포맷에서도 차별화 요소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빠른 트렌드 수용성과 검증된 마케팅 능력도 강점이다. 새로운 플랫폼이나 콘텐츠 형식이 등장했을 때 이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현지화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이는 글로벌 숏폼 시장에서도 중요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특히 인플루언서 마케팅, 바이럴 마케팅 등 디지털 환경에서의 마케팅 노하우는 이미 충분히 축적되어 있다.
한국형 숏폼 전략의 방향성
이러한 한국의 강점을 살려 한국형 숏폼의 전략을 짜본다면 크게 프리미엄 콘텐츠, 글로벌 시장, 알고리즘 대응, 새로운 수익화 모델 개발 등으로 요약해볼 수 있다. 첫째, 프리미엄 콘텐츠 전략이다. 한국의 높은 콘텐츠 제작 역량을 활용하여 고품질 숏폼 드라마를 제작하고, 각 분야 전문가들의 지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전문가 콘텐츠를 고도화해야 한다. 또한 기존 IP를 활용한 연계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여 콘텐츠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는 중국의 대량 생산 방식과 차별화되는 한국만의 경쟁력이 될 것이다.
둘째, 글로벌 시장 공략이다. K-콘텐츠의 검증된 경쟁력을 바탕으로, 각 국가별 문화와 선호도를 고려한 맞춤형 수익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크로스보더 커머스와 글로벌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수익원을 다각화하고, 이미 형성된 글로벌 팬덤을 활용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특히 한류 콘텐츠의 영향력이 큰 지역을 중심으로 한 전략적 진출이 효과적일 것이다.
셋째, 알고리즘 대응 전략이다. 플랫폼의 알고리즘을 깊이 이해하고 대응하기 위해 데이터 분석 역량을 강화하고, 실시간 트렌드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A/B 테스트를 통한 콘텐츠 최적화는 물론, 글로벌 트렌드를 분석하고 이를 현지화하는 능력도 필수적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대응을 넘어 콘텐츠의 기획 단계부터 고려되어야 할 핵심 요소이다.
넷째, 새로운 수익화 모델 개발이다. 중국의 라이브커머스 모델을 그대로 답습하는 대신, 한국 시장에 적합한 독자적인 수익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프리미엄 구독 서비스, 전문 지식 콘텐츠의 수익화, IP 비즈니스 확장, 글로벌 브랜드와의 전략적 제휴 등 다양한 방식을 검토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의 강점인 고품질 콘텐츠와 전문성을 활용한 수익화 방안에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네 가지 방향성은 서로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으며, 이들을 통합적으로 추진함으로써 한국형 숏폼 콘텐츠의 독자적인 경쟁력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각 전략은 한국의 기존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글로벌 시장에서의 차별화된 포지셔닝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숏폼 콘텐츠는 이제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콘텐츠산업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성공의 핵심은 '규모'가 아닌 '차별화'에 있다.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에서, 한국은 독자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결국 한국의 숏폼 콘텐츠는 '또 하나의 플랫폼'이 아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산업의 변화가 아닌, 디지털 콘텐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과정이 될 것이다.
- 1) 중국 숏폼 플랫폼 콰이쇼우에 따르면 2023년에만 1.58억 명이 콰이쇼우에 숏폼을 올림
- 2) 광고비를 지불하여 콘텐츠나 브랜드를 노출시키는 마케팅 전략
- 김태원 (엠젯패밀리 대표)
- 북경대학교 금융경제학을 전공하고, 2014년까지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에 재직했다. 2016년부터 현재까지 국내외 인기 IP를 기반으로 웹툰 제작 및 다양한 콘텐츠 사업을 펼치는 (주)엠젯패밀리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