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방송사와 종편사에서 오랫동안 예능 PD로 일했다. 요즘 위기라고 많이 거론되는 전통적인 방송 예능을 제작했고, 예능 산업의 변화를 현장에서 오랜 기간 겪어왔다. 엑셀과 그래프의 숫자들이 제작 현장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2024년 방송 예능에 대한 요약과 2025년에 대한 전망을 현장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글. 임정아(모스트267 크리에이티브 책임자)
2049 타깃 시청자의 감소
우선 방송 예능을 둘러싼 수치들을 살펴보겠다. 방송 예능에 대한 평가는 광고 판매의 근거가 되는 타깃 시청률, 즉 20세부터 49세의 시청자 비율이다. 2049가 얼마나 시청했느냐가 방송 예능의 가장 큰 평가 기준이다. 그러나 TV 시청층은 2049보다 높은 연령대로 이동했다. 특히 20, 30대는 방송 예능을 보더라도 TV 방송을 통해 실시간 소비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프로그램의 높은 화제성이 반드시 높은 시청률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림 1] 연령별 TV 이용현황
연령이 높을수록 TV 시청이 많음
여전히 TV방송프로그램을 시청하기 위해 남녀노소 누구나 가장 많이 이용하는 매체는 TV 수상기였으나 이용(시청) 행태는 성별, 연령별, 주중, 주말 등 서로 차이를 보임
제작 현장에서는 2049 시청률을 올리라는 회사와 시청률을 현실화해달라는 PD들 사이의 요구가 부딪힌다. 해결은 단기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설상가상 높은 연령대의 TV 시청도 감소 추세다. TV 예능을 TV가 아닌 플랫폼을 통해 시청하는 비율이 늘고 있다. 시청률의 감소는 광고의 감소로 이어진다. 불행 중 다행인지, 각 플랫폼에서 가장 많이 보는 장르는 오락 예능이다. 예능 콘텐츠에 대한 관심은 높다.
[그림 2] 연령별 스마트폰 이용현황
스마트폰으로 보는 시청 장르 1위는 오락 예능
60대 이하 연령대에서는 10명 중 9명 이상으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있는 가운데, 70대 이상 고연령층에서도 이용률이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모든 연령대에 스마트폰 보급이 확산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
투자 없는 현상 유지
전반적으로 예능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는 것에 비해 이탈하는 2049를 잡지 못한 방송 예능에서는 TV 광고의 지속적인 감소가 가장 큰 이슈였다. 몇 년 전부터 체감하고 있던 바지만, 경제가 어려운 올해 현장에서 느끼는 감소의 폭은 더욱 가파르게 느껴졌다. 실제 방송 광고 시장 규모는 2022년 대비 17.7%(약 7,136억 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2023년 온라인 광고비는 2022년 대비 3.6%(약 3,154억 원) 증가할 것으로 추정되었고, 2024년에도 2023년 대비 4.1%(약 3,654억 원)의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한다고 한다.1) 느낌이 아니라 냉혹한 팩트였다.
광고 감소의 여파는 제작 현장부터 덮쳤다. 제작비 감소로 이어지고 신규 예능 축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방송되던 예능도 줄어들게 된다. 종방 혹은 휴방으로 혹한기 생존 전략을 다시 짜는 것이다. 그 결과, 방송사는 신규보다는 검증된 기존 예능을 유지 보수하는 소극적 전술을 쓰게 되었다.
MBC의 <나 혼자 산다>, <놀면 뭐하니?>, <라디오스타>, SBS의 <미운우리새끼>, <런닝맨>, <돌싱포맨>, KBS의 <1박 2일>, JTBC의 <뭉쳐야 찬다>, <아는 형님>, tvN의 <놀라운 토요일>, <유퀴즈 온 더 블록> 등이 여전히 간판 예능이다. 시즌물도 기존의 성공작 중심으로 리모델링되었다. MBC의 <푹 쉬면 다행이야>, <태어난 김에 음악일주>, tvN의 <백팩커2>, <텐트 밖은 이탈리아>, <삼시세끼 라이트>, 채널A의 <강철부대 W>등이 그러하다. 신규는 거의 없다.
[표 1] 주요 방송사 시즌제 예능
현장의 분위기는 어떨까. 2025년을 겨냥해 기획서를 쓰고 있는 PD는 고통스럽다. ‘슬롯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편성될 수 있을까? 몇 회나 기다려줄까?’ 라는 고민이 크게 마련이다. 예능 파일럿이므로 2회, 길어야 4회 안에 성공 또는 성공의 조짐을 보여줘야 한다. 동생 친구가 만드는 숏폼, 유튜브와 경쟁해야 하며, 작년에 이직한 동료가 만드는 대자본의 OTT와도 경쟁해야 한다. 신규 예능의 이름을 시청자에게 인지시키는 것조차 쉽지 않다.
경쟁 상황에서 신규 기획은 모험일 수 있다. 그만큼 새로운 예능을 만나기 어려웠던 2024, 콘텐츠의 다양성이 줄고 시청자의 선택권이 적어졌다. 이는 곧 채널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딱히 볼 게 없어’가 방송 예능의 이미지 중 하나가 되었다. 기존 예능 IP가 영원할 수 없기에 준비가 필요하지만, 현장 연출자들은 다소 의욕이 꺾이는 한 해였다. 투자 없는 현상 유지. 2024년 방송 예능의 모습이었다.
전통 장르의 약화, 리얼리티의 강화
예능 지각변동의 또 다른 조각은 토크쇼와 캐릭터 버라이어티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제 시청자들은 토크쇼와 야외 버라이어티를 TV가 아닌 유튜브를 통해 즐긴다. 채널에서 호스트와 게스트였던 ‘빅 캐스팅’의 주인공들이 이제는 본인 채널에서 호스트와 게스트를 번갈아 하며 자체 제작을 한다. 규제로부터 자유롭기에 ‘순한 맛’ 방송보다 재밌고 캐스팅도 좋다. TV 토크쇼는 오랜 강자 <라디오스타> , <유퀴즈 온 더 블록>등이 인기를 유지했지만, 신규 토크쇼는 생존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림 3,4,5,6] (왼쪽부터 시계방향) <신동엽의 짠한 형>, <핑계고>, 탁재훈의 <노빠꾸>, 장도연의 <살롱 드립>
토크쇼와 함께 축소된 장르는 <무한도전> 스타일의 야외 버라이어티다. 여러 명의 MC가 캐릭터를 쌓아가며 웃음을 주는 야외물이 거의 사라졌다. <놀면 뭐하니?>와 <1박 2일>, <런닝맨>등만 버라이어티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새로운 시도는 있었으나 정규화되지는 못했다. 반면 리얼리티 포맷은 방송 예능에서 강세를 이어갔다.
<나 혼자 산다(MBC)>, <미운 우리 새끼(SBS)>, <연애남매(JTBC)>, <언니네 산지직송(tvN)> 등과 특히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MBC)>에서 보여준 진정성 있는 리얼리티로 시청자의 눈높이는 상향되었다. 리얼리티를 표방했다가 어긋난 부분이 발견되면 시청자의 실망은 컸고, 비난에 직면했으며, 시청률은 떨어졌다. ‘리얼리티의 순도’가 중요한 시청 포인트가 된 것이다. 이제 제작 현장은 모든 주제를 리얼리티 포맷과 연결짓는다. 요리와 리얼리티, 여행과 리얼리티, 음악과 리얼리티. 2024년 연애, 배우, 셀럽 리얼리티 장르는 TV 예능이 여전히 우위를 차지했다. 유튜브의 개인이 하기엔 고비용 장르기 때문이다.
한때 트로트 오디션, 아이돌 오디션, 대국민 오디션, 성악 오디션, 힙합 오디션, 밴드 오디션 등이 경쟁적으로 제작됐다. 대한민국에 이렇게 음악 잘하는 사람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매해 새로운 노래 인재들이 쏟아져 나왔고 시청률과 화제성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부가 사업도 수익을 안겨주어 채널별 간판 오디션들이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점차 대형 오디션들이 사라지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높은 제작비에 낮은 시청률, 즉 고비용 저효율의 장르가 되었고 실질적으로 얻을 게 적다고 방송사들이 판단하게 되었다.
예능의 스튜디오화
올해 6월 MBC가 기획 및 제작 전문 스튜디오인 ‘모스트 267’을 설립했다. 앞서 KBS가 ‘몬스터 유니온’을 SBS가 ‘스튜디오S’와 ‘스튜디오 프리즘’을 설립했다. JTBC는 ‘SLL’과 ‘SAY’를 설립했고, SLL에는 <흑백요리사>를 제작한 ‘슬램(SLAM)’이 있다. 자체 플랫폼을 넘어 다른 플랫폼에도 콘텐츠를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예능의 스튜디오화는 플랫폼 환경과 수익구조 변화에서 비롯된 선택이다. 거실에 놓인 TV로 실시간 시청하는 소비행태가 아닌, 시간 장소 구애 없이 즐기는 동영상 플랫폼의 소비 시간이 늘고 있고, 해마다 감소하는 광고 수익만으로는 방송사의 지속 성장이 어렵기 때문이다. 스튜디오화는 수익의 창구를 다원화하는 시도다.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이용률은 2018년 33.6%에서 2023년 72.2%으로 크게 증가했지만 TV 이용률은 93.1%에서 91.6%로 줄어들었다.2)
예능 스튜디오에 대한 현장의 분위기는 복잡하다. 스튜디오는 시험 단계이고 성패도 미정이다. 그렇기에 안정적인 방송사에서 불확실한 스튜디오(제작사)로 위치가 바뀌는 것에 대한 현장의 고민이 많다. 스튜디오가 제공할 다양한 도전과 시도 속에서 PD들이 얻게 될 경험과 성장이라는 긍정적인 면도 있고,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안정적 기반을 없앤다는 불안감도 있다. 결국 이 둘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방송사와 스튜디오를 채울 창작 인력풀의 수준을 결정지을 것이다.
OTT 예능의 글로벌 성공
이 글의 범주가 OTT 예능은 아니지만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의 성공이 주는 의미가 방송 예능에도 적지 않기에 언급하고자 한다. 2024년 <흑백요리사>의 성공은 방송 현장에 두 가지를 남겼다. 첫째는 상실감 섞인 부러움, 둘째는 한국 예능의 가능성이다.
요리, 셰프, 경연은 많은 예능 PD가 다뤄온 오랜 주제다. 그것을 재창조해낸 <흑백요리사> 제작진의 뛰어남을 칭찬함과 동시에, 투입된 자본의 규모에 예능 PD들은 부러움과 상실감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성공 후 SNS에 돌아다녔던 무명의 글은, <흑백요리사>를 기존 방송 예능이 했을 때 어떤 모습이 되었을지에 대한 자조 섞인 패러디였다. ‘아껴라, 줄여라, 예능은 가성비다’에 맞춰 기획을 자르고 잘라 조그맣게 만들었던 2024년의 예능 PD들에게 <흑백요리사>의 성공은 충격이었고 부러움이었다.
동시에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했다. 한국 음악, 음식, 드라마, 문학까지 글로벌 핫 트렌드로 자리 잡았지만, 예능은 유머라는 국지적 코드 때문인지 앞선 장르들만큼의 성공은 맛보지 못했다. <흑백요리사>의 글로벌 성공은 한국 예능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방송 예능의 돌파구를 제시해 주었다.
2025년 방송 예능 전망
그간 방송 예능은 유튜브와 OTT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예능의 여러 장르를 내어주거나 플랫폼의 규모에 눌렸었다. 방송 예능의 장점을 잊고 유튜브를 따라 하기도, OTT의 규모를 취하기도 했었다. 혹독한 수업료를 냈다. 내년에도 방송산업의 환경은 어려울 것이다. 최대한 예측하면서 심기일전 준비해야 한다. 2025년은 어떤 모습일까.
검증된 포맷의 리부트 제작이 증가하리라 예상한다. <흑백요리사>의 성공을 보았으므로, 과거 요리, 셰프, 경연을 다뤘던 방송사들은 종영했던 유사 포맷에 심폐소생술을 할 것이고 제작 규모는 키울 것이다. 2024년이 정규 예능 중심의 지키기였다면 2025년은 성공했던 익숙한 포맷에 규모의 제작비를 투여해 안정성과 시장성을 높인 ‘리부트 신규’가 탄생하리라 전망한다.
요리 외에도 여행과 전문지식(전문가, 전문성) 등이 계속 예능의 키워드가 되리라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피로하고 불확실하며 예능을 보는 시청자들의 이유도 ‘즐거움과 실용성’으로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IP 확보의 노력이 계속될 것이다. IP 확보와 이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수익구조의 모색이 없이는 생존은 힘들기 때문이다.
채널 플랫폼을 넘어 다양한 외부와의 협업도 유연하고 개방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외연의 확장 없이는 지속 성장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협업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증가된 제작비도 한몫 한다. 이외에도 디지털 및 신기술과의 결합도 적극 고려될 것이다. 예능 콘텐츠의 전달과 소비, 제작 방식에서 새로운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시장의 변화에 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멀리 떠내려가게 될 것이다.
결국 이러한 전망과 예측을 의미 있는 결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제작 주체다. 리부트 신규로 상반기는 이어갈 수 있겠지만 결국 필요한 것은 강력한 신규 IP다. 이를 만들어 내는 주체가 있느냐에 따라 하반기 예능의 지형도가 달라질 것이다. 방송 예능은 그간 성공의 기반이 되어줄 인적 물적 시스템을 축적해 왔다. 이제 집중해서 스토리, 포맷, 구성, 연출을 창조적으로 구현해 낼 때다. 유튜브도 OTT도 아닌 방송 예능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2025년 방송 예능에 대한 필자의 바람을 담아,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전망해본다.
- 1)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2023 방송통신광고비조사 보고서, 2024.1.17.
- 2) 이성민, 한국콘텐츠진흥원 <방송영상 트렌드>vol.40, ‘방송사의 돌파구일까? 제작 스튜디오 설립과 IP 비즈니스’, 2024.10.14.
- 임정아 (모스트267 크리에이티브 책임자)
- MBC와 JTBC에서 <지오디의 육아일기>, <신동엽의 러브하우스>, <무릎팍도사>, <라디오스타>, <비정상회담>,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등 다수의 인기 프로그램을 기획·연출하며 여러 방송대상과 백상예술대상을 수상한 크리에이티브 전문가로, 현재 모스트267의 크리에이티브 책임자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