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드라마 트렌드는 여성 서사를 중심으로 워맨스, 쌍방 구원, 상대적 선악 등 기존 서사에서 벗어난 다층적 관계와 가치관을 반영하며, 힙트레디션과 뉴트로 같은 복합적 문화 요소가 확장되었다. 2025년에는 Z세대의 복합적 문화 수용력 확대와 함께 퀴어 서사와 숏폼 콘텐츠가 주목받으며 더 진화한 형태의 융복합 드라마 트렌드가 지속될 전망이다.글. 김헌식(평론가 / 중원대학교 사회문화대학 특임교수)
2024년 드라마 트렌드는 이전의 이머징 이슈가 확장되는가 하면, 이전의 트렌드가 저문 모습도 보여줬다. 어느 하나의 개념으로 규정할 수 없는 융복합이 대세였고, 상대적인 구도의 드라마가 주목을 받았다. 또한 OTT 드라마가 주춤하는 사이에 지상파와 케이블 드라마가 오히려 약진하는 사례가 있어, 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지나친 장르화보다는 대중적 수용성이 소위 ‘먹혔다’는 것이다. OTT 오리지널 콘텐츠의 포화 속 희망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2024년에는 작년부터 활발해진 여성 서사가 전면적으로 확대된 분위기였다. 사극이나 액션물, 복고물에서도 여성 주인공의 활약이 눈부셨다. 상대적으로 여성들이 좋아하는 남성 배우보다 여성들이 좋아하는 여성 배우들이 더 주목을 받았다. OTT도 여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이를 잘 활용한 국내 방송사들이 약진한 것이다. 본 글에서는 2024년 드라마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드라마 속 새로운 관계 패러다임
2024년에는 이전보다는 워맨스(Woman+Romance) 코드가 강해졌다. 워맨스 코드 이전에는 여성 서사가 있더라도 여성들 사이의 관계는 부정적이거나 적대적이었다. 이 때문에 여주인공의 성공을 부각하기 위해 악녀가 등장했다. 악녀는 삼각관계를 형성하거나 암투와 음모를 유발했다. 승진이나 직업적 성공, 사랑의 쟁취 상황에서 여성끼리 경쟁이나 대결을 벌어야 했다. 결말은 승자와 패자의 뚜렷한 도출이 잦았다. 하지만 ‘워맨스’ 코드의 드라마는 적대적 경쟁이나 승부 짓기보다는 선의의 경쟁을 하거나 콜라보를 통한 시너지 효과를 최대화했다.
예컨대 드라마 <굿파트너(SBS)>에서 신입 후배 변호사와 역전 노장 선배 변호사가 여기에 해당한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긴장과 갈등 관계에 처하지만, 곧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하면서 서로 성장하는 모습이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또 하나의 사례로 드라마 <정년이(tvN)>를 들 수 있다. 드라마 <정년이>에는 국극 스타를 꿈꾸는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이 서로 처음에는 경쟁을 벌이는 듯하지만 나중에는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가 하면, 서로의 배역을 위해 영감을 자극하거나 숨겨진 역량을 끌어내 주기도 한다. 특히, 서로의 상처와 아픔을 확인하며 삶을 공감하고 꿈을 향해 나가려 하는 모습이 긍정의 에너지를 공감하게 했다. 드라마 <낮과 밤이 다른 그녀(tvN)>에서는 조카와 이모가 협력해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사회적 차원에서 시니어 인턴 제도를 통해 신구 세대의 상호 보완을 가능하게 했다.
쌍방 구원은 남성 여성 주인공의 수평적 관계를 통한 상호 보완으로 보이며 이를 통해 치유의 심리적 효과를 전제로 한다. 쌍방 구원 서사에서는 신데렐라 콤플렉스 같은 드라마는 있을 수 없다. 대표적인 사례는 <선재 업고 튀어(tvN)>와 임솔이었다. 선재는 죽음에서, 임솔은 장애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게 상호 구원을 해주었다. 초능력을 잃은 남자 주인공 복귀주와 과거 그가 구한 여성 주인공 도다해가 등장하는 JTBC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에서 결국 여자 주인공이 반대로 남자 주인공에게 도움을 주며 쌍방 구원을 이루어간다. 신데렐라라고도 불렸지만, 넓게 보면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도 쌍방 구원 서사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백현우가 홍해인에게 결핍된 감성과 영혼을 찾아 주고, 홍해인은 사회적 정체성을 세워주기 때문이다. 이런 쌍방 구원 서사의 관점에서 보면 연상녀-연하남 트렌드도 저물 수밖에 없다. 물론 드라마 <졸업(tvN)>, <함부로 대해줘(KBS2)>, <손해 보기 싫어서(tvN)>, <새벽 2시의 신데렐라(채널A)>등의 ‘연상연하’ 드라마는 팬들을 어느 정도 확보해 나갔다.
힙트레디션과 뉴트로가 만든 서사의 전환
힙트레디션의 관점도 생각할 수 있었다. 힙트레디션(Hip+Tradition)은 전통적인 사물이나 물건을 재해석해 즐기는 현상을 말한다. 드라마에서의 힙트레디션은 사극에서 잘 등장하지 않았던 소재와 배경으로 드러났다. 잘 다루지 않았던 시대적 배경을 채택한 KBS <고려 거란 전쟁>을 꼽을 수 있다. 판타지나 퓨전 사극이 많은 가운데 정통 사극으로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더구나 조선 시대 궁궐 사극이 많은 흐름에서 차별화는 고려 시대의 승리한 전쟁을 다뤘다는 점이다. 장쾌한 전투장면과 치열한 지략 싸움은 흥미진진한 긴장감과 더불어 극적 재미를 주기도 했다. MBC <밤에 피는 꽃>은 수절 과부의 캐릭터를 완전히 뒤집는 설정으로 눈길을 끌었다. 수절 과부가 집안에만 있지 않고 사회 정의를 위해 활약하면서 코믹로맨스 히어로 사극을 구현했다. 궁궐 사극에서 벗어나 당대의 지배층의 모순과 허위의식까지 드러내 주어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챙겼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간 사극의 큰 축이었던 세자를 중심으로 한 궁궐 사극은 퇴조한 한 해였다.
뉴트로가 힙트레디션과 다른 점은 현재의 트렌드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정년이>는 1950년대의 국극(國劇)을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오늘날 아이돌 기획사나 오디션 개념을 충분히 떠올릴 수 있게 연출했다. <선재 업고 튀어>의 경우 단순히 복고적 감성을 자극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스타와 팬 사이의 구원을 통해 마치 방탄소년단과 그 팬덤 ‘아미’와 같은 아이돌과 팬의 관계를 생각할 수 있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단순히 학원물은 힘을 쓰지 못하는 면도 보인다.
상대적 선악은 한국 드라마가 이전에 지녔던 한계를 벗어나는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권선징악은 이해와 몰입은 쉽게 하지만 지속성이 적어지거나 공감의 깊이가 옅다는 한계가 있었다. 드라마 <커넥션(SBS)>은 모범 경찰이 마약범으로 몰리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친구 관계의 이면을 학교 폭력을 양산하는 한국 가족주의 모순과 함께 잘 형상화했다. 드라마 <백설 공주에게 죽음을(MBC)>은 비슷하게 친구 관계와 가족주의 모순을 바탕으로 살인범으로 몰려 진실을 밝히려는 주인공의 고군분투를 공감하게 했다. 또 다른 MBC 드라마 <이토록 친절한 배신자>에서는 자신의 딸이 연쇄 살인범으로 몰리는 상황에서 딸을 보호하려는 형사의 이중적 태도를 내밀한 심리 묘사와 상황의 긴박한 연출을 통해 호평을 끌어냈다. ENA 드라마 <유어 아너>에서도 아들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두 아버지가 등장하는데, 판사가 가해자의 아버지로 조폭 출신 기업가가 피해자의 아버지로 등장해 불꽃 튀는 대결을 벌여 화제작이 되었다.
드라마의 확장과 연결: 콜라보와 스핀오프
콜라보의 키워드로 보면 전혀 다른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의 연합이 많았다. 드라마콜라보의 키워드로 보면 다른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의 연합이 많았다. 드라마 <재벌X형사(SBS)>는 변호사 자격증이 있는 천방지축 재벌 3세가 경찰이 되면서 공조수사를 펼치는 내용이다. 2022년, 같은 방송사의 드라마 <소방서 옆 경찰서>에서 소방과 경찰이 공조를 펼쳤고, 이어서 2023년 시즌2인 <소방서 옆 경찰서 그리고 국과수>에서는 소방과 경찰에 이어 국과수의 전문 인력까지 협업하는 설정을 가져갔다. 드라마 <페이스미(KBS)>에서는 성형외과와 형사의 콜라보를 선보였는데, 성형외과 의사는 환자의 외상만 봐도 사고의 과정과 이력 그리고 치료 방법까지 도출하는 능력을 지닌 인물이다. 이 능력을 형사와 공조하여 사건 수사 해결에 이바지한다. 드라마 <크래시(ENA)>는 그간 잘 다뤄지지 않았던 교통사고 전문 수사팀이 등장해 주목을 받았는데, 보험사 직원 캐릭터가 합류해 콜라보 관점에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종 직업 종사자 간의 협업을 넘어 세대 간 콜라보도 생각할 수 있다. 드라마 <낮과 밤이 다른 그녀(JTBC)>는 판타지스러운 설정에도 불구하고 취준생이 시니어 인턴으로서 검사실에서 일하는가 하면 연쇄 살인 사건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스핀오프는 기존 드라마 IP의 파생 콘텐츠로서 그간 제대로 된 사례를 찾기 힘들었는데, 2024년에는 제대로 된 사례가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바로 드라마 <비밀의 숲(tvN)>에서 스핀오프된 티빙 오리지널 <좋거나 나쁜 동재>로 원작에서 악역이었던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또 다른 10부작을 완성했다. <비밀의 숲>에서 서동재는 본래 부패 검사로 나오지만, <좋거나 나쁜 동재>에서 과거의 잘못에서 벗어나려 고군분투하는 인물로 그려지며 현대 직장인들의 애환까지 담았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서동재 캐릭터를 아낀 팬들이 있었고, 스핀오프의 시즌 2를 내달라고 요구하는 등 팬덤 구축에 성공했다. 또 다른 티빙 오리지널 <사장님의 식단표>는 tvN <손해 보기 싫어서>의 스핀오프 드라마이다. <손해 보기 싫어서>에 등장하는 19금 웹소설 작가 남자연이 쓴 작품이 <사장님의 식단표>인데, 스핀오프에서는 작가가 자신의 소설 여주인공으로 빙의해서 남자 주인공과 예측 불허의 로맨스를 펼치기 때문이다. 단 2부작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본편인 드라마 <손해 보기 싫어서>가 종영하고 곧바로 스핀오프 작품이 공개되며 IP의 생명을 연장시켰다.
2025년 드라마 트렌드 전망
2024년에는 익숙한 것들이 재발견되고 새롭게 탄생했다. 결이 있는 조직화를 통해서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하는 것과 같았다. 이를 위해서는 각 장르의 문화 유전자를 잘 파악하고 그 생리에 맞게 유전자 가위를 작동시키는 역량이 중요했다. 이러한 경향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Z세대가 문화적 수용력이 넓어지면서 복합적인 문화기호의 창출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과거의 낡은 것이라도 다시금 그 가치를 창출하는 것에 열광하고 있다.
그 맥락을 이어서 2025년에는 여전히 워맨스 코드가 여성 서사의 메가 트렌드 속에서 선전할 것으로 보인다. 옛 것, 또는 과거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현재의 트렌드와 접목시키는 드라마 트렌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복합적인 관계나 장르의 융복합을 다루는 드라마도 계속될 전망이다. 드라마 <정년이>에서 퀴어 코드가 화제였던 것으로 보아, 2025년에는 퀴어 코드가 본격적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더 많은 BL물의 진입도 예상해볼 수 있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드라마의 포맷이다. 최근 몇 년간 해외를 중심으로 시장 점유율을 늘려가고 있던 숏폼 드라마였다. 이제 국내에도 숏드라마 플랫폼의 경쟁이 시작된 모양새다. 방송사의 문법과는 달리 1분 내외의 막장에 가까운 자극적인 소재와 과금모델까지, 완전히 새로운 판을 짜고 있다. 이러한 짧은 드라마의 확산세를 주목할 필요성이 더욱 커지는 2025년이 될 전망이다.
- 김헌식 (평론가 / 중원대학교 사회문화대학 특임교수)
- 중앙대학교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정책학 박사과정을 거쳐 건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화콘텐츠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지역문화콘텐츠연구원 연구위원,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콘텐츠가 개인과 사회를 반영하고 변화하는 맥락들을 짚어보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 <김헌식의 K 콘텐츠 혁명>, <대중문화 심리 읽기>, <케이팝 뮤직의 DNA>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