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공영방송사들이 해외 OTT에 대응해 출시한 프릴리(Freely)는 인터넷 기반 방송 전환과 공영성 강화를 목표로 하지만, 접근성과 경쟁력 문제로 성과는 미지수다. 이는 한국 방송사에도 해외 시장 확장과 공공성 확보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을 시사한다.글. 김태영(영국 러프버러대학교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과 교수)
공영성 강화 또는 수익 다각화
지난 4월, 영국의 지상파 4사인 BBC, ITV, 채널4, 그리고 채널5가 합작하여 실시간 방송과 각 방송사가 가진 콘텐츠들을 함께 볼 수 있는 프릴리(Freely)라는 새로운 OTT 서비스를 출시했다. 무료라고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2024년 기준으로 1년에 169.5파운드(한화 약 30만 원)에 달하는 시청료를 납부하고 있는 사람들에 한하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영국 내 2천 4백만 명의 시청자들에게 제공되는 일종의 부가서비스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프릴리 이전에도 영국 지상파 4사는 방송 플랫폼 시장에서 협력을 이어왔는데, 2002년 우리에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독점 중계권을 가진 회사로 알려진 스카이TV(SKY TV)와 함께 프리뷰(Freeview)라는 무료 디지털 TV 플랫폼을 출범시킨 바가 있다. 자사들이 제공하는 십여 개의 채널 이외에도 80여 개의 케이블 채널들을 무료로 제공하는 프리뷰는 2023년 기준으로 1,600만 명 가량의 시청 가구를 확보하며 영국 디지털 지상파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했다. 프릴리도 지상파 공영방송들의 시장 점유율을 담보하고 보편적 접근권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프리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BBC의 팀 데이비(Tim Davie) 사장은 영국 공영방송들이 주축이 되어 제공하는 서비스인 프릴리가 인터넷망을 기반으로 한 방송의 전환을 촉진하고 영국 시청자들에게 무료로 고품질의 영국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하며 방송의 공영성을 제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자평했다(Clarke, 2023).
IPTV로의 시스템 전환과 공공성 제고라는 당위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프릴리는 해외 OTT 사업자들의 공세에 눌려 수세에 몰린 영국 방송사들이 합종연횡을 통해 덩치를 키워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최근 수년 간 영국 OTT 사업자들은 국내 시장에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24년 3분기 기준 영국 유료 OTT 시장에서 넷플릭스는 27%의 시장 점유율로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Amazon Prime Video)와 디즈니플러스(Disney+)가 각각 26%와 21%의 점유율로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애플TV+까지 포함하여 미국 OTT 사업자가 80%가 넘는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국 국내 사업자들은 ITV 계열의 ITVX와 채널4의 계열의 4가 각각 6%와 3%의 점유율로 크게 밀리고 있다(Stoll, 2024). 1) 가입자 수에 있어서도 넷플릭스와 프라임 비디오는 영국 전체 시청 가구 대비 각각 59%와 45%를 확보했는데, 영국 전체 시청 가구 대비 유료 OTT 서비스 가입 비율이 66%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해외 사업자들이 OTT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Ofcom, 2023).
무시할 수 없는 OTT의 영향력
한국과 마찬가지로 영국 방송산업에서도 넷플릭스는 중요한 투자자로 인식되고 있다. 미디어 법 개정과 관련한 공청회에서 넷플릭스는 자사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BBC, ITV, 채널4로 이루어진 영국 공영방송 3사가 제작한 콘텐츠들에 약 4억 달러(한화 약 4천 8백억 원)를 투자했고, 2020년 이래, 영국에서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해마다 약 15억 달러(한화 약 2조 9백억 원)를 투자했다고 주장했다(Netflix, 2023). 실제로 1억 회가 넘는 시청 수를 기록한 시대극 <브리저튼(Bridgerton)> 의 세 번째 시즌과 8,200만 회의 시청 수를 기록한 스릴러 장르인 <베이비 레인디어(Baby Reindeer)>를 비롯하여 넷플릭스에서 올해 상반기에 방영한 콘텐츠 중 상당수가 영국 스튜디오가 제작했거나 영국에서 촬영되었다. 최근 영국 콘텐츠가 OTT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는 데는 넷플릭스와 프라임 비디오가 작가 조합의 파업 여파로 할리우드에서 충분한 콘텐츠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이에 대한 대체재로 사용된 측면도 없지 않다(Goldbart, 2024).
프릴리에 참여한 공영방송사들에게도 해외 OTT 사업자들은 자사의 콘텐츠를 사가는 주요 고객이다. BBC의 경우, 65세 이상의 시청자들에 대한 영국 정부의 수신료 면제 결정 등으로 인해 전체 수입에서 수신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낮아지는 반면, 자회사인 BBC 스튜디오스(BBC Studios)를 통한 콘텐츠 유통으로 인한 수익이 전체 수입 대비 30%을 넘어선 상황이고, 이에 따라 BBC의 재무 구조에서 넷플릭스가 차지하는 비중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BBC, 2024). 영국 내 많은 제작사들도 넷플릭스를 통한 콘텐츠 유통을 추구하고 있는데, 영국의 창의산업 진흥을 관장하는 비영리기관인 크리에이티브 UK(Creative UK)가 2023년에 넷플릭스와 협약을 맺고 편당 3만 파운드(한화 약 5천 2백만 원)의 제작비와 넷플릭스로의 콘텐츠 유통을 진행하는 프로젝트인 브레이크아웃(Breakout)에는 여섯 명의 지원자를 뽑는데 무려 800명 가까운 창작자들이 몰렸다(Foreman, 2023).
결국 한국 방송사들과 마찬가지로 영국 방송사들에게도 해외 OTT 사업자들은 자사가 제작에 관여한 콘텐츠들의 주요 고객임과 동시에 자국 방송 생태계를 위협하는 경쟁자라는 이중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적어도 국내 자본이 방송사를 경영하고 있는 한국과 달리, 파라마운트(Paramount)나 컴캐스트(Comcast) 등 미국 미디어 대기업이 지상파인 채널 5와 케이블 채널인 스카이(SKY) 등을 경영하고 있고, 한국보다 더 많은 해외 OTT 사업자들이 영국에 진출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정은 더욱 복잡하다.
글로벌 자본과 정부의 갈등
이러한 양가적 관계를 보여주듯, 영국 정부와 넷플릭스는 최근 수년 간 긴장 관계를 이어왔다. 2020년 올리버 다우든(Oliver Dowden) 당시 문화·미디어·스포츠부 장관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치세를 다룬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크라운(The Crown)>의 몇몇 장면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넷플릭스 측에 시리즈가 허구임을 밝히는 자막을 넣어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Bakare, 2020). 이에 대해 영국 정치계와 문화계의 반발이 심했는데,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자이자 <007> 시리즈의 M 역으로 잘 알려진 주디 덴치(Dame Judy Dench)는 넷플릭스가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애매모호하게 만들어 선정주의를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더 크라운> 시즌 5에서 찰스 왕세자와 여왕의 양위에 대해 의논한 것으로 묘사된 존 메이저(John Major) 전 총리는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The Times)에 낸 기고문에서 심각하게 악의적인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McIntosh, 2023). 앞서 언급한 <베이비 레인디어>와 관련해서도 당국은 스코틀랜드 희극인이 스토킹을 당했다는 실화에 기반한 이 드라마가 실제 인물의 삶을 위협할 소지가 있다며 넷플릭스에 우려를 표했다(Kanter, 2024).
이러한 논란들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등 해외 OTT 사업자들은 시청자 유해물에 대한 규제 등에 있어 사업자 소재지가 네덜란드 등 영국 이외의 지역에 있다는 이유 등으로 규제가 적용되지 않았고, 이는 국내 사업자들에 대한 역차별 등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지상파와 OTT는 성격이 다르고 일괄적인 규제는 영국 시청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일부 콘텐츠들을 제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해외 사업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영국 정부는 지난 6월, 미디어 법을 개정해 외국 OTT 업체들도 2026년부터 국내 방송 사업자들과 마찬가지로 오프콤(Office of Communications, Ofcom) 등 영국 방송통신규제기관의 규제를 적용받도록 했다(Chilton, 2023). 그리고 이를 어길 시에는 국내 사업자들과 마찬가지로 당국의 규제를 위반할 시에는 최대 25만 파운드(한화 약 4억 4천만 원)의 벌금을 징수할 수 있게 되었다(Layton, 2024). 이에 대해 방송사업자들과 관계 당국은 공공재로서의 방송의 가치를 제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다만 현 시점에서 프릴리가 영국 내 다수의 시청자들에게 혜택을 제공하고, 넷플릭스를 위시한 해외 OTT 사업자들과의 경쟁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다. 가령, 2024년 5월 기준으로 프릴리는 인터넷이 접속되어 있는 스마트TV라면 누구나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는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와는 달리 프릴리 프로그램이 장착된 하이센스(Hisense)나 부시(Bush) 브랜드의 최신 스마트TV로만 시청이 가능하고, 추후 파나소닉, 샤프, 메츠(Metz) 브랜드 계열의 스마트TV에 장착할 계획이라는 소문만 돌 뿐, 기존 스마트TV 사용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밝히고 있지 않다. 또한 각 방송사들이 BBC 아이플레이어를 비롯하여 ITVX, 4, 그리고 5라는 자체 OTT 서비스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가까운 시일 안에 프릴리가 시장에서 얼마만큼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를 회의적으로 보게 하는 요인이다. 낮은 접근성과 중복 서비스라는 단점을 극복하고 해외 OTT 사업자들과의 싸움에서 프릴리가 얼마나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 알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 시장이 눈여겨볼 점
이러한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프릴리의 사례는 국내 시장에서 넷플릭스를 위시한 해외 OTT의 자금력과 시장 지배력, 그리고 콘텐츠 소비 변화에 따른 광고 수입 감소 등으로 인해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방송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영국보다 작은 내수 시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영국보다 더 많은 수의 방송 사업자들이 경쟁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 완성본의 수출을 넘어 OTT 사업자들의 해외 진출을 통한 시장 규모의 확대를 노려볼 필요가 있다. 이미 중국의 경우 바이두(Baidu) 계열의 OTT 플랫폼인 아이치이가 자사의 IP를 바탕으로 동남아 지역에서 현지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다, 영국 방송사업자들의 경우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영연방 국가에서 영국 방송 콘텐츠에 대한 지속적인 수요가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국내 OTT 사업자들도 해외 시장으로 외연을 확대해 시장 규모 자체를 키우고 매체 다변화로 인한 수익의 다각화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BBC와 ITV를 필두로 한 공영방송사들이 주축이 되어 국내 방송 생태계를 구축해 온 영국에서 이들 사업자들이 해외 OTT 사업자들의 시장 잠식에 대응하고, IPTV로의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프릴리를 출범시켰다는 점에서 이들이 강조하는 공영성도 곱씹어 볼 대목이다. 방송사 간의 광고 수익 배분, 시청자 데이터 활용 등의 문제가 남아 있지만 시청자들에게 무료로 실시간 방송뿐만 아니라 자사가 가지고 있는 콘텐츠들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프릴리는 한국 공영방송사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방송의 공공성과 관련하여 적지 않은 논의들이 공영방송의 이사회 구성이나 사장 선임, 뉴스 및 시사 콘텐츠의 정치적 편향성 논란에만 집중된 사이, 변화하는 미디어 생태계에서 IPTV나 OTT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민간 사업자들에 의해 시장 재편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보편적 시청권이나 접근성 등 공공성을 어떤 방식으로 담보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 서종갑, "CB상환 이견…웨이브·티빙 합병 막판 진통." 서울경제, 6월 24일, 21면, 2024.
- Bakare. L, UK culture secretary to ask Netflix for 'health warning' that The Crown is fictional. The Guardian, 2020.11.29.
- BBC, BBC Group Annual Report and Accounts 2023/24, 2024.
- Chilton. L, Netflix warns it may remove content from UK catalogue over government media bill. The Independent, 2023.6.1.
- Clarke. S, BBC Director-General Tim Davie on Freely and future-proofing the BBC. Royal Television Society, 2023.10.20.
- Foreman. K, Final six UK filmmaking teams selected for Netflix and Creative UK’s BREAKOUT programme.Creative UK, 2023.
- Goldbart. M, Revealed: How American viewers have flocked to British content on Netflix & Prime Video since the strikes. Deadline, 2024.8.2.
- Kanter. J, UK government fires warning shot at Netflix as ‘Baby Reindeer’ safeguarding scandal rages. Deadline, 2024.5.11.
- Layton. M, UK Media Bill passed in House of Lords, ushering in new rules for global streamers. Television Business International, 2024.
- McIntosh. S, The Crown: Dame Judi Dench accuses Netflix hit of 'crude sensationalism'. BBC News, 2022.10.22.
- Netflix, Written evidence submitted by Netflix to the Media Bill Public Bill Committee. Parliament, 2023.12.5.
- Ofcom, Media Nations UK. London: Ofcom, 2023.
- Stoll. J, Market shares of selected subscription video-on-demand (SVOD) services in the United Kingdom in 3rd quarter 2024. Statista, 2024.
- 김태영 (영국 러프버러대학교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과 교수)
- 드라마 보는 것을 좋아해 시작한 신문방송학 공부가 길어져 현재 영국 러프버러대학교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과에서 일하고 있다. 글로벌 시대의 대중문화 산업에 관심이 많아 정부의 문화 산업 정책과 플랫폼 기업들이 콘텐츠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