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행 프로그램은 관광지를 소개하는 정보 중심에서 정보와 오락을 겸비한 ‘인포테인먼트’로 변화했다. 본 글은 대만에서 온 필자의 관점으로 최근 즐겨보는 체험형 예능 프로그램 <눈떠보니 OOO>에 대해 다룬다.
지금까지 내가 시청했던 여행 프로그램은 대개 관광지를 소개하는 콘텐츠였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내레이션이 해당 지역을 설명하던 방식의 정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정보와 오락을 겸비한 ‘인포테인먼트(Information+Entertainment=Infortainment)’ 성격의 방송 프로그램이 많아졌다. 이렇게 정보전달로의 변화는 시청자가 단순히 웃고 넘기는 콘텐츠에서 웃는 가운데 정보를 얻는 프로그램으로 인지하게 되었다. 특히 요즘 예능 트렌드는 단순한 관광 정보 제공을 넘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체험하게 하는 '체험형 여행 프로그램'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콘텐츠를 통해 시청자는 단순히 장소를 보는 것 이상의 경험을 느끼게 된다.
이번 글은 ENA의 <눈떠보니 OOO>을 중심으로 대만에서 온 필자의 관점으로 본 체험형 예능 프로그램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림 1] <눈떠보니 OOO> 포스터(자료:ENA)
독특한 포맷
ENA에서 제작된 체험형 여행 예능 프로그램 <눈떠보니 OOO>은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의 삶을 살게 된 스타들의 우당탕탕 리얼 일상 생존기를 그리는 멀티버스 라이프 예능이다. 현생의 내공 따윈 전혀 통하지 않는 낯선 환경 속에 떨어져버린 스타들이 인생 최대의 위기 또는 기회를 어떻게 극복하고 사수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이 가장 큰 관전 포인트다.
프로그램은 마치 연극처럼 시작하여, 주인공이 눈을 뜨면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설정으로 극적인 도입부를 구성한다. 이 장면은 마치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꿈같은 느낌을 준다. 주인공이 캠코더를 발견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이 캠코더는 그들이 가상으로 경험했던 일들을 레트로 감성으로 기록해 놓은 것이다. 캠코더의 배터리가 소진되면 프로그램도 끝나는 독특한 연출이 특징이다. 캠코더의 레트로 감성은 마치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며, 시청자들에게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매개체가 된다. 또한, 주인공들은 다양한 도전과 고난을 체험하며, 그들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인기 여행 프로그램 <꽃보다 시리즈>와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2022)> 등과 같이 여행의 힐링 과정보다는 실제로 고생을 하며 얻었던 새로운 경험을 중심으로 묘사된다. <눈떠보니 OOO>에 나온 출연자들도 인력거 운행 중 손님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 40도 이상의 고온에서 코끼리 똥을 치우는 일, 고기잡이를 할 때 배멀미를 심하게 하는 등 다양한 노동을 경험하고 정신적 도전에 직면한다. 그들의 고생은 단순히 어려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과정으로 그려지며 현지인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프로그램 마지막 부분에서도 경험 과정 중 만난 현지인들이 만든 깜짝 영상을 통해 출연자는 물론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림 2] <눈떠보니 OOO> 일부 캡쳐(자료:ENA)
[그림 3] <눈떠보니 OOO> 일부 캡쳐(자료:ENA)
[그림 4] <눈떠보니 OOO> 일부 캡쳐(자료:ENA)
[그림 5] <눈떠보니 OOO> 일부 캡쳐(자료:ENA)
한국인의 눈으로 본 대만, 대만의 청춘로맨스 감성
<눈떠보니 OOO>의 첫 번째 게스트인 권은비는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자동차 안에서 대만 드라마 <상견니>의 삽입곡 '라스트 댄스'를 들으며 잠에 빠지는데, 깨어 보니 대만의 고등학교에 와 있다. 해당 설정에 대해 권은비와 방송을 보고 있는 MC들은 “대만 청춘 로맨스 영화”, “대만 감성”, “드라마 같다” 고 평가한다. 콘텐츠의 스토리텔링과 후반 편집, 자막 등도 대만 청춘영화의 감성과 정서를 잘 포착하여 한국인의 시각으로 이러한 개념과 로망을 활용한다.
[그림 6] <눈떠보니 OOO> 권은비 편 스틸컷(자료 : ENA)
대만 청춘로맨스 영상콘텐츠는 <말할 수 없는 비밀>(2008)의 개봉을 시작으로 한국에서 종종 소개되기 시작했으며 <청설>(2012),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2), <나의 소녀시대>(2016) 등이 대만 특유의 감성을 담고 있다는 평가로 다른 나라 영화와 차별화시키는 데에 성공하여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2019년 개봉되었던 대만 드라마 <상견니>는 전 세계 OTT 누적 10억 뷰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기록적인 인기를 얻으며 넷플릭스에서도 한국판 <너의 시간속으로>(2023)로 리메이크되어 개봉된 작품이다. 이번 <눈떠보니 OOO> 대만편은 '눈떠보니 상견니'를 주제로 제작·연출 되었다.
대만 청춘로맨스 영상콘텐츠는 ‘대만 특유의 자연과 도시풍경, 인문적인 특색을 잘 담아낸다.’ ‘청소년 시절의 첫사랑을 아련하게 그려냈고 교복 입은 학생들, 예민한 시선, 조심스럽고 섬세한 감정 묘사, 주연들의 잘생기고 예쁜 얼굴, 파릇파릇한 풍경 등 공통된 요소들도 있다.’ ‘순정만화 같은 순애보의 이야기로 향수를 자극한다’는 특성을 가졌다.
<눈떠보니 OOO> 대만 편은 이러한 대만 청춘로맨스 영상콘텐츠처럼 대만의 학교 생활, 친구와의 우정, 연애 쪽지 등 대만 청춘로맨스 감성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대만의 대표적인 지역인 단수이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다. 이러한 제작 초점을 보면 ‘대만 청춘로맨스 감성’이 한국에서도 하나의 브랜드로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것 같다.
대만인으로서 느끼는 여행의 익숙함과 이국감
[그림 7] 대만의 야시장(자료 : ENA)
일반적으로 나와 같은 시청자들은 여행 프로그램에서 ‘타지’로의 신선한 경험을 추구한다. 이는 모르는 일, 색다른 모험, 다른 인생을 살아보는 느낌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눈떠보니 OOO>의 대만 편은 필자의 고향인 타이베이에서 촬영되었기에 이러한 ‘타지 모험’의 느낌은 덜하지만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을 동시에 제공해 흥미를 더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이 대만 문화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그리고 그 차이를 통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부분이 매우 흥미로웠다. 프로그램에서 대만 학생들의 생활을 소개할 때, 대만 학교의 낮잠 문화가 한국에는 없다는 점을 역으로 알게 되어, 새로운 한국 학교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또한, 대만의 야시장에서 바이탕궈, 탕후루, 망고빙수 같은 다양한 음식을 맛보고 인형뽑기를 하며, 단수이를 방문하는 등 일상을 체험하는 모습은 나에게 친숙함과 신선함을 동시에 제공했다. 심지어 프로그램 중에 등장한 러화 야시장은 우리 집에서 10분 거리의 자주 갔던 시장으로 야시장의 분주한 분위기와 다채로운 음식들이 대만의 문화를 생생하게 전달하면서 나에게도 깊은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또한, 한국인 시청자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중국어 대화, 글씨, 간판 등이 프로그램의 추리 요소로 적용 됐지만, 자막 없이도 이해할 수 있는 필자에게는 조금 다르게 작동되면서 흥미롭게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 신비한 줄거리가 주는 선지감은 프로그램을 볼 때 또 다른 재미를 더하게 했다. 반면, 다른 나라를 배경으로 할 때는 익숙함보다 이국감과 신선함을 더 강하게 느꼈다. 다른 세 편에서 다룬 베트남, 홍콩, 태국의 경우 모르는 문화, 풍경, 사람, 언어 등을 통해 순수한 여행의 재미를 더욱 즐길 수 있었다.
현지에서 공유하는 진실한 감정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감동을 느꼈던 순간들은 현지 사람들의 진지한 일상을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와 정(情)에서 비롯되었다. 베트남 편에서 출연자 김동현이 인력거 선배 럼형과의 우정을 나누는 장면은 특히 인상 깊었다. 럼형은 호찌민시에서 매우 작은 공간에서 힘들게 살았지만, 4회에서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큰 집에서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장면은 럼형이 가족들을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알게 해주었고, 김동현이 럼형의 아내에게 이러한 어려움을 전달하려는 모습을 통해 진정성 있는 감정이 전달됐다. 김동현뿐만 아니라 다른 세 편의 주인공 역시 현지 사람들과 정을 나누는 모습을 통해 프로그램의 진정성을 더했다.
태국 편에서는 지예은이 치앙마이의 코끼리 호텔의 새내기 호텔리어로 현지인들의 보살핌을 받는 장면이 감동적이었다. 특히 코끼리와의 교감 장면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개그맨 신규진이 홍콩 편에서 등장한 부모들의 잔소리는 아시아 부모들에게 매우 익숙한 모습이었으며 현지인의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대만 편에서는 학생들의 꿈과 고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사실적으로 그려내어 공감을 자아냈고 시청자들에게 청춘의 아름다움과 고뇌를 동시에 느끼게 해주었다. 이 모든 요소들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면서 단순한 여행 이상의 깊은 의미를 전달했다.
[그림 8] <눈떠보니 OOO> 일부 캡쳐(자료:ENA)
[그림 9] <눈떠보니 OOO> 일부 캡쳐(자료:ENA)
[그림 10] <눈떠보니 OOO> 일부 캡쳐(자료:ENA)
현실과 연기의 균형
진실성은 리얼리티 방송에서 큰 재미를 제공하는 중심축이다. <눈떠보니 OOO>이 독특한 포맷을 통해 많은 매력을 전달하고 있지만, 일부 연출에서는 ‘연기’ 요소가 과도하게 느껴지면서 몰입도가 떨어졌다. 연기와 실제 상황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없으면 시청자는 혼란스러워진다. 예를 들어, 주인공들이 처음 눈을 떴을 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듯 연기하는 부분이 있는데, 사실 시청자들은 그들이 새로운 삶을 체험하러 왔다는 연출된 상황을 모두 알고 있기에 해당 장면에서는 잘 몰입되지 않는다. 대만 편에서도 출연자인 권은비에게 한 남학생(몽슈)이 사랑에 빠져 고백하는 장면이 있지만, 두 사람은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으며, 단지 대만 청춘 로맨스의 느낌을 내기 위해 연출된 것 같아 아쉬움이 있었다.
[그림 11] <눈떠보니 OOO> 일부 캡쳐(자료:ENA)
한편, 비슷한 시기에 방송되고 있는 JTBC의 <마이 네임 이즈 가브리엘>의 콘셉트도 살펴볼만하다. <마이 네임 이즈 가브리엘> 역시 실제로 존재하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도록 설정했다. 두 프로그램을 단순히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시청자들은 현지인의 삶을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다른 사람의 삶을 경험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 보다 높은 몰입감을 경험하게 된다.
프로그램에서 출연자의 진실된 감정과 균형적인 연출은 시청자들에게 몰입감을 제공하는데 필수적이며, 더 나아가 프로그램의 성공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되고 있다.
- 장유나(Chang Jung)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OTT 콘텐츠기획·정책·비즈니스 전공 석사과정)
- 현재 대만과 한국에서 다수의 국제 제작, 통번역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며 연구 관심 분야는 콘텐츠 기획, IP 개편, 마케팅 전략 등이다. 주요 소논문으로는 ‘대만 청춘로맨스 영상콘텐츠의 한국시장 경쟁력 연구 - “상견니” 사례를 중심으로’, ‘게임 IP 개편 가능성: 영화 ‘반교: 디텐션’의 성공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