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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프사(史)의 신들린 한 수, ‘운명’의 진짜 의미

이은솔
SBS <신들린 연애> PD 인터뷰

SBS <신들린 연애>는 타로, 사주, 신점 등을 통해 늘 타인의 연애운을 점쳐주던 8인의 점술가들이 자신의 연애운을 점치고 운명을 상대를 찾는 연애 프로그램이다. 여타 연애 예능 프로그램과는 달리 시사교양 PD가 기획, 연출을 하면서 연애 예능이 가진 달콤함, 설레임뿐만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운명과 본능적인 이끌림을 두고 겪는 인간의 딜레마를 섬세하게 담아내 호평 받고 있다.

[그림 1] 이은솔 SBS 교양국 PD (자료: SBS 제공)

‘샤머니즘’과 ‘운명론’을 소재로 점술가를 주인공으로 앉힌 제작진의 파격적인 도전 자체도 의미 있지만, 출연자 개개인의 심리를 따라가는 교양적 연출로 차별화를 두며 ‘연프(연애프로그램)’사에 한 획을 그었다. 시청자들의 시즌2 제작 요청이 쇄도하는 가운데 프로그램을 연출한 SBS 교양국 이은솔 PD를 만나 <신들린 연애>의 제작 비화와 시즌2에 대한 계획을 들어봤다.

<신들린 연애>는 어떻게 기획하게 된 프로그램인가? 특별히 ‘샤머니즘’ ‘운명론’ 등을 ‘연애’와 연관 시켜 기획한 이유는?

“사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전까지 점을 보거나 종교를 믿는 사람이 아니었다. 근데 주변의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작가들이나 후배 PD들이 점을 보러 많이 다니더라. 생각보다 연령대가 낮은 시청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 연령대가 점집에서 가장 많이 물어보는 주제는 ‘연애’라고 한다. 거기에서 시작돼서 ‘그러면 타인의 연애운을 점치는 사람들이 자신의 연애는 어떻게 할까?’라는, 어떻게 보면 조금 삐뚤어진 시선일 수 있는데 솔직히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했다.”

지상파에서 샤머니즘이라는 소재를 연애 예능으로 녹여낸다는 게 시청자 입장에서는 신선할 수 있지만 고민도 많이 됐을 것 같다. 내부 반응은 어땠나? 반대도 있었다고 들었다.

“SBS는 매 분기마다 교양국에서 기획안 공모전을 실시한다. 처음엔 기획안을 제출하면서도 ‘안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근데 다행히도 김재원 CP님이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셨고, 다양한 방면으로 현실화 할 수 있게 알아봐주셨다. 하지만 아무래도 소재가 소재인지라 처음엔 OTT 플랫폼으로 진행하려고 했다가, 조율 끝에 결국 SBS 채널에서 방영하는 것으로 결정이 됐다.

내용 면에서는 출연진의 직업이 점술가라고 해서 그것이 옳고 그르고, 믿고 말고를 다루는 게 아니라는 걸 강조했다. 점술가라는 직업을 가진 20・30대의 청춘이 어떤 연애를 하는가를 보여주려고 했다. 연애를 통해서 출연진의 인간적인 고뇌와 직업적 판단 등을 시청자분들에게 불쾌감 없이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교양국 소속 PD인 걸로 알고 있다. 요즘은 시사교양과와 예능의 장르를 넘나드는 프로그램들이 많아진 것 같다. 특히 SBS 교양국이 유독 장르에 선을 두지 않고 <꼬꼬무>, <관계자외출입금지> 등의 좋은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예능국에서 만드는 프로그램과 의미를 두는 지점이 다를 것 같은데 <신들린 연애>는 어떤 점에 중점을 뒀나?

“처음에는 단순히 연애와 ‘샤머니즘?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출연자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거의 1500명에 가까운 후보자가 있었고, 실제로 만나 인터뷰를 한 사람만 100명 이상이었다. 직접 만나면서 이들이 겪는 연애의 어려움을 느꼈다. 또 단순히 비주얼이 매력적이다, 캐릭터가 훌륭하다, 이런 것 보다는 각자의 ‘사연’에 집중했다. 한 인간이 가진 서사, 사연이라는 것이 사실은 굉장히 교양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했다.”

시사교양과 예능의 색깔을 모두 가진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 장르에 구분을 두지 않고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은 제작진의 입장에서 장단점이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인물의 서사에 집중하다보니 제작을 하면서 내용이 너무 어렵거나 깊어질 수도 있겠다는 걸 느꼈다. 연애 프로그램으로서의 본연의 재미라는 건 결국 누가 매칭이 되느냐, 마느냐의 문제일 텐데 우리는 인간사를 하나하나 집중을 하다보니까 그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좀 어려웠다.”

‘샤머니즘’, ‘운명론’을 다루는 프로그램이다. 출연진 선정이 관건이었을 것 같은데 어떤 기준으로 섭외를 했는지 설명해달라.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SNS로 접촉도 했었고, 실제로 점집을 찾아가기도 했다. 첫 기준은 딱 봤을 때 ‘어? 저 사람이 무당이라고?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을 눈여겨봤다. 박이율 씨(무당)가 제일 처음 미팅을 했던 분인데 그 분이 들어오자마자 ‘무당이라고?’이런 생각을 했다. 무당에 대한 이미지와 정말 다른 분이 들어오니까 호기심이 생겼다. 그때 기준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두 번째로는 진정성. 아무래도 (개인) 홍보보다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가진 사람을 찾았다. 함수현 씨(무당)의 경우는 정말 만나기가 힘들었다. SNS도 안하고, 플랫폼에 등록도 안 되어 있고. 2달을 내내 찾아다닌 것 같다. 어렵게 연락이 닿았는데 본인뿐만 아니라 모시는 신령님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 상황이어서 애가 많이 탔던 기억이 있다.”

프로그램의 스토리텔링이나 구성면에서 소재의 독특함을 고려했을 것 같다. 연출을 하면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출연진의 직업적 특성으로 인한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다.

“첫 회에 굉장히 힘을 쏟았는데 그 중에서도 점술가들이 본업을 하는 모습, 즉 점치는 모습 자체를 멋있게 보여주고 싶었다. ‘샤머니즘’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눈에 보이게끔 구현하고 싶은 마음에 ‘신명당’ 등의 소재를 열심히 꾸미기도 했다. 또 아무래도 점술가들이니까 사전에 점을 쳐봤다. 이 과정은 출연자들이 ‘점사대로 갈 것이냐, 마음을 따를 것이냐’라는 큰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성이었을 거다. 이런 연출도 출연진이 점술가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거였다.

[그림 2] <신들린 연애>의 신명당

에피소드를 꼽자면 촬영하는 일주일 내내 비가 왔다. 제작진 입장에서는 너무 안 좋은 상황. 사실 계획했던 많은 것들이 무너진 상황이었는데 박이율 씨(무당)가 ‘무당들에게는 비가 좋은 기운이고 출연진 모두 좋은 기운 안에서 촬영하고 있다’고 말해줘서 큰 힘이 됐다. 무서웠던 경험은 촬영 끝나고 새벽 한 2~3시쯤에 카메라 정리하러 잠깐 숙소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막 방울 소리가 들렸다. 캄캄한 숙소에서 그 소리가 너무 무서웠는데 알고 보니까 이홍조 씨(무당)가 방울을 키링으로 만들어서 가지고 다니는데 그걸 만지고 있었던 거다. 방송에는 다 나오지 않았지만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국내에서도 <파묘> <샤먼> 등 샤머니즘, 운명론, 오컬트 등을 소재로 한 콘텐츠가 연이어 공개되고 있다. 왜 지금 이런 소재가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얻는다고 생각하는지?

“기획안을 썼던 시점이 <파묘>가 나오기 전이었다. 그래서 나도 놀랐고 반갑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조사한 바로는 코로나19 때 점집의 수가 늘었더라. 이 시기에 개업한 점집이 늘어났다는 건 현재가 불안하고 앞날을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보니 어느 정도라도 힌트, 희망을 얻고 싶은 인간의 마음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답에 가까워지고 싶다는 욕구가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이런 장르에 관심을 갖게 한 것 같다.”

방송이 끝난 시점에서 돌아볼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아끼는 장면을 꼽자면?

“모든 출연자와 모든 장면을 아끼는데 개인적으로 마음이 쓰이는 출연자는 허구봉 씨(사주). 처음부터 자신의 운명의 정답을 알고 있었고, 자신의 선택이 스스로에게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마음을 따라 갔다. 마음이 얼마나 깊은 걸까, 도대체 알면서도 마음을 따르는 이유가 뭘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방송에 나가진 않았지만 최종 선택이 끝난 후 구봉 씨가 ‘시험문제의 정답을 알고 있다고 해서 공부를 안 할 거냐. 그건 아닌 것 같다. 나는 그래도 공부 할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결과를 알고 있더라도 그 과정을 충실히 해내는 것에 의미를 두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최종 커플이 되진 않았지만 그 과정이 마음에 많이 남았다. 개인적으로 되게 찡한 순간이었다.”

무당, 점술가라고 하면 점괘에 나온 대로 행동을 할 것이고, 그대로 조언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출연자들이 행동을 하거나 서로에게 조언을 할 때의 기준이 ‘마음’ ‘의지’더라. 어쩌면 출연진의 직업적 가치관에 조금은 영향을 줬을 것 같다.

“이분들의 입장에서는 연애든 인간관계든 또래의 친구들을 만나는 경험이 흔치 않다. 저도 인터뷰를 통해서 알게 된 부분인데 이분들은 정말 혼자 있다. 점사를 본다는 것이 그런 것 같다. 타인의 힘든 마음을 들어주기만 하고 본인의 감정을 들여다 볼 기회가 없다. 여기에서 비슷한 상황의 또래 친구들도 만나고 자신의 다양한 감정을 돌아보면서 해방감을 느꼈던 것 같다. 직업적인 가치관이 변했다기보다는 출연진이 ‘한 인간으로서’ 성장했다고 느꼈다.

덧붙이자면 이 분들은 마음을 수련하는 사람들이다. 산에 가서 기도를 하는 등 본인의 마음을 갈고 닦는 수련, 수행의 태도가 프로그램에 묻어났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내 점사가 맞고 틀리는 것에 연연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일 줄 아는 용기도 수행의 결과인 것 같다. 타인이 힘들어할 때 그걸 지켜봐주고 상담해 주는 모습들을 긍정적으로 잘 보여드릴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시청자분들도 그런 모습을 예쁘게 봐주신 것 같아서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신들린 연애>가 시청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했으면 하는지? 방송이 종영한 시점에 돌아보자면 제작진의 의도에 맞게 프로그램이 잘 나왔는지?

“‘운명은 정해져있는 게 아니다.’라는 걸 전하고 싶었는데 그 이상으로 나왔다고 생각한다. 기획하면서 찾아봤던 책에서 ‘운명의 운자가 움직일 운(運)자다’라는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운명이라는 단어의 함의 자체 자신의 의지대로 인생을 움직여 가는 것이란 뜻. 하지만 제작진이 그런 의미를 전하고 싶다고 생각을 해도 출연자들이 그대로 움직여줄 리는 없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운명을 보는 직업을 가진 이들도 인간이고, 인간적인 마음에 따라 선택을 하는 모습들을 보여주더라. 그래서 촬영을 하면서 시청자 분들도 우리의 메시지를 알아봐주실 것 같다는 확신을 얻었다. 무엇보다도 출연진이 진심으로 프로그램에 임했기 때문에 의도했던 메시지 이상의 것을 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쉬운 점이 없는지 궁금하다.

“6부작으로 끝내기엔 못다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 10부작 정도로 기획을 했었는데 올림픽도 있고 여러 가지 사정상 어려운 상황이었다. 러브라인 외에도 다양한 상황과 감정선이 오갔고, 볼거리가 많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부분을 다 들어내야해서 아쉬웠다.”

국내 뿐만 아니라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아시아 스트리밍 플랫폼인 뷰(Viu)에서 인도네시아 인기 예능 1위를 했는데, 이런 인기를 예상했는지?

“어느 정도 예상했다. 무속은 아시아권에서 좋아할 수밖에 없는 소재라고 생각했다. 일본에도 굉장히 많은 신들이 있고,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에서도 신을 모시는 직업을 가진 분들이 실제로 있다. 처음부터 공감대를 형성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제작을 했다. 관심 있게 봐주셔서 기쁘다.”

<신들린 연애> 시즌2를 통해서 PD님의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시즌2를 기다리는 시청자들이 많다.

“긍정적으로 논의 중이다. 아직 세부적인 회차나 콘셉트는 정해지지 않았다. 시청자 분들의 의견을 많이 찾아보고 고민 중이다. 기본적인 콘셉트는 가지고 가되 구성이나 장치 등은 바꿔보려 한다. 매력적인 출연자를 찾는 것이 제일 중요할 것 같다.”

외국인 출연자를 섭외할 생각은?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이 부분은 아직 미정이다. 지역을 옮기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시즌2 까지는 한국의 점술가들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크다. 나중에 좋은 기회가 있어서 해외를 배경으로 제작을 할 수 있다면 외국인 점술가의 출연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프로그램을 만들기 전과 후를 비교해 봤을 때 운명과 샤머니즘에 대한 PD님의 생각이 바뀌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종교도 없고 ‘운명’을 믿지도 않았다. 그런데 촬영을 하면서 감탄한 점이 있다. 운명을 믿는 사람들은 인연을 정말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 스쳐가는 사람들도 내 세계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있어서인지 상대를 정말 소중하게 대한다. 이건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사실이다. 그래서 운명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신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인연을 이렇게 소중히 여기는 이런 태도 자체에 큰 배움을 얻었다. 그 부분이 가장 많이 바뀌었다.

또 점술가라는 직업에 대한 편견도 사라졌다. 인터뷰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업을 택하지 않아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는데 인생을 다 걸고 뛰어든다는 걸 알게 됐다. 모든 것을 걸고 임하는 태도 자체도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하게 됐고, 받아들일 걸 받아들이고 어떤 길로 나아갈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 하는 것이 느껴져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다음 프로그램 기획할 때 점을 볼 것 같은지?

“볼 것 같다.(웃음) 근데 다른 분들 한테는 안볼 것 같고, 우리 전 출연진한테 다 물어볼 거다. 생각만해도 어벤져스처럼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