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Wave

생각의 모험,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치를 인정해보는 것

허성호
EBS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 CP 인터뷰

[그림 1]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 포스터 (자료: EBS)

EBS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이하 <위대한 수업>)은 ‘수신료 70원의 기적’ ‘위대한 라인업’이라는 수식어로 불린다. 2021년 첫 방송된 시즌1부터 시즌3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까지 어떤 교양 프로그램도 시도하지 못했던 수많은 세계의 석학들을 강연자로 섭외, 깊이 있는 강연을 선보이고 있으며 ‘교육으로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교육 공영방송의 의미를 지키고 있다.

<위대한 수업>은 리처드 도킨스, 유발 하라리, 재레드 다이아몬드 등 세계를 뒤흔든 작가들은 물론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 정치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 동물학자 제인 구달, 조향사 조말론,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 등 전 세계 석학과 전문가들이 출연해 명성을 넓히고 있다. 특히 시즌3에서 조지프 스티글리츠(경제), 폴 로머(경제), 시린 에바디(인권), 프랭크 윌첵(물리),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문학), 배리 마셜(의학) 등 총 6명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출연시켰다.

<위대한 수업> 전 시즌을 제작한 허성호 CP를 만나 제작 과정, 프로그램의 가치와 향후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위대한 수업>은 여타 EBS의 프로그램에 비해 방송 길이가 짧다. 회당 20분이 넘지 않는 분량인데, 그 속에 저명한 인사들의 메시지가 꽉 들어차 있다.

“학술적인 이야기를 다른 다큐멘터리처럼 길게 방송하면 지루해서 누가 보겠나.(웃음) 분량이 짧아진 이유는 시간 단위당 정보량이 굉장히 빽빽한 편이라 내용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OTT를 염두에 두고 짧은 클립으로 제작하자는 목표도 있었고, 변화하는 시청행태에 발맞춰서 50분, 30분 등의 편성 시간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전략도 있었다. 하지만 TV 프로그램의 한계를 완전히 뛰어넘었다고 하기엔 어렵다. 과도기적인 프로그램이라 생각한다.”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되는 강연자 섭외 프로세스가 궁금하다. 전세계 수많은 전문가들이 있을텐데 섭외의 기준을 어떻게 정하는지?

“그 분야에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을 찾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출간이나 연구 결과를 통해서 세계인들에게 이미 지식적으로 검증이 된 사람을 우선적으로 찾아나선다. 그 과정에 제작진뿐만 아니라 공식적인 자문위원회가 있어서 각 과목별로 자문위원들이 이중, 삼중으로 검증을 하고 제작진의 의견까지 더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사실 누구를 섭외를 하고 싶다고 해도 제 맘대로 되는 게 없다.(웃음)”

섭외부터 방송까지 쉽지 않은 과정인 것 같다. 출연자들의 이론도 공부해야될거고,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지 고민도 많이 할 것 같은데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가장 힘든 부분부터 얘기해 본다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섭외할 때가 제일 힘들었다. 하지만 시즌을 거듭하면서 앞선 출연자들이 좋은 영상을 많이 남겨줘서 섭외가 점점 유리해지고 있다. 하지만 강연의 주제가 다양화되다 보니 전공 분야를 깊이 파고 들어야 한다. 우리가 문과 출신이 대부분인데(웃음) 전자공학, 반도체 같은 분야를 다루기도 한다. 정말 어렵지만 그래도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니 어쩔 수 없다.”

이 훌륭한 섭외와 알찬 강연을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할지는 후반 작업으로 결정될 것 같은데.

“섭외가 제일 첫 단계라면 마무리는 후반 작업, 편집이다. 지금은 섭외보다는 후반 작업이 훨씬 더 어렵고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이다. 강연자들의 문장과 문장 사이 행간이 이해가 안 될 수 있기 때문에 영상이나 자막, 이미지를 넣어서 해설하는 방식으로 쉽게 풀어주려고 한다. 강연을 들으면서 그림을 보고 한눈에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장치를 많이 두는 것. 그런 것들을 유기적으로 만드는 게 굉장히 고민스러운 일이고, 그 단계를 맡고 있는 제작진이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

‘지식’도 중요하지만 ‘질문’이 정말 중요한 사회가 된 것 같다. 참신한 질문이 있어야 훌륭한 답변을 끌어낼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제작진의 프로그램 구성력이 대단하다. ‘좋은 질문’을 만들어내는 CP님만의 비법이 있을 것 같다.

“구성의 영역일 수도 있는데, 사실 강연을 촬영할 때 바로 질문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 출연자를 또 부를 수도 없고. 그 자리에서 모든 걸 해결해야 되는 상황이라 미리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하고 질문으로 나올법한 것들을 미리 리스트로 만들어 준비한다. 서울에서 작가, 자문 교수 등의 도움을 받기도 하는데, 특히 촬영 현장에서 시청자의 눈높이로 질문을 하는 전문가가 있다. 우리가 놓치기 쉬운 개념에 대한 설명 등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강연자의 강의력이 기본이 되어야 하지만, 그걸 이해시키는 것이 방송을 만드는 사람의 몫이다 보니 시청자 입장에서 가질 수 있는 의문을 미리 파악하고 질문을 계속 던진다. 그래야 좋은 강연 프로그램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첫 시즌부터 세계적인 석학, 전문가들을 만나고 있는데, CP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출연자를 꼽아보자면.

[그림 2] 위대한 수업에 출연한 조지프 나이 교수 (자료: EBS)

“시즌1의 첫 출연자였던 조지프 나이 교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코로나19를 피해서 뉴햄프셔주에 있는 깊은 시골 별장에서 촬영했다.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정치학자인데도 불구하고 정말 겸손하고 따뜻한 분이었다. 첫 출연자이다 보니 사전 조사를 더 꼼꼼히 했는데, 학계 평판을 알아보기 위해 국내외 학자들 수십 명에게 이분에 대해 여쭤보니 모든 분이 조지프 나이 교수를 좋아했다. 동료로서도 학술적으로도 존경하는 것이 느껴져 어떤 분일지 정말 궁금했었다. 직접 만나보고 이야기 나눠보니 정말 훌륭한 분이셨다. 좋은 인품이 학술적으로도 발현이 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큰 깨달음을 주셨던 분이다.”

시즌 3까지 전 시즌 제작에 참여하셨다. 각 시즌의 정체성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각 시즌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셨는지 궁금하다.

“첫 시즌은 아무래도 새 프로그램이니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들을 섭외하자’가 목표였다. 당시 코로나19로 전세계적인 위기의 시간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섭외가 쉽지 않았다. 시즌2 때는 ‘다양성’에 초점을 맞췄다. 성별, 인종, 분야를 넓혔다. 석학뿐만 아니라 제임스 카메론, 조 말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이야기도 담을 수 있게 됐다. 시즌3 에서는 다양성은 기본적인 가치로 하면서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전문가를 섭외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뒀다. 한국에서 유명한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졌다. 시즌1,2를 거치면서 한국에서 유명한 분들은 거의 다 출연하셨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섭외하게 돼서 ‘노벨상 향우회’라는 별명도 생겼다.(웃음)”

타 방송사, 다양한 플랫폼에서도 지식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또 스트리밍의 시대에서 공영방송의 역할과 가치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기도 한데 <위대한 수업>만이 가진 강점과 차별화할 수 있는 지점은 어디인가?

“EBS는 교육 콘텐츠로 한국 사회에 기여한다는 목표가 명확하기 때문에 그 목표를 위해서 계속 달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제약이 많지만 일단 <위대한 수업>의 경우에는 EBS의 설립 목적과 굉장히 잘 맞아 떨어지는 프로그램이고 목표에 충실히 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만이 가진 힘이 있다면 시즌을 거듭하면서 출연자가 이제 120명을 넘어섰다. 아무래도 누적되는 출연자들에게서 나오는 힘이 있다. 시즌이 거듭되면서 한 번 본 사람들은 계속해서 찾는 프로그램이 된 것 같다. 시청층의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 그래서 교육 공영방송사의 가치를 굉장히 잘 구현한 프로그램이라고 자평한다. 다만 공영성을 가지고 화제성이나 제작여건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우리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위대한 수업>은 세계적인 석학들의 강연을 통해 우리 시대의 화두가 무엇인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는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는 프로그램이다. 이는 결국 제작진의 가치와 철학을 바탕으로 메시지가 구현된다고 생각한다. CP님이 중요하게 바라보고 있는 현재 우리 세대가 처한, 앞으로도 가져갈 만한 시대적 화두는 무엇인가? CP님이 <위대한 수업>에 출연하게 된다면 어떤 화두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지?

“과거와는 다르게 현재는 당위성보다는 경제적 이익이 중요하게 생각되는 시대인 것 같다. 과거에는 ‘이렇게 해야한다’고 표현되는 ‘당위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이익의 시대’가 되어 돈과 이익이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예를 들어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시대정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근저에는 경제적 이익이 깔려있다. 현대 사회의 큰 흐름은 경제적 가치에 의해 주도되고 있고, 이를 간단한 주장으로 바꾸기에는 너무 큰 조류라고 생각한다. <위대한 수업>의 제작진이 저를 섭외할 리는 없겠지만(웃음), 기회가 있다면 나는 역사전문 PD로서 사람들이 인문학을 외면하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런 학문이 당장 경제적 이익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인문학이 어떻게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개인의 인생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논의해보고 싶다.”

역사를 전공한 PD로서 앞으로 다뤄보고 싶은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이 있는지 궁금하다.

“아직은 기획 단계지만 2년 내로 다루고 싶은 인물은 유한양행 설립자 유일한 박사. 대학생 때 윤봉길 의사에 관한 책을 쓸 정도로 독립운동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 근데 요즘 세상에 독립운동의 가치를 전파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윤봉길 의사’는 20대 중반에 아이가 둘인 상황에서 독립운동하다 돌아가셨다. 우리 모두 윤봉길 의사를 존경하지만 내 아이에게 그렇게 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요즘 세상에 교육방송에서 독립운동을 어떤 방식으로 다뤄야 할지 고민했고, 유일한 박사가 딱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일제 강점기에 유한양행을 설립했는데 그 시대에 일본 기업에 밀리지 않았던 거의 유일한 분야가 제약 분야. 그 돈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어마어마한 독립자금을 지원했다. 유일한 박사의 이야기는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전하고, 현재를 사는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위해 일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아무래도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인물들이 출연한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안도 다다오가 건축을 시작한 계기, 어떤 방식으로 가치관을 건축물에 연결하게 하는지 이런 내용들을 풀어낼 때. 출연자들이 공통적으로 세상에 대해 선한 가치관을 가졌기 때문인 건가?

“<위대한 수업>은 섭외 단계부터 굉장히 ‘교육방송’스러운 프로그램. 상업화에 물이 들었으면 아마 다른 인물들을 섭외했을 거다.(웃음) 무엇보다 교육의 기회는 균등해야 하고 한국이 급속도의 경제발전을 이룬 동력도 교육에 있다고 본다. 그런 가치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만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느낀 것 같다.”

시청자들이 본인의 의견을 후기로 남기고 매회 캡처를 해서 정리를 하는 등 자발적인 기록이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두드러진다. 시청자가 수용만 하는 게 아니라 재확산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의 토론의 장을 만든다는 게 의미 있어 보인다. CP님이 생각하는 <위대한 수업>의 궁극적인 목표 또는 가치는?

“회사의 공식적인 입장으로는 ‘교육 콘텐츠로 세계공영에 이바지한다’라는 굉장히 큰 비전이 있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의 주된 생각과 거리가 있더라도 의미 있는 연구 결과와 의견이 있다면 기꺼이 출연자로 섭외하는 모험을 할 거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의 다양성의 가치이고 기본정신이다.”

[그림 3] EBS 일산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는 허성호 CP (자료: 다이렉트미디어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