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point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사랑받는 <벌거벗은 세계사>의 롱런 비결

: <벌거벗은 세계사>, 세계사에 대한 지적 재미의 탐구

한 때 이른바 ‘지식 예능’이라 불렸던 교양과 예능의 경계를 해체한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여전히 그 흐름은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이제는 핫 트렌드에서 벗어나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꾸준한 사랑을 받는 지식 예능이 있다. 바로 tvN <벌거벗은 세계사>다. 글. 정덕현 (평론가)

[그림 1] <벌거벗은 세계사> 소개 이미지(자료: tvN <벌거벗은 세계사> 공식 홈페이지)

지식 예능은 어떻게 태동하게 됐나

우리네 방송가에서 지식이란 늘 교양의 영역으로 치부되어 왔다. 하지만 예능이 그저 ‘웃음’만이 아닌 다양한 ‘재미’를 추구하는 포괄적인 엔터테인먼트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실제로 지식이나 정보에도 재미를 요구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서 이러한 지식이 애매한 위치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던 교양과 예능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이른바 ‘인포테인먼트(인포메이션+엔터테인먼트)’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시기 많은 교양의 영역에 있던 프로그램들이 예능화했다. 건강정보를 재미있게 알려주던 <비타민>이나 여기서 경제 영역으로도 확장된 <경제비타민> 같은 프로그램들이 대표적인 사례들이었다.

이처럼 방송가에서부터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한 변화는 인문학의 대중화라는 새로운 사회적 경향에 불을 붙였다. 출판가에서는 채사장이 써서 초베스트셀러가 된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른바 지대넓얕)’이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방송가, 특히 트렌드에 민감한 예능 프로그램이 여기에 반응했다. 2017년 나영석 PD와 양정우 PD가 내놓은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하 알쓸신잡)>이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유희열이 진행을 맡고, 유시민, 황교익, 김영하, 정재승이 출연한 이 프로그램은 나영석 사단 특유의 ‘여행’ 콘셉트를 넣어 인문학이라는 지식에 예능적 색깔을 입혔다. 특정 여행지를 여행한 후, 한 장소에 다시 모여 과학에서부터 역사, 문학에 이르는 다양한 잡학들을 수다로 풀어내는 방식이었다. 지금껏 우리가 봐왔던 지식이라는 것은 교실에서 선생님이 들려주는 것을 받아적는 어떤 것으로 여겨졌다면, 이 프로그램은 우리 옆에서 친근한 목소리로 수다에 가깝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을 보여줬다. 물론 이 같은 인문학의 대중화에 대한 반응은 양갈래로 나뉘었다. 지나치게 엄숙주의와 권위로 흐르던 인문학을, 보다 가볍게 접근해 누구나 즐길 수 있게 해줬다는 긍정적인 시선이 있는 반면, 너무 가벼워진 ‘스낵컬처 인문학’으로 ‘상업화’된 것일 뿐, 인문학의 본질을 오히려 해치고 있다는 부정적인 시선이 존재했다.

[그림 2]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포스터(자료: tvN <알쓸신잡> 공식 홈페이지)

하지만 이미 대세는 바뀌고 있었다.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미디어로서의 책이 가진 힘은 상당부분 디지털에 그 자리를 내주고 있었고, 사람들은 이미 책보다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 더 많은 정보들을 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디지털의 특성은 깊이 보다는 ‘넓이’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를 담보하는 인문학의 대중화와 이를 방송 프로그램으로 끌어안은 지식 예능에 적합한 면이 있었다. 즉 지식 예능이 제공하는 넓이로 해당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제고되면, 그걸 좀더 깊게 읽어내기 위한 책의 위치도 다시금 생겨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흐름이 만들어졌다.

흥미로운 건 이런 변화를 공격적으로 캐치해내고 주도한 방송사가 다름아닌 엔터테인먼트 케이블 채널인 tvN(Total Variety Network)이었다는 사실이다. 교양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 채널은 교양이 대중화를 꾀하기 시작한 이 변화를 먼저 인지하고 발빠르게 움직였던 것이다. <알쓸신잡>의 성공은 지식 예능 트렌드를 만들었고 타 방송사들도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다양한 지식 예능들이 쏟아져 나오고 솎아내고 변화하면서 탄생한 프로그램이 바로 <벌거벗은 세계사>였다.

코로나19와 함께 등장한 <벌거벗은 세계사>

<알쓸신잡> 이후 인문학은 방송가의 트렌드로 자리하게 됐다. 또 이 흐름은 출판계에도 자극을 만들었다. 여기 출연한 출연자들이 낸 책들이 베스트셀러로 떠오르며 화제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다양한 지식 예능들이 쏟아졌다. tvN <어쩌다 어른>은 애초 어른들의 다양한 취향을 담는 오락적 성격으로 시작했지만, 차츰 강연형 지식 예능으로 바뀌었다. JTBC는 2016년에 이미 도올 김용옥을 출연시켜 중국 관련 지식을 강연 형식으로 담았던 <차이나는 도올>을 확장해 <차이나는 클라스>라는 프로그램으로 세웠다. 이후에 tvN은 <수업을 바꿔라>, <우리들의 인생학교> 같은 프로그램들을 신설하기도 했지만 생각만큼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그 후로 <알쓸신잡>은 시즌3까지 만들어지며 나올 때마다 인기를 끌었지만 출연자 섭외 등의 문제들이 이어지며 후속 시즌을 내놓지 못했다. 대신 스핀오프라고 할 수 있는 <알쓸범잡(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이 시즌2까지 이어졌다. 이 지식 예능들 속에서 끝내 현재까지 살아남은 프로그램들은 <차이나는 클라스>와 <어쩌다 어른> 정도로 주로 인문학 전문가들이 출연하는 강연 방식의 프로그램들이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지상파들 역시 지식 예능에 뛰어들었는데, 이미 2013년부터 방영되었던 KBS <역사저널 그날>이 새롭게 주목받았고, MBC가 내놓은 <선을 넘는 녀석들>이 인기를 끌었다. 이들 프로그램들은 ‘역사’라는 소재를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이 분야는 지식 예능으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엿보였다. 이미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되짚어 보고 그것이 현재에 주는 시사점을 찾아낸다는 건, 지식으로도 매력적이었고 시사적인 의미도 있었다. 여기에 당대에 설민석, 최태성 같은 이미 스타 역사강사이자 방송인으로 떠오르는 인물들은 지식 예능 중에서도 ‘역사 예능’의 전성시대를 예고했다.

[그림 3] MBC <선을 넘는 녀석들>에 출연한 역사강사 설민석(자료: MBC)

<벌거벗은 세계사>가 굳이 ‘세계사’라는 역사를 소재로 가져온 건 그런 이유였다. 한국사보다는 더 소재의 폭이 넓은 세계사가 선택되었고, 스타 강사 설민석이 등판했다는 소식만으로도 시청자들의 관심이 쏟아졌다(이 때의 프로그램명은 아예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로 설민석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역사 전공자가 아니고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는 일종의 프레젠터였던 설민석은 곧 한계를 드러냈다. 잘못된 정보를 소개하기도 했고, 자문에 참여한 전문가가 자문 내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수준미달의 방송을 질타하기도 했다. 여기에 설민석의 논문 표절 보도가 이어지면서 결국 설민석은 하차하고, 프로그램명에는 그의 이름이 빠지게 됐다. <벌거벗은 세계사>는 재정비에 들어갔다. 한 사람의 스타 강사에 의존하기보다는 다양한 세계사 속 지식 내용에 맞는 다양한 전문가 강사진을 골고루 세우기 시작했다.

이러한 초반에 불거져 나왔던 많은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벌거벗은 세계사>가 보여준 구성방식은 당시 코로나19라는 팬데믹 상황에서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어모으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 그것은 비대면 사회가 되면서 여행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시청자들을 위해, 마치 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구성방식이다. 출연자들이 한 명씩 등장해 자리에 앉고 그 날 주제를 소개하는 강사가 나와 그 주제에 걸맞는 전 세계의 도시를 이야기하면, 마치 비행기를 타고 그 곳까지 날아가는 듯한 광경이 스튜디오의 창을 통해 연출되는 방식으로 ‘역사 지식 여행’이라는 콘셉트를 잘 살려낸 것이었다. 어찌 보면 <알쓸신잡>이 직접 여행을 하는 콘셉트를 더해 지식 예능의 물꼬를 튼 프로그램이라면, <벌거벗은 세계사>는 스튜디오에서 가상으로 여행을 하는 콘셉트를 구성적으로 구현함으로써 보다 접근성이 좋은 지식 예능의 시스템을 구축해낸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의성과 보편성, 역사의 무거움과 예능의 가벼움

[그림 4] tvN <벌거벗은 세계사> 진주만 편 (자료: tvN 유튜브)

<벌거벗은 세계사>는 첫 시작과 함께 ‘히틀러’를 소재로 다뤘다. 또 ‘클레오파트라’, ‘일본의 난징대학살’도 다뤘다. 여러모로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시청률을 겨냥한 다소 자극적인 소재들을 선택한 셈이다. 다양한 아카이브 사진들은 너무나 잔혹한 내용들을 담고 있어서 블러 처리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것 역시 예능적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설민석이 진행했던 이 세 편이 5%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건 스튜디오에서 스토리로 전해지는 역사 지식이긴 하지만 이러한 선정성이 다분한 소재와 자료들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설민석이 하차한 후 ‘공부하는 외과의사’로 잘 알려진 장항석이 진행한 ‘페스트’ 편은 여러모로 시의적인 선택이 돋보인 회차였지만, 그 후 최태성이 소개한 ‘진주만 공습과 핵폭탄’ 같은 아이템은 역시 자극적인 소재가 아닐 수 없었다.

그 후 몇 차례 스타 역사강사인 최태성이 출연하긴 했지만 <벌거벗은 세계사>는 건축학자 유현준은 물론이고 서울대 인문학 연구원 김헌에 이어 조한욱, 김대보, 김봉중, 윤영휘 등등 다양한 학계의 역사 전문가들을 각각의 아이템에 맞게 초빙해 강의를 이어갔다. 한 명의 스타 강사에 의존하던 지식 예능이 가진 리스크를 확실히 경험한 후, 다양한 강사진을 꾸려나갔던 것이다. 물론 시청률은 초반 5%에서 평균 2%대로 떨어졌지만, <벌거벗은 세계사>는 보다 안정적인 시스템을 갖고 운용되기 시작했다. 굉장히 매력적인 출연자가 등장해 인상적인 강의를 내놓기보다는 누가 출연해도 안정적인 방송이 나올 수 있는 제작 인프라가 만들어진 것이다. 소재적으로 보면 세계사에서 가장 관심이 높은 분야는 결국 ‘전쟁’ 관련 이야기들이다. 1차, 2차 세계대전은 물론이고, 청일전쟁, 러일전쟁, 트로이전쟁, 아편전쟁, 백년전쟁, 미국의 남북전쟁, 베트남 전쟁 같은 근현대사의 전쟁들이 소개됐고, 비교적 최근에 벌어졌던 걸프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 유고 내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도 다뤘다. 또한 역사적 인물에 대한 높은 관심이 반영된 아이템들도 적지 않았다. 진시황제나 알렉산더 대왕, 네로황제, 엘리자베스1세, 루이14세, 콜롬버스, 칭기즈칸, 푸틴, 윈스턴 처칠, 서태후, 표트르1세, 이토 히로부미, 엘리자베스2세, 헨리8세, 마하트마 간디 등등이 그 아이템들이다. 최근 들어서는 세계적인 영향을 미친 대중문화사에 대한 이야기도 다뤄지곤 했는데, 찰리 채플린 이야기나 코코샤넬, 마릴린 몬로, 재즈와 힙합을 다룬 회차들이 방영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또 한편으로는 예술사에 대한 소재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에드바르트 뭉크의 이야기나 그림 동화 이야기, 모차르트와 베토벤, 빈센트 반 고흐를 소재로 다룬 회차들이 그 사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을 때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또 불거졌을 때 이 양국에 얽힌 역사적 사건들을 되짚어보기도 하고, 최근 관심이 쏠려 있는 인공지능에 대해 다루는 등 시의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이제 <벌거벗은 세계사>는 다루지 못할 소재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분야들을 섭렵하는 중이다. 어떤 것도 역사적 관점에서 다뤄지지 못할 소재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벌거벗은 세계사>가 초반만 해도 제대로된 방향성과 시스템을 갖추지 못해 흔들리던 모습은 이제 4년여의 시간을 거치면서 안정화됐다고 보인다. 다만 그건 그저 가만히 얻어졌다기보다는 한 회 한 회 새로운 아이템 발굴과 소재의 확장은 물론이고 강사풀 또한 넓혀온 데서 갖게 된 안정감이다. 시의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아우르고 또 역사가 가진 무거운 이야기를 좀더 예능적인 가벼운 틀 안에서 전할 수 있는 틀이 완성됐다.

이러한 성장은 2017년부터 시작했던 <차이나는 클라스>가 1%대의 낮은 시청률로 종영하고 <차이나는 클라스: 위대한 질문>으로 다시 시작했지만 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과는 사뭇 상반된 모습이다. 그저 강연 프로그램이 아니라, 이를 좀더 예능적으로 소화하면서 다양한 역사 지식들을 안정된 틀 속에서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해진 성장이라고 보인다.

<벌거벗은 세계사>가 얻은 것, 보완해야 할 것

<벌거벗은 세계사>가 얻은 가장 큰 성과는 tvN표 지식 예능의 스테디셀러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지금도 여전히 3%대의 좋은 시청률을 가진 이 프로그램은 tvN이 과거 개념의 엔터테인먼트 전문 채널이라는 소재의 한계를 넘게 해주는 중요한 마중물이 아닐 수 없다. 지식과 정보라는 과거 교양의 영역을 이제 엔터테인먼트로 끌어안아 tvN이 다룰 수 있는 소재와 장르의 폭을 넓혔다는 건, 현재 변화하고 있는 방송의 흐름을 보면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알다시피 최근 교양과 예능은 그 경계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겹쳐져 있는 상황이다. 우리에게는 리얼리티쇼가 관찰카메라라는 이름으로 예능의 영역에 들어와 있지만, 서구에서 이 쇼는 다큐의 영역에 속한다. 따라서 과거 지상파 시절의 방송 다큐가 교양으로 나뉘어져 예능과는 다른 어떤 것으로 치부되던 일이 이제는 옛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해외에서는 이를 대본의 유모로 나누어 스크립트 콘텐츠와 논스크립트 콘텐츠로 구분한다. 논스크립트 콘텐츠 안에 리얼리티쇼나 서바이벌 프로그램, 다큐멘터리가 모두 포함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벌거벗은 세계사>가 선제적으로 꺼내놓은 교양 영역의 엔터테인먼트화는 tvN으로서는 이제 다큐멘터리도 이 채널이 끌어안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교양과 예능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지점은, 과거 두 영역이 나뉘어져 있던 방송을 경험해왔던 시청자들에게는 낯설거나 때론 불편함을 줄 수 있다. <벌거벗은 세계사>에 종종 등장하는 비판의 목소리들 중에는, 지나치게 예능화되어 고정 출연자들이 웃기려 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때론 무식을 드러내는 멘트를 의도적으로 내놓는 일이 지식을 듣는 몰입을 방해한다는 이야기들이 많은 건 그래서다. 여전히 지식이라고 하면 어딘가 좀더 진지하고, 탐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관성이 존재하고, 그건 명백한 사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식에 대한 또다른 관점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지나치게 엄숙주의와 권위로 흐르던 지식들을 보다 가볍게 접근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화에 대한 욕구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즉 한 편에서는 인문학의 본질은 깊이 읽기에 있다고 말하고 있는 반면, 다른 한 편에서는 그 인문학 자체에 대한 관심을 끄집어내기 위한 넓게 읽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옳다고 말할 순 없다. 깊이도 넓이도 모두 필요한 것이니 말이다.

<벌거벗은 세계사>가 지금껏 얻은 것만큼 향후 롱런을 위해 보완해야 할 것도 바로 이 지점에 있지 않을까 싶다. 어떤 역사의 흐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넓이로의 접근이 우선적으로 이뤄진 후, 한 걸음 더 들어가는 깊이까지 시도해본다면 어떨까. 물론 깊이라고 해서 어려운 개념들을 늘어 놓는 그런 방식은 인포테인먼트를 추구하는 지식 예능에는 맞지 않는 방식일 게다. 어려운 내용이라도 꼭꼭 씹어서 쉬운 스토리텔링으로 전해주는 것이 바로 전문가들의 역할이다. 전문영역이 확실하면서도 스토리텔링을 잘 하는 강사 풀을 발굴하는 건 그래서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벌거벗은 세계사>가 앞으로도 롱런할 수 있는 가장 큰 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다.

<벌거벗은 세계사>는 방송된 내용을 담은 도서가 이미 10권 가까이 발간됐다. 즉 지식 예능으로 물꼬를 열고 책이라는 본격 인문학의 세계로 이끌어내는 역할도 해왔다는 것이다. 물론 지식예능이 갖는 한계 또한 분명하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들도 비판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지혜가 요구된다. 중요한 건 특정 역사적 사실에 대한 관심의 환기가 보다 깊이있는 역사를 들여다보는 창구로 이어지길 바란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방송이 출판과 연계를 갖고 이어질 때 보다 심화된 내용들을 담을 수 있으면 좋을 듯 싶다. 또한 이 프로그램에서 시작해 <벌거벗은 한국사> 같은 스핀오프가 탄생한 것처럼, 다양한 ‘벌거벗은’ 지식 예능 시리즈가 나오길 바란다.

정덕현 (평론가)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로 MBC 시청자평가원, JTBC 시청자위원을 역임했고 백상예술대상·대한민국예술상 심사위원이다. 저서로 『드라마 속 대사 한 마디가 가슴을 후벼팔 때가 있다』,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