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열의 스케치북> 종영 후 KBS에서는 새로운 프로그램 형태인 <더 시즌즈>를 방영했다. 이 프로그램은 한 시즌마다 홀로 또는 듀오 MC가 진행하며, 시즌이 바뀌면 새로운 MC가 프로그램을 이끌어간다. 각 시즌은 진행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음악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과거 히트곡, 아티스트의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는 커버곡, 신곡 등 다양한 라이브 무대를 선보인다. <더 시즌즈>는 2023년 <박재범의 드라이브>로 첫 시즌을 시작하였다. 이어 2023년 여름 <최정훈의 밤의 공원>, 가을에는 <악뮤의 오날오밤>, 2024년 겨울에는 <이효리의 레드 카펫>, 현재 방송 중인 2024년 봄 시즌은 <지코의 아티스트>가 진행 중이다.
[그림 1] <더 시즌즈: 악뮤의 오날오밤> (자료: KBS <더 시즌즈> 공식 홈페이지)
1. <더 시즌즈>의 시작, 아티스트 박재범과 함께
뛰어난 연예인, 과거 아이돌 출신이며 세 개의 음반 레이블(AOMG, H1GHR, 모어 비전)의 설립자이기도 한 박재범은 한국 음악 산업계에서 널리 인정받는 인물이다. 음악 프로그램 진행 경험도 풍부하여 프로그램 첫 시즌 진행자로 적합한 선택이었다. KBS에서 박재범을 캐스팅 한 이유는 젊고 트렌드에 민감하며 청년층에게 인기가 많은 인물이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업계 내에서 존경받는 인물이며 프로젝트를 자신 있게 이끌어갈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프로그램 전체적인 게스트 라인업을 보면 힙합과 R&B 장르가 다소 강조되어 있지만, 프로그램은 박재범의 강점을 살리면서도 모든 시청자가 즐길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박재범의 드라이브>를 시청하면 프로그램이 매우 신선한 느낌이 든다. 박재범은 베테랑 연예인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코멘트와 인터뷰 질문은 새롭고 사전에 준비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예를 들어, 권진아가 게스트로 출연한 여섯 번째 에피소드에서, 관객들의 반응으로 인해 박재범과 권진아는 함께 일어나 춤을 추어야 했는데, 이는 스크립트에 없는 매력적인 장면이었다. 이러한 장면을 통해 시청자들은 아티스트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해외 시청자들에게는 권진아와 같은 아티스트가 생소할 수도 있지만, 이 프로그램 형식은 자신의 노래를 부르고, 뉴진스와 샘 스미스의 곡을 훌륭하게 커버한 후 최근 발매한 EP 수록곡을 선보이면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했다. 더 시즌의 뮤지컬 게스트들은 모두 출연 당시 프로모션할 신곡을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라이브 무대에서 처음으로 신곡을 선보이기도 한다.
박재범의 시즌에는 '타라웃'이라는 코너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코너에서는 박재범이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아티스트도 하이라이트 할 수 있었다. '타라웃' 코너 중 한 에피소드에서 박재범은 레트로 싱어송라이터 ‘구만’을 초대했고, 구만은 미리 정해진 장소에서 박재범을 데리러 왔다. 일반적인 음악 프로그램과는 달리 카메라맨 없이 작은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시청자들에게 친밀감과 특별함을 느끼게 했다. 구만의 작은 1999년산 차량 안에서 뜨거운 차를 마시며 구만의 노래 중 하나를 공유하는 장면은 멋진 장비, 화려한 춤, 스포트라이트 없이도 돋보였다. 물론 스튜디오 관객에게 오프스테이지 클립을 보여준 후 구만은 박재범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과거 이수만의 라디오 프로그램과 윤복희 쇼 등을 통해 볼 수 있듯이 영향력 있는 MC가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의 커리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는데, 더 시즌 또한 이러한 영향력 있는 역할을 수행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2. “CLOSE”, 관객과 친밀성과 예술성 강조
<더 시즌즈>의 즐거운 점 중 하나는 라이브 관객이 함께한다는 점이다. 특히 스크린을 통해 방송을 시청할 때는 마치 현장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아티스트와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이찬혁이 이효리의 첫 번째 에피소드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관객석 중앙 통로를 따라 춤추며 무대에 올랐다. 다른 연예인들도 통로를 걸으며 팬들의 손을 터치 하기도 한다. 관객들은 MC를 좋아하거나 해당 회차에 출연하는 아티스트에게 관심이 있어 프로그램을 방청하는 것이다. 관객들은 다양한 시즌에서 휴대폰으로 응원 메시지 띄우기, 노래를 청취하며 눈물 흘리기, 큰 소리로 노래 따라 부르기 등으로 아티스트의 무대에 반응했다. 특히 방탄소년단 멤버 제이홉(정호석)이 <박재범의 드라이브> 게스트로 출연하여 박재범과 함께 관객석 중앙에 앉았을 때 세계적인 톱 스타와의 갑작스러운 만남은 시청자들을 숨막히게 했다. 이 느낌은 화면을 통해서도 전해졌다.
[그림 2] <더 시즌즈: 박재범의 드라이브> (자료: KBS <더 시즌즈> 공식 홈페이지)
이 프로그램은 또한 음악 크리에이터에게 크레딧을 주는 데에도 세심하다. 백업 댄서, 코러스 가수, 밴드 멤버 등은 모두 프로그램 진행 중에 언급되며, 작곡가, 작사가, 원곡 가수의 이름이 화면에 항상 표시된다. 멜로망스의 정동환이 이끄는 하우스 밴드 '정마에와 쿵치타치'는 대부분의 공연에서 라이브 밴드 반주를 제공하며 지속적으로 크레딧과 함께 화면에 노출된다. 일부 게스트들은 이번에 처음으로 라이브 밴드와 함께 공연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일부 에피소드에서는 정동환이 스티븐 콜버트와 같은 미국 심야 토크쇼와 유사하게 코멘트를 달거나 응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주목받지 못한 아티스트들을 크레딧에 포함하는 것은 <더 시즌즈>가 엔터테인먼트보다는 예술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3. <더 시즌즈> MC가 만드는 프로그램의 매력
각 시즌의 진행자들은 자신만의 개성을 독특한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박재범은 휴지를 받으며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기를 바란다며 농담을 했고, 목덜미에서 땀을 닦는 척 하다가 곧바로 휴지를 겨드랑에 밀착시켰다. 악동뮤지션의 이찬혁과 이수현 남매는 장난기 넘치는 형제 자매 상호 작용을 통해 개성을 드러냈다. 예를 들어, 제시가 이찬혁에게 다소 섹시한 댄스 동작을 가르칠 때, 이수현은 종이를 들고 제시의 시야를 가리고 멈추라고 했다. 각 시즌은 시청자들에게 독특한 것을 제공하며, 일부 시청자들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특정 시즌에만 매료될 수 있다. 악동뮤지션의 멤버인 이찬혁과 이수현이 진행할 때, 많은 게스트들은 이들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고 단지 공연만 봤기에 악동뮤지션과의 대화가 어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독특한 개성은 다른 시즌보다 더 많은 시청자들의 웃음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동시에 악동뮤지션의 시즌은 아티스트와 그들의 신곡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형제자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더 많이 비춰 주었다. 어느 때에는 카메라가 라이브 공연 중에도 이들의 리액션을 촬영하기도 했다. 음악 애호가의 입장에서 볼 때 최정훈의 시즌이 가장 다양한 아티스트를 선보였다. <이효리의 레드 카펫>에는 많은 걸그룹과 솔로 여성 아이돌들이 초대되었는데, 모두 이러한 전설과 같은 무대에 함께 서게 된 것에 경외감을 느꼈다. 예를 들어, 청하가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시청자들은 마치 팬미팅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청하는 이효리의 앨범 여러 장과 직접 쓴 카드를 가져왔다. 이효리가 청하에게 소녀 시절 얼마나 큰 영감이 되었는지 적힌 카드를 읽을 때 청하와 많은 관객들은 눈물을 흘렸는데, 이는 감동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장면이었다. 마찬가지로 씨스타의 효린은 멘토링을 받기 위해 이효리에게 연락했고 제주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도록 초대받았던 경험을 회상했다. 이효리는 게스트 또는 그룹마다 그들이 인정받도록 하고 그들의 커리어를 응원했는데, 이는 때때로 박재범과 지코도 했던 역할이었다. 하지만 최정훈은 게스트 앞에서 좀 더 겸손하게 자세를 유지했던 것과는 달리 특히 이효리와 지코가 진행하는 <더 시즌즈>에는 음악 아티스트 외에도 배우들도 초대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비음악 연예인들 각각은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음악적으로) 좀 더 깊고 복합적인 한류 산업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림 3] <더 시즌즈: 이효리의 레드카펫> (자료: KBS <더 시즌즈> 공식 홈페이지)
4. <더 시즌즈>, K-POP을 위한 노력
프로그램은 심야에 방송되며, 방영 시간은 유동적이다. 이른 경우는 저녁 10시, 늦은 경우는 밤 11시 20분에 시작하기도 한다. 예상대로 이는 시청률에 영향을 미치는데, 어느 에피소드도 시청률 2%를 넘지 못했으며, 최신 시즌 진행자인 지코는 시청률 0.3%까지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 TV에서의 시청률 지표는 중요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해외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것을 목표로 제작되었기에 시청률의 영향이 적다. 3~5 시즌은 비키(Viki)에서 볼 수 있으며, 모든 시즌의 클립은 자막과 함께 KBS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튜브 조회수를 볼 때 이 프로그램은 지속적인 온라인 시청률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으며, 조회수는 게스트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 많은 경우 유튜브 클립에는 오직 공연만 담겨 있어 이는 <인기가요> 또는 <뮤직뱅크>와 같은 주말 음악 프로그램의 클립과 매우 유사하다. MC와 아티스트 간의 대화가 없으면 <더 시즌즈>의 클립은 독특함을 잃어버리고, 더 많은 에피소드를 시청하도록 시청자를 끌어들일 수 없다.
<더 시즌즈>이 시작된 이래 이 리부트는 <유희열의 스케치북>보다 더 많은 해외 시청자를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졌지만 궁극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한국 시청자를 위해 제작되고 운영된다. 하지만 이것이 프로그램을 변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시즌즈>는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제공하지 않는 음악 애호가들에게 독특한 것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하다. 이 프로그램을 시청해온 해외 시청자들은 모두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전에 알지 못했던 아티스트를 알게 되었고, 예술 제작을 중심으로 하고 에피소드마다 얼마나 즐거웠는지 칭찬했다. <더 시즌즈>가 계속된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외 시청률이 증가할 것이라고 믿는다. 주로 온라인에서 대화를 나눈 시청자들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출연하는 회차를 보고 나서 자연스럽게 이전 에피소드까지 시청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많은 해외 K-pop 팬들은 이 업계를 짧은 기간 동안만 지켜본 경우가 많으며, 자신들이 열렬히 응원하는 몇몇 그룹들만 알고 있다. 이는 즉, 어느 정도 나이가 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기억에 남는 바다(S.E.S)와 같은 일부 게스트들은 그들에게는 생소한 인물이라는 뜻이다. 지코와 함께 무대에 올라 바다의 황금 같은 목소리를 다시 한 번 들려주고, 수년 만에 처음으로 발표하는 신곡을 선보이는 그녀를 보는 것은 감동이 넘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야만 감동을 느낄 수 있다. 효린과 보라가 2013년에 발표한 곡을 부르는 모습을 시청했을 때, 자신과 많은 관객들에게 극도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마찬가지로 씨스타19의 신곡은 씨스타의 사운드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채워주었으며, 새로운 음악적 방향을 보여주지 않고 팬들에게 친숙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노래였다. 이러한 순간들을 통해 <더 시즌즈>는 단지 유명 아티스트와 숨겨진 보석들을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K-Pop의 지속성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수년, 수십 년 동안 K-Pop을 시청해온 팬들에게는 오랜 스타들의 출연과 이와 관련된 대화는 깊은 텍스트 간 상호 작용이었으며, 오래 전의 음악과 이벤트에 대한 언급으로 가득 차 있었다.
- CedarBough Saeji / 서이지(부산대학교 글로벌학부 조교수)
- 부산대학교 글로벌학부 한국 및 동아시아학과의 조교수. 대중 매체부터 가면극, 박물관까지 한국 공연 예술을 분석하는 학자로서, Saeji 교수의 연구는 한국의 문화 정책, 관광, 현대 사회의 전통 문화 재현에 중점을 두고 있다. Asian Dance Journal의 공동 편집자이자 현재 한국학위원회의 부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