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을 다룬 드라마는 올해 상반기만 해도 〈열녀 박씨 계약 결혼뎐〉, 〈마이 데몬〉, 〈내 남편과 결혼해 줘〉, 〈재벌X형사〉, 〈멱살 한번 잡힙시다〉, 〈로열 로더〉, 〈피라미드 게임〉, 〈눈물의 여왕〉 등 10여 편에 달한다. 그리고 대체로 시청률도 좋은 편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작가들은 왜 재벌 소재를 선호하는지 이유를 알아보고, 드라마 속 재벌에 대한 인식 변화도 함께 알아본다. 글. 노동렬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그림 1] <눈물의 여왕> 포스터(자료: tvN 공식 홈페이지)
홍해인과 백현우가 남긴 여운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눈물의 여왕>은 멜로 드라마 장인인 박지은 작가와 김수현, 김지원 배우가 조합을 이루면서, 15% 정도의 시청률로 시작한 드라마였다. 과연 스토리의 힘으로 어느 정도까지 시청률을 더 끌어올릴 것인가가 관심사였는데, 25%로 종방했다. 시청자들은, 특히 국내 시청자들은 재벌가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25% 시청률에는 ‘퀸즈 그룹’이라는 재벌가의 이야기가 소비자에게 관심을 보탠 것이 사실이다.
이런 ‘재벌’을 다룬 드라마는 2024년 상반기만 해도 〈열녀 박씨 계약 결혼뎐〉, 〈마이 데몬〉, 〈내 남편과 결혼해 줘〉, 〈재벌X형사〉, 〈멱살 한번 잡힙시다〉, 〈로열 로더〉, 〈피라미드 게임〉, 〈눈물의 여왕〉 등 10여 편에 달한다. 그리고 대체로 시청률도 좋은 편이었다. 왜 작가들은 재벌 소재를 선호할까, 그리고 왜 소비자들은 재벌 드라마에 눈길을 주는 걸까? 드라마가 사회를 투영한다는 점에서 그 답에 가까워질 수 있다.
주제와 사회를 반영하는 직업과 장르
드라마와 사회의 변화는 상호의존적인 관계에 있다. 가장 대표적인 표상이나 도구들을 선택하고, 그것이 지니는 시대적인 특징을 강조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주제 부각을 극대화하는 것이 소비자들에게 공감을 얻어내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주인공의 직업은 드라마의 주제와 사회의 변화를 가장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도구 중 하나이다.
직업은 드라마 전체 배경과 분위기 조성에 기능하면서 배역의 캐릭터 구체화에 영향을 미친다. 직업에 대한 인식은 직업인에 대한 성격과 이미지, 수입 등에 대한 고정관념을 구축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러한 고정관념을 차용하거나, 전복하거나, 과장하면서 주인공 캐릭터를 결정하고, 스토리를 구축한다. 당대에 주목받는 직업을 드라마에 그려냄으로써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고 소비자들로부터 동경심을 자극한다. 새로운 직업은 새로운 스토리를 제공할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도구 중 하나가 바로 장르이다. 단순하게 드라마의 유형을 분류하는 기준이라기보다는 드라마가 주제를 전달하기 위하여 취하는 전형성이기도 하고,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플롯(plot) 구성 방식이기도 하다. 작가나 연기자들에게도 장르의 전문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테면 <시크릿 가든>, <태양의 후예>, <도깨비> 등을 집필한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들에서는 판타지와 로맨스, 코미디 요소들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그만큼 드라마는 장르의 특성을 이용해서 스토리와 플롯, 작가, 연기자 모두에게 고유한 성격을 부여하고, 소비자들 대부분이 예측하고 기대할 수 있는 효용가치를 창출해 낸다.
[그림 2] <도깨비> 포스터(자료: tvN 공식 홈페이지)
논리적인 직업 묘사, 스토리의 타당성 확보
장르 정보로부터 소비자가 얻는 효용가치는 몰입과 감정이입, 동일시, 서스펜스 등의 방법으로 구체화한다. 드라마는 실제 이야기가 아니라 꾸며진 스토리이다. 그렇지만 실제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스토리로 꾸며진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을 몰입시킨다. 드라마나 영화와 같이 스토리텔링이 있는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시청자들은 감정이입, 동일시, 서스펜스 등을 통해 극중 인물이 자기가 원하던 것을 성취했을 때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하며, 마치 그 사람과 실제로 상호작용을 하는 것 같은 유사 사회적 상호작용을 경험하기도 한다.
감정이입 또는 공감이란 다른 사람의 입장에 스스로 자기를 위치시키는 능력, 다른 사람의 정서적 경험을 이해하는 기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정확히 지각하는 능력 등으로 정의된다. 즉 다른 사람의 감정을 목격하고 이에 대해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등장인물을 관찰한 다음 그의 행동이 인정되면 친구로 생각하고 인정되지 않으면 적으로 생각하여 그에 따라 반응함으로써 드라마의 인물에게 공감하기도 하고 반감을 느끼기도 한다. 공감하는 인물에게 감정이입을 많이 하면 자연히 반감을 느끼는 인물이 더 많이 미워지게 되며, 드라마 안에 더 푹 빠지게 된다. 그래서 작가들은 가능한 한 갈등을 첨예화시키려 노력하고, 시청자들이 많이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고자 애쓴다. 여기에 사용되는 구체적인 도구가 직업이나 질병 등이다.
동일시는 미디어의 등장 인물에게 일어나는 일이 마치 자신에게 일어난 것처럼 내면에서부터 감정이입 되어 나타나는 심리를 말한다. 감정이입이 없는 동일시는 있을 수 없으며, 동일시가 강할수록 감정이입도 강하게 일어난다. 등장인물이 실제로 자신과 유사성을 지닐 때 동일시가 더 쉽게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소비자가 희망하는 캐릭터에 동일시하려는 경향도 나타난다. 따라서 드라마 작가는 동일시를 강하게 발생시킬 수 있는 캐릭터를 창조하거나 사건•상황 등을 설정하여 시청자들과 상호 작용함으로써 몰입을 만들어 낸다. 드라마 스토리가 시청자들로부터 설득과 이해를 얻어내는 방법이 바로 내적 타당성과 시청자의 경험과 상식에 기초하여 이해할 수 있는 에피소드와 상황 설정이라 할 수 있다.
서스펜스는 의심이나 불안, 기대되는 사건에 대한 흥분 등과 같이 무엇인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인해 발생하는 불안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불안 상태는 시청자의 긴장을 유발하며, 이러한 긴장감이 드라마의 갈등 구조를 강화하여 시청자들을 몰입시키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부정적 감정의 갈등은 서스펜스의 핵심 요소이다. 드라마에서의 서스펜스는 갈등과 위기의 해결에 관한 긴장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부정적인 사건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의 경험과도 연계되어 있다. 드라마를 시청하는 동안 자기가 좋아하는 주인공에게 부정적인 사건이 생길 수 있다는 긴장감은 주인공의 해피엔딩을 바라는 마음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희망과 공포는 서스펜스와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 있는 것이다.
드라마에 있어서 스토리의 반전, 발견, 전환점은 소비자들에게 긴장감을 유발하는 전략적 기술이다. 내적 타당성을 극대화하여 핍진성을 지닌 장르로 그리게 되면 감정이입, 동일시, 서스펜스를 유발하면서 시청자들에게 긴장감을 발생시키게 된다. 따라서 스토리의 반전이나 전환점을 만드는 플롯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최근 드라마에서 스토리의 내적 타당성을 확보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 직업에 대한 묘사에 있다. 그래서 드라마에서 어떤 직업군을 다루는지, 그 직업군의 전문성을 어떻게 다루는지, 직업을 통해 어떤 갈등을 다루는지는 소비자가 스토리에 몰입하고, 주인공에 동일시하고, 갈등에서 서스펜스를 느끼도록 하는지를 결정하는 요소이다. 직업에 대한 논리적인 타당성이 없이는 갈등은 극대화할 수 없게 된다.
성공한 드라마 속 주인공 직업의 변화
장르의 성격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바로 작가가 주인공 직업을 다루는 방식에서 나타난다. 최근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들이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고, 예능뿐만 아니라 드라마에서도 장르 융합은 대세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예전 드라마들도 장르 융합의 성격이 있기는 하였지만, 로맨스 장르의 성격을 제외하고는 딱히 다른 장르의 특성이 잘 반영되어서 소비자들이 다양성을 절감할 만한 드라마들은 드물었다. 로맨스 장르는 남녀 주인공의 러브 라인을 위주로 스토리가 전개되지만, 여타 장르들은 남녀 주인공 직업의 세계와 스토리가 연계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특징은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흥행에 성공한 드라마 남녀 주인공의 직업군 변화를 연구한 결과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1990년대부터 시대별 남녀 주인공의 직업은 다양해지고 있었고, 최근 남자주인공의 직업군은 검사, 의사 등의 전문직이나 전문 경영인, 그리고 경찰 등의 특수 성향의 직업군으로 특화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결과는 1990년 시기에 직업이 드라마 스토리 구성의 배경으로 기능한 반면, 최근에는 직업의 세계를 세세하게 묘사하면서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갈등을 구축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음을 함의한다. 이는 멜로 장르의 드라마가 주류를 이루던 우리 드라마 환경이 점차 의학 드라마, 범죄 수사 드라마, 정치 스릴러, 판타지 드라마, 전문직업 드라마와 같이 다양한 장르적 특성들이 부각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표 1] 시대별 드라마의 남녀 주인공 직업 변화의 특징
[그림 3] <대장금> 공식 이미지(자료: MBC)
우리 드라마는 1990년대에서 2010년대로 넘어오면서 여자주인공 중심 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 중심 드라마로 변화해 오고 있다. 1990년대의 드라마들이 남녀 주인공 간의 사랑을 중심으로 한 멜로 드라마의 성향이 강했다면, 2000년대 드라마들은 여자주인공 간 경쟁을 통해 사랑과 성공을 쟁취하는 구성을 가지는 경향이 강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많아지면서 가정과 사회에서 요구되는 여성의 역할에 대한 이슈들이 강하게 대두되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되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현상이라고 판단된다. <여인 천하(2001)>, <대장금(2004)>처럼 남성 취향의 사극 드라마 장르에서도 여자주인공이 부각되는 드라마가 크게 성공하기도 하였다.
다양한 전문 직종이 드라마에 등장하면서도 남녀 주인공들은 직업을 가진 생활인으로만 그려지던 경향이 점차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직업의식과 목표 의식, 사명감을 가진 투철한 직업인으로 그려지게 되었고, 그에 따라 드라마는 장르 성향이 강한 소재의 드라마들이 증가하게 되었다. 1990년대에 유행했던 트렌디 드라마는 당시 유행했던 직업군들을 드라마에 등장시키면서도 사랑에만 집중하는 남녀 주인공을 묘사하였다. 2000년대에는 전문직업이 더욱 다양해지면서 직종의 특성들이 스토리에 반영되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여자주인공들은 사랑에 매달리는 모습으로 귀결되는 경향이 강했다. 일컬어 ‘신데렐라 드라마’나 ‘캔디 드라마’ 등이 이 당시의 유행 드라마였다. 그러나 201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직업의 세계를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드라마의 핵심 소재로 다루는 드라마가 증가하였다.
2016년 <38사기동대>는 세금 징수 공무원의 이야기를 그렸고, 2017년 <비밀의 숲>은 외톨이 검사 황시목의 직업관을 제대로 그리면서 각광을 받았다. 2019년 <스토브리그> 같은 스포츠 드라마가 성공한 사례나, 2023년 <대행사>가 괜찮은 드라마로 평가받는 이유도 디테일한 직업의 세계에서 갈등을 뽑아냈기 때문이다. 15년 차 수절과부의 처지를 코믹하게 잘 그려낸 <밤에 피는 꽃>도 조선시대 배경의 과부라는 신분을 코믹하게 패러디하면서, 많은 호응을 얻었다고 봐야 한다. 이처럼 최근의 드라마들은 주인공의 직업의 세계를 스토리의 핵심 갈등 요인을 만들어 내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따라서 작가는 직업의 세계에 대해서 정통하지 않으면, 흡인력 있는 스토리를 쓰기 어렵다. 재벌을 다루는 방법도 마찬가지이다.
드라마 속 재벌에 대한 인식 변화
예전이나 최근이나 재벌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단골 직업군이다. 하지만 예전과 최근에 재벌을 다루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예전 드라마들은 재벌을 직업인으로 그리지 않았다. 2000년 MBC에서 방영된 <진실>은 40% 시청률을 넘나들었던 성공한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는 콩쥐팥쥐 스토리의 전형을 제시하면서 막장 소재나 기억상실증 같은 우리 드라마의 단골 소재를 잘 다루었던 것으로 유명한데, 이 드라마에서 류시원은 재벌 2세로 등장해서 최지우에게 순정적인 사랑을 보여주지만, 재벌인 류시원 아버지의 구체적인 사업 내용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극 중에서 물론 대학생 신분이지만, 류시원은 그냥 ‘잘 사는 집 아들’의 의미로 재벌 2세라는 배경만 입고 활보한다.
박지은 작가가 <눈물의 여왕>에서 퀸즈 백화점의 홍해인 대표를 그렸다면, 김은숙 작가는 <시크릿 가든>에서 로엘 백화점의 김주원(현빈 분)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2010년에 김은숙 작가가 만든 김주원은 백화점 부사장으로서의 면모나 정적으로부터 회사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이 폐소공포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숨기면서 투쟁하는 모습이 잘 묘사된다.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조력자가 바로 길라임(하지원 분)이다. 남자주인공 중심의 드라마를 그리면서, 남자주인공의 조력자 역할을 하는 여자주인공 길라임은 능동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그려지는 편이다. 2000년 방송된 <가을 동화>에서 원빈의 직업은 호텔 막내아들, 2013년 <별에서 온 그대>의 박해진은 S&C 그룹 막내아들, 2015년 <용팔이>에서 김태희는 한신 그룹 상속녀로 출연했다. 모두 기록적인 시청률 성과를 내면서,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재벌 소재의 로맨스 드라마였다. 그동안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의 남자주인공이 바로 재벌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눈물의 여왕>은 여자가 재벌로 등장했다는 점에서는 차이점이 있다.
부자나 재벌의 삶을 본격적으로 다룬 드라마는 2018년도에 방송된 <스카이 캐슬>이다. 상위 0.1% 부자들이 자식들을 천하제일 왕자와 공주로 키우려는 욕망을 그린 이 드라마는 드라마의 내용이 사실인지에 대해 큰 관심을 갖도록 만들면서, 24%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는데, 주요 배역의 직업은 의대 교수, 로스쿨 교수지만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삶의 수준은 그야말로 0.1% 부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스카이 캐슬>의 성공 이후에 작가들은 더 자극적인 상위 0.01%나 0.001%의 사람들의 삶을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게 된다. 이러한 추세에서 <재벌 집 막내아들>이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순양 그룹 창업자(이성민)와 재벌 3세(송중기)를 중심으로 한 재벌가와 한국 현대사를 절묘하게 연결한 판타지 기업 드라마의 성격을 가진 이 드라마는 범죄, 스릴러, 미스터리, 서스펜스, 정치, 멜로 등의 다양한 장르 성격이 융합된 드라마이면서, 재벌의 직업이 스토리의 전면에 배치된 드라마이다. 재벌이라는 직업에서 어떤 갈등이 만들어지느냐를 판타지와 엮었다는 점에서 동일시나 몰입의 확률을 높일 수 있는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림 4] <재벌집 막내아들> 포스터(자료: JTBC 공식 홈페이지)
이렇게 재벌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성공하는 이유는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드라마를 통해 대리 만족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3세대로 진화하면서 재벌의 유형도 변화됐다. 이전에는 1세대 ‘창업자’라는 관점에서 거리감을 느끼던 재벌이지만, 1994년 <사랑을 그대 품 안에>, 2000년 <가을 동화>, 2000년 <진실>에서 이미 재벌 2세가 등장했고, <눈물의 여왕>에서 재벌 3세가 등장 하면서 재벌에 대한 거리감도 줄어들었고, 노력형으로 재벌의 반열에 올라가는 사람들의 소식을 접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드라마는 이러한 꿈의 실현 과정을 체험하게 하거나 대리만족하게 해주는 예술 장르이다. 성공 스토리가 바로 이런 유형의 드라마인데, 2022년 JTBC에서 방영된 <재벌 집 막내아들> 같은 판타지 드라마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판단된다.
두 번째로는 돈을 가진 사람들을 능력자라고 생각하는 시대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방송에 출연한 연예인과 재벌들이 어떤 자동차를 타는지, 몇 대의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지, 시계가 얼마인지, 얼마짜리 음식을 먹었는지 등을 스스럼없이 자랑하는 모습은 ‘플렉스(Flex)’, ‘영 앤 리치(Young & Rich)’라는 용어를 실감하게 한다. 철부지 재벌 3세가 강력팀 형사가 되어서 막강한 재력과 인맥을 동원해서 사건을 해결하는 통쾌한 모습을 보여준 <재벌X형사>가 좋은 사례이다. 누구나 이런 능력에 대한 로망을 갖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최근 드라마는 이를 잘 활용하고 있다.
세 번째, 관찰 예능이 성공하는 것처럼, 드라마는 소비자들에게 훔쳐보기의 쾌감을 제공한다. <눈물의 여왕> 홍보를 위해 연예인 아내와 이혼한 재벌이나 일반인 남편과 이혼한 재벌가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 것이 증거이다. 한 재벌 회장은 드라마를 보면서, “드라마 작가들은 재벌이 저렇게 사는지 아는군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재벌들도 신선하게 보는 재벌의 이야기는 일반인의 로망이면서, 훔쳐보기의 대상임을 예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2018년 방송한
재벌 소재의 드라마는 시청자의 선망과 로망, 한편으로는 현실과의 괴리를 역설적으로 한데 모으며 ‘성공하는’ 소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앞으로 나올 재벌 드라마에서는 재벌의 투철한 목표의식과 직업정신을 넘어 어떤 이미지로 그려질지 관심이 쏠릴 전망이다.
[그림 5]
- 노동렬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2006년부터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1년 KBS제작단에 입사하여 16년간 드라마PD로 활약해 <하늘이시여>, <왕꽃선녀님>, <요정 컴미>, <매직키드 마수리> 등을 기획, 연출했다. 저서로 『드라마 디자인』, 『방송학의 이해』, 『방송산업의 비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