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드라마의 거장 김순옥 작가의 <7인의 탈출>(SBS) 시즌 1이 종영됐다. 시청률 6%로 시작해 6.6%로 막을 내렸다. 최고 시청률은 4회 7.7%였고, 동시간대 드라마 시청률 1위 기록은 5회 한 번뿐이었다. 시즌 1, 2, 3가 각각 28.8%, 29.2%, 19.5%의 최고 시청률 올렸던 전작 <펜트하우스> 시리즈에 비교하면 성적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셈이다. 악당들이 떼거리로 등장하고 복잡하게 꼬인 스토리가 전개되는 피카레스크1) 드라마라는 성격도 같고 자극적인 장면도 결코 전작에 뒤지지 않는데 왜 이런 결과를 낳았을까? 이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고전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을 소환해봤다.
<7인의 탈출>을 보면서 흥미롭게도 인상적인 장면마다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가 생각났다. <7인의 탈출>은 현재 톱스타가 된 배우 ‘한모네’가 5년 전 고등학교 미술실에서 출산을 하고 그 사실을 ‘방다미’라는 동급생 친구에게 뒤집어씌워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에서 출발한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이 사건과 연관된 사람들이 제주도로 초대 받는다. 한모네와 팬들이 함께 떠나는 휴가라는 이벤트의 일환이지만, 실은 방다미 사건과 연관이 있는 인물들을 악당 ‘매튜’가 모아놓은 것이었다.
드라마 제작사 대표 ‘금라희’, 체리 엔터 대표 ‘양진모’, 산부인과 의사 ‘차주란’, 고등학교 담임 선생 ‘고명지’, 제주경찰청장 ‘남철우’, 방다미 사건을 키운 깡패 ‘민도혁’, 그리고 한모네. 이렇게 7명은 방다미 사건의 중심인물들이고 죽음의 책임을 나눠 가진 존재들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제주도 호텔에서 수영장 파티를 즐기던 이들은 깡패 ‘주용주’가 죽자 혼란에 빠진다. 수영장 물과 음료에 풀어놓은 마약에 취한 일행은 주용주의 시신을 무인도에 갖다 버리기로 의기투합한다. 이들이 무인도로 가서 하룻밤을 보내는 내용이 담긴 5회, 6회가 이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로프>(1948)에는 매우 엽기적인 장면이 나온다. 명문대 졸업생 둘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동급생을 목 졸라 죽인 뒤 그의 시신을 궤짝에 넣어 은폐한다. 그리고 그 위에 식탁보를 깔고 칵테일파티 음식을 차린다. 그 파티에는 죽은 친구의 부모와 전 약혼녀 등이 초대되고,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은 시신이 담긴 궤짝 위에 놓인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 이는 명백히 카니발리즘을 상징한다. <7인의 탈출>에도 이와 같은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이 있다. 주용주의 시신을 요트에 싣고 섬으로 가던 7인은 허기를 느끼고 음식을 찾는다. 식탐을 주체할 수 없는 이들은 미친 듯이 게걸스럽게 음식을 퍼먹는다.
시신을 유기하러 가는 길에 허기를 느끼고 음식을 먹는 주인공들
출처: SBS Drama 공식 유튜브 채널달콤한 음식은 ‘유혹’과 ‘금기’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한다.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서 남매는 숲속에서 발견한 생강빵으로 만든 집에 홀려 마녀에게 죽을 위험에 처한다. 영화 <판의 미로>의 주인공 소녀는 지하왕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세 가지 미션을 받는다. 첫 번째 미션은 징그러운 벌레와 두꺼비 사이에 놓인 열쇠를 꺼내는 것으로 비교적 난이도가 낮은 편이었으나, 두 번째 열쇠를 얻는 미션은 훨씬 힘든 과정으로 설정되었다. 진수성찬이 차려진 긴 테이블을 지나야 열쇠가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다. 소녀가 참기에는 음식이 너무 유혹적이다. 결국 소녀가 포도 몇 알을 입에 넣자 죽은 듯 앉아있던 괴물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소녀를 위협한다.
김순옥 표 피카레스크 드라마 <7인의 탈출>에서 음식을 먹는 장면은 주인공들의 부도덕함이나 추한 이면을 드러낼 때마다 등장한다. 섬에 도착한 사람들은 마약에 취해 환각을 본다. 아름다운 유니콘이 하늘을 날고 섬에는 온통 탐스러운 과실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그러나 과일나무는 말라버린 죽은 나무였고, 그들이 달게 마신 우물은 시신이 담긴 썩은 물이었다. 박쥐와 멧돼지들의 공격(환영)을 뚫고 진흙 괴물(시신)들을 뿌리친 후 호텔로 돌아온 7인은 다시 허기를 느끼고 조식을 즐긴다. 27명을 죽인 사람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 다시 음식을 탐하는 모습이다. 이들의 식탐은 끝없는 탐욕의 알레고리다.
주인공들의 눈에 비친 탐스러운 열매는 마약으로 인한 환각이었다.
출처: SBS Catch 공식 유튜브 채널13회에는 뜬금없이 놀이공원 장면이 등장한다. 매튜는 자신을 배신한 일행을 잡아서 놀이기구에 태운다. 미친 듯이 돌아가는 회전목마, 자이로드롭, 바이킹에서 비명을 지르는 일행을 보며 매튜는 교향악단 지휘자라도 되는 듯 지휘하는 시늉을 한다. 밤새 돌아가던 놀이공원은 아침이 밝아 오자 불이 꺼지고 매튜는 일행에게 마지막 경고를 한다.
왜 놀이공원일까? 교환(交換) 살인을 소재로 한 히치콕 영화 <열차 안의 낯선 자들>(1951)의 주요 무대 또한 놀이공원이다. 살인이 벌어지는 곳이 놀이공원이고, 주인공이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범인과 마지막 일전을 벌이는 장소는 회전목마다. 가장 밝고 즐거운 장소가 가장 무섭고 끔찍한 범죄 현장이 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기에 놀이공원은 적격이다. 매튜이자 ‘케이’이자 ‘심준석’이라는 다중인격 괴물의 괴이함과도 잘 어울린다.
영화 <열차 안의 낯선 자들>에서 놀이공원은 살인과 혈투가 벌어지는 공간이다.
출처: 워너브라더스<7인의 탈출>에서 모든 불행의 씨앗은 진짜에서 하루아침에 가짜가 된 고등학생 심준석이 느낀 박탈감과 배신감에서 비롯된다. 성찬그룹 ‘심용’ 회장은 애지중지하던 준석이 친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태도가 돌변하여 그를 미국으로 보내버리려 한다. 아버지, 어머니와 살고 싶다고 무릎 꿇고 호소하는 고등학생 준석에게 심용은 “가짜 주제에 어디서 응석을 부려”라고 말하며 냉정하게 뿌리친다. 이때부터 비뚤어지기 시작한 준석은 가짜인 자신이 살기 위해서 심용의 친아들인 민도혁을 처치하기로 결심한다. 준석의 덫에 걸려 살인자 누명을 쓴 도혁은 진짜 살인자를 직접 찾아내서 누명을 벗는 수밖에 없다.
누명 쓴 남자가 자신의 결백을 스스로 입증하는 이야기는 히치콕 영화의 단골 주제 중 하나다. <오인>(1956),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 같은 영화들이 그렇다. 도혁은 헨리 폰다나 케리 그랜트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자기 힘으로 준석을 잡아야 한다. 마지막 회에서 매튜와 도혁 일행은 거울방에서 총격전을 벌인다. 여러 개의 모습으로 분열된 거울 이미지 속에서 가짜 심준석과 진짜 도혁이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눈다. 시즌 2를 겨냥해 17회는 열린 결말로 마무리됐다. 저조한 시청률 탓에 시즌 2가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도혁의 정체성 증명과 누명 벗기는 다음으로 미뤄졌다.
이 대사는 김순옥 작가가 자신에게 하는 말 같다. <7인의 탈출>의 등장인물들은 “말도 안 돼”, “어떻게 거기서 살아 나와?” 같은 대사를 종종 입에 올린다. 얼굴에 점 하나 찍었다고 다른 인물이 되는 내용의 드라마 <아내의 유혹>(SBS)을 쓴 김순옥 작가다. 그의 작품에서 죽었던 인물이 살아나고 감쪽같이 변장하는 일은 이상할 것도 없다. <7인의 탈출>의 저조한 시청률은 막장이라서가 아니라 막장의 공식이 흔들려서다. 김순옥 드라마답지 않게 선한 인물들이 너무 많다. 돈이라면 벌벌 떨던 ‘방칠성’ 회장이 손녀의 죽음으로 갑자기 개과천선하고, 방다미의 양부모와 ‘강기탁’은 비현실적으로 헌신적이며, 양아치 같던 양진모는 ‘노팽희’라는 여자에게 순정을 바친다. 피카레스크 복수극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환각에 취해 살육을 벌이는 5회, 6회가 보여준 판타지 드라마의 성격과, 루머와 가짜 뉴스에 희생되는 여고생의 사실주의적 비극이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 4회까지 이어진 방다미 사건은 시청자로 하여금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끼게도 했지만 그만큼 목이 꽉 멘 답답함을 안겨줬다. 시청자들은 김순옥 드라마에서 직접적인 사회 고발을 보려는게 아니다. 시즌 2가 제작된다면 다시 막장의 초심으로 돌아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