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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wave 2

K-콘텐츠와 베트남
콘텐츠 시장의 변화

장규호(86 STUDIO 대표)

베트남에서 한류는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플랫폼의 변화, 시청 방식의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는 지금, 베트남에서도 직접적인 한류 콘텐츠의 소비를 넘어 다양한 방식의 한류 콘텐츠 소비가 시도되고 있다.

베트남의 K-콘텐츠,
얼마나 더 이어질까

베트남 한류의 시작은 1997년 KBS 드라마 <느낌>이 호치민TV를 통해 방영되면서 시작됐다.1) 이후 <의가형제>(MBC), <별은 내 가슴에>(MBC), <가을동화>(KBS2), <겨울연가>(KBS2), <대장금>(MBC) 등이 베트남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해당 드라마에 출연한 연기자들은 팬미팅을 위해 베트남을 방문하기도 하고, 안재욱이 <별은 내 가슴에>에서 부른 곡 ‘Forever’는 베트남 국민가수 람쯔엉(Lam Trường)이 ‘Mãi Mãi’라는 곡으로 리메이크해 현재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얻은 요인은 기존의 베트남 드라마들과 다른 다양한 소재, 가족·친구들과의 일상적인 관계를 소재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배우들의 수려한 외모와 한국의 세련된 생활 환경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 한류 드라마를 바탕으로 2000년대까지 베트남 방송사에게 한국 드라마는 시청자들을 붙잡아 둘 수 있는 텐트폴 편성의 중요한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베트남 방송사들의 드라마 편성 방식은 한국의 일일드라마 편성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오후 6시, 7시, 8시 드라마 편성을 통해 각각 ‘베트남 프리미어’, ‘아시아 프리미어’, ‘월드 프리미어’ 등으로 구분하여 45분씩 방송하는데, 한국 드라마의 경우는 월드 프리미어 편성 시간대에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한국 드라마가 베트남 시장에서 효자 역할을 한 2020년 이전에는 한국의 일부 방송사들이 베트남 방송국과 연간 계약, 턴키2) 계약을 통해 콘텐츠를 공급했지만 베트남에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OTT 플랫폼들의 등장으로 베트남 방송국 입장에서는 구매할 수 있는 콘텐츠의 수가 줄어들었다.

2023년 11월 19일의 베트남 넷플릭스 드라마 TOP 10 순위.
한국 작품은 총 네 작품이다.

출처: 넷플릭스 베트남

이러한 현상 속에 베트남 방송사에서는 한국 콘텐츠를 대신해 필리핀, 인도, 태국의 드라마를 구매해 방영했는데, 시청률이나 광고 판매에서 한국 드라마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몇몇 작품은 한국 드라마보다 큰 인기를 누리며 배우들이 베트남에서 팬미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는 1990년대 후반 한국 드라마가 베트남에서 자리 잡았던 과정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베트남 방송 환경의 변화

베트남에서 서비스되는 방송 채널은 150개가 넘는다. 베트남 국영방송 VTV의 경우 뉴스와 정책을 다루는 VTV1부터 VTV9까지 운영 중이고 그 외 국영방송인 VTC의 경우도 16개의 채널을 직접 혹은 임대를 통해 운영 중이다. 5~6년 전부터는 넷플릭스를 필두로 한 글로벌 OTT 플랫폼과 베트남 방송사, 통신사가 설립한 30여 개의 OTT 플랫폼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한국 콘텐츠가 이러한 플랫폼에 가장 매력적인 콘텐츠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변화된 콘텐츠 시장 속에서 한국 콘텐츠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빠르게 전파되는 불법콘텐츠와의 경쟁 아닌 경쟁을 하기 위해 플랫폼들은 한국과 동시방송을 진행하기도 한다. 베트남 대표 OTT 플랫폼인 FPT Play의 경우 SBS의 <런닝맨>을 한국 방영 1시간 이내에 자막 작업해 자사의 플랫폼에 업로드한다.3)

150개가 넘는 채널, 30개가 넘는 OTT 플랫폼이 가지는 문제점은 콘텐츠의 중복이다. 사용자가 A라는 플랫폼을 구독하고 있다면 굳이 B라는 플랫폼을 중복으로 구독하지 않아도 150여 개의 실시간 채널들을 시청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에 메이저 플랫폼들은 구독자 확보를 위해 한국 모델과 유사한 스튜디오 제작 시스템을 도입하여 오리지널 시리즈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Galaxy Play, Viettel Media, K+ 등의 플랫폼은 제작 스튜디오를 직접 운영하며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해 구독자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베트남 OTT 플랫폼인 K+가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4)

출처: K+

베트남도 코로나19 기간을 거치면서 시청자들의 시청 패턴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편성 시간에 맞춰 방송을 시청하는 것이 아닌 모바일 디바이스를 통한 시청이 일반화되면서 각종 OTT 플랫폼들과 유튜브, 넷플릭스 등이 주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 플랫폼 간 시청자를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 중 하나로 오리지널 콘텐츠 시리즈 제작이 부상했고,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새롭게 변화하는 한국 콘텐츠 소비

2014년 CJ ENM이 베트남 VFC와 공동 제작한 드라마 <오늘도 청춘(Tuổi thanh xuân)>이 큰 인기를 얻은 후 매년 베트남에서 30여 개 이상의 한국 드라마가 리메이크되고 있다.

<하나뿐인 내편(Hương vị tình thân)>, <왜그래 풍상씨(Cây táo nở hoa)>, <으라차차 와이키키(Nhà trọbalanha)>, <태양의 후예(Hậu duệ mặt trời)>, <제빵왕 김탁구(Vua bánh mì)>, <그녀는 예뻤다(Mối tình đầucủa tôi)>, <왕가네 식구들(Gạo nếp gạo tẻ)> 등은 현지에서도 큰 인기를 얻으며 매년 조사하는 베트남 드라마 연간 TOP 10에 선정되기도 했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도 <런닝맨(Chạy đi chờ chi)>, <1박 2일(2 Ngày1 đêm)>, <복면가왕(Ca sĩ mặt nạ mùa)> 등 리메이크가 활발하게 진행되며 현지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베트남에서 리메이크된 <그녀는 예뻤다(Mối tình đầu của tôi)>, <런닝맨(Chạy đi chờchi)> 포스터

출처: VTV3, HTV7

베트남 방송 시장은 스스로 자신들의 부족한 부분을 숨기지 않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항상 좋은 스크립트와 포맷, 작가가 부족하다고 한다. 과거 인기몰이를 위해 한국에서 성공한 드라마들의 리메이크가 주를 이루었다면 현재는 변화하는 플랫폼과 트렌드에 맞게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 콘텐츠를 베트남에 녹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단지 한국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일본 콘텐츠의 베트남화에도 동일하게 작용하고 있다. 제작 스튜디오 도입을 통해 콘텐츠 생산 및 경쟁력 확보에도 많은 공을 기울이고 있는 베트남에서는 글로벌 OTT와의 협업과 웹툰, 웹소설 IP 확보로 검증된 소재를 활용한 콘텐츠 제작에 더욱 힘쓰고 있다.

베트남 시장, 어떻게 볼 것인가

베트남 정부의 방송 서비스 규정 발표5) 속에 넷플릭스가 베트남에 법인을 설립한다는 소식도 들렸다. 하지만 최근 보도된 기사에 따르면 법인 설립은 하지 않고 베트남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투자는 매년 늘려갈 계획임을 밝혔다.

포화 상태인 방송 채널과 OTT의 등장으로 인한 콘텐츠 경쟁력 감소 속에서 방송 채널의 조정과 OTT 플랫폼의 합병이 조만간 진행될 것이라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베트남 방송계에서 들려오고 있다. K-콘텐츠는 여전히 베트남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과거 시청자들이 방송을 통해 접하던 콘텐츠는 OTT 플랫폼을 통해 시간과 장소의 제한을 받지 않고 접하게 되었다.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 플랫폼을 통한 한류의 확산과 함께 OTT 플랫폼을 중심으로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이 이루어지는 베트남 시장에서, 한국 콘텐츠가 보다 고민을 거친 현지화를 통해 한 단계 더 올라설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장규호

    Localization Production FURMO DT에서 한국 콘텐츠의 해외 현지화 작업을 진행했다. 현재는 방송과 영화 관련 한국과 베트남의 공동 제작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