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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2

방송 환경과
시청 행태 변화가 바꾼 편성 공식

이문행(수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드라마는 16부작이고 주 2회 방영한다는 기존의 편성 공식은 오랜 시간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청 환경과 콘텐츠 소비 방식의 변화에 따라 기존의 공식이 깨지고 있다. 주 1회 혹은 3회 편성, 파트 1, 2로 나누기 편성 등 변화 중인 방송 편성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콘텐츠 찾아보는 시대, 변화하는 편성

방송사의 편성 전략은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을 효율적으로 배치하여 시청자의 선택을 최대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방송사가 정기적 또는 수시로 개편을 진행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프로그램의 성격에 따라 방송 시기와 시간대를 조정하는 것은 편성의 기본이다. 타 채널과 경쟁하기 위해 동일 장르로 실력 편성을 하기도 하고, 다른 장르로 대응 편성을 하기도 한다. 신규 프로그램은 인기 프로그램을 앞세워 인접 효과를 기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채널 수가 크게 늘고 다시보기와 몰아보기가 일상화되면서 프로그램 공개 시점이나 시간대를 조정하는 편성 전략의 의미는 이미 퇴색했다. 본방 사수 시청자가 희박해지고 있는 시청 환경에서는 프로그램 배치 문제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결국 기존의 전략은 시청자 락인(Lock-in) 효과도 미미하고, 제작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고, OTT 편성 대응을 위해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워졌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MBC 드라마 <연인>이 총 21회를 전반과 후반으로 나누어 방송하면서 파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편성 의도가 제작의 완성도를 위한 숨 고르기 전략인지 시청자를 묶어 두려는 락인 전략인지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고 있지만 극이 전개되다가 뚝 끊어지는 듯한 자르기 편성이 당황스러운 건 사실이다. 여기에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켜 스토리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바이럴 마케팅까지. 방송사의 시도는 과감했고 시청자들의 애간장을 녹였다. 한 달 만에 다시 공개한 후반 드라마는 대성공이었다. 편성 전략만이 주효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편성이 불러일으킨 화제성은 충분히 시청률 제고에 기여했다.

드라마 <연인>은 파트 1과 2로 나눠 편성하고, 파트 2 공개 전
선공개 영상으로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극했다.

출처: MBCdrama 공식 유튜브 채널

프로그램 배치를 보다 전략적으로 하는 것이 과거의 편성 방식이었다면, 급변하는 방송 환경에서 전통적인 편성 공식들은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시청자들이 인지하고 있는 편성에 대한 고정적 개념들, 메인 뉴스의 방영 시간, 미니시리즈 슬롯, 드라마 횟수와 러닝 타임 등 그 어느 것 하나 바뀌지 않는 것이 없다. 대형 슈퍼마켓에서 소비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제품의 진열대가 자주 변경되면 제품을 찾을 수 없듯이 이젠 편성의 틀은 완전히 무너져서 특정 드라마의 방송 채널과 요일, 방영 시간을 일일이 검색하지 않으면 보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몰아보기 시청 행태가 확대 편성 계기 되기도

지상파 방송사는 중간 광고가 허용된 2021년 7월 전까지 드라마나 예능 1편을 1, 2부로 분리(쪼개기)하는 편성을 했다. 2020년 방영됐던 <스토브리그>(SBS)는 심지어 처음엔 2부로 나눠 방송하다가, 중간부터 3부로 나눠졌다. 이러한 편성은 중간 광고가 허용되었을 때 시청자의 거부감을 줄이는 데 기여했다. 유료 방송의 중간 광고 시청 경험도 지상파 방송의 중간 광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했다.

소위 ‘광고를 위한 지상파 방송의 쪼개기 편성’은 전통적인 편성의 개념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인기 프로그램의 경우 기본 60~70분에서 90~120분으로 러닝타임을 늘이는 확대 편성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기존 1시간 편성 틀을 깨고 90분으로 시간을 늘리면서 2부로 나뉘어 중간에 광고가 붙었다. 주말 저녁 두 시간을 몰아서 편성해 몰아보기 효과를 거둔 <K팝스타 6>(SBS), <런닝맨>(SBS), <복면가왕>(MBC), <나 혼자 산다>(MBC)가 대표적이다.

주 2회 고정 편성 방식도 변화했다

시즌 3까지 방송된 <펜트하우스>(SBS)는 금, 토 주 2회로 방송하던 이전 시즌과 달리 시즌 3를 주 1회씩 12주 동안 방영했다. 디즈니플러스의 드라마 <카지노>도 처음에 3회까지 공개하더니 주 1회 공개로 바꿨다. 게다가 나머지 분량을 파트 2로 묶어 한 달 뒤에 공개했다. <재벌집 막내아들>(JTBC)의 경우 금, 토, 일 주 3회로 편성되었다.

미니시리즈 드라마 한 편당 회차도 줄고 있다. 16∼24부작이던 과거와 달리 16부작 미만인 드라마가 늘고 있는것이다. <나빌레라>(tvN), <오월의 청춘>(KBS2)은 모두 12부작이다. <알고있지만,>(JTBC)은 10부작이다. 다양한 회차 조정은 OTT에서 먼저 시작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은 시즌 내내 6부작으로 제작되었고, <인간수업>, <스위트홈>은 10부작이다. 카카오TV 오리지널 드라마 <이 구역의 미친 X>는 13부작이다. 고정된 회차 틀을 깨고 작품에 최적화된 에피소드 수, 러닝타임으로 제작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주중 시리즈는 주말에 재방송한다는 원칙도 사라져 일요일 2회 연속 방송도 하고, 본방송 후 몇 시간의 시차를 두고 동일 채널에서 재방송을 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시청자와의 약속이 중요해서 시간대 변경이나 요일 변경, 주간횟수 변경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다. 스포츠 중계 등의 큰 이벤트가 없는 한 편성을 변경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그러나 이제는 고정된 편성 패턴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 <국민사형투표>(SBS)는 주 1회, 12부작 편성이고,
    <오늘도 사랑스럽개>(MBC)는 주 1회, 총 14부작이다.

    출처: SBS, MBC

이미 예고된 편성 패턴 변화

MBC는 2019년 드라마 <봄밤>을 시작으로 모든 방송사 중 가장 이른 시간인 오후 8시 55분에 평일 미니시리즈를 편성했다. 이에 기존에 편성되어 있던 <MBC 뉴스데스크>는 오후 7시 30분으로 편성 시간을 변경했다. SBS는 <열혈사제>를 금토극으로 편성하면서 편성 시간보다 방송 요일 변경을 먼저 시도했다. KBS도 월화극 시간대에 예능을 편성했다. tvN은 월화극 오후 9시, 수목극 오후 10시 50분으로 편성 시간대를 변경했다. 시간대별로 프로그램을 배치하는 전통적인 편성 방식이 깨지고 콘텐츠별 특성에 맞는 유연한 펀성 전략 시도로 읽힌다.

미니시리즈 시즌제의 경우, 드라마가 인기리에 종영되었을 때 후속 시리즈를 기획한다. 따라서 시즌 간 시차가 길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시즌제의 간격도 짧아졌다. 넷플릭스의 <D.P.>만 해도 시즌 1과 시즌 2는 약 2년의 간격이 있었는데, <펜트하우스>는 시즌 3까지 한두 달의 휴식기만 있었을 뿐이다. 한편 넷플릭스의 <더 글로리>는 심지어 ‘파트’라는 개념으로 1, 2부로 나눠서 파트 1과 파트 2를 3개월 간격으로 공개했다. 대개 시즌제라고 하면 시즌1에서 일단 스토리가 종결이 되고, 오픈 엔딩으로 후속 시즌을 예고하게 되는데 <더 글로리>는 스토리 자체가 파트 1에서 종결되지 않는다. 전반부(8부작)에서 스토리가 진행되다가 3개월 휴식 후 나머지 후반부가 공개됐다. 엄밀히 말해 시즌제가 아닌 파트제인 것이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생소하고 어리둥절하게 하는 편성이었지만, 워낙 콘텐츠가 탄탄했고 홍보에도 집중해 새로운 편성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더 글로리>가 첫선을 보였을 때만 해도 파트 분리 편성이 낯설어 쪼개기 편성이라는 개념을 쓰기도 했지만, 엄밀히 말해 파트 분리 편성은 지상파 방송이 중간 광고 허용 전에 변칙적으로 20~40분을 나눠 방송했던 쪼개기 편성과는 성격이 다르다. <더 글로리>에 이어 지상파 MBC까지 <연인>을 전반(파트 1), 후반(파트 2)으로 나누어 약한 달여의 간격을 두고 2023년 8월과 10월에 각각의 파트를 방송했다. 지상파가 처음으로 시도한 자르기 편성은 해당 드라마의 성공으로 향후 늘어날 전망이다.

채널 증가로 인한 무한 경쟁 시대, 다시보기와 몰아보기 일상화로 인한 시청 행태의 변화, OTT의 활성화로 프로그램 유통 창구의 순서가 더 이상 무의미해진 상황에서 전통적인 상차림이라 할 수 있는 편성의 개념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 국내에서 제작된 드라마가 연간 150편이 넘을 정도로 콘텐츠가 홍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채널 인지도보다 개별 프로그램의 경쟁력이 우선시 되고 있다. 드라마 자체의 스토리는 물론 몰입감 있는 시청을 위해 전통적인 편성 공식을 따르기 보다는 다양한 공개 방식을 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제 편성은 프로그램을 배치하는 영역에서 벗어나 입소문이 중요한 마케팅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드라마의 인기가 예견되면 중간에 한 번 끊어서 시청자의 애간장을 태우고, 스페셜 편성으로 고정 시청층을 최대한 끌고 가겠다는 것이다. 일단 한번 시청하기 시작한 콘텐츠에 대해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락인 효과를 구축하기 위함이다.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침묵의 스노볼’ 효과도 겨냥한다. 소리 없이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타게 하고, 시청 열망의 욕구가 분출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OTT가 방송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시대에 시청률의 의미는 퇴색되고 대신 화제성 지수가 무엇보다 더 중요해지고 있다.


  • 이문행

    수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이자 인문사회대학장이다. 미디어 산업, 방송 경영, 콘텐츠 유통 등을 연구하고 있다. 공저로 『미디어 경영론5.0』(한울아카데미), 『스마트 생태계와 미디어 경영 2.0』(커뮤니케이션북스)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