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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1

글로벌 출연자 ‘다시’ 느는 예능
갈림길에 서다

강보라(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

외국인이 출연하는 한국 예능은 해마다 늘고 있지만, 그들을 다루는 방식은 예전과 큰 변화가 없다.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각하거나 반대로 재한 외국인으로서의 모습을 내세운다. 그간 한국 예능에서 외국인 출연자는 어떻게 소비되어 왔을까? 그리고 그 소비 방식에 문제는 없을까?

외국인 출연 늘었지만
차별성 없는 기획

2023년 말, 한국의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업계는 낙관적이면서도 동시에 냉혹한 상황에 처해 있다. 대표적인 한국 미디어·엔터계의 낭보는 한국 가수와 배우가 이룬 해외 무대에서의 성취다. ‘2023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 새로 K-Pop 부문이 신설되어 정국, 뉴진스 등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고, 배우 박서준이 출연한 <더 마블스>, 넷플릭스를 통해 서비스되는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JTBC)이 큰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반면 국내 사정은 낙관하기 어려워졌다. OTT 플랫폼들은 드라마 제작을 대폭 줄이고 있는 상황인데다, 방송사 또한 희망퇴직과 정리해고 소식이 공공연히 들릴 정도로 운영이 녹록지 않아졌다. 실시간 시청의 개념이 퇴색했음을 감안하더라도 재방송이 여기저기 포진한 현재의 방송 편성표는 제작 여건의 악화를 실감케 한다.

일주일 내내 방송되던 드라마의 빈자리를 차지한 건 각종 예능 프로그램이다. <나 혼자 산다>(MBC)와 같은 관찰예능, <싱어게인>(JTBC)과 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 <라디오스타>(MBC)로 대표되는 토크쇼, 그리고 <덩치 서바이벌-먹찌빠>(SBS)와 같은 게임 위주의 버라이어티쇼 등이 주된 포맷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의 형태에 가장 효과적인 변주를 줄 수 있는 건 바로 출연진이다. 국내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출연진은 특성에 따라 연예인, (전·현직)스포츠 선수, 일반인, 그리고 외국인 등으로 나뉜다. 이들은 각각 유명세, 재능, 진정성 또는 이국성을 무기로 삼는데, 최근 예능의 일부 외국인 출연자는 이국성에 더해 재능과 진정성을 함께 겸비하기도 한다. 유명 안무가가 출연해 인기를 끈 <스트릿 우먼 파이터 2>(Mnet)와 상당한 경력의 군(軍) 전문가 집단이 출연해 화제를 모은 <강철부대 3>(채널A)가 그 예다.

<그림 1> 2003~2023년 외국인 출연 예능 프로그램 추이 및 대표 프로그램 연보


2023년에 방송된 외국인 출연 예능 프로그램은 총 8개로 가장 많은 편수가 제작된 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외국인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갑자기 늘어났다고 보기엔 어려움이 있다. 지난 2013~2014년과 2017년에도 가파른 성장세가 관찰되기 때문이다(<그림 1> 참고). 아침 시간대에 방송되는 교양 프로그램에 외국인이 출연하는 경우는 2000년대 이전에도 간헐적으로 존재했으나 예능으로 분류되는 프로그램에 외국인이 등장한 첫 사례로 2002년 2월 22일에 첫방송된 MBC <느낌표>의 코너 ‘아시아! 아시아!’가 꼽힌다.1) 이후 2006년에 방송을 시작해 4년간 큰 인기를 얻은 KBS의 <미녀들의 수다>를 필두로 외국인 출연자들이 대다수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2010년까지는 매해 1편 정도에 해당하는 외국인 출연 예능이 만들어지다 2013년에는 3편, 2014년 들어서는 5편이 만들어지는 등 급격한 양적 팽창이 이루어진 바 있다. 그 기간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보더라도 <섬마을 쌤>(tvN), <로맨스의 일주일>(MBC every1), <비정상회담>(JTBC), <글로벌 붕어빵>(SBS)과 같이 외국어(영어)강습, 여행이나 연애를 소재로 한 리얼리티, 재한 외국인을 주축으로 한 토크쇼와 퀴즈쇼 등으로 다양하다. 이후 <비정상회담>이 성공을 거두면서 스핀오프 격인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JTBC)가 만들어졌고, 2017년 첫 방송을 시작해 국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MBC every1) 또한 2022년에 <어서와 한국살이는 처음이지?>(MBC every1)와 같은 스핀오프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2023년에 방송된 외국인 출연 예능 프로그램이 양적으로 증가한 것은 일정 부분 사실이나 내용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기존의 프로그램과 두드러진 차별성을 가졌다고 보긴 어렵다. 앞서 언급한 <스트릿 우먼 파이터 2>와 <강철부대 3>가 언어보다 신체 기술을 활용하는 서바이벌이란 점을 제외하면 <피리부는 여행사>(MBC every1), <위대한 가이드>(MBC every1), <이제는 K투어-한국을 부탁해>(채널A) 등은 여행지가 조금씩 다를 뿐, 재한 외국인을 내세운 여행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란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잠시 주춤했던 여행 프로그램 포맷에 낯익은 외국인 출연자를 결합시켜 ‘현지인’으로서의 장점을 부각시키거나 ‘재한 외국인’으로서의 매개성을 활용하는 엇비슷한 기획이 반복되는 식이다.

  • 다른 방송사의 프로그램이지만 비슷한 포맷을 가진
    외국인 출연 예능 프로그램들

    출처: MBC every1, 채널A

기존의 제작 방식 고민해야

여기서 질문해야 할 건 지난 20년간 한국 사회의 풍경이 변모하는 동안 외국인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형식적·내용적 측면에서 어떤 변화를 거듭해왔냐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한국은 점차 다인종·다문화사회로 나아가는 중이다. 2023년 11월에 발표된 행정안전부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는 226만 명으로 총인구의 4.4%에 달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그중에서도 59.4%에 해당하는 외국인이 수도권에 거주하며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2) 여기에 국제결혼, 외국 생활, 여행 등 외국인과 외국 문화를 소재로 하는 유튜브 영상, 웹툰과 같은 대중적 콘텐츠가 팽창하면서 여러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창구가 늘어나기도 했다. 이를 토대로 국내외에서 외국인과 교류를 나누고 외국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 또한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해졌다. 이처럼 한국 사회를 둘러싼 미디어·문화 환경이 변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능 프로그램의 ‘외국인 활용법’은 10여 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인상을 준다.

미디어학계에서 지적한 방송 프로그램의 외국인 재현과 관련된 가장 큰 문제는 인종을 서열화하고 이중적 인종주의를 강화하는 경향이다. 과거 한국 방송에 출연한 외국인은 인종과 출신 배경, 사회적 지위 등에 따라 차등화되었고, 문화적 편견에 기댄 방식으로 그려지곤 했다. 방송사 PD이자 연구자인 안진은 제작자의 관점에서 백인 출연자가 선호되었던 암묵적 관습을 여러 번 언급한 바 있다. <그림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미국 중심의 미디어 문화를 답습한 한국의 방송 제작자가 백인에 대한 인종적 호감을 가지는 한편 백인이 출연한 프로그램이 시청률을 보장한다는 경험적 지식을 쌓은 경우, 백인과 같은 특정 인종을 매력적으로 비추는 프로그램을 생산하게 된다. 그 결과 수용자층에선 미디어에 재현되는 인종 스테레오타입을 강화하고, 향후에도 백인 출연자 위주의 프로그램을 선호할 가능성이 존재하게 된다. 20년 전 외국인 출연 방송이 “인종적 서열화로 백인과 비백인의 위계가 설정되어 비백인이 열등하게 타자화”했다면 지금의 방송에서는 “국뽕을 채우려 백인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백인 또한 타자화”된다는 새로운 문제가 제기된다.3)

미디어 재현이 우리가 처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때 취하는 행동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한편으로 그 재현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여기며 무시하거나 비판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믿고 싶은 환상을 위해 재현이 스스로를 기만하는 데 활용될 수도 있다. 만약 현실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면 어떨까? 미디어 재현을 좀 더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게 될까? 복잡한 상황이 한층 간단해질 수 있는 방향으로?

2024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오늘날 세계가 처한 현실은 복잡하기 그지없다. 정치·경제적 질서가 재정립되는 와중에 여러 이유로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대륙 간, 그리고 대륙 내 이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일들이 빠른 속도로 기존의 국경과 문화적 경계를 넘나드는 중이다. 물론 예능이라는 장르적 속성에 이 모든 흐름을 반영할 수도 없고, 반드시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지 20년이란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전의 방송 문법을 그대로 답습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것인지. 한국 예능은 그 기로에 서 있다.

  • 강보라

    미디어 기술이 정체성 및 지식을 구성하는 방식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현상과 담론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 연구로 <리얼리티의 혼재 혹은 분화: 드라마 생산과 수용 과정에서 살펴본 드라마 리얼리티의 역학>이 있고, 『디지털 미디어 소비와 젠더』, 『AI와 더불어 살기』(커뮤니케이션북스) 등의 저서를 함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