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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디에이징은
시간과 돈의 장벽을 넘을 수 있을까

조서윤(예능 PD)

그간 드라마에서 등장인물의 어린 시절을 보여줘야 할 때는 아역 배우를 활용해 왔다. 최근 방영된 드라마 <카지노>에서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주인공의 시간을 거꾸로 돌렸다. AI 디에이징(De-aging) 기술을 활용한 것이다.

낯설지만 익숙한 ‘디에이징’

스마트폰이 일상화된 이후 가장 좋은 점 하나가 뭐냐고 묻는다면 바로 사진 보정 기능 아닐까? 이제는 사람들의 셀피나 SNS에 포스팅된 사진을 보면 모두가 영원히 늙지 않는 듯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는지라 ‘뽀샵’이라 불리는 보정 없이 나의 사진을 공유하는 것은 왠지 손해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수년 전, 우연히 인스타그램에 추천 게시물로 뜬 인플루언서의 계정을 보게 됐다. 모델로 보이는 해당 인물이 너무나도 이국적인 외모에 완벽한 비율을 자랑하고 있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침 웹드라마를 기획해 보려던 시점이라 오디션에 초청할 겸 메시지를 보냈고 며칠 후 ‘완벽한 그녀’와 오프라인 미팅이 진행되었다.

약속 시간이 되어 만난 우리 사이에는 반가운 인사말 대신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최대한 감정이 상하지 않게 예의를 갖추고 말을 빙빙 돌려 사진과 실물이 조금 다르시다는 말을 건넸다. 그러자 해맑고 당당하게 ‘인스타그램 속 사진은 얼굴부터 몸매까지 모두 보정한 것이라 훨씬 어려 보이게 나온다’고 밝혔다. 요즘은 기술이 너무 좋아서 완벽한 변신을 할 수 있다며 행복해하는 그녀의 모습에 많은 생각이 교차했던 기억이 있다. AI 디에이징 기술의 원리가 어려울지는 몰라도 의미만 보면 이미 우리의 일상에 비슷한 기술이 존재하기에, AI 디에이징은 우리와 뗄 수 없는 생활 기술이 될 수도 있다.

2020년 코로나19 발발을 계기로 여러 디지털 신기술들이 일상화되기 시작했는데, 최근까지 가장 큰 화제가 되었던 키워드 중 하나를 꼽는다면 단연 ‘메타버스’다. 페이스북은 회사 이름을 ‘메타’로 바꾸었고, ‘메타버스전문대학원’이 개설될 정도니 그 열풍은 굳이 길게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해당 기술을 응용한 소셜미디어와 플랫폼, NFT 작품, 암호 화폐 등이 유기적인 경제 생태계까지 구성하며 그 존재감을 강력하게 드러내던 시기인지라 관련 정보를 찾아 볼 기회가 있었다. 내가 준비했던 연구 주제는 <TV 메타버스 예능 프로그램 제작 애로사항과 개선 방안 연구>로, 국내 지상파, 종편 등에서 제작된 메타버스 예능, 드라마, 시사·교양 프로그램 제작진과 직접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주로 예능과 시사·교양물은 모션 캡처1)와 GAN2)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아바타 기술을 활용하고 있었고 드라마의 경우는 출연자의 어릴 적 모습을 재연하는 AI 디에이징 작업을 주로 활용하는 상황이었다.

AI 기술을 활용한 디에이징 작업의 사례는 국내보다는 미국의 영화나 TV 시리즈에서 훨씬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2006년 개봉된 <엑스맨 - 최후의 전쟁>과 2009년 개봉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시작으로 과거를 회상, 재연하는 플래시백 장면에서 출연자들의 옛날 모습을 재현해 내는 주요 기술로 AI 디에이징이 활용됐다. 지금도 이러한 AI 디에이징 작업으로 제작된 영화를 빈번히 접할 수 있다. 해외 사례는 국내와 마찬가지로 드라마보다는 영화에서의 활용도가 훨씬 많은 상황이다. 국내의 경우 플래시백 장면에서 종종 해당 기술이 활용되고 있는데, 최근 디즈니플러스에서 방영한 드라마 <카지노>에서 배우 최민식의 30대 외형과 목소리를 재현하는 데 AI 디에이징 기술이 활용됐다. 배우 윤여정의 20대 모습을 AI 디에이징으로 재현한 광고도 화제였다. 영화, 드라마, 광고에서 AI 디에이징 기술이 골고루 선을 보이고는 있지만 아직 그 사례가 많은 편은 아니다.

AI 디에이징 기술로 재현한 20대의 윤여정

출처: KB라이프생명 공식 유튜브 채널

빠른 발전 속도만큼
상용화 기대할만해

제작자들에 따르면, AI 디에이징 작업의 경우 아직까지 기술 구현을 위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나마 영화처럼 기획, 제작 일정이 상대적으로 길고 제작비 규모가 큰 경우에는 AI 디에이징 작업을 시도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만, 시간과 경비 면에서 여유가 크지 않은 드라마나 기타 장르에서의 작업은 당연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비용 부담은 제작자들에게 큰 제한 요소라고 한다. 아무래도 현재는 수요가 적다 보니 방송에서의 AI 디에이징만을 전문으로 하는 기술진 또한 희소한 상태라, 부르는 게 값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비용 부담 때문에 해당 기술 사용을 적극적으로 선호하지 않게 되므로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용불용설(用不用說, 자주 사용하는 것은 발달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퇴화한다)에 입각해 볼 때, AI 디에이징 기술은 앞으로 미래가 없는 것일까? 기술 상용화의 조건이 ‘시간’과 ‘비용’이라고 가정하면 절대 미래가 없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개인적 생각이다.

레거시 미디어라 불리는 TV 제작 분야에서 30년간 종사하면서 최근 3년처럼 콘텐츠 제작 기술의 변화를 빠르게 실감해 본 적이 없다. 제작 기술 분야나 촬영 전문가들은 또 다른 의견을 내놓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대본 구성, 영상 편집, 이미지 제작 등 창작 행위를 주로 담당하는 제작 PD의 입장에서 2022년 이전과 후는 AI 기술 활용에 있어 확실한 경계선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점점 연차가 높아져 이제는 시조새(?) 수준이 돼가는 방송 PD로서 ‘꼰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신기술을 조금이라도 더 알아보고, 공부해 보고, 직접 구현해 보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기술 변화를 더 크게 실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AI 기술 발전으로 향후 TV 방송 등 콘텐츠 제작과 미디어 산업에 큰 변화가 올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한 명의 크리에이터가 아우를 수 있는 범위와 역량이 지금까지와는 확실히 구별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2022년 생성형 AI 기술이 본격적으로 실생활에 활용되기 시작했다. 오픈 AI의 챗GPT를 필두로, 하루가 멀다 하고 다양한 TTI(Text to Image), TTV(Text to Video), TTA(Text to Audio), AI 자동 편집기 등의 소프트웨어와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전문성과 시간, 비용 없이는 절대 불가능했던 작업들이 텍스트 입력만으로 실시간으로 가능한 환경이 구현되고 있다. 또한 이런 기술들은 오픈소스3)개발을 통해 하루가 다르게 다양화되고 업그레이드 되고 있어 잠시라도 공부를 게을리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해당 소프트웨어들의 경우 블로그, SNS 포스팅 등 개인 작업에 있어서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일 처리로 만족감을 주고 있다. 콘텐츠의 로고나 포스터 제작은 물론 캐릭터 애니메이션 제작, 편집 과정에서 자막 생성, 그래픽 효과 등을 별도의 전문가에게 맡길 필요 없이 원하는 수준의 결과물을 얻어 낼 수 있는 수준이다. 게다가 현재 한계가 있는 부분들도 빠르게 극복되며 발전하고 있어 디지털 콘텐츠뿐만 아니라 방송 제작 분야에도 점차 폭넓게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 <카지노>에 사용된 AI 디에이징 기술

출처: 디즈니플러스 코리아 공식 유튜브 채널

AI 디에이징 기술의 경우도 이러한 생성형 AI 발전에 따라 함께 업그레이드 되면서 제작자들이 부담스러워하는 시간, 비용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해 줄 것으로 보인다. 미드저니(Midjourney)나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 D-ID 등의 이미지·애니메이션 생성 프로그램이 만들어 내는 결과물의 수준과 프로그램 업그레이드 속도로 가늠해 볼 때 크게 기대가 된다. 제작 PD 입장에서는 해당 기술들의 접목과 발전으로 제작비와 편집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는 방송 제작 현장에 돌파구가 생기고 다시금 제작에 활력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다만, AI 학습 데이터 사용과 관련한 AI 저작물의 저작권과 표절 문제 등에 대한 사회적·법제적 합의가 빨리 마련되어야 방송 제작자들도 해당 기술을 보다 마음 놓고 본격적으로 제작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업계 종사자인 제작진과 미디어 산업 관계자, 정부가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1993년부터 방송을 제작해 온 PD로서 내년의 나는 어떤 AI 기술을 제작에 활용하고 있을지 기대된다. 프로그램 전체에 AI 디에이징 기술을 사용해, 현재의 출연자가 과거의 자신과 함께 먹방의 향연을 펼치는 <그때도 먹고, 지금도 먹는다>라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어떨까? AI 디에이징 기술과 함께 가는 방송콘텐츠 제작의 시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 조서윤

    1993년부터 2017년까지 MBC 예능본부 PD, CP를 거쳤고 2017년부터 2019년까지는 YG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제작본부장으로 활동했다. 2020년부터 지금까지 티캐스트 E채널 제작 총괄, PD로 일하며 노조위원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