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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Issue 3

새 습관, 새 양식
미드폼 드라마의 기회와 위협

심상민(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드라마는 한 시간 내외의 길이라는 기존의 통념과 달리 회당 30분 남짓의 미드폼으로 제작되는 드라마가 늘고 있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 콘텐츠들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기존의 드라마 길이 루틴이 사라진 현재의 드라마를 들여다본다.

OTT 드라마가 바꾼 미디어 일상

드라마가 새 습관, 새 모델로 불타오르고 있다. 새 습관은 숏폼·미드폼으로 부쩍 짧아진 러닝 타임을 말한다. 새 모델은 시즌제와 시리즈물로 펼쳐놓는 이른바 프랜차이즈 IP 수익 모델이다.

숏폼과 롱폼 사이, 20~30분 정도 길이의 미드폼 콘텐츠가 불러온 새 습관부터 살펴보자. 지난 5월 방영한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웨이브)는 회차별 평균 25분 분량의 미드폼 콘텐츠로 선보였다. 회차마다 주인공이 소박한 여행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매회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옴니버스 형식이다. 제6회 칸 국제시리즈 페스티벌(Cannes International Series Festival)에서 각본상을 받은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몸값>도 회당 30분 안팎의 미드폼을 채택했다. 진선규, 전종서 주연 6부작 <몸값>은 OTT 플랫폼 파라마운트플러스에서 10월 12일 시청 1위를 차지했다.1) 또한 웨이브, 넷플릭스 동시 방영 드라마 <청담국제고등학교>와 넷플릭스의 <엑스오, 키티>, <성난 사람들(비프)>도 30분 안팎으로 제작되면서 미드폼 봇물이 터지고 있다.

미드폼 OTT 드라마의 본격적인 출현을 어떻게 봐야 할까? 그냥 대수롭지 않은 흐름 정도로 봐도 무방한가 아니면 이용자 문화 자본, 드라마 콘텐츠 가치, 글로벌 한류 전략과 같은 큰 이슈로 웃자랄 신호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가. 콘텐츠 비즈니스의 승패를 가르는 특별한 성공 요인을 내장하고 있는 건 아닌가? 즉답은 어렵지만 분명 예사롭지 않은 특징 몇 가지를 가지고 있다.

회당 25분 내외의 분량으로 구성된 <박하경 여행기>

출처: 웨이브

미드폼 콘텐츠라는 괜찮은 기회

첫째, 미드폼을 반기는 이용자의 새 습관이 새로운 ‘표준 장르’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숏폼 웹 콘텐츠와 롱폼 올드 콘텐츠 사이 ‘중간 지대’ 시장이 열리면서 한국형 스튜디오 시스템에 매력적인 기회를 내비치고 있다. 표준 장르는 수요 측면에서의 동력이고 중간 지대는 공급자 관점에서 볼 때 기회이면서 동시에 위협이 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소비 차원에서 표준 장르란 그야말로 이용자가 선택하는, 미디어 포트폴리오 구성의 최적 조합과 방식을 뜻한다. 유튜브는 숏폼, 드라마와 다큐는 롱폼, 예능은 미드폼 식으로 간주하는 일종의 자동반사형 이용 패턴이다. 미디어 역사상 영화 100여 년, 방송 50여 년, 인터넷 모바일 20여 년을 섭렵해 온 이용자가 수집해 온 나름의 표준이다.

문제는 한국 기준으로 6년 남짓한 기간 동안 자리 잡은 OTT 플랫폼 때문에 이러한 표준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콘텐츠 형식과 스타일, 구독 가격, 브랜드, 번들링과 패키지, 서비스가 실로 만발하고 있다. 그러니 이용자는 매번 교체 비용을 지불하고 OTT를 옮겨 다니는 번거로운 수고를 들여야만 한다. 아무리 멀티 플랫폼을 다중 이용하는 이용자라도 몹시 피곤하다는 얘기다.

이에 샛별같이 나타난 치료제가 바로 미드폼이다. 그것도 표준 장르로서 벌써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표준 장르는 시청 습관을 한데 묶어 통일시킬 수 있다. 흡사 표준 특허처럼. 이미 중간 광고가 자유로웠던 미국에서는 비교적 미드폼 드라마가 빨리 자리 잡았다. 글로벌 OTT를 타고 이런 기준이 넘어오면서 표준이 되어가는 형국이다. 한국에서도 지상파, 종편의 60~70분 롱폼 드라마와 주 1회 혹은 2회 편성 체제라는 통념이 붕괴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숏폼은 너무 짧아 감정이입과 스토리의 빌드업을 원하는 이용자에게도 30분 정도의 길이가 최적의 표준으로 굳어져 가고 있는 듯하다.

장르의 다변화 차원에서도 변화가 현저하다. 덕분에 액션과 SF는 할리우드 영화, 로맨틱 코미디는 영국 콘텐츠,공포물은 일본 TV 프로그램이라는 식으로 굳어져 왔던 일종의 문화 권력이 해체되기 시작했다. 가령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가 투자하고 한국 제작사가 완성하는 크리처물(괴물이나 괴생명체가 등장하는 콘텐츠) 같은 혼성장르, K-Pop의 후광을 거느린 뉴미디어 장르가 미드폼이라는 새 습관, 새 양식과 만나 새로운 기운을 얻게 되었다. 새로운 문화 권력의 출현이다.

전체 시장도 ‘국룰’처럼 여겨지던 롱폼이나 미니시리즈 16부작, 12부작과 헤어지고 있다. 대신 유연하게 새로워진 미드폼과 6~8부작, 그리고 시즌제라는 새 브랜드가 잘 버무려져 나와 환호받고 있다. 이용자는 드라마 속 새 브랜드로 자리 잡은 미드폼으로 소비 루틴을 틀기 시작했다. 이런 트렌드가 명실상부한 표준 장르가 된다면 드라마의 미래는 내용적으로 여전한 드라마이되 그 형식과 스타일은 나날이 새로워지는 뉴 브랜드로 변화해 나갈 수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은 총 6부작이다.

출처: 넷플릭스

미드폼에 서사를 다 담아낼 수 있을까

글로벌 OTT 플랫폼은 배급·유통에 있어 우월한 위치에서 미드폼을 종용하고 있다. 숏폼의 절대자는 SNS, 미드폼은 OTT, 롱폼은 블록버스터 영화로 황금분할 하려는 전체 미디어 콘텐츠 산업 구조 변화 전략으로도 속내가 짚인다. 분할 정복(Divide and Conquer) 의도로도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가장 곤란한 중간자는 다름 아닌 한국형 스튜디오 시스템이다. 빈지 워치(몰아보기)에 익숙한 잽싼 이용자를 위해 미드폼이라는 중간 지대를 선점한 듯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퀄리티 높은 콘텐츠는 롱폼에서 대부분 발원하기 때문이다. <성균관 스캔들>(KBS2), <재벌집 막내아들>(JTBC)을 만든 ‘래몽래인’의 김동래 대표가 소원한 웰메이드 콘텐츠2)는 긴 호흡에서 우러나올 확률이 훨씬 더 높다. 중남미에서 주로 방영되는 통속 드라마 장르 텔레노벨라는 한 작품의 호흡이 1년 반 정도다. 텔레노벨라가 할리우드 뒷마당에서 기어이 반세기 이상 꿋꿋하게 살아남은 비결도 긴 호흡에 있다. 인도의 발리우드 영화들도 한 편당 3~4시간을 불사하면서 기승전결을 모두 아우른다. 문학으로 치면 장편소설이라야 창의적이고 다양하며 풍성한 리치 미디어(rich media, 상호작용 멀티미디어), 리치 콘텐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콘텐츠 차별화와 시즌제 지속이 어려워진다는 OTT 한계론도 무성하다. 미드폼이 새로운 해답이라며 대책 없이 집착하다 보면 결국 인기 드라마의 수명을 단축하는 자책골이 될 수도 있다.

이렇듯 위협 요인 또한 품고 있는 게 미드폼 OTT 드라마다. 지금은 유동성 높은 소비 패턴을 부추기는 유통 사업자의 단타성, 단기업적주의 논리를 멀리해야 할 때다. 협업을 통해 메이저급 스튜디오, 두터운 뉴 콘텐츠 창작자 군단, 문화기술 R&D와 같은 베이스캠프를 먼저 구축해야 한다. 오래가는 우직한 문화가 없는 일시적 문화 권력, 문화 상업주의는 영혼 없는 콘텐츠를 부르고 만다. 좋은 콘텐츠가 먼저고 숏폼, 미드폼은 둘째 문제다.

  • 심상민

    성신여자대학교에서 융합문화예술대학 학장을 역임했고 현재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로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뉴콘텐츠아카데미(NCA) 특임교수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