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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Issue 2

토크쇼의 적자생존기

문동열(우송대학교 테크노미디어 융합학부 겸임교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스튜디오에 게스트를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쇼가 인기 프로그램이던 시대가 있었다. 시간이 흘러 SBS <힐링캠프>, <강심장> 등 포맷과 환경을 달리하며 유지됐던 토크쇼는 어느 순간부터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2023년, 유튜브를 통해 다시 토크쇼의 맥이 이어지고 있다.

정통 토크쇼의 몰락

사전적 의미의 ‘토크쇼’는 쇼를 끌어가는 호스트가 게스트를 초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콘텐츠 포맷이다. 저(低)비용의 제작 환경, 게스트만 바꾸는 것으로 변화를 줄 수 있는 구성의 효율성으로 라디오나 TV 방송 초창기부터 자리잡아 온 유서 깊은 형식이다. 흔히 정통 토크쇼라 불리는 이 포맷은 1954년부터 지금까지 방송 중인 미국 NBC의 <투나잇 쇼>, 역시 3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레이트 쇼>(CBS), 1976년부터 방송돼 단일 진행자로는 가장 오래된 토크쇼로 인정받고 있는 일본의 <테츠코의 방>(TV 아사히) 등 몇몇 프로그램을 통해 지금도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9년 KBS에서 재미(在美) 코미디언인 자니 윤을 호스트로 한 <자니 윤 쇼>를 시작으로 주병진으로 이어지는 정통 토크쇼 시대가 있었으나,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포맷이기도 하다.

한때 시청자를 가장 많이 모으며 각 방송국의 간판으로까지 여겨졌던 정통 토크쇼가 점점 사라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다. 지금 같은 역동적이고 자극적인 영상이 넘쳐나는 세상에 토크쇼는 매우 정적인 콘텐츠다. 화면의 구성이나 공중파 방송의 사회적 책임감 등의 이유로 정통 토크쇼라는 포맷은 스스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세대가 바뀌고 젊은 층들이 계속 성장하며 주요 소비층에 편입되기 시작하면서 다른 콘텐츠들은 점점 자극적이고 ‘맵게’ 변해가는 데 비해 정통 토크쇼들은 이런 흐름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결국 정통 토크쇼는 젊은 층들의 TV 이탈 현상으로 지칭되는 미디어 소비 행태의 급격한 변화와 늦은 방영 시간에 맞춰 토크쇼를 시청하는 사람들의 절대적인 숫자가 감소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한다. 아무리 과거 영광을 자랑한 포맷일지라도 시청률이 나오지 않고 광고도 줄어들게 되면 그 끝은 정해져 있다. 방송국 입장에서는 그 시간에 심야 예능이나 드라마를 편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이 이어지며 2000년대 이후 정통 토크쇼는 TV 편성표에서 급격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1989년 3월 첫방송된 <자니 윤 쇼>

출처: 옛날티비 : KBS Archive 유튜브 채널

여전히 남은 토크쇼의 저력

그렇다면 정통 토크쇼는 정말로 포맷의 생명력을 다한 것인가? 비록 TV 매체에서는 사라진 정통 토크쇼지만 여전히 토크쇼는 강력한 콘텐츠 포맷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토크쇼가 의외의 전성시대를 누리고 있는 곳은 바로 정통 토크쇼가 쇠퇴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 디지털 미디어다. 초창기 유튜버들이 혼자 진행하는 방식에서 확장하여 일명 ‘합방’이라고 부르는, 게스트 초청을 통해 콘텐츠 외형을 확장하기 시작한 것이 새로운 형태의 토크쇼의 시작이다.

유튜브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미디어들의 토크쇼는 저렴한 비용으로 제작할 수 있고, 규제가 방송에 비해서 매우 느슨하다. 특히 합방과 같은 유튜브 식 토크쇼가 급격히 늘어난 건 코로나19 팬데믹을 전후해서다. 팬데믹 기간 동안 방송국들이 제작을 중단하거나 섭외를 최소로 진행하는 바람에 방송 노출 기회를 상실한 많은 연예인들이 유튜브로 뛰어들었다. 팬데믹 이전에 유튜브 자체에 출연하는 일을 스스로 급을 낮추는 행위라고 생각했던 그들이 적극적으로 유튜브를 활용하며 유튜브 방송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게 된다. 팬데믹을 전후해 유튜브 토크쇼는 축구선수 손흥민이 출연해 화제가 된 <피식쇼>를 비롯해 신동엽을 호스트로 하는 <짠한 형>, <조현아의 목요일 밤> 등 유명 연예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공중파 급의 섭외력을 자랑하는 콘텐츠들이 잇달아 나오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통 토크쇼가 ‘그대로’ 화려하게 부활한 것은 아니다. 토크쇼라 지칭하지만 지금의 토크쇼는 과거의 그것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인다. 단순히 이야기를 나누는 전통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구성이나 진행 방식 등이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 가수 아이유가 유튜브 오피셜 채널에서 제공하는 콘텐츠 <아이유의 팔레트>는 아이유가 호스트가 되어 연예인들을 초청해 이야기하고 같이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 ‘음악 토크쇼’를 표방하고 있다.

유튜브라는 미디어 자체가 방송처럼 광범위한 대중들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구독자라는 특정 대상을 타깃으로 하기에, 소수의 마니아 타깃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경우도 많다. 야구 토크쇼로 유명한 <스톡킹> 같은 콘텐츠는 전·현직 야구선수들이 나와 프로야구의 뒷이야기를 전해 야구 팬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런 류의 콘텐츠는 축구나 게임, 음악 같은 취미 분야뿐만 아니라 재테크, 육아, 심리 상담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거기에 더해 단순한 테이블 토크가 아니라 유튜브 미디어의 자유로움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토크쇼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술 한잔 나누며 술집에서 대화를 나누는 느낌의 ‘음주 토크쇼’부터 집에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며 대화를 나누는 ‘접대 토크쇼’ 등 그야말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동원돼 새로움을 더하고 있다.

뉴미디어에서만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 건 아니다. 기존 레거시 방송들도 이러한 유튜브식 토크쇼 전략을 역으로 가져오면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도 새롭다. 기존의 토크쇼 문법을 과감히 버리고 토크와 다큐를 접목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SBS), <심야괴담회>(MBC), 역사 토크를 지향하는 <벌거벗은 세계사>(tvN)등 다양한 변주를 통해 레거시 미디어 나름의 오리지널 토크쇼 영역을 구축해가고 있는 중이다.

모호한 경계에서 오는 폭발적인 창의성

쇠락한 줄만 알았던 토크쇼가 다시금 전성시대를 맞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최근 여러 산업 내에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인 빅블러 현상이 그 배경이라고 본다. 매일같이 바뀌는 미디어와 콘텐츠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은 매체나 콘텐츠도 기존 포맷의 장점은 취하고 단점을 버리는 방식으로 적자생존의 길을 걷고 있다. 영상 업로드가 하루만 늦어도 구독자가 떨어져 나간다는 치열한 유튜브 콘텐츠 시장에서 그간 쇠락한 줄만 알았던 토크쇼가 이렇게 폭발적으로 진화하며 다양성을 가지게 된 것도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로움을 덧붙이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통적인 토크쇼 방식에 먹방, 예능, 다큐, 인터뷰, 교양, 시사 등 다양한 장르가 결합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토크쇼 형식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며 대중을 끌어들이고 있다. 더 이상 이것이 예능인지, 교양물인지, 다큐인지를 분류하는 것조차 의미가 없어지는 모호한 장르의 시대가 되었다. 오히려 이런 모호한 경계를 적절히 활용해 자유로움을 추구하며 창의적인 방식으로 대중들을 자극하고 끌어들이는 것을 보면 과연 토크쇼라는 포맷의 끝은 어디일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어떻게 모습을 달리하든 그 안에 ‘말’과 ‘소통’이 있다는 것만큼은 달라지지 않는다. 모든 경계가 모호해지고 그 속에서 예상치 못한 상상력이 폭발하는 빅블러의 시대에도 본질은 그다지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무척 재미있는 점이다.

  • 문동열

    우송대학교 테크노미디어 융합학부 겸임교수. SBS콘텐츠허브와 IBK기업은행 등에서 방송 비즈니스와 콘텐츠 금융을 경험했고 콘텐츠 제작자로서 25년 이상 방송, 게임, 영화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을 해왔다. 현재는 우송대학교에서 영상 관련 강의를 맡아 미래 크리에이터들의 성장을 돕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