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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Issue 1

설득이 빠진 광고의 시대
재미와 함께 고민할 것은

홍문기(한세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전형적인 형식에서 탈피해 드라마에 견줄 만한 영상미와 탄탄한 스토리텔링으로 호평을 얻는 광고들이 늘고 있다. 이는 시청자가 즐길 수 있는 콘텐츠의 영역이 그만큼 확대됐다는 의미기도 하지만, 엄연히 ‘광고’인 만큼 이를 똑똑히 가려내고 건강히 소비할 수 있는 눈 또한 갖춰야 한다.

재미 속에 숨은 광고

빅블러(Big Blur)1)는 산업을 구성하는 기존 기준과 영역을 모호하게 만드는 경계 융화 현상을 의미한다(조용호, 2013). 과거 명백히 구분됐던 생산/공급, 제품/서비스, 온라인/오프라인 간 구분이 스마트폰, AI, IoT, 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의 개발로 모호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최근 방송에서도 ‘프로그램 내(內) 광고’와 ‘프로그램 외(外) 광고’가 뒤섞이는 방송광고 빅블러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이 현상이 방송광고의 기본 규제 원칙2)과 예외적 규제 방식3)에 영향을 주면서 시청자 보호를 방해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2022 방송통신광고비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 사업자와 PP(program provider, 방송채널사용사업자) 모두 프로그램 광고와 가상·간접 광고의 매출 비율이 연평균 약 51% : 4.8%와 73% : 4% 수준으로, 프로그램 외 광고 매출이 프로그램 내에 삽입되는 광고의 매출보다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표를 좀 더 살펴보면 지상파 사업자의 프로그램 내 광고 비율은 조금씩 줄어드는데, 가상·간접 광고 매출은 급격히 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실제로 2019년 약 449억 원과 542억 원에 불과했던 지상파 사업자와 PP 사업자의 가상·간접 광고 매출은 2022년 약 915억 원과 1,130억 원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이는 광고총량제4)를 기반으로 하는 현 방송광고 규제 체계에서 대부분의 광고가 프로그램 외 광고인 프로그램·토막·중간 광고 형태로 편성되고 있지만, 가상·간접광고 같은 프로그램 내 광고에 대한 광고주의 관심이 점차 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간접 광고처럼 보이는 프로그램 외 광고가 등장하고 있다.

<표> 2019~2022년 국내 지상파/PP 광고 유형별 매출액 추이 (단위: 100만 원)


유튜브에서 조회수 3,500만 뷰 이상을 기록한 KCC 건설의 스위첸 광고 ‘문명의 충돌2 신문명의 출현’이나 잡코리아의 ‘알바몬으로 알박아? 알바여?’ 편은 정교하게 구성된 드라마 방식의 광고로 평가받고 있다. KCC 건설의 아파트 브랜드인 스위첸의 광고는 지난 2019년 시작된 ‘엄마의 빈방’부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 속 모습들을 아파트 배경으로 표현했다. 특히 ‘문명의 충돌2 신문명의 출현’에서는 육아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아기가 주는 행복감이 더 크다는 메시지로 아파트와 가족을 연계시켰다.

이 광고는 앞부분의 내용만 보면 뭘 광고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기존 건설사들의 아파트 광고가 아파트 입지나 교통 조건을 부각하고, 유명 배우가 등장해 단지 내 공원과 편의시설을 배경으로 아파트의 브랜드 가치를 설명하는 방식과 전혀 다르다. 결혼 4~5년 차 부부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과가 배경음악이나 별다른 음향효과 없이 전개되다가 마지막 대사에서 가족과 집의 관계를 설명한다. 그리고 광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KCC 스위첸’이라는 브랜드 로고와 내레이션을 통해 비로소 이 광고가 아파트 광고라는 것을 알 수 있다.

KCC 건설 스위첸의 광고 ‘문명의 충돌2 신문명의 출현’ 편

출처: KCC SWITZEN 유튜브 채널

‘알바몬으로 알박아? 알바여?’는 잡코리아의 구직 애플리케이션 광고다.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순실’ 할머니가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른 아침 급하게 어디론가 향하는 주인공 순실에게 마을 사람들은 어디 가냐고 묻고, 순실은 “알바 가”로 답한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이를 ‘알 박아’로, “알바 가여”를 ‘알 바여?’로, “알바비”를 ‘알밥이’로 오해하면서 다양한 해프닝이 코믹하게 전개된다. 이 광고는 최근 여러 개의 아르바이트를 부업처럼 하는 중·장년층 및 시니어들의 구직이 늘어나는 추세를 반영했다. 알바몬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면 할머니도 쉽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메시지다.

알바몬의 광고 ‘알바몬으로 알박아? 알바여?’ 편

출처: 잡코리아X알바몬 유튜브 채널

이 두 광고의 공통점은, 형식은 프로그램 외 광고인 ‘프로그램·중간 광고’로 편성되고 있지만, 내용은 프로그램 내 광고인 ‘간접 광고’처럼 표현됐다는 점이다. 간접 광고는 프로그램 내에서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제품과 브랜드를 노출시키며 융화돼야 한다. 프로그램 외 광고인 프로그램·토막·중간 광고는 제품과 브랜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그 제품의 속성, 기능을 강조하며 구매를 부추기기 위해 강력하고 과장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위에 소개한 광고들은 프로그램 외 광고 형식이지만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리얼리즘을 극대화하면서 영상미까지 가미된 재미있는 드라마 형식이다. 브랜드를 전달하는 방법도 맨 마지막에 로고만 노출시키는 식이다.

방송법 제73조에서는 간접 광고를 “방송프로그램 안에서 상품, 상표, 회사나 서비스의 명칭이나 로고 등을 노출시키는 형태의 광고”로 정의하고 있다. 간접 광고는 노출 방식이 복잡하고 까다롭다(홍문기, 2022)5). 간접 광고는 상품, 상표, 회사나 서비스의 명칭이나 로고 등이 프로그램 내에 융화돼야 한다. 반대로 프로그램 외 광고인 프로그램·토막·중간 광고는 프로그램과 분리돼야 한다. 많은 시청자가 열광한 KCC 건설의 스위첸 광고나 알바몬의 광고는 프로그램 외 광고인 프로그램·토막·중간 광고로 편성돼 상품, 상표, 회사나 서비스의 명칭이나 로고 등을 제약없이 드러내면서도 내용은 드라마처럼 방송 프로그램과 어우러지게 구성한 것이다.

콘텐츠의 경계 흐려지는 시대,
분별력 필요해

이런 유형의 광고들이 중간 광고로 편성될 경우 프로그램 내용이나 구성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특히 간접 광고의 특성이 부각될 경우, 시청자들은 이 광고가 프로그램과 연속된 내용인지 아니면 별도 광고인지 거의 구별하기 어려울 것이다(최종선, 2016). 리얼리즘에 영상미까지 가미된 광고에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그 표현 방식이 참신하고, 내용 구성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다만 그 목적이 간접 광고처럼 광고 메시지를 프로그램 내에 자연스럽게 녹여 넣어 중간 광고 방식을 통해 노출 효과를 높이기 위한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는 프로그램 내 간접 광고와, 프로그램 외 중간 광고의 경계를 흐리게 해 광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방식일 수 있다.

2022년 2월 ‘방송광고 네거티브 규제 체계 전환 등 방송광고 제도개선 추진에 관한 사항’이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제6차 위원회 회의에서 논의됐다. 그 후 방통위는 7개의 방송광고 유형을 프로그램 내(가상·간접 광고)와 외(프로그램·토막·자막·중간 광고) 광고, 그리고 기타 광고 등 세 개 유형으로 단순화하기로 했다. 방송광고 규제 체계도 2022년과 2023년 업무 보고를 통해 ‘원칙적 허용, 예외적 금지’를 의미하는 네거티브 방식 규제 체계로 전환하기로 했다. 여기에 프로그램 편성 시간 당 광고 시간 제한을 폐지하고 하루 단위의 광고총량제가 도입될 예정이다. 기존의 과도한 규제 하에서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으로 풀이된다(홍문기, 2019; 문철수, 2023).

이런 상황에 프로그램 외 광고로 편성되면서도 상품이나 로고를 마음껏 드러내며, 동시에 심미성을 띤 간접 광고의 속성을 지닌 광고들을 보면 이를 어떻게 규제해야 하는지 고심하게 된다. 특히 광고가 다양한 디지털 기술과 접목될 경우 이 문제는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예시를 비롯해 비슷한 형식으로 간접 광고와 프로그램 내 광고 사이를 넘나드는 광고의 목적은 프로그램과 광고 간의 구분을 없애는 것을 넘어 둘 사이의 연관성을 만들어 광고 효과를 최대화하는 것이다. 지금은 15~30초 안팎의 새롭고 참신한 광고에 시청자들이 재미와 흥미를 느낄지 모르지만, 광고 시간이 점점 길어져 2분, 3분이 될 수도 있다. 나중에는 드라마를 시청할 때 드라마의 배경이나 주제 혹은 인물과 연관성이 있는 중간 광고가 삽입돼 드라마 내용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때도 우리는 여전히 시청권 보호를 주장할 수 있을까? 드라마 같은 중간광고를 재밌고 흥미롭게 보는 것이 시청권이라는 우리 모두의 권리를 잃게 되는 저주의 시작은 아닌지 두려워진다.

  • 홍문기

    한국외국어대학교와 고려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광고PR실학회 회장과 한국PR학회 부회장·총무이사·편집위원 등을 맡았고 채널A 시청자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한국 광고학연구 30년과 전망』(학지사), 『디지털 사회와 PR 윤리』(커뮤니케이션북스) 등이 있다. 현재 한국PR학회 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