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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point 3

재난의 일상화와
스릴러 드라마의 공포감

윤석진(충남대학교 국문과 교수, 드라마평론가)

과거 납량 특집 드라마는 귀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무서운 분장 등 시각적 혐오감이 주요 시청 포인트였다. 반면 최근의 공포·스릴러 장르 드라마는 현실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일상적 공포감을 주제로, 과거와는 또 다른 차원의 오싹함을 안겨주고 있다. 현시대의 공포·스릴러 장르 드라마를 들여다본다.

보다 다양한 주제로 공포감 불러일으켜

K-드라마의 장르 지형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무더위를 날릴 정도로 오싹하게 공포감을 자극하면서 여름철 한정 메뉴로 사랑받았던 납량 특집 드라마가 생존의 공포감을 강화한 ‘스릴러 드라마’로 몸집을 키우면서 K-드라마의 장르 다양성을 담보한 결과다. 스릴러(thriller)는 장르적 특성상 두렵고 무서운 느낌이나 기분을 자극하면서 주제나 제재의 구현보다는 오싹한 공포감을 유발하는 상황의 표현에 중점을 둔다. 살인과 강도 등의 강력 범죄를 중심으로 불안감과 긴박감을 고조시키면서 의혹과 반전의 서사를 전개하는 스릴러 장르가 공포물을 포섭하면서 몸집을 키웠다. 그 결과 과거 <전설의 고향>(KBS2)의 단골 주인공이었던 귀신을 비롯한 좀비와 악령은 물론, 살인과 강도를 일삼는 범죄자를 망라하는 스릴러 장르 지형이 형성되었다.

생존을 위협하는 모든 것들을 망라하되, 초능력과 같은 비과학적·초자연적 현상을 활용한 판타지 장치로 문제적 현실에 대응하는 서사 전략은 K-드라마만의 스릴러 기법으로 자리매김했다. 한자로 쓰인 이름과 인물의 사진 그리고 소지품만 있으면 등장인물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10대 소녀와 정의감 넘치는 사회부 기자가 IT 대기업 뒤에 숨어 있는 거대 악과 맞서 싸우는 내용의 <방법>(tvN), 불의의 사고로 코마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지상의 악귀를 잡아 하늘로 올리는 카운터들의 활약상을 다룬 <경이로운 소문>(tvN)처럼 2020년을 전후하여 방영되었던 스릴러 드라마들이 대표적이다. 살인과 강도 등의 강력 범죄를 중심으로 귀신이나 악령과 같은 초자연적 존재와 인간의 대립에 초점을 맞췄던 스릴러 드라마는 이제 도시 재개발 관련 부동산 분양 사기처럼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사건 등을 다루면서 장르 지형을 확장하고 있다.

안정적인 삶에 침투한 공포 <마당이 있는 집>

ENA의 <마당이 있는 집>은 잘 가꿔진 정원이 있는 저택의 뒷마당에서 나는 이상한 냄새를 모티브로 여성의 불안한 생존과 연대에 초점을 맞춘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 드라마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큼 안락하게 살아가는 여성과 가족 뒷바라지 때문에 비루하게 살아가는 여성의 상반된 삶을 두 건의 살인사건과 결합하여 연출한 심리 묘사가 긴박감 넘치는 불안감을 극대화한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보이는 가정주부 ‘문주란’은 눈에 띄게 예쁜 외모 때문에 과잉보호를 받으며 성장했으나,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언니가 살해당한 것을 목격한 이후 죄책감에 시달렸다. 남편의 배려로 마당이 있는 저택으로 이사한 뒤 이상한 냄새에 시달리지만,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는 남편과 아들의 말에 자신의 신경과민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마당에서 나는 냄새가 남편이 살해 후 암매장한 사체 썩는 냄새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자신의 삶이 남편의 위선과 거짓으로 꾸며진 허상임을 깨닫는다.

문주란과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추상은’은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비루한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어 결혼을 선택했지만, 그의 결혼 생활은 장소만 바뀐 또 다른 지옥이었다. 그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보고 싶었으나, 임신한 몸으로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면서 하루하루를 견뎌야 했다. 병원 원장을 협박하여 돈을 갈취하려는 남편의 계략을 이용하여 남편을 살해함으로써 비로소 지옥에서 벗어났고, 죽은 남편의 휴대전화에 남겨진 사진을 빌미로 병원 원장에게 돈을 요구하기 위해 찾아갔다가 문주란으로부터 “당신 남편을 죽였듯이, 내 남편을 죽여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마침내 병원 원장을 살해하고 자살로 위장할 계획을 짜지만, 남편에게 복수하고 싶었던 문주란의 분노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문주란이 추상은을 이용하여 남편을 안심시킨 뒤 직접 살해한 것이다. <마당이 있는 집>은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이 오히려 여성의 삶을 위협하는 문제적 현실을 긴박감 넘치는 불안감으로 연출했다는 점에서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 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집에서 일어난 미스터리한 살인을 추적하는 내용의 <마당이 있는 집>

출처: ENA, 스튜디오지니 유튜브 채널

현실에서 가장 무서운 것, 돈

<악귀>(SBS)는 “시대의 생활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로서의 민속학을 매개로 돈에 집착하는 인간의 욕망이 당대의 악귀를 만들어 낸다는 점을 역설한 일종의 오컬트(occult) 스릴러 드라마다.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현상을 연출하기 때문에 오컬트로 분류할 수 있지만, 물질만능주의에서 비롯한 폐해를 고발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현실적인 공포감을 유발한다. ‘머리를 풀어 헤친 검은 그림자’로 현현되는 악귀는, 일상생활 어디에서든지 마주칠 수 있는 돈을 향한 욕망을 환유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행복의 필수 요건이라 할 수 있으나, <악귀>에서 돈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만큼 인간을 파괴하는 악마적 속성이 강한 욕망으로 설정되어 공포감의 근원으로 작용한다.

온갖 아르바이트를 섭렵하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구산영’은 돌아가신 줄 알았던 아버지의 장례식에 갔다가 ‘붉은 댕기’를 유품으로 받는다. 이후, 민속학과 교수 ‘염해상’으로부터 악귀를 쫓아 봉인하려던 아버지가 남긴 유품 때문에 악귀가 들렸다는 말을 듣게 되고, 사망 사건 현장에서 그의 지문이 발견되면서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받는다. 동시에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혀 평소 자신과 다른 모습으로 행동하는 일까지 발생하자 마침내 구산영은 악귀의 존재를 인정한다. 염해상은 대부업체를 경영하는 할머니 덕분에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았지만,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할머니를 경멸하고 두려워하면서 가까이하지 않았다. 사람들을 죽이면서 점점 더 커지는 악귀가 실은 돈에 대한 탐욕에 휩싸인 할머니가 젊은 시절 가난한 소녀의 원망과 분노, 죽음의 공포를 자극하여 만든 존재임을 알고 절망한다. 이처럼 <악귀>는 물질만능주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귀처럼 악착같을 수밖에 없는 문제적 현실을 폭로한다. 쾌락으로서의 공포감이 아닌, 생존의 공포감이 전제되어 있기에 마냥 즐길 수만은 없는 오컬트 스릴러 드라마인 셈이다.

tvN의 <경이로운 소문 2: 카운터 펀치>는 시즌 1과 비교하여 훨씬 더 강력한 악귀들을 상대하는 카운터들의 활약을 통쾌하게 풀어내는 액션 스릴러다. 각기 다른 사연으로 코마 상태에 빠져 죽음의 문턱을 밟았다가 하늘 세계 ‘융’의 제안으로 ‘카운터’가 되어 지상의 악귀를 잡아 하늘로 올리는 영웅적 활약을 펼친다. 이들은 평소에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영웅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이처럼 <경이로운 소문 2: 카운터 펀치>는 악귀들의 비과학적·초자연적 능력을 재개발 사업과 부동산 분양 사기 등의 현실적인 문제로 풀어내면서 긴박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동시에, 악귀들을 상대하는 카운터들의 시련과 고난을 통쾌한 액션으로 연출하면서 오락적 공포감을 자극한다.

등장인물의 비현실적인 능력을 부동산 사기 등 현실적 문제와 결합한 <경이로운 소문 2: 카운터 펀치>

출처: tvN D ENT 유튜브 채널

시즌2의 핵심 서사는 부동산 분양 사기를 저지르고 도피했다가 중국의 카운터들을 죽이고 능력을 흡수한 악귀들에 맞서는 한국 카운터들의 활약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여기에 남편의 사채 때문에 장기를 적출당할 위기에 처한 가정폭력 피해자 사연까지 결합하여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서사 전략을 구사한다. ‘땅’을 부르는 능력으로 카운터들을 이끄는 ‘소문’, 남다른 힘으로 악귀 지청신을 소환한 이후 형사로 복귀한 ‘가모탁’, 악귀의 행방을 감지하고 상대의 기억을 읽는 능력을 소유한 ‘도하나’, 육체적 상처를 말끔하게 치유할 수 있는 ‘추매옥’, 카운터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최장물’, 남다른 후각으로 악귀 냄새를 감지하는 ‘나적봉’까지 카운터들의 능력은 제각각이지만, 이들은 유사 가족의 형태로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악귀들을 상대한다. 소방관 ‘마주석’이 아파트 분양 사기 사건 이후 임신한 아내마저 살해당하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악귀가 되어 카운터들을 곤경에 빠뜨린 것도 평소 이들이 유사 가족 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발생하는 역설적 상황이다. 이러한 가족 서사는 K-드라마의 액션스릴러 장르를 차별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전통적으로 스릴러 장르는 단조로운 일상에서 느끼기 어려운 공포감을 즐기고 싶은 대중의 욕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경험하기 어려운 세계를 엿보거나 느껴보고 싶은 쾌락적 욕망이 스릴러 장르의 존재 기반이었다. 하지만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자연 재난은 물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강력 범죄가 끊이지 않을 만큼 재난이 일상화되면서 공포감은 이제 쾌락적 욕망이 아닌, 일상 현실 그 자체가 되었다. 공포감이라는 쾌락에 초점을 맞췄던 스릴러 장르가 K-드라마에서만큼은 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불안감이 팽배한 문제적 현실을 반영한 텍스트로 전이된 것이다.

여성의 불안한 생존과 연대를 밀도 있게 묘사한 <마당이 있는 집>, 돈에 대한 욕망과 집착을 악으로 현상한 <악귀>, 선한 의지의 인간을 악귀로 만들 정도로 몰상식한 세태에 경종을 울리는 <경이로운 소문 2: 카운터 펀치>에서 생존의 공포감이 두드러진 것도 그래서이다. 재난이 일상화되면서 “분노가 악귀를 부르고, 악귀가 분노를 키우고, 분노가 커진 만큼 악귀가 강해지는” 세상이지만 결코 선한 의지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K-드라마의 스릴러 장르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대다.

  • 윤석진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K-드라마의 학술적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 한국 드라마 연구와 비평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