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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point 2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보통 사람들의 특별한 의지 <D.P.>

송경원(영화평론가)

<D.P.>는 군무 이탈 체포조를 배경으로 현실과 부조리에 끊임없이 부딪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넷플릭스 시리즈다. 군대 내 부조리와 청년층이 처한 사회문제를 담아내 화제가 됐던 시즌 1과 더불어 시즌 2까지 통합 리뷰해 본다.

‘군인 잡는 군인’의 관점으로 보는
그들 각각의 사연, <D.P.> 시즌 1

누구나 떠들고 싶어 하지만 아무도 듣고 싶진 않은 이야기가 몇 가지 있다. 그중 한국인이라면 공감할 대표적인 주제가 바로 군대 이야기다. 흔히 군대 경험담은 한국인의 절반, 그러니까 남자들만 좋아하는 안줏거리라고 생각하지만 군대 이야기는 일종의 무용담으로 소비되기 때문에 이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은 남자 중 군대를 다녀온 사람, 그중에서도 특별히 힘든 병종(兵種)을 경험한 사람들로 추려진다. 그럼에도 군대가 단골 이야기 소재처럼 여겨지는건 이야기의 양이나 빈도보다는 전달 방식 때문일 것이다.

군대 이야기는 둘 중 하나다. 허세로 가득 찬 과장된 무용담이거나 실제로 일어난 일을 축소해서 감추거나. 두 가지 방식은 표면적으론 정반대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뿌리가 맞닿아 있다. 군대 이야기는 당사자가 아니면 함부로 다루기 어려운, 체험에 대한 고백이다. 우리는 실체를 정확하게 증명하기 어려울 때 그걸 부풀리거나 축소한다. 한국 사회가 군대 이야기를 소비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군대는 그 특수성 때문에 내부의 사건이 투명하게 드러나기 힘들다. 은밀함 속에 부조리는 곰팡이처럼 퍼져나가고, 곯다 못해 심지어 총기 난사 같은 비극적인 사건으로 터져 나올 때도 우리는 그것이 끝내 명명백백 해소되지 못하는 상황을 반복해서 목격해 왔다. 넷플릭스 드라마 <D.P.>에서 탈영 후 폭주하는 ‘조석봉’과 그를 잡는 체포조 ‘한호열’이 나누는 대사는 그래서 오랜 상처처럼 마음에 남는다.

군대를 소재로 한 이야기가 좀 더 많아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쾌한 집단 경험이 오랜 시간 축적된 결과, 한국 사회에서 군대 이야기를 한다는 건 일종의 트라우마를 대면하는 것과 유사한 형태로 자리매김해 왔다. 트라우마를 해소하는 방식은 오직 하나다. 힘들어도 마주 봐야 한다. 당장 똑바로 바라보는 게 힘들다면 조금 과장하거나 혹은 축소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진실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 않도록 계속해서 소환하는 작업이다. <D.P.>는 여러모로 의미 있는 콘텐츠다. 군무 이탈 체포조, 이른바 D.P.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군대 내 부조리, 지독한 괴롭힘과 폭력을 정면으로 파헤친다. 탈영한 병사를 잡아 오는 보직은 군 내부 문제를 가장 노골적이고 실감 나게 확인할 수 있는 위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D.P.> 포스터

출처: 넷플릭스

김보통 작가의 웹툰 <D.P 개의 날>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D.P.>는 군대 안과 밖을 넘나들며 수집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총 6부작으로 구성된 드라마는 ‘군인 잡는 군인’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십분 활용해 병사들의 다양한 사례를 보여주는데, 어느 하나 이해되지 않는 사연이 없다. 이 시리즈의 핵심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군 내부 폭력, 괴롭힘, 부조리에 대한 신랄한 고발을 통해 공감과 호응을 일으킨다는 데 있다. 일반 사병이었던 ‘안준호’가 D.P.에 발탁되는 과정, 그가 파트너인 한호열 상병과 호흡을 맞춰 나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D.P.>의 진정한 매력은 바로 이 지점이다. 버디무비, 로드무비, 형사물을 섞어놓은 듯한 <D.P.>는 탈영병 잡는 이야기를 매우 장르적으로 탈바꿈시킨다. 식상하고 빤한 군대 이야기를 맛깔나게 풀어놓는 재담꾼이라고 해야 할까. 한마디로 재미가 있다.

더 깊고 묵직하게, <D.P.> 시즌 2

한 시즌이 6화로 이뤄진 <D.P.>는 여타 시리즈보다 다소 짧은 편이다. 그만큼 이야기의 밀도가 높고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완결성을 갖췄다는 장점이 있다. <D.P.> 시즌 1이 안준호와 한호열 콤비를 완성하고 둘이 속한 103보병 사단의 부조리를 해결하는 서사였다면 시즌 2에서는 좀 더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건드린다. 시즌 1의 마지막 에피소드로 조석봉 일병의 탈영을 해결하고 나서, 괴롭힘을 당하던 또 다른 병사 ‘김루리’ 일병의 폭주로 문을 닫는다. 하나의 사건을 해결해도 구조적인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또 다른 문제가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수밖에 없다. <D.P.> 시즌 2는 탈영이라는 개별적인 비극이 왜 반복될 수밖에 없는지 그 근원을 파헤쳐 나간다.

폭력적인 개인이 모인다고 해서 꼭 폭력적인 집단이 되진 않는다. 조직과 규율은 개인의 일탈과 폭력성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폭력적인 조직이 방치되면 폭력적인 개인을 만들어 낸다. 군대라는 합법적인 무력 집단에서 더욱 철저한 규율과 통제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군 내부 폭력 사건은 단순히 나쁜 사람이 착한 사람을 괴롭히는 일이 아니다. 개인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시스템의 문제에 가깝다. <D.P.> 시즌 2는 폭주한 김루리 일병을 설득하고 제압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뭐라도 해야지”라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총기를 난사한다. 김루리 일병은 사건의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다. 드라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닌 양면성을 보여주며 이것이 누군가의 독특한 사건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D.P.>는 부조리에 맞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뀔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출처: 넷플릭스 코리아 유튜브 채널

그간 <D.P.> 시리즈는 실제 발생했던 군 폭력 사건을 모티브로 해왔다. 그대로 가져오진 않지만,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떠올릴 법하기에 이야기는 설득력을 가진다. 시즌 2에서는 최전방 부대인 ‘GOP’에서 일어났던 총기 난사 사건을 중심으로 끌고 왔다. 휴전선과 2km 떨어진 곳에서 적들의 기습 침투를 방어하는 GOP부대는 그 특수성 때문에 보안이 생명인 군대에서도 한층 폐쇄적인 곳이다. 시즌 2는 김루리 일병의 재판에서 출발하여 상층부가 어떻게 부조리를 키워왔는지 다른 사례를 끌고 와 판을 키운다. GOP에서 일어났던 비극적인 사건이 은폐되고 왜곡되는 과정을 파헤치는 이야기는 법정 영화처럼 보일 정도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군인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고, 누군가는 양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시즌 1이 집단이 개인을 괴롭히는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시즌 2는 그렇게 일어난 사건이 어떻게 조작되고 숨겨지는지, 군 상층부의 비겁한 악행을 고발한다. 사람이 모이면 반드시 다툼이 일어나는 법이다. 중요한 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달렸다. 처음부터 완벽한 세상은 없다. 상처 없는 삶도 없다. 다만 상처에는 새살이 차오르고 나아질 수 있다. 더 나은 세상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직시하는 태도로부터 시작된다. 군대 내 폭력 사건의 진정한 어둠은 모종의 이유로 그걸 덮고 왜곡하고 은폐하려는 태도에 있다. 그렇게 시즌 1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던 인물들은 군 내부의 더 큰 부조리를 마주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한다.

<D.P.>는 군내 가혹행위의 당사자는 물론 그것을 묵인한 방관자들에게도 묵직한 경종을 날리는, 진지한 이야기다. 하지만 군대 이야기를 꺼내려고만 하면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에게 진지하고 무겁기만 한 이야기는 듣기 쉽지 않다. <D.P.>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재미와 의미, 공감과 상상력의 균형이 잘 맞춰진 준수한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봤음 직한 익숙하면서도 다양한 캐릭터들은 우리 자신, 한국 사회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안준호, 한호열뿐 아니라 까칠하지만 속이 깊은 헌병대 수사과 군무이탈담당관 ‘박범구’, 전형적인 얌체의 모습을 보이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믿음직한 헌병대장 보좌관 ‘임지섭’ 등 모든 캐릭터가 각자의 방식으로 답을 낸다. 그런 의미에서 병영 부조리의 화신과도 같던 시즌 1의 ‘황장수’ 병장이 대학가에서 누구보다 밝게 웃고 장난치는 모습을 보여준 마지막 장면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없다. 쉽게 나빠질 수 있는 나쁜 환경이 있을 뿐이다. 반대로 좋은 시스템과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의지가 필요하다. <D.P.> 시리즈는 그 소중한 의지를 특별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성공적인 결과물이다.

  • 송경원

    영화주간지 『씨네21』의 기자이자 영화평론가다. 2009년 ‘씨네21 영화평론상’을 수상하며 영화평론가로 데뷔했고 2012년 동국대학교 영상대학원 영화이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미지의 거장, 숨은 걸작』(BIFF), 『격조의 예술가 파격의 모험가, 정일성』(BIFF), 『프로듀서』(가연)를 공저했고, 『이충호 - 만화웹툰작가평론선』(커뮤니케이션북스), 『마음의 일렁임은 우리 안에 머물고』(테오리아) 공저 등을 썼다. 영화뿐만 아니라 게임, 애니메이션에 대한 비평도 함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