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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wave 2

프랑스 내 한류 콘텐츠 소비 동향

지영호(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해외 통신원)

그간 한류는 아시아 중심으로 영향력을 떨쳤지만, 유럽에서의 한류 영향력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는 여러 유럽 국가 중에서도 한국 콘텐츠 소비가 높은 편에 속한다. 프랑스 내의 한류 흐름을 들여다본다.

콘텐츠 소비 패러다임 변화와
함께 성장한 K-콘텐츠

프랑스 내 한류는 K-Pop과 드라마를 중심으로 현지 팬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겨났다. 한류 콘텐츠는 소수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공유하고 소비하는 행태로 발전했다. 초기 한류 팬들은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기 위해 불법적인 경로를 이용했고 2010년을 기점으로 한국 드라마가 정식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2010년, 프랑스어권 최초 한국 드라마 전용 주문형 비디오 플랫폼 ‘드라마파시옹(Drama Passion)’은 <커피프린스 1호점>(MBC), <베토벤 바이러스>(MBC), <그들이 사는 세상>(KBS2), <꽃보다 남자>(KBS2) 등 인기 드라마를 소개했다. 또한 ‘공(GONG) TV’도 2011년 <시크릿 가든>(SBS), <시티헌터>(SBS)를 시작으로 K-Pop과 드라마 등 한류 콘텐츠를 자사플랫폼을 통해 방영하기 시작했다.1)

한류 콘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의 등장은 온라인에만 머물러 있던 드라마 팬들의 존재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우선 드라마파시옹은 국내 주요 방송사와의 계약을 통해 콘텐츠를 보유했고, 질적으로 우수한 한국어 자막을 자체 제작하여 드라마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췄다. 다른 한편으로는 ‘드라마 파티’ 행사2)에 콘텐츠를 제공, 오프라인 행사를 즐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여 프랑스 내 한류 콘텐츠의 인기가 단순히 K-Pop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드라마 파티는 낭트, 렌느, 낭시 등 프랑스 지방 도시에서도 개최되며 한국 드라마 애호층을 오프라인으로 집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프랑스 최대 규모의 민영 텔레비전 방송사 ‘TF1’에서 신규 플랫폼 MYTF1 XTRA를 론칭했다. TF1은 급변하는 방송시장의 니즈를 충족하면서 신규 유료 시청자를 확보하기 위해 시청자들이 관심을 가질법한 콘텐츠를 웹, 모바일, 태블릿, IPTV를 통해 제공했다. TF1은 인터넷 영상의 주요 소비자인 젊은 층의 기호에 딱 맞는 자사 신규 플랫폼의 킬러 콘텐츠로 한국 드라마를 선택했다. <킬미, 힐미>(MBC), <힐러>(KBS2), <별에서 온 그대>(SBS), <드림하이>(KBS2) 총 4편의 드라마가 방영되었으며 이미 수십만 명이 해당 드라마를 시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한국 드라마가 기존엔 일부 마니아들 위주로 소비됐을지라도, 프랑스 방송시장에서 한국 콘텐츠가 새로운 시청자들을 선점할 수 있는 매력적인 콘텐츠로 인정받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난 몇 년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시장에서 OTT 콘텐츠의 비중은 점차 커졌다.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고성능의 스마트폰과 초고속 인터넷을 통한 높은 접근성은 OTT 시장이 성장하는 데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으며, 프랑스 내 한류 콘텐츠 확산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동안 한국 드라마는 포맷 등의 차이로 프랑스 지상파 방송에서 편성되기 어려웠다. 하지만 OTT 플랫폼에서는 이러한 제약이 없고, OTT 시장의 급격한 성장은 한국 드라마 수출에 청신호로 작용할 수 있었다.

특히, 지난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방역 조치의 일환으로 프랑스 전역에 이동 제한(봉쇄)이 실시되면서 온라인을 통한 영상 콘텐츠 소비가 증가했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2023 해외한류실태조사>3)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이전 대비, 웹툰(40.2%)에 이어 드라마(36.1%), 예능(32.7%), 영화(31.7%) 순서대로 콘텐츠 소비량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드라마 시청을 위해 이용한 온라인/모바일 플랫폼은 넷플릭스 85.8%, 유튜브 44.2%, 아마존프라임 33.0%, 디즈니플러스 19.7%, 유튜브프리미엄 8.6%로, 프랑스 내 한류 콘텐츠 소비는 넷플릭스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넷플릭스에서 투자 및 배급한 <오징어 게임>은 2021년 넷플릭스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세계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흥행에 성공했다.

포맷 수출을 통한 현지화

프랑스 내에서 한국 드라마가 꾸준히 관심을 받는 가운데, 지난 2019년 11월 8일 TF1은 <마스크 싱어(Mask Singer)>(부제: quelle célébrité internationale se cachait derrière ce masque(어떤 유명인이 복면 뒤에 숨었나))라는 제목의 예능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본 프로그램은 MBC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의 포맷을 바탕으로 제작한 것으로, 전반적인 프로그램 콘셉트는 한국과 동일하다. 방영 전부터 독특한 마스크와 화려한 의상을 보여 주는 티저 영상으로 화제를 모았던 <마스크 싱어>는 1회 방영 당시 32.5% 시청률을 기록하며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콘텐츠의 독창성, 방송사의 대대적인 홍보와 황금시간대 편성, 시청자들의 의견을 실시간으로 적극 반영한 점이 인기 비결로 꼽힌다. 현재 시즌 5까지 방영(시즌 당 6~8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었으며, 모든 연령이 즐길 수 있는 TF1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프랑스 TF1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마스크 싱어>

출처: TF1

또한, 프랑스 민영방송 중 하나인 M6도 지난 2021년 4월 <너의 목소리가 보여(Show me your voice)>(부제:Chanteur, Menteur(가수인가 거짓말쟁이인가))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CJ ENM의 대표 예능 프로그램 <너의 목소리가 보여>(Mnet)의 포맷을 수입하여 제작된 예능 프로그램이다. M6는 2003년부터 2017년까지 총 17개의 시즌으로 방영된 자사의 간판 오디션 프로그램인 <누벨스타(Nouvelle Star)> 종영 후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 포맷을 찾던 중 한국 예능 프로그램 포맷을 활용했다. 다만, 프로그램 론칭 당시 큰 화제를 끌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즌 1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프로그램이 제작되지 않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해외 포맷 수출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tvN의 리얼리티 여행 예능 <꽃보다 할배>는 12개 국가로 수출되었으며, 2019년에는 프랑스 국영방송사 France 3에서 태국과 일본 여행 에피소드로 <Mieux vauttard que jamais(하지 않는 것보다는 늦더라도 하는 게 낫다)>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어 시청률 7.4%를 기록한 바있다. 해당 콘텐츠들이 기획 단계부터 세계화를 염두에 두거나 해외 엔터테인먼트 업체와 공동으로 제작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방송사들이 전략적으로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선택한 데에는 한국 콘텐츠가 이미 미국을 비롯한 서구 시장에 먼저 수출되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또한, 한국 예능 프로그램 포맷이 프랑스 시청자의 관심을 끌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이라는 지역적 특성보다는 문화적 할인4)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이면서 독창적인 콘텐츠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만 <마스크 싱어>를 비롯하여 방송 편성까지 이루어진 세 개 예능프로그램을 제외하고, 현재 방송 편성까지 이루어진 신규 콘텐츠가 부재하다는 점은 한국 방송 콘텐츠 포맷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편성과 독창성으로 승부하는 K-콘텐츠

2023년 8월 27일 자 넷플릭스 비영어권 TV 프로그램 글로벌 TOP 10에는 1위로 <마스크걸>(넷플릭스), 4위로 <이 연애는 불가항력>(JTBC), 9위로 <힙하게>(JTBC)가 올라와 있다. 그러나 프랑스 TOP 10에는 <마스크걸>만이 유일하게 6위에 올라와 있다. 글로벌 차트와 국가별 차트가 일치하지 않는 현상은 각 국가와 문화권마다 선호하는 콘텐츠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프랑스 내 한류 팬들은 한국 드라마의 클리셰-삼각관계, 불치병, 출생의 비밀, 재벌인 남자 주인공과 가난한 여자 주인공 등–가 잘 드러나는 감성적인 로맨스물을 선호하는 것에 비해, 프랑스 일반 대중의 경우에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보다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룬 장르를 선호하기에 이런 차이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 몇 년간 프랑스 넷플릭스 차트 상위권에 진입했던 드라마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이태원 클라쓰>(JTBC)는 청춘극을 표방하지만, 기존 한국 드라마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사회적 차별과 인종 차별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사회적 불평등, 왜곡된 공정 코드, 약육강식의 정서 등 전 세계적인 보편성에 기반을 둔다. 또한, 드라마의 스토리 기반이 되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는 한국만의 로컬 코드처럼 보이지만, 사실 프랑스5)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도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는 놀이라는 점에서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 시청자의 취향을 잘 반영하였음을 보여준다. <수리남>(넷플릭스)은 마약과 범죄라는 일반적인 주제를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로 전개하여 시청자의 눈길을 끄는 데 성공했다. 올해 많은 관심을 받은 <더 글로리>(넷플릭스)는 문화적 맥락과 무관하게 이해할 수 있는 학교 폭력을 주제로 프랑스 시청자들의공감을 끌어낼 수 있었다.

2023년 3월 13일 주간 프랑스 넷플릭스 차트 2위에 오른 <더 글로리>

출처: 넷플릭스

이처럼 한국 드라마가 프랑스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누구나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었기 때문이며, 한국 콘텐츠는 로컬 코드와 글로벌 코드를 잘 활용하여 해당 주제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데 탁월하다. 프랑스 내 영상콘텐츠 소비는 점점 증가하고 있는 추세고,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K-콘텐츠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K-콘텐츠의 장래는 당분간 밝을 것으로 보인다.

  • 지영호

    프랑스 소르본 누벨 파리3 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프랑스한국문화원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의 프랑스 통신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