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MCN 사업자는 크리에이터 관리 문제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두리번’은 버추얼 캐릭터 중심의 새로운 비즈니스를 제시한다. 가상 인간과 버추얼 아이돌이 시장에 속속 등장하는 지금, 이들이 주목한 것은 무엇일지 두리번의 서국한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시장은 식상함을 싫어한다. 아니, 시장은 매번 새로운 것을 찾는다는 표현이 더 적확하겠다. 기존의 것도 변화하지 않으면 유산(legacy) 취급받기 십상이고, 일단 유산 취급받기 시작하면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레트로로 불릴 때까지 버티면 모를까, 이내 질려서 시장에서 퇴출당한다.
MCN도 그랬다. 2010년대 중반 유튜브의 성장과 함께 유튜브 크리에이터 매니지먼트를 지향하는 MCN은 시장을 강타했다. 10대 MCN 사업자들이 등장했고, 대기업이나 VC(venture capital)로부터 압도적인 시장가치를 평가 받았다. 1,000~2,000억 원의 가치를 가진 기업들이 등장했고, 테헤란로에 거침없이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거품이 꺼졌다. MCN의 문을 두드렸던 크리에이터들은 시장의 문법을 이해하자마자 이내 독립해서 나왔다. MCN의 가치는 떨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현시점에도 시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사업자들이 있지만, 예전처럼 ‘핫’하지는 않다.
이 시장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업자를 만났다. 출근길에 본 기사의 헤드라인이 눈에 밟혔다. ‘두리번, 버추얼 MCN 사업 본격 추진…’. MCN이란 단어가 선명하게 박힌 제목이었다. AI 열풍과 함께 ‘로지(Rozy)’나 ‘슈두(Shudu)’, ‘릴 미켈라(Lil Miquela)’ 같은 가상 인간이 등장해서 단기간에 수십만 구독자를 모으기도 했고, 버추얼 걸그룹 ‘메이브(MAVE:)’나 보이그룹 ‘플레이브(PLAVE)’가 활동하는 세상이긴 하다. 이런 세상에서 버추얼 MCN 사업자가 등장하지 않을 이유도 없지만, 그렇다고 기존의 MCN과 뭐가 다른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인터뷰를 요청했다. 서국한 대표는 단순히 기업을 소개하는 자리라고 생각하고 인터뷰에 응했지만, 따져 묻는 인터뷰에 당황한 모양새다. 처음엔 대답이 꼬였다. 아마도 인터뷰 방식이 생소했기 때문일 터다. 하지만 자기 사업을 시작한 지 7년에 접어든 그는 이내 숨을 정돈하고, 하고 싶은 말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인터뷰는 그래서 순박했고, 담대했다. 굳이 MCN 사업을 하는 이유부터 물었다.
“기존 MCN 사업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던 건 확장성과 크리에이터 구속력 때문으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버추얼 유튜버는 기존 MCN의 치명적인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는 확장성과 크리에이터 구속력 문제가 해소되기 때문에 분명한 차별점이 있다는 이야기다.
“저희가 하는 가상 유튜버도 단독으로 움직이지는 않아요. 그 자체도 일종의 인간화되어 있는 것이기에 가상 유튜버는 그 실체라고 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의 플러스 개념이죠. 하지만 크리에이터에 대한 팬덤이 아니라 가상 캐릭터에 대한 팬덤이라는 점에서 훨씬 사업적 리스크는 줄어들어요.”
아직은 가설 단계다. 이 가설조차도 시장이 있다는 전제여야 한다. 결국 사업은 규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바로 물었다. “시장이 있다고 보시나요?”라고.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캐릭터 기반의 버추얼 유튜버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의견을 들은 바가 있어서 한 질문이었다. 서툰 질문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이 바로 나왔다.
“2019년부터 이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제 그 조짐이 보입니다. 저희 시스템을 쓰는 사람들이 3,802명입니다. 이 중에서 실제로 캐릭터를 생성해서 방송 송출을 하는 분들이 281명이나 됩니다. 우리 시스템이 아닌 다른 시스템을 이용해서 가상 캐릭터를 내세우는 유튜브들도 조금씩 증가하고 있고요.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가상 유튜버 움직임이 한국에서도 이제는 재현될 것 같아요.”
두리번이 가지고 있는 시스템은 ‘아이튜버’다. 가상 캐릭터를 실시간으로 생성하고 라이브 방송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솔루션이다. 특이한 건 이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이와 유사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사업체가 대략 4~5개 정도 되는데 전면 무료는 두리번이 유일하다. 무료이기 때문에 문턱을 낮추었고, 덕분에 초기에 상대적으로 많은 유튜버의 선택을 받았다. 트위치 등 게임 관련 유튜버들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본인을 노출시키지 않고 캐릭터를 내세워서 게임 설명을 하는 등 일종의 부캐 개념으로 사용했다. 이용자가 늘어났다고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초기에 무료로 이용하게 한 뒤에 더 나은 상위 버전으로 고객을 이동시켜야 돈이 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두리번이 선택한 것은 고기능의 유료 버전이 아니라 MCN 사업이었다.
두리번의 버추얼 유튜버 시스템 ‘아이튜버’
출처: 아이튜버“캐릭터를 운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캐릭터를 제작한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거든요. 캐릭터의 표정 등을 정교하게 잡아주어야 하고, 전체적으로 움직임과 동선에 맞추어 자연스러워야 해요. 두리번은 이런 전 과정을 다 지원해 주고 있다는 장점이 있죠. 1회성 비용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비용이 수반될 수밖에 없기에 MCN이란 개념이 먹혀들 수 있었어요.”
3,800여 명이 두리번의 시스템을 받아 실행했고, 그중 실제로 활용하는 크리에이터를 추적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누가 진심이고, 어디서 가능성이 보이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들을 대상으로 전속 계약을 했고, 그래서 MCN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 기존의 MCN이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면 두리번이 내세운 MCN은 가상 캐릭터를 대상으로 한다. 차이는 분명하다.
다만 불확실하다.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은 확인했다. 소수이긴 했지만 실제로 전속 계약을 맺은 이들도 있다. 다만 성과는 미지다. 시장에서 검증된 사례도 아직은 없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기준이 나온다. 바로 캐릭터 제작비다. 두리번에 따르면 대략 캐릭터 하나를 생성하는 데 1,500만 원 정도의 초기 비용이 필요하다. 100만 구독자를 가지고 있는 크리에이터 입장에서도 선뜻 투자비로 지급하기 적지 않은 금액이다. 하물며 구독자 10~20만 정도의 중소 크리에이터라면 더더욱 그렇다. 크리에이터가 되겠다는 사람은 늘어만 가고, 수익은 일부 크리에이터에게 몰리는 상황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제시하고 주목받고 싶다는 욕망은 있지만, 1,500만 원을 지불하기란 쉽지 않다. 두리번은 베팅을 했다. 전속 기간을 제시한 것이다. 1년이라면 테스트해보기에 적당한 기간이다. 당장 1,500만 원을 지불하지 않고도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 새로운 시도로 인한 수익이 얼마일지 모르는 상황이니 전속 기간 동안 수익을 배분하는 것은 충분히 감내할 만하다. 두리번으로서도 1년 동안 캐릭터가 의미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다년 계약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막연한’ 자신감은 있었다.
“한국 시장에서도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유튜버 시장이 가능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일본은 성장하고 있는 게 분명한데, 일본과 우리의 시장 환경은 확연히 다르거든요. 하지만 일단 시스템을 선보이고 반응을 보니 충분히 수요가 있겠구나 확신했어요. 특히나 지식·정보 채널의 경우 캐릭터에 대한 기대가 높더라고요.”
대부분의 지식·정보 콘텐츠 유튜버들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목소리와 편집 기술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로고 같은 것이 있긴 하지만 그 활용도가 높지는 않다. 편집 등 기술이 평준화되기 시작하면서 이들도 차별점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때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가상 캐릭터다. ‘알간지’라는 유튜브는 악마 캐릭터를 사용하고 있고, ‘지식줄고양’이란 유튜버는 고양이 캐릭터를 사용한다. 오디오로만 승부를 걸었던 지식·정보 유튜버들이 브랜드화를 위해서 캐릭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두리번은 놓치지 않았다.
다만 일반 크리에이터의 캐릭터와는 차별되는 두리번만의 캐릭터가 필요했다. 일본과 한국에서 선보이는 대부분의 캐릭터는 2D 형식이다. 두리번은 2D에 입체감과 생동감을 부여한 3D 캐릭터를 선택했다. 별도의 모션 캡처 스튜디오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재는 얼굴 표정 등 일부에만 모션 캡처 기능을 구현하고 있지만, 2023년 말에는 캐릭터 몸 전체에 모션 캡처 기능을 적용해 생동감을 부여할 계획이다.
본인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유튜버들은 두리번과 손을 잡고 기존 캐릭터를 3D로 발전시키고, 본인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유튜버라면 같이 캐릭터를 생성하는 작업부터 하고 있다. 현재 10명이 전속으로 두리번과 계약을 맺어서 하나둘씩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023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제품이 나오기 시작했고, 가장 최근에는 유튜버 ‘김빠른’의 3D 캐릭터가 나왔다. 기업형 크리에이터가 4명, 일반 크리에이터가 6명이다. 현대 등 일반 기업의 유튜브 채널도 두리번의 솔루션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2D 캐릭터에서 입체감을 더한
3D 캐릭터로 변화한 유튜버 ‘김빠른’
캐릭터가 가진 장점은 분명하다. 캐릭터는 사람과 달라서 변형이 자유롭다. 그런 면에서 글로벌 확장 가능성이 있고, 캐릭터의 본질적인 가치에 가까운 굿즈(goods) 사업으로 확장할 수도 있다. 문제는 아직 ‘가능성’일 뿐 실체적 성과를 이야기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는 거다. 이제 겨우 캐릭터를 선보였고 10명 정도와 계약을 한 상황에서 너무 이른 판단일 수 있다. 물론 두리번은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가능성이 현실이 되려면 감당해야 할 무게가 만만치 않다. 글로벌 확장성이나 굿즈의 가능성도 일단은 해당 캐릭터의 인기가 받쳐 주어야 한다. 다른 식으로 이야기하면 캐릭터 자체가 팬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캐릭터만큼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어려운 것도 없다. 수없이 많은 캐릭터가 스스로 잘났다고 으스대지만 결국 시장에서 성공한 캐릭터는 ‘뽀로로’나 ‘핑크퐁’, ‘펭수’ 정도다. 그나마도 글로벌 시장에서 임팩트를 가지고 있는 것은 핑크퐁 정도다. 뽀로로는 라이선스 사업까지 다 포함해도 몇백억 원 단위에 불과하다. 그게 적다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벌기 위해 들이는 노력 대비 성공 확률이 적다는 이야기다. 이런 시장을 두고 캐릭터 사업에 올인하겠다는 발상은 무리에 가깝다.
‘니지산지(にじさんじ)’의 성공에는 캐릭터가 절대적이었다. 니지산지라는 캐릭터 애플리케이션을 만든 곳은 2017년 설립된 ‘애니컬러(ANYCOLOR)’다. 애니컬러의 기업 가치는 한화로 대략 2조 원 내외다. 현재 애니컬러는 200여 개의 버추얼 유튜버를 보유하고 있다. 서국한 대표는 이 애니컬러의 모델이 한국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비관과 낙관의 경계에서, 사업은 ‘비관적 낙관주의자’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격언이 떠오른다. 서 대표는 낙관에 의미를 부여했다. 어느 결론에서 낙관이 도출되었는지 간단한 인터뷰로는 판단이 되지 않는다. 사람이 직접 출연하는 유튜브 콘텐츠는 자막 등이 필요하기에 글로벌 시장에서 캐릭터가 조금 더 유리하다는게 이해는 간다. 이 대목에서 서 대표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캐릭터가 연예인이다”.
가상 유튜버 시장의 핵심은 캐릭터 IP 사업이라는 점이다. 서 대표는 캐릭터가 비주얼화된 IP라는 점을 강조한다. 디즈니 캐릭터의 말이 전 세계의 서로 다른 언어로 더빙되어 각국에서 즐길 수 있는 것처럼 캐릭터는 글로벌 시장의 수용도가 훨씬 높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를 부인하기는 힘들다. 다만 글로벌 시장에 유통될 만큼 캐릭터 서사를 확보할 수 있냐는 점이 중요할 텐데, 이 부분은 당장 답을 찾기 힘들다. 이제 겨우 두어 달의 실질적 경험이 있는 회사에서 단언하기는 힘들다. 애니컬러의 버추얼 유튜버도 대부분 로컬 시장 대상이다. 애니컬러는 로컬 기반의 버추얼 유튜버를 전 세계로 확장하기보다는, 일본과 중국에서 각각 로컬 버추얼 유튜버를 출범시키는 전략을 세웠다. 그들의 모델을 그대로 좇을 필요도 없지만,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글로벌 확장성을 확보한다는 건 기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핑크퐁이 뜰 수 있었던 계기는 콘텐츠의 양이에요. ‘동요 콘텐츠’라는 한 장르에 속해 있지만 동요는 너무 많잖아요. 그중에서 하나가 주목을 받은 거죠. 동남아시아에서 터졌고, 나중에 미국 등의 시장에서도 터졌죠. 버추얼 유튜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두리번의 서국한 대표
여러 캐릭터를 제공하다 보면 그중 하나가 터질 수 있다는 낮은 확률에 베팅하겠다는 이야기다. 이를 위해서는 본캐에 해당하는 크리에이터의 역량과 노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그들과 전속 계약이라는 관계를 통해 끈끈하게 관계를 맺어 가겠다는 걸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사실 여기에서 한 캐릭터나 콘텐츠가 뜨게 되면 지금의 유튜브 모바일 콘텐츠 시장에서는 이게 라이선스 사업까지도 이어질 수 있죠. 예를 들어서 한 캐릭터가 떠서 먼저 치고 나가요. 그러면 다른 캐릭터들도 주목받기 시작할 것이고요. 어쩌면 마블의 세계관처럼 만들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일종의 분산투자다. 어느 캐릭터가 성공할지 모르니 다양한 캐릭터를 일단 시장에 뿌려놓고 시작해 보자는. 다행스러운 것은 애니메이션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덜 들어서 다양한 캐릭터를 현재 자본 규모에서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점 정도가 차이라면 차이겠다. 애니메이션 에피소드 한 편 제작비가 1억 5,000만 원에서 2억 원가량이라고 치면 캐릭터는 1개당 1,500만 원 정도니, 애니메이션 하나 만드는 돈으로 10개의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더구나 이들 캐릭터는 실시간으로 구독자와 상호 반응하고 있다는 점에서 애니메이션보다 훨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서대표의 생각이다. 이 대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서 대표의 추진력으로 확률값이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는 것뿐이다.
이쯤 되니 두리번이란 회사를 만든 창업자가 궁금해졌다. 기술과 콘텐츠 그 경계선을 왔다 갔다 하는 말본새로는 ‘기술쟁이’라고 하기 쉽지 않다. 서 대표는 YTN에서 PD로 일하다가, 2007년 친한 선배와 같이 디지털 사이니지 콘텐츠 사업을 시작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원래 콘텐츠를 만들던 이가 IT와 콘텐츠의 결합을 경험한 것이 오늘의 두리번과 그를 만들었다. 콘텐츠가 기술을 만나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할 수 있겠다고 본 것이다.
“디지털 사이니지나 키오스크 콘텐츠 개발 사업을 쭉 하다 보니, 이게 용역사업밖에는 안 되는 것 같아서 이제 제 서비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직은 숫자로 증명할 단계는 아니다. 다만 그 숫자는 우리가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두리번의 솔루션을 쓰고 있는 유튜버들의 콘텐츠 변화 그리고 가입자 규모 증가 등을 보면 이 시장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평가는 2024년으로 미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