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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3

파업으로 멈춘 할리우드
미국만의 문제일까

유고은(미디어 뉴스레터 <어거스트> 에디터)

미국 할리우드의 작가조합 파업이 몇 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이 파업에 배우들도 동참하며 17만 명 이상의 인원이 파업 중이다. 이 파업의 주요 쟁점은 무엇인지, 또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는 부분은 없는지 살펴본다.

미국 작가·배우조합 파업 주요 쟁점은

할리우드 작가·배우조합의 파업이 계속되면서 그 여파가 점점 커지고 있다. 워너브라더스는 최근 <듄: 파트 2> 개봉일을 내년으로 연기했는데, 파업으로 인해 배우들이 홍보활동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소니는 <스파이더맨> 후속작을 개봉 일정 캘린더에서 삭제했고, 9월로 예정되어 있던 <75회 에미상> 시상식 역시 내년 1월로 연기되었다. 이전까지는 심야 토크쇼가 중단되거나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2>, 마블의 <블레이드>, <애봇 초등학교 시즌 3> 등 예정된 작품 제작이 보류되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좀 더 가시적인 영향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작가조합(WGA, Writers Guild of America)의 파업은 지난 5월 2일에 시작되어 벌써 4개월 차에 접어든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에서는 노동법에 따라 사용자 측인 영화·TV 제작자연맹(AMPTP)이 법적으로 근로자로 분류되는 미국작가조합, 미국배우·방송인노동조합(SAG-AFTRA), 미국감독조합(DGA) 등과 노사 협상을 진행해 향후 3년간 계약의 기본이 되는 조항들을 검토한다. 제작자연맹에는 넷플릭스, 아마존, 애플과 같은 빅테크 기업과 디즈니, 워너 브로스 디스커버리(WBD), NBC유니버설, 파라마운트, 소니 등의 할리우드 제작사가 포함된다. 2020년에 이어 올해는 3년 만에 다시 협상해야 하는 해였고, 감독조합과는 협상에 성공했지만 작가 및 배우조합과는 협상이 불발됐다. 작가조합에 이어 배우조합 역시 7월 14일부터 파업을 시작했다.

이번 파업은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OTT 시대에 맞추어 창작자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고, 창작 영역에서 무분별한 AI 사용을 막고자 하는 것이 주요 쟁점이다. 보상 측면에서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는 재상영분배금(ersidual)이다. 작가와 배우는 제작에 참여한 작품이 재상영되거나 판매될 때 제작자로부터 일정 금액을 받는다. 직전 협상이 있었던 2020년 이후 코로나19의 유행으로 극장 개봉이 축소되고 OTT 플랫폼이 직접 제작·상영하는 콘텐츠가 증가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어떻게 수익을 배분할지에 대한 논의가 없었기에 작가와 배우 모두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플랫폼이 가입자 수나 콘텐츠 조회수 등의 구체적인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보상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다.

<웨스트 윙>(NBC)의 공동 프로듀서였던 릭 클리브랜드는 넷플릭스를 1위 OTT 반열에 올린 <하우스 오브 카드>의 작가 겸 총괄 프로듀서 제의를 받았는데, 당시 1억 달러(약 1,332억 5,000만 원) 예산의 대형 작품이었음에도 그에게 제시된 금액은 그가 12년 전 첫 직장에서 받은 돈보다 적었다고 한다. 신생 플랫폼의 웹드라마라는 이유였다. 또한 넷플릭스의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에 출연한 배우 키미코 글렌은 지난 7년간 받은 해외 재상영분배금이 27.3달러(약 3만 6,000원)에 불과하다는 내용을 담은 영상을 틱톡에 올리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 작가조합과 배우조합은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재상영분배금을 인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였던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에 출연한 배우 키미코 글렌이 공개한 영상

    출처: 틱톡 @itskimiko 계정

제작자들과 조합의 갈등

파업의 또 다른 쟁점은 AI이다. 작가들은 AI가 쓴 글과 작가가 쓴 글을 구분할 것과, 작가들이 적은 보수를 받으며 AI가 작성한 초안을 수정하는 행위를 제한하라는 조건을 요구했다. 배우들은 자신들이 촬영한 영상을 AI에 학습 시켜 복제품을 만들 때 사전 동의를 얻고 합당한 보상을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이로써 할리우드 파업은 AI가 방송계에 끼칠 수 있는 실존적 위협에 대해 협상하는 첫 시도가 되었다.

반면 제작자들은 이러한 작가·배우 조합의 요구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디즈니 CEO 밥 아이거는 “작가들의 요구가 비현실적이어서 불편하다”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들이 비판적인 반응을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 상황 탓에 수익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OTT 시장이 빠르게 클 수 있었던 이유는 넷플릭스가 수익의 대부분을 투자하면서 구독자를 늘리는 데 집중해 왔기 때문인데, 시장 상황이 변하면서 매출을 늘리면서 동시에 비용도 줄여가야 하는 상황으로 바뀐 것이다. 정리해고를 하거나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겠다는 디즈니, 제작을 보류하면서 부채를 갚으려는 워너 브로스 디스커버리 등 기업들은 각자 발등의 불을 끄기에 바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환경을 만든 넷플릭스만이 수익성을 개선하고 있고, 해외 수급망을 통해 파업의 여파에서 피해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는 이들이 많다.

작가조합 파업 시작 후 4개월여가 흐른 지금, 아직까지도 파업은 쉽사리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파업 시작후 100여 일간 오가는 협상 없이 조용하던 제작자연맹은 지난 8월 11일, 드디어 작가조합에게 협상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작가조합이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사를 표명하자 대중에게 협상안의 세부 사항을 공개했다.1) 이는 이례적인 일로, 협상위원회를 우회해 조합원들에게 어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많았으나 별 반응 없이 작가조합 협상위원회의 강한 비판만 받았을 뿐이다.

서로 상대방이 먼저 움직이기를 바라고 있는 치킨게임의 상황에서 리서치 회사인 라이트쉐드 파트너스는 고객사에게 파업이 2024년 초까지는 끝나지 않을 것 같다고 전한 가운데,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은 커지고 있다. 몇 주 안에 파업이 마무리되지 않는다면 TV 콘텐츠들의 겨울 시즌 제작이 어려워질뿐더러 내년 여름 개봉될 영화들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도 갈등을 해결하도록 기업 측에 압력을 넣고 있고, 에이전트들은 쇼러너(드라마 제작 과정을 총괄하는 책임자)에게 제작자연맹의 협상안을 받아들일 것을 설득하는 전화를 받고 있다고 한다. LA타임스는 제작자 측에서 10월까지 파업을 마무리해야 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보도했으니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볼 만하다.

콘텐츠 업계가 더불어 성장하려면

국내 상황은 어떨까?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 역시도 기존 미디어에서 OTT로 주도권이 넘어왔으며, 제작비는 OTT가 대지만 제작은 외주 제작사에서 프리랜서 제작진을 고용하는 전형적인 원·하청 구조로 변했다고 한다. OTT 측에서는 근로자와 직접 계약을 맺는 ‘직접 고용주’가 아니기 때문에 노조 교섭이나 임금 및 추가 보상을 협상할 법적 의무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제작비 자체는 늘었지만 제작사 수입은 그대로거나 감소했고, 근로 여건도 과거보다 악화된 상황이라고 관계자들은 이야기한다. 영화나 방송이 아닌 OTT는 법의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에 기존에 보장했던 것들도 보장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또한 배우나 작가로 일하려면 노조에 가입해야만 하는 미국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방송과 영화가 분리되어 있어 플랫폼을 상대로 하나로 뭉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6월,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 등 작가 단체들이 넷플릭스 한국지사 앞에서 미국작가조합의 파업에 지지하는 집회를 열었지만, 단합하여 플랫폼과 직접적으로 협상하는 것까지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들을 포함한 국내 제작진들은 할리우드의 파업을 일단은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파업의 쟁점 두 가지 중 AI 저작물에 대해서는 아직 먼 미래로 치부되어 공감이 크지 않다. 아직 할리우드에서도 AI를 활용한 프로젝트가 크게 성공한 적이 없어 국내에서는 기술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적용이 어렵다고 콘텐츠 업계는 보고 있다. 다만, 재상영분배금을 비롯한 ‘정당한 보상’은 국내 창작자들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저비용으로 고퀄리티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불공정 계약과 무급 노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미국 일간지 LA타임스에서도 보도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매절 계약’을 방지하는 저작권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지난 8월 17일, 한국영화감독조합,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등 17개 창작자 단체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작권법 개정안 심의를 촉구했다. OTT 플랫폼은 그동안 매절 계약을 통해 오리지널 콘텐츠를 확보해 왔는데, ‘매절’이란 팔아서 끊어낸다는 의미로, 매절 계약은 창작자가 일정한 수익을 받고 미래에 발생할 모든 수익을 플랫폼에 넘기는 계약을 의미한다. 넷플릭스가 대 히트작인 <오징어 게임>의 지식재산권을 독점해 창작자와 별도 수익 공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공론화되자 이를 방지할 수 있도록 ‘저작권을 양도한 영상 창작자가 영상물의 최종 공급자에게서 수익에 비례하여 보상받을 권리’를 담은 저작권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창작자 단체들은 계류되고 있는 저작권법 개정안의 조속한 심의를 요구했다. 이 법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다면 재상영분배금 논의의 초석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할리우드 파업은 앞으로 OTT 플랫폼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시 짚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파업이 종식되려면 주가 상승만을 좇아 과도하게 많은 콘텐츠에 투자하고 생산하던 지금의 모델에서 벗어나 작가와 배우를 포함한 전제작진이 함께 수익을 나누며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이미 유럽에서는 2019년 의회에서 나서서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명령을 통과시켰고, 유럽의회 27개 회원국 중 26개 국가가 자국의 저작권법에 명령을 반영했다. 전 세계적으로 K-콘텐츠가 주목받고 있는 이 시기, 창작자들이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으려면 국내에서도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를 짚고 정당한 보상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 유고은

    스타트업에서 데이터 분석가로 근무하고 있으며, 미디어 뉴스레터 <어거스트>에서 ‘찬비’라는 필명으로 빅테크의 미디어와 AI를 다루는 글을 씁니다.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기술을 잘 활용하기 위해 사회가 해야 하는 일에 관심이많 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