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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1

시즌제 콘텐츠의 부상:
차이와 반복의 효과

노창희(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소장)

드라마뿐 아니라 예능까지, 시즌제로 제작되는 작품이 늘고 있다. 전작의 인기를 이어받을 수 있다는 장점과 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하게 변주해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각광 받는 시즌제 제작의 면면을 들여다본다.

친숙함으로 시청자에게 다가가는 시즌제

코로나19로 인해 개봉이 연기된 영화들이 속속 개봉되면서 뒤늦게 소환된 영웅들이 있다. <탑건: 매버릭>에서 ‘매버릭’으로 출연한 톰 크루즈와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에서 ‘인디아나 존스’로 출연한 해리슨 포드가 그 주인공이다. <탑건>이 처음 개봉된 것이 1987년이고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출발점인 <레이더스>가 개봉된 것이 1982년이다. 두 작품은 시리즈물이 가진 힘을 보여준다. <강심장 리그>(SBS)는 2013년에 종영된 예능 <강심장>의 스핀오프 프로그램이다. 10년 만에 <강심장>이 소환된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에서도 일반화되고 있는 시즌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시즌제가 국내에서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시즌제는 대작을 통해 규모의 경제적 활용이 가능한 미국에서 오랫동안 수익 창출 수단으로 활용된 전략이다. 불확실성이 강하게 작동하는 미디어 시장, 특히 콘텐츠 시장에서 위험을 감수하기란 쉽지 않다.

이때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방법이 있다면 바로 ‘익숙함’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용자가 대중문화를 접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으나 가장 일반적인 이유는 대중문화를 통해 여가를 즐기기 위함이다. 대중문화는 기본적으로 이용자가 즐길 수 있는 친숙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유리하다.

하지만 친숙함이나 익숙함이 콘텐츠 소비자가 원하는 전부는 아니다. 새로움을 주지 못할 경우, 이용자는 진부함을 느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새로우면서도 친숙한 무언가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굳이 레퍼런스를 빌려오지 않아도 수긍할 수 있는 논리로, 이미 저명한 논자들이 수없이 강조해 온 대중문화의 기본적인 전략이다. 그중 필자가 자주 인용하는 두 권의 책 내용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 수용자 연구를 오랜 기간 수행해 온 수용자 연구의 대가 제임스 웹스터(Webster, 2014/2016, 101쪽)는 불확실한 투자를 감당해야 하는 미디어 산업에서 중요한 것은 “새롭지만 친숙한(novel yet familiar)”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저널리스트로서 경제, 미디어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데릭 톰슨(Thompson, 2018/2021, 87쪽)은 참신하지만 수용할 만한 콘텐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마야(MAYA,Most Advanced Yet Acceptable)’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 필자는 이 두 저자의 지적을 인용하면서 철학자 질 들뢰즈의 저서 제목을 빌려와 대중문화에서 차이와 반복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노창희, 2022. 7. 25).

콘텐츠 확장의 열쇠

시즌제가 노리는 것은 친숙하면서도 새로운 내용과 형식을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시즌제 전략의 원형은 대작 영화에서 찾을 수 있다. <탑건>, <인디아나 존스> 얘기로 글을 시작했지만, <대부>에서부터 마블 유니버스에 이르기까지 할리우드에서는 시리즈물 제작을 통해 기본적인 흥행을 담보해 왔다. 결정판은 마블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마블은 이미 기존에 시리즈물로 제작된 캐릭터나 마블 코믹스를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진 캐릭터를 활용해서 서로 다른 시리즈를 엮어 이용자를 유인하는 트랜스 미디어 스토리텔링을 시도해 왔다(노창희, 2020).

최근 국내에서 화제를 모은 시즌제 드라마를 꼽아보면 7월 29일에 방영을 시작한 <경이로운 소문 2: 카운터 펀치> (tvN)를 예로 들 수 있다. <경이로운 소문 2: 카운터 펀치>는 CJ ENM 입장에서 tvN의 시청률 확보뿐 아니라 CJ ENM의 OTT 플랫폼 티빙의 유료 가입자 증대에도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앞서 <강심장>을 언급한 것은 최근 주목해서 지켜볼 만한 현상이 ‘예능의 시즌화’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시간의 경과에 따른 서사를 기반으로 하는 영상이기 때문에 시즌제가 자연스럽다. 하지만 예능은 서사라기보다는 특정한 틀 안에서 출연진들이 역할을 수행하는 장르다. 드라마보다는 형식이 중요한 장르라고 할 수 있는데, 형식적인 친숙함과 익숙한 틀 속에서 시도되는 변주가 시즌제 예능의 성공과 직결된다. 2021년 시즌 1, 그리고 2022년 시즌 2가 나온 티빙 오리지널 예능 <환승연애>는 단순히 플랫폼의 이용자 증가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바이럴, 화제성 측면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N회차 시청(한 콘텐츠를 여러 번 반복해 시청하는 현상)하는 이용자들이 나오고 있다. 2023년에는 <뿅뿅 지구오락실 2>(tvN), <피의 게임 2>(웨이브) 등이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2023년에 돌아온 <마녀사냥 2023>(티빙)도 화제를 모았다.

두 시즌 모두 큰 화제를 모은 <뿅뿅 지구오락실 2>는 시즌 3를 암시하며 끝났다.

출처: tvN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것

앞서 티빙 얘기를 했지만 시즌제 콘텐츠는 지금과 같은 멀티 플랫폼 환경에서 모두에게 중요하다. 멀티 플랫폼 환경에서 핵심 플랫폼은 OTT다. 실시간 시청을 기반으로 하는 레거시 방송과 달리 OTT는 이용자가 편의에 따라 언제 어디서든 콘텐츠를 볼 수 있다. 현재 OTT 플랫폼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기존 이용자의 가입을 유지하고 신규 가입자를 유인할 수 있는 콘텐츠 확보다. 티빙, 웨이브, 왓챠 등 국내 OTT 사업자들의 적자 폭이 커지고 있는 이유도 콘텐츠 수급에 드는 비용 때문이다. 드라마, 예능 등 시즌제 오리지널은 OTT 이용자가 반복적으로 시청할 수 있는 콘텐츠라는 점에서 이용자를 플랫폼에 묶어둘 수 있는 효용성이 높은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예능은 드라마보다 제작비가 저렴하기 때문에 시즌제 예능을 방송과 OTT 등 여러 플랫폼에서 활용하는 사례는 더욱 많아질 것이다.

시즌제의 성공 여부는 ‘유의미한 변주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아무리 기다리던 콘텐츠고 익숙한 형식이라고 하더라도 변별적인 차이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이용자들을 만족시키기 힘들 것이다. 대한민국의 이용자들은 콘텐츠에 대한 반응을 적극적으로 표출한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시즌제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특이점을 확보하지 못한 시즌제 콘텐츠는 성공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국내 콘텐츠의 글로벌 유통 관점에서도 시즌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내 드라마가 글로벌 시장에서 광범위하게 유통되면서 미국과 같이 시즌제 문화가 보편적인 국가의 이용자들은 국내 드라마가 시즌제로 제작되지 않아 아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좋은 IP의 발굴과 활용은 글로벌화에 있어서 핵심적인 부분이며, 이것이 시즌제와 이어질 때 IP와 콘텐츠의 생명은 더 길어질 수 있다.

시즌제의 활성화와 함께 고민해 봐야 할 것은 시즌제 못지않게 중요한 신규 서사와 형식의 발굴이다. 시장이 어렵고 투자에 대한 위험이 커졌다고 해서 시즌제 등 기존에 존재하는 틀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심화될 경우 생태계 전반의 다양성 제고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시즌제 활성화와 더불어 새로운 스토리텔링 발굴과 형식적 실험을 지속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미디어 산업과 정책과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문화적인 관점에서 미디어를 다루는 글도 쓰고 있다. 『스트리밍 이후의 플랫폼』(스리체어스), 『OTT 트렌드 2023』(형설EMJ, 공저) 등의 책을 썼다. 아주경제, 한국대학신문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산업적인 분석과 문화적인 분석을 동시해 활용하여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발굴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미디어 산업과 문화를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