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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point 3

<최강야구>
선수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

이준범(쿠키뉴스 기자)

스포츠 예능의 인기가 이어지고 있다. 단순히 스포츠를 주제로 재미 요소를 이끌어내는 것에 그쳤던 과거 예능와 달리, 운동에 진심으로 임하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노력이 빚어낸 결과로 새 트렌드를 만들고 있는 최근의 스포츠 예능을 리뷰해본다.

다시, 승부욕이 불타다

왕년에 야구 좀 했던 40대 아저씨 선수들로 가득한 방송용 구단. 지난해 6월 첫 방송을 시작한 <최강야구>(JTBC)에 큰 기대를 거는 시청자는 많지 않았다. 프로그램 제목처럼 최강의 야구단을 꿈꾼다는 장시원 PD가 ‘최강 몬스터즈’라는 팀명을 공개했을 때 반응도 그렇게 좋지 않았다. 방송에 참여하려고 모인 선수들조차 긴가민가한 표정이었다. 선수들 사이에 앉아 있던 이승엽 선수가 갑자기 구단 감독으로 호출되는 등 어딘가 어설픈 느낌이 가득했다.

그럴듯한 팀 로고가 박힌 유니폼과 멋진 구단 버스를 봐도 선수들의 혼란과 불신은 사라지지 않았다. <최강야구>는 선수들도, 시청자도, 심지어 제작진도 정확히 어떤 프로그램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시작해보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언제 갑자기 종영돼도 이상하지 않은 프로그램에 가까웠다. 7할 승률을 넘지 못하면 폐지하겠다는 PD의 폭탄 발언도 웃어넘길 정도였다. 그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의 공약인지, 앞으로 선수들에게 어떤 압박감으로 다가올지 그땐 아무도 몰랐다.

<최강야구>의 첫 출발은 선수들이 등장하는 오프닝 장면이 아니다. 심수창 선수가 사석에서 장 PD에게 ‘지금도 시속 140㎞에 가까운 공을 던질 수 있다’고 할 때도, 송승준, 장원삼, 유희관 선수가 현역 때 프로야구에서 100승 넘게 기록했다는 걸 자랑할 때도 아니다. 진짜 시작은 개막전 상대로 선정된 덕수고등학교 야구팀 감독이 영상에서 “(최강 몬스터즈를) 이길 확률 80%”라며 “우리 투수 공을 칠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도발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선수들 표정이 굳고, 현장의 공기가 바뀌었다. 왜 이렇게 표정이 안 좋냐는 장 PD의 농담에도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잠시 잊고 있던 승부욕의 작은 불씨가 선수들에게 다시 옮겨붙은 순간이었다.

상대 팀의 도발은 출연진의 승부욕에 불을 댕겼다.

출처: JTBC Voyage 유튜브 채널

“이건 예능이 아니야”

<최강야구>에 출연한 모든 사람이 하나 같이 하는 말이 있다. ‘예능 프로그램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말이다. 상대 팀 감독도, 일일 코치로 출연한 코치들도 짠 것처럼 그렇게 말한다. 시청자도 비슷하게 느낀다. 가장 신기해 하는 건 <최강야구>에 출연하는 선수들이다. 왜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지,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지 그들 스스로도 잘 몰랐다. 사전 연습량을 늘리고, 매 순간 플레이에 최선을 다하고, 진심으로 긴장하며 경기장에 나선다. 프로야구 선수였던 현역 때와 다를 게 없었다.

처음엔 자존심과 승부욕이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최강 몬스터즈에 합류한 은퇴 선수 중 고등학교 야구부에서 야구를 하지 않은 선수는 없다. 모두 프로 구단의 지명을 받아 계약했고, 긴 시간 현역 선수로 뛰었다. 메이저리그를 밟아본 선수도 있고,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도, 국내 프로야구 역사에 레전드로 남은 선수도 다수다. 영광의 시간을 보내고 은퇴해 운동과 거리가 멀어졌지만, 그래도 한참 어린 고등학교 선수들에게 지는 건 다른 문제다. 그들에게 선배로서 자신이 어떤 선수인지 보여주고 싶어 했다. <최강야구>가 처음 선수들을 자극한 지점이다.

제작진의 전략은 통했다. 현역 때도 잘 보여주지 않았던 선수들의 다이빙 캐치1)와 슬라이딩 주루2) 플레이가 첫 경기부터 쏟아졌다. 플레이가 잘 안되면 진심으로 아쉬워하고,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면 진심으로 기뻐했다.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팀의 승리를 기원하며 동료 선수들을 응원하고 위로했다. 국가대표팀 경기가 아니면 같은 팀에서 뛰어본 적 없는 선수들이 서서히 하나가 됐다. 목적은 분명했다.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 선수들에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없어 보였다. 그건 마치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하고, 아직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는 하나의 의식 같았다. 무의식적으로 그들만의 의식에 매 경기 집중했다.

하지만 승리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최강 몬스터즈는 다섯 번째 경기였던 동의대학교와의 2차전에서 첫 패배를 당했다. 그때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암울한 분위기가 선수단을 휘감았다. 선수들이 연기하는 게 아니란 걸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건 진짜였다. 선수들은 패배 후 개인 인터뷰에서 과거 선수 시절에 느낀 승부욕을 다시 확실하게 떠올렸다고 털어놨다. 자신들이 얼마나 이기고 싶어 하는지 깨달았다고 했다. 덕수고등학교 감독의 도발이 선수들의 마음에 불씨를 붙였다면, 첫 패배의 순간은 불타오르게 했다. 시청자들 눈에도 선수들 마음가짐과 움직임이 달라진 게 보였다. <최강야구>가 얼마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때 확실해졌다. 이 프로그램은 예능이 아니다. 최강 몬스터즈는 다음 경기였던 동의대학교와의 3차전을 10:3이라는 큰 점수 차이로 이겼다.

선수들은 첫 패배 이후 한층 비장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다.

출처: JTBC Voyage 유튜브 채널

돈 받으면 프로

드라마엔 대본이 있지만, 스포츠엔 대본이 없다. 드라마에서 배우는 작가가 쓴 대본을 대신 구현하는 역할을 하지만, 스포츠에선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대본을 쓴다. 다른 예능 프로그램과 달리, 진짜 경기를 하는 리얼리티 스포츠예능 <최강야구>에서 선수들이 가장 중요한 이유다. <최강야구>는 선수들이 실패하고 극복하고 활약하는 서사가 전부다. 그들이 어떤 마음을 먹는지에 따라 경기에서 보여주는 플레이가 결정된다. 그들이 하는 말이 서사가 되고, 그들의 움직임과 표정이 그림이 된다. <최강야구>로선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렇다.

<최강야구>는 예능에서 벗어난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것이 상징적이다. 이전 감독이었던 이승엽 감독은 당시 감독 경험이 처음인 상태였다. 그는 예능 프로그램의 성격을 감안했는지, 여러 선수에게 기회를 주려 했다. 따로 특별 훈련을 하거나 실제 경기처럼 선수들에게 다양한 주문을 하는 일도 많지 않았다. 우승 경험은 물론, 감독 경험이 누구보다 많은 김성근 감독은 다르다. 과거 그가 맡은 팀은 그 어느 팀보다 연습량이 많은 걸로 유명했다. 김 감독이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선수들은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모두가 알았다. 이제부터 <최강야구>는 진짜 야구를 하겠구나.

김 감독이 선수들에게 가장 먼저 강조한 건 프로 의식이다. 그는 모든 선수들이 출연료를 받는 점을 지적하며, (프로야구 선수 연봉보다 적지만) “돈 받으면 프로”라고 단언했다. 선수단 분위기도 완전히 달라졌다. 경기 중 감독과 웃으며 농담하고 출전하게 해달라고 조르는 장면은 사라졌다. 출전하지 못한 선수들은 과연 이번엔 경기에 출전 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출전한 선수들은 감독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 긴장하는 분위기가 됐다. 매 경기 감독이 연습을 함께 하며 타격 자세를 지적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패하면 곧바로 특별 훈련을 진행하기도 한다. 감독은 경기가 없는 겨울에 소화할 훈련 스케줄을 빼곡하게 적어오기도 했다. 도저히 소화할 수 없을 것 같은 엄청난 훈련량이었다. 감독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으며 몰아치고, 선수들 몸에선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제작진은 묵묵히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해이해진 선수들에게 단호한 모습을 보여준 김성근 감독

출처: JTBC Voyage 유튜브 채널

올해 3월부터 두 번째 시즌이 시작된 이후 예능 프로그램의 색깔은 더 많이 지워졌다. 부상 선수로 가득하고, 그것이 웃음 포인트가 됐던 이전 시즌과 달랐다. 선수들은 전보다 더 진지하게 매 경기에 임하고 더 강하게 승리를 갈구한다. 승리를 누구보다 더 절실하게 원하는 건 감독이다. 김성근 감독은 선수들에게 7할 승률이 안 되면 프로그램이 폐지된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그들이 야구를 제대로 못하면 <최강야구>에 딸린 200여 명의 식구가 직장을 잃는다며 책임감을 강조했다. 선수들의 표정이 또 한 번 달라졌다. <최강야구>는 리얼리티 스포츠 예능이 한 번도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

<최강야구>가 움직인 것

<최강야구>가 움직이게 한 건 선수들만이 아니다. 시청자들도 움직였다. 지난달 21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올해 두 번째 <최강야구> 직관 경기는 1만 6,000석 매진을 기록했다. 매진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7분이다. 최강 몬스터즈를 응원하는 시청자들은 직접 경기장까지 나와 방송의 일부로 출연하고 있다. <최강야구>는 팬들에게 공개하는 직관 경기를 완전히 다르게 분류한다. 해설진은 직관 승률, 직관 타율을 따로 언급하며 선수들이 느낄 중압감과 그것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다. 선수들이 등장할 때의 응원가와 환호 소리는 이미 방송의 일부다. 많은 관중을 처음 겪어보는 상대팀 아마추어 선수들은 그 장관에 감탄한다.

40대 아저씨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시작한 <최강야구>는 어느새 현실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강야구>로 수많은 스타가 탄생했고, 많은 아마추어 선수들이 국내 프로야구 무대로 향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프로야구와 아마추어 야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역 선수가 은퇴하거나 상대팀 아마추어 선수가 잘하면, 팬들은 최강 몬스터즈 영입 가능성을 점친다. 언젠간 진짜 프로팀과 대결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과연 <최강야구>는 앞으로도 7할 승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앞으로의 경기 결과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선수들이 매 경기 진심으로 임할 거란 건 안다. 그 모습을 조금은 더 오래 지켜보고 싶다.

  • 이준범

    2015년 쿠키뉴스에 입사해 대중문화팀에서 방송·영화를 취재했다. 2022년 대표 저자로 책 『이런 건 누구에게 물어보나요?』(넥서스BIZ)를 출간했다. 현재 2030팀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