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을 배경으로 하는 요리 프로그램이 코로나19 이후 다시 늘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은 한식을 세계에 알린다는 목적으로 해외 식습관에 접목시킨 한식을 선보인다. K-컬처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지금,해외 요리 프로그램의 명과 암을 들여다본다.
“이거 BTS가 먹었던 거야.”
한식을 바라보는 외국인들의 뒤바뀐 시선. 그저 낯선 동양의 음식을 마주하는 모습이 아닌 기대에 찬 눈빛이다. 그들의 입에 정성껏 준비한 음식이 들어가는 순간, 나도 모르게 숨죽인다. 그리곤 터지는 감탄사, 생경한 외국어로 터지는 온갖 미사여구에 이내 안심한다. 나도 모르게 들썩거려지는 어깨와 흐뭇한 마음의 한편에선 의문이 튀어나온다. 왜 그들에게 굳이 인정받아야 하는 걸까.
그동안 어찌 참았던 걸까. 공중파, 종편, 케이블 할 거 없이 예능 프로그램들이 한국을 떠났다. ‘외국에서 일하기’,‘외국에서 장사하기’, ‘외국에서 캠핑하기’, ‘외국에서 놀기’ 등 외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는 중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많은 도전을 받는 분야가 바로 ‘한식 장사’다. 외국의 한 도시에 한식당을 열고, 한식을 팔며 부딪히는 여러 상황과 이곳을 찾은 외국인들의 시선을 담는 포맷이다. 불특정 다수의 현지인을 대상으로 삼는지 혹은 지정된 집단에 찾아가 선보이는지만 다를 뿐이다.
이미 이름난 세 한식 예능이 지나갔다. 굳건한 한식 예능 <윤식당>(tvN)의 후배인 나영석 사단의 <서진이네>(tvN),백종원이 본업 등판에 나선 <장사천재 백사장>(tvN), 한국 급식과 이연복이 만난 <한국인의 식판>(JTBC)이다.
코로나19로 막혔던 해외 한식 예능의 물꼬가 트였다.
출처: tvN, JTBC이들은 한식을 품에 안고 북미, 남미, 유럽, 아프리카 등 세계 곳곳을 향했고, 현지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애썼다. 약속이나 한 듯 모든 방송마다 ‘위기’가 몰려왔고, 잠깐의 혹평에 당황했지만, 결국엔 전반적으로 외국인들의 후한 평점을 받았다.
출연진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서진이네>는 기존 출연진인 이서진, 정유미, 박서준, 최우식에 이어 월드 스타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뷔가 합류했다. <장사천재 백사장>은 요식업계 미다스 손으로 꼽히는 백종원이 직접 장사에 도전하며 이장우, 존박, 권유리, 뱀뱀 등이 함께한다. <한국인의 식판>에서는 중식 대가 이연복과 김치 브랜드 CEO 홍진경, 영양사 김민지가 등장한다.
코로나19 이전 한식 예능은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자랑했고, 검증된 출연진까지 더해졌으니 격한 반응이 따라오는 건 당연한 순서라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결과는 예상을 벗어났다.
스타 PD와 슈퍼스타가 만났던 <서진이네>는 전작 <윤식당>을 넘어서지 못했다. 아니, 매우 아쉬웠다. 1회 8%대로 시작했던 시청률은 2회에 9.347%(이하 닐슨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기준)로 자체 최고를 기록했지만, 그보다 높은 시청률은 더는 없었다. 최종회엔 6.777%로 주저앉았다. 화제성도 전작보다 약했다. 화제성 순위는 방송 프로그램과 출연자를 다룬 뉴스 기사, 블로그와 커뮤니티 글, 동영상,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재된 정보, 네티즌의 반응을 분석해 정한다. 2월 4주차(이하 굿데이터코퍼레이션 기준) 6.7%로 3위, 3월 2주차에는 3.8%로 4위, 4월 4주차에는 2.8%로 5위에 랭크됐다. 화제성도 회가 거듭될수록 떨어졌다.
백종원과 이연복도 마찬가지였다. <장사천재 백사장>은 세 차례 5%대를 기록한 것 외에는 대부분의 회차가 4%대 수준이었고, <한국인의 식판>은 2∼3%대에 그쳤다. 화제성은 더 심각했다. ‘비드라마 부문 TV 화제성 TOP 10’에서 두 프로그램은 한 차례도 10위 안에 들지 못했다. 낮은 수치의 시청률은 아니지만, 요식업계 유명 인사들을 전면에 내세운 것에 비해 다소 초라한 성적표라는 평가다.
K-Pop, K-드라마에 관한 건 이제 외국인이 먼저 “Do you know?(두 유 노우?)”라고 묻는 시대다. 최근 영화 <미션임파서블 7> 홍보차 내한한 배우 사이먼 페그도 한국과의 인연을 묻는 말에 더 신난 듯 답변을 이어갔다. 페그는 “한국 영화를 좋아한다. 공포영화 중에서는 <부산행>을 좋아하고, 넷플릭스에서 <빈센조>(tvN), <오징어 게임>등 여러 시리즈를 봤다”며 “내 딸은 이동욱의 팬이다. 나는 김태리의 팬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BTS 콘서트에도 갔다. 나도 아미(BTS 팬클럽)다”라고 쉴 새 없이 한국 사랑을 쏟아냈다.
이처럼 한국 드라마와 영화는 이제 외국인들이 ‘친숙함’으로 느낄 정도다. 하지만 예능은 다르다. 시청자가 재미를 느끼는 부분이 국가나 문화권에 따라 다르기에 웃음이 목적인 예능이 해외에서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서진이네>, <장사천재 백사장>, <한국인의 식판> 방영 사진
출처: tvN, JTBC그 장벽을 공감하기 쉬운 소재인 ‘음식’으로 낮춘 것이 한식 예능의 긍정적인 부분이다. 유튜브 등을 통해 한국어 그대로를 읽은 ‘MUKBANG(먹방)’이 인기를 끄는 이유도 이와 같다. 실제로 <서진이네>는 한국 예능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전 세계 동시 공개됐다. BTS 팬들의 관심에 힘입어 해외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면서 해당 작품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가 서비스되는 8개 국가에서 순위권에 올랐다.
<장사천재 백사장>과 <한국인의 식판>은 그간 한식 예능은 힐링 예능이라는 수준을 벗어났다. 현지인들에 맞춰 판매 실적을 올리기 위한 색다른 접근 방법이 흥미를 끌었다. 근처 매장들의 매출과 업종을 분석하고, 현지인들이 흥미 있을 만한 메뉴를 구성하고 만들어내는 과정이 실제 창업을 엿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했다.
저마다의 포부는 다를지라도 한식 예능의 목표는 K-푸드를 외국인에게 선보여 인정받는다는 콘셉트다. 해당 한식 예능들을 편집한 유튜브 영상들을 보면 섬네일 제목마다 그 ‘인정’에 목마른 내용이 담겨있다. 사뭇 낯부끄러워질 정도다. ‘백종원 견제하러 왔다가 단골 된 일식 셰프 모음’, ‘국뽕 차오르는 백종원표 K-음식’, ‘K-분식 처음 먹은 외국인 반응 모음 50분’ 등.
해외 한식 예능의 인기 클립은 외국인이 한식을 먹고 감탄하는 장면을 모은 것들이 다수다.
출처: 유튜브물론 현지인들의 좋은 반응이 매출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외국인의 반응에 너무 집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왜 우리가 외국인들에게 한식이 맛있음을 확인받아야 하냐는 것이다. 그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숙고해봐야 할 시점이다.
누가 뭐래도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한식’이다. 우리의 자부심이 더해질 때 그들에게도 빛나 보이지 않을까. 한식이 뚫는 K-예능의 세계화, 더는 ‘남의 인정’에 매달리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