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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1

숏폼에 올라탄 K-Pop
미지의 가능성에 몸을 던지다

김도헌(대중음악평론가)

최근 빌보드 차트에 입성하며 화제를 모은 그룹 피프티 피프티1)는 숏폼 플랫폼인 틱톡을 타고 바이럴에 성공했다. 챌린지, 영상의 배경음악 등을 통해 K-Pop의 확산 창구로 기능하는 숏폼을 조명해본다.

틱톡을 타고 시작된 큐피드 열풍

피프티 피프티의 미래는 시작부터 밝은 것은 아니었다. 중소 기획사 소속으로 데뷔한 이 4인조 신인 걸그룹은 지난해 11월 ‘더 피프티(The Fifty)’를 내놓으며 가요계에 첫발을 디뎠다. 레드 오션이 된 K-Pop 시장에서, 이름만 대면 모두 아는 대형 기획사가 아닌 이상 음악 방송 출연 기회는 제한적이고 음악을 알릴 방법도 많지 않다. 짧은 첫 활동을 마치고 새해를 맞은 피프티 피프티는 2월 24일 첫 싱글을 발표했다. 여전히 이들을 주목하는 이들은 소수였다.그런데 한 달 후,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 스트리밍 플랫폼 주요 차트에는 진입하지 못한 이 노래가 미국 빌보드의 ‘HOT 100’ 차트에 진입한다는 뉴스였다. 음반 판매량을 집계하는 빌보드 200 차트에서 성과를 낸 그룹은 많았으나 미국 내 스트리밍, 음원 구매, 라디오 재생 횟수를 따지는 HOT 100 차트에서 인상적인 결과를 만든 팀은 싸이와 방탄소년단이 유일했다. 피프티 피프티의 ‘큐피드(Cupid)’는 그렇게 차트 17위까지 올랐다. 블랙핑크, 트와이스, 에스파, 르세라핌, 뉴진스 등 빅네임들도 이루지 못한 케이팝 걸그룹 최고 기록이다.

큐피드는 어떻게 세계인이 즐겨 듣는 노래가 되었을까? 사실 한국에서만 모르고 있었을 뿐, 큐피드를 향한 구애는 3월 한 달 동안 세계 시장에서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그룹이 주목받았다거나 멤버들이 화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는 노래 단위로 주목받지도 않았다. 오늘날 큐피드의 성공을 만든 주인공은 숏폼 플랫폼 틱톡(TikTok)을 자주 사용하는 익명의 이용자였다. 그는 큐피드의 영어 버전 싱글을 듣고 후렴이 시작되기 직전의 프리코러스 파트에 감동하여 ‘2023년 최고의 프리코러스(best pre-chorus of 2023)’라는 제목의 영상2)을 올렸다. 원곡 보다 속도를 높여 날렵해진 큐피드의 화살이 순식간에 틱톡 사용자들의 마음을 꿰뚫었다. 노래에 맞춰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은 물론,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와 콘텐츠를 올릴 때 큐피드가 빠지는 영상이 없었다. 소셜미디어에서 인기 있는 음악 순위를 측정하는 바이럴 차트(Viral Charts)에서 큐피드는 미국 차트를 넘어 세계 차트를 장악했다. 한국 대중음악이 틱톡의 위력을 체감한 최초의 순간이었다.

짧은 영상으로 유행을 주도한 틱톡

2017년 바이트댄스가 출시한 틱톡은 2019년부터 세계 음악 시장의 주도권을 거머쥐었다. 짧게는 15초, 길게는 60초까지 자유로운 형태로 영상콘텐츠를 공유할 수 있는 틱톡의 핵심 서비스는 음악이었다. 교양, 뉴스, 예능, 일상 등 모든 장르에서 음악은 자신의 콘텐츠를 홍보하는 수단이자, 아마추어 가수가 빠르게 자신의 결과를 공유하며 팬을 확보하는 도구로 기능했다. 2019년 트위터에서 많은 팔로워를 확보하고 있던 인플루언서 릴 나스 엑스(Lil Nas X)는 경력이 짧음에도 그가 만든 노래 ‘올드 타운 로드(Old Town Road)’의 바이럴 마케팅을 통해 1994년 이후 한 번도 깨지지 않았던 빌보드 HOT 100 연속 1위 기록을 깼다. 18주 연속 1위였다.

당시 틱톡에서의 유행 양식은 챌린지(Challenge)였다. 챌린지는 2010년대 유튜브 플래시몹 등 군무 혹은 커버 댄스에서 출발하여 음악에 맞춰 단순한 동작을 따라하며 공통의 행동을 공유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릴 나스 엑스가 ‘올드 타운 로드’를 널리 알린 비결도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변신하는 ‘이햐 챌린지(Yeehaw Challenge)’의 몫이컸다. 이때부터 한국에서도 틱톡 챌린지가 대중적 인기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2019년 미국 시장에서 K-Pop의 개척자로 활동하던 방탄소년단이 틱톡 계정을 개설했고, 2020년대를 열었던 지코의 ‘아무노래’는 ‘아무노래 챌린지’를 유행시키며 그 해 멜론 연간 차트 1위를 기록했다. K-Pop과 틱톡 교집합의 미래를 예고하는 곡이었다.

  • 지코의 ‘아무노래 챌린지’는 틱톡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출처: 틱톡

이후 대부분의 K-Pop 기획사가 틱톡 계정을 개설하여 다양한 형태의 짧은 콘텐츠를 생성했다. 챌린지를 중심으로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등 간편하게 소비할 수 있는 짧은 영상이 주를 이뤘다. 글로벌 팬들과의 소통에도 도움이 되었다. 다만 틱톡에서의 유행이 직접적인 음악 스트리밍 차트 성과와 인지도 향상까지 연결되지는 못했다. 챌린지 콘텐츠의 경우 음악에 따라오는 춤, 멤버들의 비주얼을 소비하는 2차 생산 콘텐츠가 되어 소수 인플루언서들을 제외하면 폭넓은 대중을 아우르지 못했다. 중국 모기업을 둔 틱톡에 대한 호감도도 낮았다. 2010년대 말부터 2020년대 초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로부터 유튜브로 이탈하던 음악 소비층의 흐름을 읽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하트와 조회수, 팔로워 수치는 나날이 상승했지만, 그 위력을 체감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 사이 세계 시장은 숏폼 중심으로 재편됐다. 2021년 미국 틱톡 사용자의 65%가 틱톡을 통해 신인 가수의 음악을 듣는다고 답했고, 그중 63%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노래를 찾았다. 바이럴 히트를 기록한 노래 중 175곡이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했다. 67%의 틱톡 사용자가 틱톡에서 접한 노래를 타 스트리밍 플랫폼에 검색하여 찾아 듣는다고 답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확보된 글로벌 팬덤은 지지하는 아티스트의 채널에 접속하여 그룹의 다양한 콘텐츠에 댓글을 달고 하트를 누르며 조회수를 늘렸다. 한국에서는 틱톡의 후속 기능으로 타 플랫폼이 출시한 유튜브 쇼츠와 인스타그램 릴스 등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새로 등장한 ‘소셜미디어 팝’

숏폼 콘텐츠와 K-Pop이 본격적으로 가시적인 흐름을 만들어 낸 해는 작년이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트와이스,엔하이픈, 있지, 케플러 등 신예 아이돌 그룹들은 적극적으로 틱톡 활동을 진행하며 콘텐츠를 홍보했다. MBC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잇츠 라이브(it’s Live)’ 무대로 입소문을 탄 노래 ‘폴라로이드 러브(Polariod Love)’의 주인공 엔하이픈, 틱톡에서 인기를 얻어 싱어송라이터로 성장한 가수 세일럼 일리스(Salem Illes)와 함께 음악을 제작한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대중의 레이더 밖에서 성과를 올렸다. 대형 소속사들은 2~3분 내 짧은 길이에 아기자기한 구성, 따라하기 쉬운 간단한 안무를 앞세운 곡을 제작해 ‘소셜미디어 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2021년 틱톡 뉴스룸의 통계에 따르면 틱톡 내 K-Pop 영상 생성 개수는 9,790만을 돌파했고 주 소비층은 92.8%가 글로벌 시장 사용자였다.

숏폼에서의 성공은 상상 이상의 달콤한 열매로 돌아온다. 그러나 매우 불확실하다. 소셜미디어 친화적인 음악이 반드시 흥행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큐피드의 흥행으로 음악에 관심이 쏠리며 챌린지의 중요도가 낮아지는 것처럼 보였는데, 걸그룹 르세라핌의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가 간단한 안무로 주요 숏폼 플랫폼을 모두 휩쓸며 음원 차트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제작자들은 틱톡과 더불어 유튜브 쇼츠와 인스타그램 릴스 등 다양한 플랫폼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속 가수들은 모든 가능성에 맞춘 계획에 따라 더욱 치열한 마케팅 콘텐츠 제작에 참여해야 한다.

피프티 피프티처럼 가수와 소속사, 산업 시장 전반의 사람들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새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아 음악 신(scene)에 안착하는 것이 숏폼 시대 음악가들의 보편적인 성공담이다. 규모 있는 가수에게는 그의 위상을 뒷받침할 조회수와 댓글, 좋아요 수 등 참여 숫자가 중요하고, 중소 기획사나 인디 아티스트에게는 효과적으로 자신의 음악을 홍보할 수 있는 공간이기에 허투루 빈 피드(feed)로 남겨둘 수 없는 상황이다.

찰나의 순간에 시선을 사로잡아야 하는 숏폼 콘텐츠의 특징과 화려한 무대 및 압축된 퍼포먼스로 대결하는 K-Pop은 꽤 궁합이 잘 맞다. Z세대 인플루언서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강한 자의식을 주제로 한 노래, 따라 하기 좋은 포인트와 개성 있는 안무, 아이돌 멤버들의 비주얼로 무장한 K-Pop 아티스트들은 단어 그대로 우상이다. 하지만 피프티 피프티의 성공, 틱톡에서 주목받는 이들이 기획 가수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펼치는 싱어송라이터라는 점에서 가능성의 공식화는 몸을 무겁게 만든다. 숏폼 시대의 보편적인 음악 문법을 꿈꾸는 K-Pop이 어떤 콘텐츠로 또 다른 기발한 성공 사례를 생산해 낼지 지켜볼 일이다.

  •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 2013년부터 음악 웹진 IZM에서 활동하며 2019년부터 2021년까지 편집장을 역임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다. 음악 플랫폼 제너레이트(ZENERATE)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