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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Issue 3

요약본의 확장과
콘텐츠 장르별 특성

정민경(미디어오늘 기자)

영화나 드라마 중심으로 시작한 요약본 열풍이 예능, 뉴스, 다큐멘터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로 확대되고 있다. 그에 맞춰 각 장르 콘텐츠 요약본은 어떤 특징을 지니는지 분석해보고, 장르의 구분을 넘어 요약본 콘텐츠가 시사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본다.

범람하는 정보가 된 콘텐츠,
‘가성비’ 높은 요약본

2021년 3월 일본 리서치 회사 크로스마케팅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콘텐츠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은 드라마, 뉴스, 예능, 영화 순으로 빨리 감기한다고 한다. 그 외 강연, 유튜브, 드라마, 애니메이션, 뉴스, 영화 순으로 나온 조사도 있다.1) 순서가 중요하다기보다, 장르를 넘어 거의 모든 콘텐츠를 빨리 감아 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장르에 상관없이 요약본 콘텐츠도 확대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많은 이들이 영상콘텐츠를 작품보다는 ‘정보’로 여기는 까닭이다. 책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초반부에는 이 현상을 설명하면서 요약본 콘텐츠가 ‘위키 피디아 상위 호환’이라고 쓴다. 너무나 많은 볼거리들이 나오니 그것들을 제 속도로 볼 수 없고 작품을 감상이 아닌 정보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 정보는 빨리 습득할수록 가성비가 높아진다.

영화나 드라마 요약본이 대표주자다. 수많은 콘텐츠가 쏟아지는데 길이가 최소 1시간 30분 이상인 영화나, 한 시리즈를 보는 데 16시간 이상이 걸리는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잘 만든 콘텐츠를 말할 때 ‘재미있다’라는 말 대신 ‘앉은 자리에서 처음부터 다 봤다’라고 말할 정도로, 콘텐츠를 다 보게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렵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은 결말이 포함된 요약본을 찾는다. 혹은 긴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는지 미리 확인하기 위해 요약본을 본다.

  • 유튜브에서 ‘드라마’만 검색해도 몰아보기 관련 콘텐츠가 자동 추천된다.

‘결말 포함 영상’ 때문에 저작권 침해가 일어나고 창작자 보상을 빼앗아 간다는 문제가 생긴다. 일본은 지난해 저작권법을 침해한 유튜버들에게 손해배상을 명령했다.2) 한국에서도 민감한 문제다. 조만간 유튜버들을 상대로 한 저작권 소송 등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예상도 오래됐다.

그렇지만 반대로, 요약본으로 OTT나 방송 콘텐츠에 새로 유입하는 시청자가 있기에 책임을 묻기 어려운 문제가 됐다. 한 OTT는 요약본을 만드는 크리에이터와 협업하기도 했다. 이 사실을 업계 내에서는 알고 있지만 대외적으로 확언하지는 않는다. 한 OTT 관계자는 “요약본을 만드는 유튜버와 협업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저작권 문제가 민감해 진행하지 않고 있다. 저작권을 침해하는 영상에 대해서는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OTT 관계자는 “요약본 유튜브 영상으로 인해 유입되는 유저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홍보가 될만한 유튜브 영상이라면 (협업을 진행한 것이 아니더라도) 추후에 OTT로 들어오는 링크 삽입을 요구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유튜브 요약본 문제는 공급자 입장에서도 풀기 어려운, 대세 현상이 됐다. 현실적으로 시청자들의 수요가 큰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관 확장, 시즌제 자리 잡으며
더 커진 요약본 수요

영화에서는 콘텐츠의 세계관 확장, 드라마에서는 시즌제가 자리 잡으면서 요약본의 인기가 더욱 커지고 있다. 마블(Marvel) 시리즈처럼 세계관이 방대한 작품은 요약본이 필수처럼 여겨진다. 최근 나온 마블 영화를 보려면 이전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이전까지의 이야기 요약본을 보고 영화관에 간다. 모든 시리즈를 본 팬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놓친 내용은 없는지 복습하기 위해 요약본을 보기도 한다. 최근 개봉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이하 가오갤)3>를 보기 위해서 <가오갤> 1, 2편 요약본과 마블 시리즈 요약본을 시청하는 것이다. 또한 영화 분야에서는 과거에 성공한 콘텐츠들을 다시 불러오는 것이 트렌드다. 지난해 <탑건: 매버릭>이 그랬고 올해 <존 윅 4>도 그렇다.이 경우 <탑건>(1987)이나 지난 <존 윅> 시리즈를 유튜브 요약본으로 다시 보고 최근 콘텐츠를 즐긴다.

시즌제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최근 방영한 <낭만닥터 김사부 3>(SBS)를 보려면 2016년 방영됐던 시즌 1의 요약본을 찾아본다. 시즌 1을 이미 본 시청자라고 하더라도 내용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을 수 있고 시즌 3를 더 잘 이해 하기 위해 이전 시즌을 복습하고 싶어 요약본을 찾는다. 지난 시즌들을 복습하면서 회수되지 않은 ‘떡밥’을 다시 체크하고 새 시즌에서의 이야기를 예상해보기도 한다.

지난 시즌 복습뿐 아니라, ‘최애 드라마’에 대한 복습도 빼놓을 수 없다. 좋아했던 옛날 드라마를 다시 보고 싶을 때 요약본으로 보는 경우다. 레전드 드라마라고 불리는 <내 이름은 김삼순>(MBC), <별에서 온 그대>(SBS), <연애시대>(SBS), <파스타>(MBC), <내 남자의 여자>(SBS) 등 과거 드라마를 다시 보고 싶을 때도 요약본이 필요하다. 이처럼 요약본은 복습과 함께 다가올 새 시즌을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게 하는 예습 역할도 한다.

요약본으로 유입 노리는 방송사

방송사의 경우는 자체적으로 제작한 요약본을 유튜브 채널에 제공한다. 저작권이 방송사에 있으니 더욱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모범택시>(SBS)의 사례를 보면 시즌 2가 시작되기 전에 시즌 1 요약본을 ‘SBS NOW’ 채널에서 공개해 시즌 1을 보지 않은 시청자도 시즌 2로 유입되도록 했다. 오마이뉴스 기사에 따르면 SBS 드라마 홍보 담당자는 “새로운 시즌을 홍보하고 관심을 환기시키는 차원”이라고 말했다.3)

예능이나 다큐멘터리, 시사·교양 장르에서도 요약본은 인기다. 대표적으로 <런닝맨>(SBS)의 경우 2010년부터 방영된 예능으로, 10년 넘게 쌓인 맥락들이 존재한다. 특히 화제가 되었던 ‘셜록홈즈 특집’, ‘2021년 런닝 투자 대회’ 같은 특집의 요약본은 조회수가 500만 회를 웃돈다. 또한 출연진 중 이광수는 거짓말을 잘하는 캐릭터로 웃음을 샀는데, 그가 거짓말을 하는 장면만을 모아둔 요약본 역시 1,300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예능 요약본 역시 영화나 드라마의 세계관처럼 긴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돕고, 최근 에피소드를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게 한다.

현재 15기까지 진행된 <나는 솔로>(ENA, SBS Plus)도 요약본이 인기 있는 예능이다. 최근 <나는 솔로>를 보고 재미를 느낀 시청자들은 지난 기수의 요약본을 살펴본다. <나는 솔로>처럼 예능이지만 결말(누가 커플이 되었는지)이 정해져 있는 프로그램의 경우 요약본에 대한 수요가 더 높다.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 포맷 또한 비슷한 맥락으로 요약본 수요가 많다.

다큐멘터리나 시사·교양 프로그램도 기승전결, 즉 한 회에 결말까지 담겨있는 콘텐츠가 요약본으로서 인기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SBS), <궁금한 이야기 Y>(SBS), <용감한 형사들>(E채널), <당신이 혹하는 사이>(SBS)와 같이 범죄 사건이나 미제 사건을 이야기하는 콘텐츠들이 대표적이다.

뉴스 요약본의 경우는 다른 장르와는 다른 양상이다. 지상파에서 방영하는 종합 뉴스를 토막 내 클립으로 잘라 내보내는데, 같은 맥락의 뉴스들을 묶어 제공하는 콘텐츠가 인기다. ‘MBCNEWS’ 채널의 시리즈 <뉴스.zip>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상파의 종합 뉴스는 그날그날 최신의 뉴스를 업데이트하고, 그날 있었던 일을 위주로 다루기 때문에 파편적이다. 그러나 유튜브 채널에서는 한 사안에 대한 수일 동안의 뉴스를 모아볼 수 있기에 맥락을 파악하기 쉽다. 길이를 줄이는 요약본이 아니라 맥락을 빨리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요약본이다. MBC 유튜브 채널 관계자는 “지상파에서 방송하는 뉴스를 클립으로 자르기에 기본적으로 디지털 조회수도 올라가고, 단발성 뉴스 클립에서 벗어나 관련 리포트를 맥락 있게 묶어 이해를 도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4)

달라지는 시청 습관도 고려해야

물론 방송사에서 자체로 만드는 요약본이 아니라면, 저작권 문제로 인해 모든 요약본 콘텐츠를 옹호하기는 어려운 문제도 있다. 콘텐츠를 더 잘 이해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빠르게 훑어보고 쉽게 평가하는 습관을 만든다는 문제 역시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요약본을 보는 사람을 두고 “제대로 된 시청 습관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단편적일 수 있다. 물론 창작자가 만들어낸 영상들을 제시간에 맞춰 진지하게 감상하는 게 이상적이다. 그러나 과거 영상들을 요약본으로라도 다시 한번 시청하고 최근 영상을 더 잘 이해하려고 하는 시청자는 오히려 작품 이해를 위해 노력하는 시청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미 이전에 본 콘텐츠를 복습하는 행위는 하나의 콘텐츠에 애정을 쏟는 행위이기도 하다.

책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의 결말에서 언급됐듯, 시대에 따라 시청 습관은 항상 변화한다. 이러한 콘텐츠 감상의 흐름 역시 공급자들이 시청자들을 확보하기 위해 주도한 부분도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심지어 4분이 채 되지 않는 아이돌 뮤직비디오도 ‘1분 요약’으로 보는 시대다. 답은 언제나 비슷하다. 창작자를 위한 보상과 시청자의 수요를 고려한 절충된 방안을 고안할 때다.

  • 정민경

    2015년부터 미디어 전문지 미디어오늘 기자로 활동했다. 방송사와 언론사를 취재하다가 2022년부터는 문화콘텐츠 담당 기자로 콘텐츠 관련 기사를 써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