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플랫폼을 다 구독하기에는 부담되는 소비자들이 유튜브를 통한 요약본을 소비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OTT, 방송사의 입장에서 요약본을 통한 구독자 이탈이나 저작권 침해 문제는 없을까? 콘텐츠 공급자가 요약 영상을 슬기롭게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해본다.
OTT와 개방형 동영상 플랫폼의 등장으로 우리는 문자 그대로 ‘콘텐츠 홍수’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지난 2022년 한해 동안 국내 유통을 목적으로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총 3,376편의 영화가 등급분류를 받았으며, 총 1만 3,559편, 95만 530분의 비디오물이 등급분류를 받았다(영상물등급위원회, 2022).1) 10년 전인 2012년에 등급분류를 받은 영화가 1,002편, 비디오물이 4,478편이니 약 3배 정도 증가한 셈이다. 1년이 총 52만 5,600분임을 고려할 때, 쉬지 않고 시청한다고 해도 국내에서 유통되는 비디오물을 모두 시청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처럼 콘텐츠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공급과잉 속에서 시청자들의 콘텐츠 소비패턴은 효율성과 경제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OTT 구독이나 VOD 구매를 통해 러닝타임이 긴 영상물을 꾸준히 시청하는 대신 주요 장면만을 모아 짧게 편집한 유튜브 요약 영상을 보는 방식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인 <더 글로리> 16부작을 모두 보려면 총 858분이 소요되지만, 유튜브에서 ‘더 글로리 몰아보기’, ‘더 글로리 정주행’ 등을 검색해서 수십 분만 소비하면 주요 장면과 전체 스토리를 확인할 수 있다. 시청자로서는 시간과 구독비를 아끼고 트렌드를 좇았다는 효용까지도 누릴 수 있는 나름의 합리적 소비인 셈이다. 최근에는 인스타그램 릴스, 틱톡, 유튜브 쇼츠와 같은 짧은 영상 플랫폼에서까지, 수분 이내로 드라마와 영화의 주요 내용을 요약·정리하는 영상이 인기를 끌고 있다.
실제 시청 이전에 요약 영상부터 챙겨보는 현상은 숏폼 콘텐츠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미디어 주 이용층으로 등장하면서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 태어날 때부터 동영상 홍수 속에서 살아온 Z세대들이 되도록 짧고 핵심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숏폼 콘텐츠를 선호한다는 사실은 복수의 조사에서 확인된다(대학내일20대연구소, 20222); 메조미디어, 20223)). Z세대들은 그들의 선배 세대인 M(밀레니얼)세대에 비해 OTT 이용 개수4)도 적고 콘텐츠 구독 서비스 이용률도 상대적으로 낮다(김윤화, 2023.6.15.).5)
Z세대의 숏폼 콘텐츠 선호 현상
출처: 메조미디어콘텐츠 소비패턴의 변화는 OTT를 비롯한 콘텐츠 제공사업자들에게 새로운 기회이자 도전이 되고 있다. 오리지널 영상의 숨겨진 매력과 의미를 찾아내는 잘 만들어진 소개 영상은, 시청자들에게는 불필요한 탐색 시간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콘텐츠 홍수 속에서 기회를 잃고 사라질 수 있는 콘텐츠가 시청자를 만날 중요한 기회를 제공한다.
지난 2022년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ENA)는 영상 리뷰 전문 유튜버 ‘고몽’을 활용하여 시청률 상승의 계기를 마련했다. <우영우>는 2022년 6월 29일 제1화 방영 당시 0.948%의 시청률로 시작했으나, 7월 2일에 구독자 224만 명의 유튜버 고몽이 1~2화에 대한 34분 분량의 리뷰 영상을 업로드 한 이후 시청률이 4배(4.032%)나 상승했다. <우영우>의 최종화 시청률은 17.534%였으며 현재 고몽의 요약 영상 조회수는 1,751만 회에 이른다. 유튜브 요약 영상의 매출 증대 효과에 대해 알려진 통계는 없지만, 업계에서는 IPTV의 VOD소개 프로그램이 특정 콘텐츠의 매출을 20%까지도 향상시킬 수 있다고 한다(정민경, 2022.1.30).6)
물론 요약 영상이 저작권자와 플랫폼에게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요약 영상의 시청이 실제 시청으로 이어지는 홍보의 경로가 될 수도 있지만 주요 장면과 핵심 스토리, 결말까지 과도하게 노출될 경우 요약 영상 시청에만 머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전에 저작권에 대한 충분한 협의가 없이 무단으로 영상을 활용하거나 원저작자의 의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자극적이고 무분별한 리뷰로 영상의 가치가 훼손될 우려도 있다. 다수의 OTT가 경쟁적으로 화제작을 쏟아내는 환경에서 모든 OTT에 가입할 수 없는 시청자들이 감상의 목적보다는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요약 영상만을 소비하는 대체재 소비가 늘어나면, 정작 실제 시청과 OTT 구독은 감소할 우려가 있다.
요약 영상의 인기가 높아지자 일부 OTT는 적극적으로 이를 홍보에 활용하고 있다. 영상 전문 리뷰어에게 홍보영상 제작을 의뢰하여 마케팅 협업을 시도하거나, 자체적으로 요약 영상 및 정주행 영상을 제공하는 채널을 개설하여 운용하는 사례도 있다. 자사의 오리지널 콘텐츠 홍보에 요약 영상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는 CJ ENM이다. CJ ENM은 디지털 스튜디오인 tvN D를 통해 ‘디글(:Diggle)’, ‘디글 클래식’, ‘샾잉(#ing)’ 등의 유튜브 채널에서 자체 제작 오리지널 콘텐츠 요약 영상, 회차별 핵심만 편집한 정주행 영상, 관심 장면과 인물을 뽑아 숏폼 콘텐츠로 만든 쇼츠 영상, 실시간 스트리밍 영상 등을 제공하고 있다. 영상의 핵심 부분을 강조하는 섬네일과 제목, 태그 등을 달아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영상 하단에 자사의 OTT로 유입되는 링크를 제공하는 ‘끌어당기기’ 방식의 유입 전략을 구사한다.
자사 드라마의 몰아보기 콘텐츠를 제공하는 CJ EMN
잘 만들어진 요약 영상은 신규 가입자를 확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만 화제작만 시청하고 탈퇴하는 ‘메뚜기형 시청자’들을 락인(lock-in)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대작도 시청자 유입 효과를 한 달 이상 발휘하기 어려운 것이 현재 OTT 시장의 현실이다. 최근 넷플릭스의 화제작이었던 <더 글로리> 시즌 1의 경우 공개 5주 만에 글로벌 Top10 리스트에서 벗어났으며, 시즌 2는 8주 동안 글로벌 Top 10에 머물렀지만 차트아웃 직전에는 주간 시청 시간이 초방 당시 주간 시청 시간의 6% 수준에 불과했다.7) 회차별 순차 공개 전략을 구사한 <피지컬 100>과 <닥터 차정숙>은 마지막 회를 공개한 다음 주에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이처럼 한 번 시청으로 효용을 다하는 콘텐츠의 경험재적 특성으로 인해 OTT는 가입자 락인을 위해 끊임없이 텐트폴(지지대 역할을 해주는 대작)급 신작으로 경쟁 해야 하는 압박을 받고 있다.
한 달 단위로 구독하는 시청자들을 묶어두기 위해서는 한 달 이내에 해지를 방어할만한 흥미로운 콘텐츠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콘텐츠 소비는 개인의 사적인 취향만이 아니라 대중의 취향, 즉 유행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플랫폼 내의 추천알고리즘만으로 시청자의 선택을 받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시청자들에게 쉽게 노출될 수 있는 리뷰 채널이나 SNS의 요약 영상을 통해, 시청자들이 놓쳤던 우수한 작품을 소개하고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작품 속 숨은 매력을 알려주어야만 이탈을 방어하고 구작(舊作)에게 새로운 소비 사이클을 만들어줄 수 있다.
상대적으로 가입자 규모가 작고 구작 라이브러리가 풍부한 플랫폼에게는 요약 영상이 실보다 득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전 작품에 새로운 시청 사이클을 부여하는 요약 영상은 신작 확보가 어렵고 기존 영상이 많은 사업자에게 콘텐츠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